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3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 강의노트/책을 읽다보면 2017-18
- 2017. 12. 21.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71209_06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희랍 비극의 창시자인 아이스퀼로스로 시작해서 비극을 살펴봐야 하는데 오늘은 누구로 가야하는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이다.
에우리피데스는 흔히 3대 비극작가라고 하는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퀼로스와는 다른 느낌이 있다.
그들과 다른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나이의 쇄망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에우리피데스 작품이 작품 자체로는 잘짜여져 있거나 또는 필연적이고 극적인 전개가 대단하지는 않은데 흐트러지고 짜여지지 않은 것이 뭔지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문학적으로 두 비극의 대가들과 다르다는 것은 소재를 잡는 것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소재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인지
소재도 새로운 소재이고,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사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현대의 느낌을 받는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퀼로스는 장엄한 부분이 있는데 에우리피데스는 소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메데이아>를 보면 우선 이아손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왕자인데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숙부한테 뺏겼다.
용감하게 아버지의 왕위를 돌려 달라고 했으니 숙부는 제껴버리면서 황금 양털을 찾아오라고 한다. 일단 이런 사건들은 지나서 메데이아는 그 과정에서 남편 이아손과 사이가 좋았다. 둘은 코린토스로 도망친다. 이때만 해도 남편에게 순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자때문에 이아손이 배신을 한다.
메데이아 첫 머리를 보면 "마님께서는 도망자로서 이 나라를 찾아오셨지만, 이곳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계시고, 매사에 이아손에게 순종하고 계세요. 아내와 남편과 화목하게 지낸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미움으로 변했고, 애정도 식어버렸어요. 이아손 님이 자기 자식들과 우리 마님을 배신하시고는 왕가의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하시고, 이 나라를 통치하시는 크레온 님의 따님과 결혼하시니 말예요." 여기를 보면 가장 핵심적인 단어가 '배신'이다.
<메데이아> 13~16행
유모 마님께서는 도망자로서 이 나라를 찾아오셨지만,
이곳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계시고, 매사에 이아손에게
순종하고 계세요. 아내와 남편과 화목하게 지낸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미움으로 변했고, 애정도 식어버렸어요.
이아손 님이 자기 자식들과 우리 마님을 배신하시고는
왕가의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하시고, 이 나라를
통치하시는 크레온 님의 따님과 결혼하시니 말예요.
장엄한 서사시에서 드디어 인간의 사랑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같다.
<메데이아> 같은 경우에는 장엄하다는 것은 더 이상 없다. 장엄하다는 것은 끝까지 버티는 인간의 인내가 나와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더이상 없다.
자기의 애인을 위해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동생도 죽였는데 여기와서도 또 죽인다.
이아손이 배반을 하니까 메데이아는 일단 이아손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아손이 반했던 여자과 왕을 죽이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령 소포클레스의 드라마에서와 같으면 그 전에 메데이아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어서 여기서 드러나서 대가를 치른다든가 이런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메데이아가 자기 변명을 해나간다. <메데이아>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메데이아 혼자서 독백하는 부분들, 이를테면 변설들이다.
줄거리는 결국은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서 열심히 도왔는데 배신을 하길래 나도 그러면 가차없이 복수를 한다는 스토리는 간단한다. 그런데 그 중간 중간에 자기를 변명하는 이야기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변설이라는 부분이 후대의 문학 연구자들이 에우리피데스의 새로운 작법이다라고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서의 드라마들이 코로스의 역할들이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준다면 여기서는 그런 것이 없이 주인공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의 변설을 보면 '내가 이렇게 까지 고생해서 이 남자를 키웠는데 이 남자가 배신을 했으니 내가 복수를 하지 않으면 남한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대개는 후배들에게 친구들에게 쪽팔리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으려고 하지 않나. 최소의 기준이 비웃음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메데이아의 변설이 계속 이어진다.
메데이아의 변설이 계속 이어지는 어떤 결정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변설이 하나씩 들어난다. 1042행을 보면 변설이 메데이아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망설이는 메데이아가 있고, 결단하는 메데이아도 있고, 망설이는 자신이 못마땅하니까 스스로에게 화가 난 메데이아가 있다. 자기가 자기에게 실망하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메데이아> 1042~1055행
메데이아 아아! 어떡하지! 애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나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요, 여인들이여.
나는 차마 못하겠어. 내 이전 계획들은 사라져버려라!
나는 내 자식들을 이 나라에서 데리고 나갈거야.
왜 왜들의 불행으로 애들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려다가 나 자신이 그 두 배의 고통을 당해야 하지?
그건 안돼! 그 계획들은 사라져버려라!
내가 뭐 잘못된 건 아니야? 원수들을 응징하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내가 웃음거리가 되겠다는 거야?
해치워야 해! 부드러운 말에 마음이 솔깃해지다니
나야말로 얼마나 비겁한가! 얘들아, 집 안으로
들어가거라! 내 제물에 동참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는 이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세요!
내 손은 결코 허약해지지 않을 거예요.
메데이아가 재미있는게 가령 오이디푸스는 단일 성격으로 시종일관 잘난 척을 한다. 그런데 메데이아는 화도 났다가 격분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격분이 뿜어져 나오면서도 웃음거리가 되기 싫으니까 하는 부분도 있고, 연민도 있다. 그래서 다중 인격들이 모여있는 것이고 이것이 인간의 참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신이 운명을 정해줬는데 그러면 신은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주인공이 알아서 하긴 하지만 어쨌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에는 신이 등장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라고 하는데 기계 장치로부터 내려온 신이 나온다. 이게 있다면 소재를 정교하게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 예술적으로 소화되지 않은 소재를 사실 희랍사람들의 내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당시에는 아직 다루기 어려운 소재가 아니었나 한다. 급격하게 문학영역에 투입해서 처리가 잘 안되버리는 것.
아테나이에서 뭔가 신 관련된 것들 또는 이런 것들의 상황과 시대가 변했다. 급격하게 바뀐 것은 아니지만 신에 대한 의존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에우리피데스 시대에 왔을 때 사람들이 무엇이 진실이다 하는 것을 진실체계가 있다. 여기서 신을 등장시켜봤자 사람들이 다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미 신이 그렇게 되어버린 시대였던 것이다. 우리가 인지적 부조화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진실체계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오면 더 이상 신에 관한 이야기들은 믿을만한 이야기들이 아닌 것이 된 것이다.
어떤 시대이든지 진실을 구성하는 체계라는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강유원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은 일단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는 것을 판단을 할 수 있는 진실체계들이 있다. 철학공부를 했다더라, 관련된 책을 몇 권 썼다더라 라는 증거들이 있다. 그런데 거짓을 말하는 증거들이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말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각자가 미디어를 가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기자들을 예를 들어서 말하면 진실을 구성하는 체계의 요소 중의 하나인 기자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말할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도 그 당시 희랍시대의 진실구성체계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보는 것이 가장 포괄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메데이아는 변설을 하는데 이아손은 뭐라고 말하는가.
이아손은 변설이 아닌 우리가 아주 잘 예상할 수 있는 찌질한 변명뿐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아손은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메데이아 1인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에 이아손이 하는 말은 "당신의 악행을 응징할 악령을 신들께서 내게 지우셨던 것이오." 이아손으로 하여금 악한 짓을 했던 메데이아를 응징하게 했따고 말하는데 이아손은 자신의 잘못은 변명조차 하지 않고 메데이아의 잘못만을 거론하고 그것이 신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라고 말한다.
<메데이아> 1329~1335행
이아손 이제야 알겠소. 하지만 그때는 미쳐 몰랐소.
아버지와 길러준 조국을 배반한 당신을 나는
당신의 고향과 야만족의 나라에서 헬라스의
집으로 큰 재앙으로서 데려왔던 것이오.
당신의 악행을 응징할 악령을 신들께서 내게
지우셨던 것이오. 이물이 아름다운 아르고 호에
오르기 전에 당신은 오라비를 죽였으니 말이오.
그러다보니 메데이아는 처음에 자신이 생각했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것을 성취하지 못한 셈. 메데이아는 메데이아 대로 자기 혼자 얘기하고, 이아손은 이아손대로 얘기하니 대화가 서로 만나지 못하고 허공에 맴돈다. 메데이아는 아이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떠나버린다.
결국 진실체계라고 하는 그동안 유지해온 것이 허물어져 버렸는데 그것을 대체하지 못한 상황이 여기서 보인다.
그렇다. 메데이아도 이아손을 믿을 만한 증거가 있었다. 그동안 공을 들였고, 그에 따라서 메데이아와 이아손 사이에 구축된 신뢰의 패러다임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그것을 계속 믿는다면 자신도 괴롭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시대가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때쯤되면 아테나이 사람들은 신을 믿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것은 내가 묻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있기는 하나 늘 발휘되는 것은 아닌가 정도인 것 같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자기의 행위나 생각을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겠다. 기독교 신자들이라 매순간 신을 전체하고 행동하면 광신이다. 인문학에서 이것이 중요한 논제이기는 하다. 희랍사람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고대사 전공을 한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폴 벤느가 쓴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라는 책도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믿기도 했고 안믿기도 했다.
다음 시간에는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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