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권: 우파니샤드 ━ 궁극적 진리에 이르는 길


우파니샤드 - 10점
이명권 지음/한길사



우파니샤드, 인도 철학과 사상의 바이블

우파니샤드는 어떤 철학인가


1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 ━ 우파니샤드의 불이론

2 위대한 실재, 만물의 근원 ━ 우파니샤드의 본령 브라만

3 아트만을 알면 모든 것을 알게 되리니 ━ 브라만에 이르는 초월적 지식

4 만물의 근저에 실재 중의 실재로 내재하다 ━ 만물이 발생하는 원리

5 상징 안에서만 존재하는 존재 ━ 브라만의 상징들

6 존재와 의식과 환희의 브라만 ━ 브라만과 아트만의 세 가지 본질적 특성

7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다 ━ ‘네티 네티’의 브라만

8 이 세계 모든 것이 브라만이다 ━ 브라만과 세계

9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을 얻다 ━ 해탈

10 비움으로 소유하다 ━ 우파니샤드 사상의 요약과 결론


주註

우파니샤드 연구 동향

우파니샤드를 이해하기 위해 더 읽어야 할 책

우파니샤드를 이해하기 위한 용어 해설

우파니샤드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힌두교 주요 인물

우파니샤드에 대해 묻고 답하기

우파니샤드에 대한 증언록





우파니샤드, 인도 철학과 사상의 바이블

14 우파니샤드의 내용을 체계화한 베단타 철학은 흔히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이라는 사상으로 집약되는데, 바로 이 점에서 우파니샤드의 정신은 불교의 일원론 사상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14 이른바 영원불멸성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서로가 천착했던 것이다. 그 아트만을 우파니샤드에서는 영원한 실재로 파악한 것이고, 불교에서는 비실재로 파악한 것이다.


15 우파니샤드 이전에 인도 최초의 고전적 경전인 베다가 신화와 제의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전개했다면, 우파니샤드는 신화와 제의적 겉치레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 내면의 각성과 탐구에 중점을 두는 세계관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15 속박과 예속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무지 속의 아트만이 해방적 실체로서의 참자아인 아트만을 발견하는 과정이 바로 우파니샤드의 기본적 골격이다.


우파니샤드는 어떤 철학인가

19 인도는 인더스 문명과 함께 시작된다. 인더스 문명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서부 아라비아 해로 흘러내리는 하류 지점인 인더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문명으로,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유적지의 폐허 속에 묻혀있는 인더스 문명이 발원하던 기원전 3000년 무렵 이후 오랜 침묵의 세월이 흐른 뒤, 서부 아시아에서 아리아인들이 인도 대륙을 점령해 들어오면서 새로운 인도문화를 꽃 피운다. 그 문화의 꽃이 인도 초기의 고전적 종교 경전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리그 베다』에 드러나 있다. 이 경전은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1000년 무렵에 형성된 것으로, 우주 창조의 노래, 최초의 인간의 탄생 과정, 죽음과 장례의 노래, 그리고 제의와 각종 신들에 대한 찬가로 가득 차 있다.


20 그 후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전 300년까지 500년간 『리그베다』에 나타난 고대 사상을 인간 내면의 세계와 결부시켜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고전적 지혜의 담론이 우파니샤드(Upanishads)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33 '우파니샤드'는 우파(upa)와 니(ni)와 샤드(sad)로 이루어진 합성어인데 '우파'는 '가까이', '니'는 '아래로', '사드'는 '앉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의 가까이에 아래로 경건히 앉아있다는 말은 일정 정도의 학습 기간에 스승의 가까이에 앉아서 비밀스럽게 가르침을 전수받는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40 우파니샤드의 범신론(pantheism)적 경향은 고대의 물활성적인 정령론적 견해에서 출발하여 아리아인들의 신인동형론적 자연신들과 대조를 보이면서 점차 하나의 철학적 결과물로 발전해 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1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 ━ 우파니샤드의 불이론

57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이해하는 다양한 해석들을 종합해 보면 크게 서너 가지의 주장으로 요약된다. 우파니샤드의 세계관이 불이론(不二論)적인가, 아니면 제한적 불이론인가, 또는 이원론(二元論)인가, 아니면 불가사의론인가 하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67 이제 우파니샤드에 와서는 베다의 여러 신들은 우주의 창조 속에 드러나는 하나의 빛을 증명해주는 메신저일 뿐이다.


67 베다의 찬송에서 우파니샤드의 철학적 관심은 객관적 대상의 세계에 대한 탐구에서 주관적 내면 세계로의 이동이라는 사고의 대전환을 발견하게 된다.


69 푸루샤(purusha)는 인간의 참 자아이며 절대자요 순수의식이다. 물질세계의 변화를 관찰하는 '증인'이기도하다. 푸루샤(순수의식)와 프라크리티(물질세계)의 결합을 통해 우주가 존재하게 된다. 푸루샤는 우파니샤드의 베단타 철학에서 아트만과 동일시되고, 따라서 동시에 브라만과도 동일시되고 있다.


78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은 인도 전통 풍속이 관습적으로 지녀오던 카스트(Caste)의 굴레에 매여 있지 않다. 오히려 영적 우주의 세계로 인간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그것이 바로 너다'라는 '타트 트밤 아시'(Tat tvam asi)의 선언에서처럼, 인간은 더 이상 어떤 제도와 풍습에 얽매이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 그것 (Tat)과 다르지 않다는 혁명적인 선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묻고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인간이 도달하게 되는 최종의 목적은 다음 세상에 더 좋은 하늘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카르마(karma)의 우주적 법칙에서 벗어나 참된 영혼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79 과거의 신들에 대한 제의적 풍속과 온갖 사회적 구속의 억압에서 벗어나 내면의 근원적 자유를 얻는 것, 이것이 우파니샤드의 최고이자 최종의 가르침이다.


2 위대한 실재, 만물의 근원 ━ 우파니샤드의 본령 브라만

83 이 본문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는 '위대한 실재'인 브라만의 숨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베다와 그 이후의 해석서, 수 많은 찬양과 격언, 그 모든 것이 브라만이 내쉬는 숨에서 생성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위대한 실재 '란 만물의 근원으로, 그보다 더 큰 실재가 없음을 말한다.


94 브라만의 속성과 본질을 이해하려는 대화 가운데 우선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호흡이었고, 그 호흡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었다. 동시에 호흡은 근원자로서의 브라만이다. 그런데 호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고,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성찰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과 사색'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이 '신앙과 사색'이 브라만을 이해하는 신학적 진술의 토대가 된다.


95 인도의 정통 바라문들은 궁극적 진리인 브라만을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브라만과 하나 되기 위한 이른바 구원의 길, 곧 해탈에 이르는 네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아쉬라마라고 부르는데, 바로 인생의 네 가지 주기를 말하는 것이다.


114 브라만에 이르기 위해서는 첫째, 올바른 스승을 찾는 일과 다섯 가지의 엄격한 수행이 요구되며, 그 다섯 가지 수행은 내면의 평정, 자기 억제, 비움, 인내, 집중이다. 이러한 수행의 조건들이 몇몇 다른 부차적인 수행들과 함께 후기 우파니샤드의 전체적인 내용과 골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3 아트만을 알면 모든 것을 알게 되리니 ━ 브라만에 이르는 초월적 지식

118 우선 아트만은 영원 불멸하다는 것이며, 인간이 겪고 있는 온갖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자유롭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아트만은 인식의 주체로서 바람직한 욕망을 지니고 있고 사유의 기능 또한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모두 참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트만의 속성은 거짓이나 허위로 무장된 것이 아니라 진실 또는 진리 자체임을 말해 준다. 그러한 아트만의 속성을 깨달으면 곧 모든 유한한 고통의 문제에서 벗어나 참된 해탈의 자유를 맛보게 된다. 그 자유는 이 세상뿐 아니라 영원히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게 하고 바라는 것을 충족해준다.


136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름'과 '형태'와 '행위'가 어떻게 곧바로 아트만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세 가지가 하나이며 아트만이라는 진술에서 우리는 경험적 지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초월적 지식의 진술을 대하게 된다. 언어적 통칭과 물질적 대상, 곧 인식과 그 대상이 하나이고, 행위의 결과 또한 하나라면 인간의 모든 의식 활동이 곧 아트만이라는 논리가 된다.


143 우파니샤드가 지시하는 신적 세계의 영원한 실재는 외부적 감각세계가 아니라 영적 각성을 지닌 자들에게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러한 브라만을 아는 참지식에 이르는 길은 저급한 수준의 감각적 기능에서 벗어나 점차 높은 수준의 감각적 수련과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영적인 초월의 직관적 눈을 가지고 내면의 아트만을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4 만물의 근저에 실재 중의 실재로 내재하다 ━ 만물이 발생하는 원리

166 환희(ananda)와 두려움(bhaya)은 인간의 근원적 물음이요 해답이다. 두려움이 있는 한 환희는없고, 환희가 있는 한 두려움은 없다. 이 둘은 절대적 상대다. 아트만의 세계가 환희의 세계요 창조의 세계라면 아트만이 아닌, 다시 말해서 비본질적 세계는 두려움의 세계다. 두려움은 불안이다. 그 불안의 감정은 '타자'에 대한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타자를 넘어선 '하나 됨'의 의식 속에서는 불안이 사라진다. 아트만의 세계는 바로 이 '타자를 넘어선 하나 됨'의 세계이기에 불안은 근원적으로 해소되고 환희만 춤을 춘다.


5 상징 안에서만 존재하는 존재 ━ 브라만의 상징들

184 '옴'을 소리내어 발음하고 명상하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옴이 최고 아트만의 상징으로 불리면서 신성시되는 것은, '옴'이라는 소리 자체로 초월적 존재와의 교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6 '옴'은 베다의 사제가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찬가로서의 만트라다. 제사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옴을 암송함으로써 신을 부르거나 신에게 기원을 하며 또는 지고와 하나가 되는 신비한 의식을 행한다. 땅과 식물 등 모든 존재의 기반을 여덟 가지로 구분 한 후에 얻어지는 마지막 여덟 번째의 핵심도 바로 이 '옴'에 있다.


6 존재와 의식과 환희의 브라만 ━ 브라만과 아트만의 세 가지 본질적 특성

222 환희라는 의미는 어떤 면에서 슬픔이나 고통 같은 괴로움의 실존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런 점에서 염세적 또는 허무주의적 세계관과 다르다. 환희는 분명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의 실존인 만큼 해방, 곧 해탈의 의미를 갖는다.


228 브라만과 아트만의 환희를 알고 난 사람은 선악의 상념들로 인한 괴로움을 받지 않으며, 그리하여 선악의 차별적 구별도 넘어서서 일체의 모든 것을 하나로 알게 된다. 이것은 현상적 세계의 선, 악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선과 악의 상대적 지식과 그로 인해 받게 되는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밀스런 가르침으로서이 우파니샤드이다.


7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다 ━ ‘네티 네티’의 브라만

241 위의 본문에서 '그것이 너다'라는 선언이 나오기까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소금물의 비유를 통해 아트만의 실상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선언은 우파니샤드의 가장 위대한 진술 가운데 하나다. '그것이 너다'라는 표현은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아트만을 직접 이해시킬 수 없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비유를 통해 설명한 결과로서의 직설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브라만/아트만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정의 길'을 통한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256 모든 우주 위에서,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영원히 빛나는 아트만도 인간의 내면에서 빛나는 존재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우주적 원리가 곧 인간 내면의 영적원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브리하드아라냐가 우파니샤드』의 진술에 의하면, 이 불멸의 아트만은 땅에 머물면서 '그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 자(아트만)'며, 물에 머물면서 '그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 자'며, 불에 머물면서 '그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 자'다.


8 이 세계 모든 것이 브라만이다 ━ 브라만과 세계

272 브라만 아트만이 자신 스스로 물질적 세계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물질적 브라만)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브라만은 이처럼 세계 모든 피조물과 신들 가운데서 그들을 움직이는 내적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창조된 신들은 아트만을 명상함으로써 모든 세상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신들은 이 브라만/아트만에게 절대 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신이라고 해서 인간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또한 '내가 브라만/아트만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바로 브라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72 이처럼 고대 우파니샤드에서 후기 우파니샤드로 갈수록 신관이 변해 가는데, 수많은 다양한 신들이 출현하는 다신론에서 점차 브라만/아트만을 중심으로 하는 유일신으로 변해가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282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브라만/아트만의 일원론적 경향은 모두 통일성을 보인다. 예컨대 세계의 시작은 일자로서의 브라만/아트만의 출발이며, 세계의 다양성은 이들 지고의 신의 환영인 동시에, 그 환영의 그림자를 벗어나면 바로 그 순간이 참된 실재로서의 브라만/아트만의 본 모습이기도 하다. 이것은 바로 '분별'이 사라진 영원한 합일의 깊은 심연인 '꿈없는 깊은 숙면의 깨어 있는 의식'에서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때는 인격신 이슈바라 자체도 마지막 심연의 의식인 투리아에 흡수되고, 오직 존재와 의식과 환희만 남게 될 것이다.


9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을 얻다 ━ 해탈

285 해탈(moksha)에 이르는 길, 그것은 브라만/아트만의 본질을 깨닫는 데 있다. 깨달음은 단순히 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깨우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일차적으로 우파니샤드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습득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스승의 '무릎 가까이에 앉아서' 일정 기간 베다를 학습하며 깨우침을 얻는 것이 우파니샤드가 전하는 해탈의 길이었다. 그렇다면 그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이 지금까지 길게 논의해온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 핵심적인 내용을 이제 해탈이라는 각도에서 다시 조명해 본다면, 브라만의 또 다른 속성인 창조와 보존, 그리고 파괴와 융합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아트만이 우주적 실재로서의 브라만과 어떻게 합일될 수 있느냐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300 해탈에 이르는 '깨달음' 이전에 아트만(자아)이 있었고, 그 이전에 우주적 원형으로서의 푸루샤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인간과 우주에 편만해 있는 그 원형의 푸루샤를 회복하는 것이 길고 긴 여행의 끝이며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다. 그 여행의 도중에 브라만/아트만은 우주의 보존자로서 '다리' 역할을 해주기도하고, 파괴자로서 파멸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브라만/아트만은 결국 윤회와 죽음을 넘어선 대융합의 길, 곧 해탈 그 자체이기도 하다.


10 비움으로 소유하다 ━ 우파니샤드 사상의 요약과 결론

336 이 환영적 세계의 실상을 모르는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로 아트만에 대한 이해에서 가능하다. 무지는 고통이나 족쇄 또는 집착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영-무지-윤회'라는 삼중적 세계의 실상을 동시에 통찰해야 한다. 족쇄를 끊는 검으로서의 통찰은 궁극적으로 '모든 욕망의 비움'이라는 형식에서 성취된다.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고통스러운 실존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이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기도 한 것처럼, 우파니샤드가 말하는 해탈의 길도 고통과 죽음의 극복으로 맞게 되는 구원 의길이요 불멸의 길이다.


336 환영에서 벗어나 '내가 곧 푸루샤요 내가 곧 브라만/아트만이다'라는 실재의 실상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파니샤드가 말하는 비밀스런 가르침으로서의 해방의 길, 곧 해탈의 최종적인 가르침이다. 그 궁극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위대한 진술, 즉 마하바키야(Mahavakyas)로 압축된다. 이것이 우파니샤드의 결론 중의 결론이다.


"의식이 브라만이다" (『아이타레야 우파니샤드』)

"내가 브라만이다." (『브리하드아라냐카 우파니샤드』)

"그것이 바로 너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이 아트만이 브라만이다." (『만두키야 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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