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5 파스칼의 팡세 1
- 강의노트/책을 읽다보면 2017-18
- 2018. 2. 13.
팡세 (양장) - B. 파스칼 지음, 김형길 옮김/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120_12 파스칼의 팡세 1
지난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끝냈다. 이제 이성의 시대가 다가올 때 인간들이 꾸려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가 파스칼의 《팡세》에서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사실 ‘인간의 이성이 온전한 것이다’라고 말하기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 있는데 아주 오랫동안 서구사회는 신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것을 물리쳐내는 것이 한 단계 더 필요하겠다.
파스칼의 《팡세》라고 하면 대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생각하는 갈대에서 중요한 말은 '갈대'가 아닌 '생각하는'이다.
항상 두 개의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갈대'와 '엄청나게 넓은 사고', 그리고 '우주'와 '인간은 하나의 점'이다.
엄청나게 넓은 우주라든가 갈대라든가 하는 것은 신의 입장에서 보면 하찮으니까, 그런데 또 사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힘을 생각해본다면 생각이라는 것이 강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두 가지 사이에서 왔다 갔다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라고 하는 것으로 넘어가는데 굉장히 많은 흔들림이 있다. 극단적으로는 서양사회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로 서양의 이성은 계속 쇠퇴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이제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파스칼은 생각(팡세)을 한다. 우주를 감쌀 만큼 커지기는 했으나 자기는 가톨릭 소속의 아직도 한 점에 불과하다.
파스칼은 가톨릭 교도이기는 하지만 《팡세》에서 신을 찾는 모습을 보면 프로테스탄트에 가깝다. 프로테스탄트는 개인이 골방에서 신을 찾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개념이기는 하지만 흔히 단독자라고 말한다. 신 앞에 홀로 인간이 서서 신과 마주해서 자기의 신앙고백을 하고 신으로부터 계시를 듣거나 고민을 얘기한다.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는 그렇게 말했다가 굉장히 고통을 받았다. 키에르케고르까지 가면 19세기이다. 18세기 19세기 200년 동안 어떻게 보면 한 발자국도 못나갔다. 《팡세》에서 나오는 파스칼도 단독자이고 키에르케고르도 단독자인데 둘 다 고생한 건 똑같고 사회에서는 별로 쳐주지 않는다.
《팡세》는 일단 사람의 사고를 크고 넓고 나름 위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만 가지고는 마음으로 믿어지고 확신되고 전혀 다른 상태다. 안다고 실천된다면 기계겠다. 삶의 궁극적인 준거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파스칼이 정말로 놀라운 천재 수학자였는데, 수학자로서 파스칼과 《팡세》에서 번뇌하고 있는 파스칼이 동시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신을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인간의 한계들이 있고, 신을 증명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신이 있다는 쪽에 걸어라. 없으면 꽝이라고 하지만 없다는 쪽에 걸었다가 실제로 있으면 손해 아닌가라는 야바위 놀이를 한다. 신의 위대함을 품고 있으나 인간의 비참함과 나약한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난을 당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새로운 해답으로도 등장한다.
《팡세》가 스토리를 기승전결로 연결되는 스토리가 아니지 않나.
아니다. 연결되어 있다. 완성을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지만 사실은 수없이 많은 《팡세》 연구자들이 파스칼이 어떻게 틀을 짜놓았는가를 연구해서 지금은 파스칼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있다는 것이 거의 다 확정이 되어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재구성해서 이렇게 나온다 하는 틀이 있다. 예를 들면 《팡세》의 판본들이 많은데 지금 현재 한국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판본이라고 하는 것이 포르로아얄 판이 있고, 셀리에 판, 라퓨마 판, 브롱슈빅 판이 있다. 최근에 서울대출판부에서 나온 셀리에 판을 근거로 해서 나온 것이 있는데 현재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최종 판본이다.
제일 먼저 나온 판이 포르로아얄 판이다. 그냥 파스칼이 죽은 다음에 ‘파스칼이 써 놓았군’하고 묶어서 나온 것. 그 다음에 브롱슈빅 판은 편집자가 주제별로 편집한 것이고, 라퓨마 판은 제1사본에 의한 것. 셀리에 판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잘 정리되어 있고, 거기에 따르면 뚜렷한 구조가 있다.
구조를 놓고 보니 셀리에가 《팡세》를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기독교, 거의 천오백 년 동안 서양세계를 지배해왔던 하나의 세계관 내지 역사관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편집 해놓고 보니 《팡세》가 아우구스티누스의 후계자라고 하는 해석이 나오는 것.
그동안 《팡세》를 읽을 때는 기독교 신앙이 없어도 읽을 수 있고, 연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셀리에가 이렇게 규정을 해보니 그렇다면 《팡세》를 읽는데 반드시 선행하는 공부가 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정도는 읽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 된 것. 갑자기 《팡세》가 신학적인 또는 철학적인 텍스트로 격상이 되어버린 것. 인간이 죄를 짊어진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기는 하는데 이 구원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그랬을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방법이라는 것은 신의 은총도 있고, 인간의 노력도 있다는 것이다.
신의 은총만이 가능하다, 인간이 노력해봤자 얼마나 가능하겠느냐 하는 것이 프로테스탄트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개가 같이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파스칼의 《팡세》가 어떤 책인 것인가가 뚜렷하게 구별이 된다. 《고백록》이나 삼위일체론을 놓고 파스칼을 보면 아주 철저하게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기독교 위에 서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에 따라서, 셀리에 판본에 따라서 목차를 살펴보면 '1658년 6월의 계획'이 있다. 그 계획에 다라서 사실 파스칼이 구상했던 것이다. 1번부터 28번까지 있다. 1번이 1658년 6월의 목차 묶음이고, 11번이 최고선이고, 12장이 포르로아얄에서, 28장이 결론이다. 1장부터 11장까지가 한 부분이고, 12장이 앞부분과 뒷부분을 이어주는 것이고, 28번이 결론인데 구조가 서로 대응하도록 되어 있다.
《팡세》의 독자들이 이런 구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데나 펴놓고 읽는다.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 인용만 하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으로 둔갑되고는 한다.
두 부분 중 앞부분은 신이 없는 상태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얘기하는 것이고, 포르로아얄을 지나서 뒷부분으로 가면 신과 함께 사는 인간은 얼마나 행복한가를 이야기 하는 것. 신과 함께 살지 않은 인간의 비참함이라는 것은 인간이 본성 그 자체에 의해서 타락했기 때문에 비참한 것. 신과 함께 하는 것이 왜 행복한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속죄자가 있고 성서에 의해서 확신되어 있기 때문.
흔히 기억하는 말로는 자기가 얼마나 작고 비참한 존재인지를 모르면서 신만 아는 것은 오만해지는 것이고, 또는 신은 모르는데 자기가 비참한 존재인지를 확실히 알면 절망하는 것. 두 개의 변증법적인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인가.
인간은 오만함도 있고 절망이 동시에 있다. 사실은 오만과 절망이 동시에 있으면 안된다. 정신분열이다.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함께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함께 있는 상태, 그러니까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든 해소하는 것이 2부의 임무이다. 우리가 그동안 파스칼에 대해서 많이 인용된 것이 1부인 비참함에 대한 것.
《팡세》를 비참함으로만 읽지 말고, 첫째 명백하게 기독교적인 책이다. 둘째 인간이 온전한 이성적인 존재라는 이야기하기에는 서구사회의 기독교 지배시기가 길었다. 셋째 어쨌든 《팡세》는 신앙을 찾고자 하는 책이다. 이렇게 세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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