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4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1


오셀로 - 10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아침이슬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71216_07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1

지난 시간에 메데이아를 읽으면서 신과 인간이 얽히면서 서사를 펼치던 시대에서 인간쪽으로 들어왔는데 오늘은 진짜 인간의 이야기로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우리가 책으로 읽는 것과 실제로 연극무대에 올려진 것은 상당히 다르고, 더군다가 연극무대 자체가 지금과 셰익스피어 시대가 다르다. 다시말해서 일단 셰익스피어는 드라마 작가이고 동시에 배우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 극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를 벌어야 했다. 그러면 셰익스피어는 어떤 사람인가. 벌어야 하는 사람이다. 배우 월급도 줘야 하고, 극장도 유지해야 한다. 극장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극장처럼 천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도 없다. 관객석이 넉넉하지도 않고, 서서 구경을 하는 사람이 많다. 우아하게 옷을 입고 가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르네상스 시대이니까 런던이라고 하는 곳에는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노동자들이 주말드라마 보듯이 하는 것이었다.


일단 무대의 차이가 있고, 또 드라마를 작업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관객들이 셰익스피어에게 뭔가를 집어 던지는 행위, 연극이 재미 없어지면 바로 뭔가를 집어 던지는 굉장히 역동적인 곳. 무대 위에서는 연극이 펼쳐지고, 관객은 몰입해서 보더라도 반응이 즉각즉각 오는 것. 


연극이 끝나면 재미없는 부분은 내일 연극에서는 그 장면을 바꿔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가.

당연하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는 드라마 작가이는 한데 사실 쪽대본 작가라고 보면 된다. 합리적 추론이 아니라 정설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어제 올린 오셀로의 대본과 몇 달 뒤에 다시 올린 것의 대본이 다를 수 있는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은 리어왕이다. 판본 두 개가 다 정본으로 인정된다. 펭퀸클래식에서 나오는 드라마 판본이 대체로 정본으로 인정되는 것을 모아서 만든 것이지만 사실은 그때그때 대본을 고치기도 했고 재미없는 부분은 빼서 삭제하기도 했다. 그리고 비극 작품에서는 그런 것이 없는데 로맨스 작품에서는 드라마 전개와는 관계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노래와 춤, 재담이 있다. 그런 것은 다 재미를 위한 것이다. 지방 공연도 했기 때문에 지역적 분위기에 따라 고치기도 했을 것이고, 그때 그때 고쳤으니 사실은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정본이 없고 그만큼 역동적인 것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극장주이기도 하면서 드라마 작가이기도 하면서 배우이기도 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같은 극장 안에 있는 배우들이 늘 작업을 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 드라마의 특징이 등장인물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자기가 아는 사람을 시키니 그렇다. 부가설명들이 없으니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면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신호가 없다. 그래서 현대의 연극 연출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출하려면 부가 설명이 없으니 굉장히 복잡하다. 장중한 태도로 등장해야 하는지 까불면서 등장해야 하는지 이런 지시들이 있어야 희곡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런 것이 없다. 현대의 희곡들은 그런 것이 있다. 아니면 애초에 읽힐 것을 목적을 둔 것이면 할 수 없는데 그런 것이 없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몇 살이나 되었는지, 예를들어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나이 차이가 있는 것은 아는데 도대체 얼마나 차이가 나야 하는지 연출자가 다 확정을 해야 하는지 셰익스피어는 '잘 해'라고 하면 끝났을 것. 특히 중요한 것은 침묵도 대사인데 그런 것을 적어놓지 않았다.


대사를 보면 긴 호흡의 복잡한 은유와 비유가 섞여있고 시적인 표현들이 엉켜있는 대사를 들으면서 감정이 몰입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것은 나중에 다듬은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 당시의 관객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듣는데 능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보는데 능하다. TV를 보면 한국사람이 하는 말에도 자막을 깔아준다.


사실 신화나 전설로 전승되던 시절에는 듣는 감각이 고도로 발달했을 것이다.

듣기가 굉장히 중요하고 듣기만 잘하는 것. 쓰기와 읽기는 못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때는 문맹률이 엄청났다. 그리고 우리는 춘향가 완창을 들을 수가 없는데, 시골에서 옛날 분들은 다 들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진실한 것. 우리는 쓰여지고 내 눈으로 검증해보고 차근차근 음미를 봐야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은 한번에 해치우는 것이 진실한 것이다.


결국은 지금은 도표, 그래픽, 동영상도 하나 있어야 그나마 진실체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 그것을 쑈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되고, 사람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자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뭔가를 보여주면서 그림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비극을 먼저 떠올리는데,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어떤 장르가 있는가.

먼저 비극이 있다. 비극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결말이 불행하다는 것도 있지만 끔찍한 딜레마가 있어야 비극이다. 어떤 것을 결정해도 절단이 나는 상황이 비극이다. 선택지가 두 개가 있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둘 다 절단나는 것이 비극이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결정해도 어떤 것을 선택해도 결국은 잘못된 결정이 되는 것. 그러다보니 막판에 사람이 미쳐죽는다. 비극을 잘못된 결정에 의해서 광기에 휩싸인 결말과 죽음이라고 하는데 그 출발점은 두 개의 선택지가 둘 다 끔찍한 것이라는 것.


맥베스도 덩컨 왕을 죽이지 않으면 내 야망이 가만히 있지 않고, 죽이자니 양심에 꺼려진다. 이 두개가 끔찍한 것. 그냥 차라니 애초에 코다의 영주가 되지 않았더라면 또는 마녀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면 되는 것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다 끔찍한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딜레마가 있다. 그냥 한쪽을 밀고 나가서 살면서 그냥 메데이아처럼 자기 변설을 하다가 덜 괴로운 척하고 죽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다.


희극은 일종의 사랑이야기도 나오고, 희극을 결정하는 요소는 결말이 결혼으로 끝난다는 것. 가령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이다. 중간이 어쨌든 간에 희극이다. 악덕 상인의 갑질과 여자의 변장과 복수가 나온다고 치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그 다음에 로맨스라는 장르가 있는데 로맨스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하면 된다. 오늘날로 치면 판타지이다.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얘기치 않게 우연한 일이 일어나도 뜻밖의 용서도 있다. 그리고 비극, 희극, 로맨스는 그런대로 읽을만한데 고통을 주는 것이 사극이다. 잉글랜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고, 사극이기 때문에 일단 등장인물이 많고, 전쟁이 벌어지고, 전투작명은 별로 없고 계속 말싸움이 있다. 사극은 일단 잉글랜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 네 가지 장르가 있고, 한가지는 문학을 연구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 문제극이 있다. 여러 장르의 특징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 베니스의 상인. 기본적으로는 희극인데 샤일록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비극이다. 


셰익스피어의 주제는 무엇인가. 셰익스피어는 왜 클래식인가.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를 촉발하는 원인들이 전적으로 자기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을 분석한다는 것은 도대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결과가 낳았는지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쉽게 얘기하면 인간이 남탓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주어진 상황이 있는데 아이스퀼로스의 경우에는 그 사람 잘못도 있지만 정해진 것도 있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그런 것이 아니다. 1막 1장을 보면 상황 자체가 스스로 밀고 들어 간 것. 맥베스를 보면 마녀들의 말을 귀기울이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다음 주에 시작할 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작품은 오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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