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2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1
- 강의노트/책을 읽다보면 2017-18
- 2017. 12. 13.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71125_04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1
기자의 책 읽는 방법은 머리말 읽고 목차 읽고 결론 읽고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자에게 밀려닥치는 수많은 아이템이 소화가 안되서 그렇게 읽는다. 아주 나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께서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에 가담함으로써 기자들이 그동안 잃어버렸던 신뢰를 조금이라도 높이는데 도움이 되려고 한다.
지난 번에 눈물겨운 이야기를 했다. 이제 오뒷세이아를 끝내고 다음 작가로 넘어가려고 한다. 희랍 비극의 창시자인 아이스퀼로스를 하려고 한다. 희랍 비극 얘기를 일단 해야겠다. 희랍 비극이란 어떤 것인지 전반적인 얘기로 시작해보자.
희랍에서 서사시에 이어서 발전된 문학양식이 비극인데 서구에서는 서사시와 비극이 전부이고, 사밀한 이야기는 나중이다. 서사시는 말그대로 이야기인데 너무 길다. 딱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드러내보려는 시도가 있겠다. 또한 서사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하기에는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으니 최소한 거기에 등장하는 몇몇의 배우들만 등장시켜서 집중적으로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 비극이다. 두 개의 양식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전달되는 매체의 방식이 달라졌다.
방송도 그렇다. 영화를 만들 때는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빨리 몰입하도록 만들어서 빨리 끝내야 하는데, 드라마를 만들 때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숙적과 주변인물들의 관계가 나오면서 그들의 갈등관계를 서사시처럼 길게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서사시가 좋은 지 비극이 좋은 지 물어보면 성격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저는 서사시적이다.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가 있을 것 같다.
비극의 형식적인 특징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언짢아 하는데 형식을 잘 지켜야 내용도 잘다듬어진다. 그래서 형식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장 형식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런데 형식이라는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서사인 프롤로고스가 있고, 퇴장가가 있다. 근대 드라마로 치면 서사가 1막, 퇴장가가 5막이다. 비극도 서론하고 결론이 있고, 중간에 1,2,3장이 있다. 그리고 비극을 읽을 때 가장 재미없는 부분이 주로 노래는 하고 있는 부분이고, 노래 중간 중간에 이야기가 끼어들어간다. 사실 본래적인 의미에서 뮤지컬이다. 이야기가 끼어들어간다 해서 희랍어로 에페이소디온 (epeisodion), 에피소드, 삽화이다. 합창단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등장가가 나오는데 이로서 무대가 시작한다.
대개 노래가 나오면 살짝 건너뛰고 다음 줄거리로 넘어가고는 한다.
그렇다해도 희랍 비극의 형식적인 특징은 코로스이다. 노래가 비극의 주가 되는 것이다. 코로스가 하는 것을 잘 읽어야 비극을 잘 읽을 수 있다. 아테나이의 관객들도 다 알고 있는 것, 신화에서 차용한 이야기 때문에 스토리는 뻔한 것이다. 패왕별희 스토리야 뻔한 것이고, 사실은 노래를 들으러 가는 것. 그래서 코로스가 중요한데 코로스가 하는 역할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해서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는 배경설명을 하는 역할을 하고, 그 다음에 앞으로 일어난 일을 예견하기도 하고, 현대 드라마에서는 방백이라고 불리는 부분인 관객들만 알아듣게 이야기하는 것이 코로스와 주인공이 주고 받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관찰자 노릇도 하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코로스가 하고 있는 일은 굉장히 다양한다. 이 장면에서 코로스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장면의 특징을 잡아내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비극하면 그냥 슬픈거야라고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이다. 일단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우리의 인생 자체가 비극이기 때문에 비극을 슬픈거라고 말한다면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드라마에서 비극이라고 하면 주인공이 나중에 죽는게 비극이다. 희랍 비극에서는 인간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할 때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엄청난 마찰력이 일어나는데 그때 살이 타는 느낌, 그 느낌이 비극이다.
신이 나에게 던져놓은 운명을 남들은 주저앉을지 모르지만 계속 온몸으로 부딪치는 것이 비극인가.
유한자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신을 전제하든 하지 않든, 벽에 가져다대고 몸과 정신을 쳐버리면 마찰력과 충격이 일어나다. 그런 것들이 물리적으로 생겨나는 마찰력이 정신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지점이 있다. 그 순간에 생겨나오는 그런 더러운 불꽃이다.
작품을 만들어서 내놓으려면 슬픔만 가지고는 그러니까 장엄미나 비장미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요아힘 빙켈만이라고 하는 독일의 예술학자가 있다. 고대 그리스 예술 모방론이라는 책을 썼다. 근대 독일에서 희랍문명에 대한 굉장히 강도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 학자이다. 그 사람이 희랍 문명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비장한 비장미'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실감을 잘못한다. 이때 권하는데 깍지 끼고 엎드려뻗쳐를 2천개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고 할 때 그런 것들이 비장한 비장미라고 할 수 있다.
아이스퀼로스가 들어가보자.
아이스퀼로스의 작품들에서 전반적으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은 '인간의 의지와 신의 뜻의 관계'이다. 이것이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문제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살펴보면 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신의 뜻' 사이에서 움직이는데 아이스퀼로스는 훨씬 더 신의 뜻에 순종하는 자이다. 성서의 욥기만큼은 아니지만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은 대체로 신의 뜻이 대체로 관철된다. 이게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아이스퀼로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참전했던 사람이고, 아테나이의 전성기를 살았던 사람이니 나라가 잘나가면 신이 돌보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소포클레스는 후대 사람이고,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나이가 망해가는 시절에 살았으니 세상은 될대로 되겠지 정도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보면 신이 정해준 운명, 즉 '모이라'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고 인간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메데이아》는 거의 현대 실존문학처럼 읽을 수 있다. 코로스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와 그 행위가 어떻게 귀결되는가를 가리키는 적당한 말은 물레방아로 상징되는 행운인 '튀케'의 여신이다. 여신도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운명을 가리키는 여신이 셋인데 아낭케 여신이 있다. 철의 법칙으로 불변하는 필연성. 그 다음에 아낭케 여신의 세 딸인 모이라이, 즉 모이라의 여신들이다. 이들은 각각의 본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튀케는 로마시대의 포르투나 여신이 되는, 포춘이다.
기자들의 일도 사실 그렇다. 어떤 운명이나 사회의 변동이 사람의 운명 또는 진로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다. 그 다음에 경제위기가 닥친다든가 또는 대통령이 바뀌는 것도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이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사회가 어떻게 변동되고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이다. 그리스 비극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계속해서 자아도취가 유지되지 않는 한 뻔뻔하게 남 앞에서 얘기하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겸손함을 갖추었다면 그렇게 얘기하기 어렵다.
그리스 비극 같으면 인간과 신의 문제이지만 현대 21세기에는 인간과 사회구조,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과 대치가 되는 것 갔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신에게 무례한 것이지만 사실은 시대의 흐름이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은 여러 개가 있지만 그래도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레스테스의 이야기인 《오레스테이아 Oresteia》가 중요한 얘기가 될 것 같다. 3부작 전체를 차분하게 읽어보는 것이 희랍 비극 공부에서는 출발점이다. 우선은 직접적으로 소포클레스를 읽지만 공부를 위해서 읽는다 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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