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4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3
- 강의노트/책을 읽다보면 2017-18
- 2018. 1. 4.
오셀로 -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아침이슬 |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71230_09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3
지난 시간에 오셀로에 대한 개괄적인 얘기를 했다.
지난 번에 오셀로 얘기를 하면서 오셀로가 얼마나 속된 말로 찌질한 사람인가를 얘기했다. 오늘은 1막1장으로 들어간다. 셰익스피어가 드라마를 잘만드는 것이 1막1장부터 3장까지가 말하자면 희랍비극에서는 서사에 해당하는데, 처음 대사를 보면 오셀로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 이아고이다. 이아고가 등장해서 뭐라고 뭐라고 해버리면 오셀로가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기도 전에 이미 관객들은 오셀로에 대해서 뭔가에 대한 선이해가 있게 되는 셈. 처음 대사가 자기 상관임에도 '도둑'이라는 말을 쓴다. 베니스의 귀족인 브라반치오에게 도둑이라고 말을 하며, "등 두 개 달린 짐승을 만들고"있다라던가 "음탕한 무어 놈"이라든가의 말을 한다. 그러면 관객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
12 이아고: 참으로, 의원님, 도둑을 맞으셨습니다그려. 저런, 옷을입으세요.
의원님 가슴이 찢어졌어요, 잃으셨습니다, 당신 영혼의 반을.
바로 지금, 바로 지금도, 늙고 시커먼 숫양이
배를 맞추고 있어요, 당신의 하얀 암양과. 잠을 깨시오, 잠을 깨!
13 이아고: 저로 말씀드리자면, 말씀드리고자 왔습죠, 의원님 따님과
그 무어 인이 지금 등 두 개 달린 짐승을 만들고 있노라고요.
14 이아고: 일반 서민용 뱃사공 한 놈만 딸려 실려 가신 곳이,
음탕한 무어 놈의 털투성이 품이라면
여기서 이아고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을 보면 오셀로가 비열한 사람이 되는 것. 차라리 깔끔하게 악한 자는 약간의 못된 심성을 가진 자에게는 경외감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비열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아무 것도 주지못한다. 나쁘다는 말을 가지고 한꺼번에 섣불리 일반화하지 않고 잘게 쪼개보면 비열함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인간에게 저급하게 취급되는 것 같다. 치사한 것보다도 조금 더 나쁜 것이 비열한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이아고를 통해 노리고 있는 점은 오셀로의 이런 치사한면서 비열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선을 깔아두는 것. 예를 들어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오만한 느낌은 주지만 비열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셀로는 다르다.
1막 2장을 보면 오셀로가 나온다.
앞에서 충분히 비열한 놈으로 이미지 메이킹되어 버렸는데 나와서 허풍을 떤다. 예를 들어서 오셀로의 대사를 보면 "나는 태생과 핏줄이 왕족이다"라고 말을 한다. 이런 말 정말 사람들이 싫어한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인데 이 시대 영궁에서 태생과 핏줄이 왕족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자부심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태생과 핏줄이 왕족인 사람들이 저지른 못되고 치사한 짓들이 넘쳐흐르던 시기이다. 오셀로가 자기자신에 대해서 펼쳐보이는 자부심의 원천이 태생과 핏줄인데, 이것을 사람들이 왜 거부감을 가질까 생각해보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것을 가지고 자부심을 드러내보이는 것은 '자기'라는 것이 단단하지 않은 사람이 벌이는 짓이기 때문이다.
19 오셀로: 해볼테면 해보라지.
내가 베니스 공국에 해 준 일이 얼만데
그의 불평쯤은 파묻힐걸.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
그걸 자랑하는 게 명예라면,
공표하도록 하지 - 나는 태생과 핏줄이
왕족이다, 그리고 받을 만하다.
그런데 지금 오셀로가 혈통과 핏줄을 내세우냐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베니스에 없기 때문이다. 첫째는 자기들을 알아주지 않는 베니스 사람들에게 일종의 자만심의 표현일수도 있고, 또하나는 자기가 너무 좋아서 빠져든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아고가 말했던 것과 대조되면서 관객들에게 극도로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막 2장에서 본격적으로 브라반치오와 오셀로의 대립이 생긴다.
브라반치오가 가진 태도가 상식인의 태도로 보인다. 브라반치오는 귀족이니까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오 이런 더러운 도둑놈, 내 딸을 어디 잡아 두었느냐? 저주받은 자 네놈이, 그 애에게 마법을 걸었도다. 스스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거라." 여기서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러면 누가 생각해봐도 브라반치오의 생각에 동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에게 다 물어본다해도 다 동조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21 브라반치오: 오 이런 더러운 도둑놈, 내 딸을 어디 잡아 두었느냐?
저주받은 자 네놈이, 그 애에게 마법을 걸었도다.
스스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거라.
그러면 이제 오셀로와 브라반치오 사이에 일종의 긴장이 형성되는데, 이 긴장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져서 브라반치오에게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1막 2장 마지막에 "이런 짓거리가 멋대로 횡행한다면, 노예와 이교들이 우리 공국을 다스리게 될테니까."라고 말을 하는데, 그러니까 브라반치오의 판단기준은 '우리의 공국'이다.
23 브라반치오: 이런 짓거리가 멋대로 횡행한다면,
노예와 이교들이 우리 공국을 다스리게 될테니까.
지금 관객들은 충분히 브라반치오에게 공감했을 것이고, 오셀로는 점수를 깎였을 것이다. 그런데 1막3장에 가서 뒤집어진다.
그러면 두 개의 힘이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오셀로는 베니스공국을 위해서 일단 뭔가 힘을 가지고 도와주는 사람임을 내세웠고, 브라반치오는 우리 사회에 갑자기 끼어들어서 사회와 가족과 딸까지 건드리냐고 하면서 상식으로 맞선다.
그렇게 해서 1막 3장으로 들어가는데 오셀로에서 1막 3장이 펼쳐지는 공간이 베니스 공국의 회의실이다. 그러면 이제 말하자면 오셀로 브라반치오의 위세를 이겨낸다면 오셀로는 공인받은 셈이 되는 것이니까 정말로 자만심이 더 커질 것. 베니스의 공작이 "용감한 오셀로"라고 얘기를 한다. 이 얘기는 오셀로에게는 정말로 중요했던 것. 그리고 실제로 공작은 브라반치오에게 못봤다고 얘기를 한다. 브라반치오는 무시를 당한 셈. 브라반치오는 나라일로 온 것이 아닌 자기가 사적인 일로 여기 왔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브라반치오의 경우에는 공국 회의실에서 무시를 당한다.
26 공작: 용감한 오셀로, 곧장 장군을 보내야겠소,
공통의 적인 오토만을 막기 위해서 말이오.
[브라반치오에게] 어르신을 못봤군요. 어서 오시오, 고매한 어르신.
그래서 브라반치오의 이 대사가 가슴아픈 심정을 드러내 보여준다. "한 번도 당돌했던 적이 없는 처녀였어, 영혼이 너무도 고요하고 조용해서 동작이 스스로 낯을 붉혔단 말이다. - 그런 애가 본성을, 나이를, 조국을, 명성을, 모든 것을 저버리고 사랑에 빠지다니" 이 대사가 브라반치오가 가진 기본적인 생각이다. 나이와 조국과 명성, 이 모든 것을 저버리고 오셀로에게 빠진다는 것은 브라반치오의 기준에서는 도대체 용납이 되지 않는 것. 그래서 교활한 지옥의 술책을 썼다고 말한다.
28 브라반치오: 한 번도 당돌했던 적이 없는 처녀였어,
영혼이 너무도 고요하고 조용해서 동작이
스스로 낯을 붉혔단 말이다. - 그런 애가 본성을,
나이를, 조국을, 명성을, 모든 것을 저버리고
사랑에 빠지다니
이렇게 해서 1막 3장에서는 데스데모나까지 등장한다. 여기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그들의 사밀한 사랑을 베니스 공국의 회의실이라고 하는 공적인 공간에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장면을 보면 굉장히 역겨운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당사자 외에는 남에게 설득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겪어 온 위험들 때문에 나를 사랑했소, 그리고 나는 그녀가 이것들을 측은해하므로 그녀를 사랑했지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실제로 그러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이렇게 해서 사랑했고, 또 데스데모나는 이래서 저 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오셀로에게는 또 하나의 덧붙여지는 즐거움이었을 수도 있다.
32 오셀로: 그녀는 내가 겪어 온 위험들 때문에 나를 사랑했소,
그리고 나는 그녀가 이것들을 측은해하므로 그녀를 사랑했지요.
이것이 내가 사용한 유일한 마법이요.
적어도 오셀로는 1막1장부터 3장 사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남들에게 인정받고싶어하는지를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브라반치오는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악담을 하나 하고 간다. "그애를 잘 살피게, 무어 인, 보는 눈이 있다면, 자기 아버지를 배반한 애야, 그리고 자네도 그럴 수 있어."라고 오셀로에게 말한다. 결국에는 딸 죽이자고 하는 짓이다. 브라반치오의 이 말이 오셀로의 머릿속에 박혀서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를 보는 것이 이 드라마를 볼 때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하겠다. 오셀로 역시 마지막에 "더 많은 사내를 배반할 테니까."라고 말을 한다. 이미 앞서서 오셀로가 브라반치오에게 들은 말이 있으니 이 말을 떠올랐을 것이다. 이 측면만 잘라서 얘기해보면 브라반치오가 1막3장에서 했던 말이 5막2장에서 오셀로에게 다시 상기되면서 이 드라마는 오셀로가 얼마나 찌질한 놈인지 증명해준다.
37 브라반치오: 그애를 잘 살피게, 무어 인, 보는 눈이 있다면,
자기 아버지를 배반한 애야, 그리고 자네도 그럴 수 있어.
160 오셀로: 하지만 그녀는 죽어야해, 아니면 더 많은 사내를 배반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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