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다 미키노스케: 장안의 봄


장안의 봄 - 10점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동철 외 옮김/이산


머리말/ 초판 머리말


1 장안의 봄

2 호선무에 대한 짧은 글

3 술집의 호희

4 당대의 풍속

5 당사잡초

6 당사(唐史) 관련 소고(小考)들에 대한 보충

7 당대의 연음(燕飮) 풍경

8 당대 북중국의 이색 풍속 하나

9 온천과 도상(陶像)

10 당대의 여인

11 당대의 도서(圖書)

12 당대 잡사(雜事) 두 가지

13 감람(橄欖)과 포도

14 서역 상호(商胡)가 비싼 값에 보물을 구하는 이야기

15 다시 호인채보담(胡人採寶譚)에 대하여

16 호인매보담(胡人買寶譚) 보유

17 수당시대의 이란 문화

18 장안의 여름풍경


번역을 마치고




1 장안의 봄

13 장안의 봄은 누구 차지일까

장안의 2월 향기 섞인 먼지 자욱하고 

번화한 육가에는 마차 소리 요란하네 

집집마다 누각 위엔 꽃 같은 여인들 

천만 가지 붉은 꽃처럼 어여쁜 모습 싱그럽네 

주렴 사이로 웃고 떠들며 서로들 묻나니 

장안의 봄은 누구 차지일까? 

본래 장안의 봄빛은 임자가 없으니 

옛날부터 모두 홍루의 여인들 차지라네 

이제 어찌하나, 행원 사람들이 

멋진 말과 수레에 태워 호위해 가버리니!

-위장, 장안의 봄


23 양국충이 "침향목으로 누각을 짓고 단향목으로 난간을 만들고는 사향과 유향을 흙과 함께 체에 밭쳐서 만든 진흙을 비에 바른 뒤, 매 년 봄 목작약(모란)이 활짝 필 무렵이면 이 누각에 손님들을 초청해 꽃을 감상했는데, 궁중의 침향 정도 이 누각의 장려함에는 견줄 바가 되지 못했다"고 하는 이야기에도 그 일단을 엿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왕후장상들뿐만 아니라 시민 전체가 이 꽃에 취했다는 점에서 당시에 모란 꽃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크게 번져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2 호선무에 대한 짧은 글

33 이란의 춤, 호선무

당대 내내 중국인들 사이에는 서역의 춤. 노래. 잡기 등이 제법 인기를 모았다. 이런 경향이 당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멀리 한 나라 때 시작하여 남북조 시대에 이미 크게 유행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이전 시대에는 아직 중국에 전래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인지, 어쨌든 당대에야 비로소 기록에 보이는 호선무라는 춤이 있다. 여기서는 호선무란 어떤 춤이며 어느 나라의 기예인지, 이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고자 한다. 아마도 호선무는 당나라의 문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이란 문화의 한 예로서, 흥미로운 주제인 동시에 당시 중국 풍속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제재 중 하나일 것이다.


3 술집의 호희

60 당시 술집에 서호 출신의 악공이 있었다면, 술집의 호회 또한 서토인 이란 방면에서 건너온 가기·무녀의 무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60 중국의 당대는 이국 취미가 넘쳐나던 시대였다. 개원·천보 이후에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그 중에서도 장안은 도도한 호풍·호속의 중심이었다.


62 서방 중앙 아시아와 서아시아의 문물이 직접 유입된 경우도 많았음을 부정 할 수는 없다. 음악이나 무용의 경우처럼 그 연주자와 공연자는 대부분 서쪽에서 중국에 들어온 자들이었을 것이다. 북족을 거쳐 들어온 호풍이라 해도 중국 사람들이 이를 좋아하고 모방한데는 이란 방면에 대한 기호가 상당히 크게 자리 했으리라는 것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대 장안과 낙양의 아조티시즘(이국취미)은 그 주류를 이란의 문화, 자세히 말하면 사산조 페르시아의 문물 및 그 유서에서 찾아야 한다. 당시 술집의 호회들이 사랑받았던 이유도 아마 그 유풍의 하나일 것이다.


4 당대의 풍속

66 야간 통행금지는 주 나라 이래로 계속해서 엄격히 시행되어 온 제도로서 도읍의 성곽 안은 물론 그 근교에까지 적용되던 규정이다. 비상시나 특별한 경우에는 편의적으로 그때 그때 합당한 조치를 취해 융통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 통행금지 제도는 엄격하게 시행되어왔다. 당나라 때도 천하태평의 시기에 출유행락에 힘썼을 장안과 낙양의 돈 있고 여유있는 시민들 역시 밤에는 같은 방내의 한 구역 안은 괜찮아도 온 거리를 돌아다니며 노는 일은 금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월 15일을 전후한 며 칠, 입춘도 보름 정도 지나 점차 봄 기운이 태동하는 이 때에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교교한 달빛 아래 온 도시가 등불의 바다로 변하고 노랫소리 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며, 말쑥하게 빼 입고 짙게 화장한 젊은이들이 나다니는 광경에 모든 사람들이 들뜨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79 줄다리기는 단순한 유희나 경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사실 오늘날에는 원래 의미를 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일이 많이 있겠지만) 실은 이것이 하나의 신사로서, 다른 많은 겨루기와 마찬가지로 신의 의향을 점치는 예언의 한 형식이었음은 적어도 민속학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79 중국에서 발하 혹은 견구라는 놀이도 그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든 또 그 의미가 어떻게 설명되든 간에, 본래 의미는 역시 신의 뜻을 점치는 의식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살펴볼 당대에는 그 의의가 차츰 왜곡되어 전해지면서 발하 놀이가 풍년을 오게 하는 주술 정도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그 전에 이것이 풍흉을 점치는 의식이었다는 추론을 하기에 충분하며, 이 민속이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언외로 말해주고도 남는다.


9 온천과 도상(陶像)

177 중국에서 온천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첫손에 꼽는 것이 여산 온천일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고시를 통해 인구에 회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평의 북쪽에 있는 탕산을 제외하면 북중국에는 온천이 드물고 이곳 말고는 온천다운 온천으로 꼽을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산 온천은 당나라 이후에도 실제로 목욕을 할 수 있는 온천으로서 오랫동안 그 이름이 전해져 왔다.


10 당대의 여인

190 당대 여인들의 생활을 가볍게 훑어볼 때 우선 눈에 띄는 특색은 용장활발이라 하면 조금 지나칠지도 모르겠으나 남자 이상의 시원시원하고 활달한 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여인이라고 하면 매사에 매우 소극적인 그저 얌전하기 만한 사람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사람들은 의외로 모던한 기질이 있어서, 말괄량이라고 하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지만 상당히 자유롭고 해방된 기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당이라는 시대가 대체로 활기찬 시대로서, 문에 비해 무가 존중되고 군인과 무관이 우대받고 중용되었기 때문에 역대로 유례가 없던 기풍이 형성된 결과로도 생각된다.


11 당대의 도서(圖書)

201 당대에도 이미 책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큰 도회지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책을 늘어 놓고 파는 가게가 있었다. 이는 언뜻 대수롭지 않은 듯도 싶지만, 고찰 해보면 문화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경우는 아직 자세히 조사해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유럽에는 8세기·9세기 무렵까지 서사 같은 것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13 감람(橄欖)과 포도

232 당 대에 포도주가 중국의 인사들 사이에서 상당히 널리 애음되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당 태종이 고창 국을 평정한 뒤 후세에도 유명한 카라호자의 명산물인 마유포도라는 우량 종을 얻었고, 이를 어원에 이식함과 아울러 그것으로 술을 만드는 법까지 전해 받아 스스로 적당히 안배함으로써 향긋하고 맛 좋은 녹주를 빚어낸 일도 새삼스레 언급 할 것이 없다.


17 수당시대의 이란 문화

315 한·위·육조시기를 통해 서서히 중국에 들어온 이란 방면의 문화는 수당 시대에 이르러 한층 두드러진 유전을 보였다. 중국과 외국 문화의 관계라는 면에서 중국 역사를 보면, 수당 시대는 바로 이란 문화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회화·조각·건축·공예·음악·무용·유회 등 각 부문은 물론 의식주, 특히 의식 두 방면에서 이란 문화의 폭넓은 영향을 볼 수가 있다. 이제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수당 시대에 들어서는 중앙 아시아 방면이나 근동지방과의 교통이 점점 활발해져 북으로는 육로, 남으로는 해로를 따라 이란 계통의 여러 민족이 전대보다 더 많이 중국 각지로 들어 왔다는 점과, 아라비아인 등 셈족 계통의 민족이 상인으로서 이슬의 교세 확장과 함께 다수 동래했다는 점을들 수 있다.


번역을 마치고

419 '장안의 봄'은 이 책의 첫 장 「장안의 봄」에서 보듯이 대도 장안의 화사하고 번화한 봄의 정경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 용어는 장안의 봄으로 상징되는 당나라 문명이 유구한 중국의 역사 속에서 봄처럼 화려하고 성대한 것이 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 알다시피 삼국시대 이래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과 번영을 이룩한 당대는 유목과 농경, 한족과 호족, 독자성과 외래성이 혼효하는 시대였다. 그 결과 중국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문명을 이루어 냈던 것이다. 이러한 장안의 봄에 대해 그 어느 책보다 잘 그리고 있는 고전적인 명저가 바로 이시다 미키노스케의 장안의 봄이다. 중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대인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초점을 둔 논고들을 모은 이 책은 당시를 비롯한 당대의 문학작품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도 장안의 정경과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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