헨리 채드윅: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 그리스도교 신학의 아버지 l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 10점
헨리 채드윅 지음, 전경훈 옮김/뿌리와이파리



제1장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형성 과정 키케로, 마니, 플라톤, 그리스도

제2장 교양Liberal Arts

제3장 자유 선택

제4장 철학 공동체

제5장 성소聖召

제6장 고백

제7장 일치와 분열

제8장 천지창조와 삼위일체

제9장 하느님의 나라

제10장 본성과 은총


옮긴이의 말

더 읽을거리

색인





제1장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형성 과정 키케로, 마니, 플라톤, 그리스도

26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성경은 아담과 이브에 관한 순진한 신화처럼 보였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도덕성을 지닌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야기로만 들렸으므로, 그는 혐오감을 느끼며 이로부터 멀어졌다. 특히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계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가 교회로 돌아오리라 기대했던 어머니의 바람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27 마니교 공동체는 두 개의 계급 또는 등급의 신봉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절대적 독신 생활은 선택된 자들이라고 부르던 상위 등급에게만 요구되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순히 듣는 자라 불린 하위 등급에 속했는데, 이들은 한 달 중 안전한 기간 동안에는 성관계하게끔 허용 되었으나, 그때조차 아이를 갖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취해야 했다.


30 처음에는 카르타고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로마에서 꼬박 10년 동안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도들과 어울려 지냈다. 가톨릭 교회의 정통 교리에 대해 전투적으로 비판하며, 그는 교회 신자들에 견주어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회 주교들까지도 소양과 비판적 탐구정신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친구들을 마니교로 개종시켰다.


33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식견에 크게 뒤지지 않는 그리스도교 지식인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암브로시우스 Ambrosius 주교였다. 그는 교양을 높이 쌓은 사람이었으며 궁정의 권력에 이르는 통로들을 잘 알고 있었다.


33 암브로시우스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빌려 오긴 했지만, 이교도 철학을 진리의 안내자로 삼는 일을 경계했다.


37 존재의 거대한 사슬 안에서 원인이 결과를 유출한다는 생각을 통해 플로티노스는 몇 가지 사항들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었다. 먼저 그는 절대자가 절대자이기를 멈추게 하지 않는 동시에 이 세계가 논리적으로 실존의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게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둘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잃어버리는 일 없이 초월적인 일자와 이 세계를 한데 붙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37 다른 한편으로 플로티노스의 생각은 모든 플라톤주의자들이 답을 찾고자 미묘한 정신적 묘기를 부려야만 했던 문제, 곧 만물을 이루는 존재의 연속이 지고한 선과 권능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악이 그 안에 침투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


42 아우구스티누스가 악의 문제와 비물질적인 초월 영역의 신비 체험에 관해 발견한 내용들은 그 자신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이 그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영혼에는 자신을 알 수 있도록 고유한 직관적 능력이 내재해있다. 이 능력은 정신이 오감에서 벗어나 물리적 허상들이 제거되는 변증법적 정화 과정을 거쳐 플라톤이 말했던 지복의 직관에 이르게 되었을 때만 발휘될 수 있다. 그들은 이것이 영혼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믿었으며 이는 신적인 빛과 진리를 향해 그 자신을 조금씩 열어보임으로써 실현 되리라고 생각했다.


43 그가 묘사한 경험의 핵심은 이것이다. 유한한 피조물은 완전한 자기실현을 간절히 바라지만 이러한 바람은 이뤄질 수 없다. 유한한 피조물의 자기 실현은 자기를 넘어서서 인간의 능력으로 정의할 수도 없고 묘사할 수도 없는 존재 안에서만 경험 할 수 있다.


44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가 남긴 역설적 효과로 열아홉 살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에 이끌렸다면, 플라톤의 철학서들을 읽은 서른한 살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포르피리오스가 그토록 증어했던 교회로 향하게 되었다.


48 386년 7월 말, 밀라노에서 그가 결혼과 세속적 야망을 포기하고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는 그 도시의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의 회심은 갑작스러운 섬광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고통스러운 잉태의 시간을 지나 이르게 된 정점이었다. 그 자신이 회심의 경로를 임신 과정에 비유했다. 내용으로 보자면 그의 회심은 지적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변화였다.


51 마지막으로 세례받고 신앙고백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특정한 생각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 뼈대를 이루는 요소들만 축약해보면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가 확실히 인정하도록 초대받은 사항들은 세 가지다. 첫째, 질서 잡힌 세계는 지고선에서 나오며, 이 지고선은 최고의 권능이며 이는 다만 우연히 있게 된 최선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으로는 그보다 뛰어난 존재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이 완벽한 존재다. 그러므로 '그분'은 경외와 예배의 올바른 대상이 된다.


52 둘째, 인간 본성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창조주의 의도에 맞게 응답하지 못한다. 인간이 처한 비참함은 사회와 개인의 이기주의로 인해 영구적인 것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인간에게는 늘 무지와 죽음과 단명과 의지박약이 붙어 다닌다.


52 셋째, 최고의 존재인 신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지만 그 안에서 활동하신다.


53 하느님의 신비가 오직 장대한 자연의 영광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숨김없는 자기 고백에 의해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은 신론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는 다른 이들이 스스로 알 수 없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개인에 대한 유비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387년 이후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생각들을 기본 원칙들로 삼았다.


제2장 교양Liberal Arts

59 플라톤주의자들은 역사 안에서 역사를 통해 완수돼야 할 신의 목적 따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시간에 대한 개념 또한 순환적이었지 직선적이지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거대한 시간 간격을 두고 천체들은 운항을 계속해 결국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고 만물 또한 똑같은 우주의 바퀴를 따라 돌면서 새롭게 시작된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 실존적 결단에 이르도록 초대하는 단 한 번의 육화라는 개념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주의에 수정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것이 역사의 목적을 향해 중대한 걸음을 한 발짝 내딛는 것이며,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로서 하느님의 보편 섭리라는 관점에서 육화를 해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64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록에 따르면 놀랍게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동시대 그리스도교 신자들 가운데에는 성경 말고 다른 어떤 책도 읽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며, 또 이상한 번역 투의 구 라틴어본 성경만 읽고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도 있었다. 그는 더욱 폭넓은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확신했다.


65 그는 오로지 성경만이 하느님을 계시하는 매개체라는 주장을 명백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성경은 무지하고 타락한 인류를 위해 하느님이 주신 구원의 길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핵심이 되는 권위의 원칙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성경과 교회의 권위는 서로 지지함으로써 유지된다. 교회에서 어떻게 쓰이는지가 정경의 경계들을 결정한다. 그리고 성경 본문을 통해 하느님이 설립하신 보편 교회의 본질이 확립된다.


제3장 자유 선택

69 영혼의 연약함 자체가 죄에 대한 필요충분의 원인이 되지는 않더라도 즉각적인 원인이 된다. 영혼은 무에서 창조된 우연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쉽사리 정도에서 벗어난다. 영혼이 지닌 불멸성조차도 원래부터 그에 내재한 본질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의지에서 나온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75 그가 이해를 통해 해석하려 했던 신앙의 명제들은 계시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중세 신학자들이 '자연신학'이라 부르는 것의 문제, 곧 특정한 계시에 근거한 주장을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철학적 논증만을 통해 성립되는 문제였다. 자유 선택에 관한 논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에 대한 믿음, 불멸 성, 자유, 도덕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다.


제4장 철학 공동체

84 불가해하고 초월적인 하느님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내면적' 존재다. '기도할 때,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는 말들의 의미를 거의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부적절한 상황은 우리의 용어들과 범주들이 시공간과 연속성으로 이뤄진 이 세계에서 취한 담론 안에 있다는 데서 이미 부분적으로 내재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영원불변한 것들에 관한 진리를 모호하게 만들어 왜곡해 버린다. 부분적으로는 이것이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깊이 깔려있는 감정에 관련된 문제들 전체가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이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만, 자신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88 또한 앎에 관해 그가 매우 강조하며 반복했던 논증이 하나 있는데, 이 논증은 17세기에 데카르트가 다른 맥락에서 중요하게 사용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설사 내 생각에 오류가 있더라도, 나는 존재한다.' 의심하는 한, 개인은 적어도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완전히 확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의심하는 위치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판단 중지란 물샐틈없이 완벽하거나 합리적인 입장이 아니다.


88 그는 확실성이란 것이 의심하는 정신의 주관적 상태에서만 배타적으로 발견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데카르트는 코기토 Cogito를 앎의 유일한 기초로 삼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순수수학의 진리들이 오감으로 지각한 어떤 것들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확실하다고 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90 창조주의 사랑은 그의 이성적인 피조물들의 정신과 의지 안에 편재해 있다. '우리는 걸어서가 아니라 사랑함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간다.' '우리의 발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 품성이 우리를 그 분께 더욱 가까이 데려다 준다. 도덕적 품성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92 그렇다면 구원의 취지는 행복이라 정의된다. 그리고 행복이란 영혼이 교만과 걱정과 수많은 오락거리들에 등지고 돌아서서 일자를 향해, 순수 이성을 향해, 겸손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게 되는 하느님을 향해 고양되어 갈 때 찾아오는 내적 안정을 말한다.


92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가 한 인격 안에서 신이면서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구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 보았다. 우리가 이 찰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원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게끔 하느님이 놓아주신 통로이자 사다리가 바로 이 신-인간인 것이다.


제5장 성소聖召

102 아우구스티누스의 규칙서는 눈에 띄게 간단하며, 참회를 두드러지게 장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나친 고행에 상당히 반대했다. 그가 생각한 '그리스도의 가난'은 절약과 절제가 함께하는 사색적 고요함 이었지, 건강을 해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102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심 메시지는 우리에겐 이곳 지상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도성이 없으므로 매우 가볍게 여행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상에는 그 자신이 실제 개인적으로 실천했던 것처럼 깊은 내핍의 흔적이 뚜렷하다. 그는 영이 신을 향해 고양되는 데 감각이 방해된다고 계속 의심했으며, 신자는 자기도 모르게 해이해지지 않도록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5 신자가 계속해서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고백하는 것은 장엄하신 신 앞에서 피조물은 아무것도 아님을 그가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의 마음에 불을 지른 말이 바로 이것이다.


110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딜레마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의지가 너무 약해 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의지가 선택을 하기 위해 작동하는 질서 속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제나 선호되는 선택지들은 무엇이든 편안하고 즐거운 것들이다. 늘 불안해하며, 찾을 수 없는 곳에서 행복을 찾고,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그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바로 그 인간 본성의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제6장 고백

120 자아의 동일성과 연속성은 기억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억은 정신의 층위 중 하나로서, 시간의 흐름에서 다양하고 분절된 경험들을 통합시켜 준다. 기억은 앎과 의지보다 더 깊은 곳에 놓여 있으며, '정신의 위장' 곧 의식 속에 오직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는 저장고다.


120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기억'의 가장 깊은 심연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에게 순종함으로써 삶의 질서를 잡으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의 정신에 신은 현존한다. 『고백록』의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했다. '마침내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오래 되었으면서도, 늘 새로운 아름다움이신 당신을.' 그리고 그 뒤에 다음과 같은 선언이 뒤따른다. '당신은 절제를 명하십니다. 당신이 명하시는 바를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의도하시는 바를 명하십시오.'


122 하느님은 과거와 미래를 알고 있으나, 우리가 연속성을 심리적으로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하자면, 하느님의 예지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신은 과거와 미래를 알지만, 우리처럼 일렬로 늘어선 사건들로 아는 것이 아니다.


123 창조 이전에는 시간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가 생각한 정답이었다. 시간과 창조는 동시에 시작됐다.


125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물리적 기적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통화와 믿음이라는 내적 변화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 사도 시대 이후에, 갓 태어난 교회를 감싸줄 강보로써 신약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에 대응할 만한 일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서 찾아야 한다.


125 아우구스티누스는 청원기도나 기적이 신의 정신과 그 목적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보지 않았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나 육신의 건강, 많은 자녀를 얻을 수 있도록 신께 구하는 것을 수준 높은 기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청원기도를 두고 유산 상속을 바라며 다른 친척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무가치한 기도로 취급한 것은 아니었다.


127 하느님은 원인과 결과를 모두 결정해 놓았으나, 하느님이 들어주는 기도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사용하는 부차적 원인들에 속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었다.


제7장 일치와 분열

138 중세 후기 사람들은 이단자들에 대해서, 오늘날의 사람들이 살인을 서슴지 않는 납치범이나 마약 밀매자에 대해 생각하듯이 사형에 처하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139 아우구스티누스와 도나투스파 사이의 주요 차이점은 지상에서 영적 전투를 벌이는 교회의 완벽성에 관한 입장이었다. 도나투스파는 교회가 '홈도 티도 없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인용했다. 그들은 그들 무리에도 성사를 받았지만 여전히 이전과 같이 개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개인들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성직자든 평신도든 개인들이 태만하다는 것과 교회가 오염되었다는 것은 다르다고 보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거룩한 장소며, 성도들의 사회다. 이러한 사실은 의심 할 바없이 사도들을 승계하고 있는 주교들에 의해 보장된다.


제8장 천지창조와 삼위일체

149 창조 행위의 순간성이라는 개념은 철학자들에겐 일종의 마술처럼 보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을 발전 과정이라고 보았다. 지금 세상 만물이 지금 있는 그대로 태초에 창조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은 '발생 원리' 또는 인과적 원인들을 창조하셨으며 여기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다른 만물이 생겨났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그는 이후에 등장하게 될 새로운 종들을 그려 볼 수 있었다. 존재의 층위를 따라 진화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신플라톤주의의 설명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적절한 용어들을 제공해 주었다. 플로티노스가 말하는 '유출' 또한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56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 정한 그리스어 신경에서는 '성부로부터 발하시어'라는 표현을 썼다.이 공의회에는 서방 교회 대표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서방 교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교회 법적 결정들이 내려졌다. 이 공의회에서 신경이 승인되었다는 사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죽고 나서 20년이 넘게 지난 뒤에야 서방 교회에 알려졌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성령이 성부 그리고 성자에게서 발출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해야 삼위일체 개념이 동등하지 않고 층위가 있는 세 위격의 합이라고 이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느꼈다. 곧 그리스어 신조formula보다 하느님의 일치를 더 많이 강조한 것이다. 점차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조가 서방 전례에서 사용되는 신경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9장 하느님의 나라

164 410년 로마에서는 알라리크가 이끄는 고트족을 무찌르게 해달라고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와 바오로, 라우렌시오와 그 밖에 로마의 다른 수호성인들의 전구를 구하고 있는 동안 이교도 귀족들은 특별 희생 제사를 바쳤다. 결국 알라리크는 로마를 약탈했지만, 그리스도교 교회들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참사가 일어났다고 생 각했다.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옛 신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으며 왜 그리스도교의 시대가 된 뒤부터 더 많은 재난이 일어나는지를 물었다.


164 410년 8월 24일 영원한 도시 로마의 몰락은 정치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긴 했지만, 이로 인해 역사에 개입하는 신의 섭리에 대한 토론과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몰락을 초래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이에 대응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방대한 역작' 『신국론』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79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보통의 지각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신앙에 기초해 보면, 그들의 도덕적 이력은 하느님의 심판 불을 견뎌 낼 금이나 은이기보다는 타서 없어질 나무나, 풀이나, 짚에 더 가까웠다. 그들은 하느님이 잘못을 용서해주시길 기도했으며 내세에 대한 희망에서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했다.


179 아우구스티누스는 절대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윤리적 요구가 엄격해선 안된다거나, 현세에서 행한 일들이 사후에 맞게 될 운명과 관련없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세와 내세에서 계속될 영혼의 순례에서 육신의 죽음은 다만 그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건 일뿐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승의 삶에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10장 본성과 은총

186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둘 다 인간 조건을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비참한 것으로 보았다. 펠라기우스는 죽음이란 생물학적 필수 조건이라 생각했다. 이와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음이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공포가 이토록 보편적이며 심원할 수 없으리라고 보았다.


195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을 우선시하면 선택받은 백성들이 은총에서 멀어지는 것을 결국 하느님이 허락하실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을 이해했다. 예정설은 하느님의 의도하신 목적지에 결국 이르게 될 것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예지는 인과적이지 않지만 하느님의 예지는 인과적이다.


197 선택된 백성이라는 매우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교의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9세기의 고트샬크나 16세기의 장 칼뱅, 17세기의 얀센 등에 의해 옹호됐다. 이들은 모두 한 결 같이 반대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199 16세기에 오직 믿음을 조건으로 오직 은총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둘러싸고 촉발된 논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과 중세 사상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본성과 은총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더 나아간 것이었다.


옮긴이의 말

205 골수 유대교 바리사이였던 바오로는 자신이 박해해온 그리스도교의 선교사가 되어 그리스도교를 세계 보편 종교로 확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세상 모든 사상과 종교를 편력하며 방황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로 개종한 뒤 기존의 철학과 신학을 종합해 중세 신학으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도자였던 마르틴 루터는 당시 교회의 문제점들을 공개적으로 질의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불꽃을 터뜨렸고 그리스도교 역사뿐 아니라 서구 역사의 한 분기점을 이루었다. 세 사람은 모두 두려움없이 진리를 추구했고, 그 진리를 끊임없이 사유했을뿐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계속해서 대화하고 논쟁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서 진리를 실천하고 그 진리에 따라 사람들을 이끌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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