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트 타이센: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 - 10점
게르트 타이센 지음, 손성현 옮김/다산글방



서문

제1장 역사적 예수 연구사


제1부 자료와 평가

제2장 그리스도교 자료들

제3장 예수에 대한 비그리스도교 자료들

제4장 자료들에 대한 평가: 역사적 회의주의와 예수 연구


제2부 예수 이야기의 틀

제5장 예수 생애의 시대적, 종교사적 틀

제6장 예수 생애의 연대기적 틀

제7장 예수 생애의 지리적, 사회적 틀


제3부 예수의 활동과 선포

제8장 카리스마적 존재 예수: 예수와 사회적 관계

제9장 예언자 예수: 예수의 종말론

제10장 치유자 예수: 예수의 기적

제11장 시인 예수: 예수의 비유

제12장 스승 예수: 예수의 윤리


제4부 수난과 부활

제13장 제의 창시자 예수: 최후의 만찬과 원시 그리스도교의 성만찬

제14장 순교자 예수: 예수의 수난

제15장 부활한 예수: 예수의 부활과 해석

제16장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론의 태동


되돌아 보기: 짤막하게 요약한 예수의 삶

과제와 해설

약어표




서문

19 앞 세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집중적인 논쟁이 신학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과 맞물려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선포된 그리스도이며, 우리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 물론 이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 과 선포된 그리스도 사이에 모순이 없다는 것만 확실히 밝혀내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우리가 역사적 예수에 대해 아는 것, 추측만 할 수 있는 것,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논증적으로 밝혀내는 일에 관한 한 아무런 해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 의해 왜곡된 예수의 참 모습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과, 우리 시대의 종교적 열망과 윤리적 가치를 통해 새로운 예수를 형상화하려는 저작들이 지식 시장의 틈새를 파고 들고 있다. 그런데 양측 모두 학문적인 인고의 노력을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계몽된 사회와 자신의 근본을 해명하고 싶어하는 열린 교회 안에서는 그 학문적 노력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이 책은 학문적인 예수 연구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의 결과가 아닌 학문적 노력의 과정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제1장 역사적 예수 연구사

29 역사적 예수 연구는 어떤 극적인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의 문화 전체가 오직 한 인물에게 모든 생각을 집중하고, 그 인물 안에서 인간이 된 하나님을 경배하고, 종말론적 심판관을 두려워하며, 구원자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 인물을 역사적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과연 대단한 지적 독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첫 머리에 서있는 것이 자료 비평이다. 복음서의 기록 모두가 정말 역사적이고 진정한 것인지의 여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었다.


30 우리가 역사적으로 신뢰할만한 예수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인물은 역사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 큼 특출하거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남게 되었다. 여기에 해석학적 생소함이라는 의식이 가세했다. 설령 우리가 역사적으로 신뢰할만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고, 그 자료를 통해서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자. 예수 그는 귀신들이 쫓겨나는 세상, 우주적 종말에 대한 이상한 두려움이 존재하던 세상, 곧 그가 살았던 과거의 세상 속으로 멀어져 갈 뿐이다. 자료 비평과 역사적 상대주의와 해석학적 생소함을 통해 멀어지기도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문화는 그 사람과 연결되어있다.


45 원시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상상력도 자기 나름의 가설들을 가지고 어떤 "허구성의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양쪽 모두 똑같은 역사적 인물에 의해 불붙은 창조적인 상상력을 가동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미완의 형태로 남는다. 종교적 상징, 이미지, 신화는 항상 새롭게 해석되고, 역사적 가설들은 항상 수정된다. 이 과정에서 예수 이야기에 대한 종교적·역사적 구성이 임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리와도 같은 확신들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상상력은 예수로 인해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능해졌다는 굳건한 신앙에 의해 주도된다.


제1부 자료와 평가

제2장 그리스도교 자료들

106 현존하는 최초의 자료들마저도 우리에게 역사적 예수를 소개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사회적 관심과 확신, 전승집단의 이야기가 함께 뒤섞여 형성된 기억, 곧 예수 이미지를 제공 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오래된 자료는 어느 정도 포괄적인 자료들마저도 그리스도교 제2세대에 와서야 기록되었다. 일부 반대 주장이 있긴 하지만 비정경 자료들 가운데는 마가복음보다 오래된 자료가 하나도 없다. 많은 원시 그리스도교 문헌들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일부는 문서) 전승에서 유래한 것이 사실이다.


106 우리가 겨우 알 수 있는 것은 150년경에 존재한 예수 전승 가운데서도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것도 "대표적인 단면"이 아니하는 사실은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선집은 어느 정도 "맹목적 우연"에 빚지고 있어서, 공 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을 정경에 포함시키고 외경 복음서들은 의도적으로 삭제한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교회 정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다.


제3장 예수에 대한 비그리스도교 자료들

110 그리스도교 외부의 자료들은 그리스도교의 진술에 대한 응답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의 자료 가치를 너무 폄하할 수는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자료들이 복음서와는 독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도교 진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독자적인 증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동시대의 유대인들이나 이교도들에 대해서 양면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150 여기서 우리는 회의주의의 세 가지 모티브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모티브는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이 없는 곳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예수는 문학적인 상상력, 사회적인 필요, 그리고 신화적인 전승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역사적 회의주의는 신학의 안팎에서 엄청난 학문적 열정과 결합하여, 자기네 입장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들을 주관적 소망에 사로 잡힌 변증론자로 매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부당한 처사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소망이나 관심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 점에는 회의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제4장 역사적 회의주의와 예수 연구

192 결론적으로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인간적으로 가능한 확실성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라는 어떤 공상의 산물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현상과의 대화에 진입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수에 대한 묘사 가운데서 모든 구체적인 개별 진술들은 저마다 개연성의 정도가 다르다. 불가피하게 모든 예수 이미지에는 가설적인 것이 지속적인 아우라를 조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가설적 성격과 화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수 이미지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가설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설은 무조건적인 실재에 상응하려는 시도이다. 


제2부 예수 이야기의 틀

제5장 예수 생애의 시대적, 종교사적 틀

226 원시 그리스도교 문헌들은 대부분 이시기(70년)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문헌들 속에는 그 당시 현실로 다가온 유대인과 그리스도 안의 분열을 예수시대로 소급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와 다른 유대교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원시 그리스도교 문헌들에서는 예수와 유대교 사이의 갈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226 역사비평적 연구는 예수가 유대교에 속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점점 분명하게 밝혀내고 있다.


제6장 예수 생애의 연대기적 틀

232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원년은 본래 임의로 책정된 것이다. 디오니시우스가 몇 년을 잘못 계산하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예수의 생애 연도는 늘 불확실했다. 고대에는 지배자의 통치 기간에 따라 시간이 계산되었는데, 예수는 그런 통치자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참된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은 그가 세계사의 음지에서 태어나서 활동하다가 죽었기에 그의 생애에 관련하여 정확한 추정이 가능한 자료는 하나도 없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243 예수는 주전 64년경 헤롯 1세가 죽기 전에 태어났으며,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기(26-36년) 초반에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공적인 활동을 벌이다가 대략 30년 유월절 축제 때 처형되었다. 예수를 정죄했던 사람들은 후일 그 예수가 기준이 되어 시간 계산이 이루어지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간 계산은 예수라는 인물과 더불어 역사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44 예수의 메시지와 그 시대 사람들의 희망은 종말론적인 것이 있다. 그들은 시간의 종말을 갈망했다. 예수를 "시간의 중심"으로 만든 그리스도교적 시간 계산은 예수가 자신의 활동에 부여했던 그 뜻을 이탈한 것이다. 예수에 대한 이런 새로운 해석은 원시 그리스도교에서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누가복음 기자부터도 초기 교회사의 진술을 가지고 예수를 그려내고 있다. 그로 인해 예수는 "시간의 중심", 사료 편찬이 가능한 역사의 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에게서 모든 시간을 가로 지르는 무엇, 곧 연대기적으로 추산할 수 없는 무엇을 발견할 때 근원적인 의미의 해석은 유지되는 것이다.


제7장 예수 생애의 지리적, 사회적 틀

272 예수의 여정은 갈릴리 호수 근처 남부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출발한다.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에서부터 예수는 떠돌이 설교자로 활발한 활동을 개시했다. 예수의 활동 중심지는 가버나움이었다. 그곳을 기점으로 예수는 갈릴리 주변과 내부에 있는 유대인 농부들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당시 갈릴리는 헬레니즘적 도시 문화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예수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갈등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선포했다. 예루살렘에 올라온 예수는 이런 갈등의 희생물이 되었다. 예수가 걸어간 길의 흔적은 영토사적으로 규명 될 수 있다. 어떤 것들은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273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유발된 매혹은 우리가 탐구하는 예수 역사의 "흔적들"이 단지 소문에 불과한 것이냐 아니면 진실된 것이나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다. 그가 이 작은 공간 어딘가에서 활동한 것은 분명하다. 갈릴리 호수 북쪽 어딘가에서 그는 제자들을 불렀다. 예루살렘 어딘가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서 - 그곳이 꼭 종교적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장소란 법은 없다 -고문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말씀이 몸이 되었다. 이는 그것이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기에 이루어진 사건이며, 그 시대의 갈등과 긴장에 깊이 개입된 사건임을 의미한다.


제3부 예수의 활동과 선포

제8장 카리스마적 존재 예수: 예수와 사회적 관계

345 예수는 카리스마적 존재였다. 그에게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향력이 발휘되어 추종자들을 매료시키고, 적대자들을 당황케했다. 예수 때문에 가장 당황한 것은 바로 그의 가족이었고 이들은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했다(마가 3,21). 에수와 가족의 갈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가족에 대한 예수의 비판적인 언설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마지막 때에는 가족 사이의 분쟁이 불가피 할 것이라는 가르침이나,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는 가족을 포기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346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일깨워 준 카리스마를 예수는 제자들에게 전수했다. 예수는 제자들을 자신의 과제와 권능에 동참시켰다. 열두 제자를 뽑은 것은 이스라엘의 재건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메시아적 군주제가 아니라 일국의 민중 대표제의 모습이었다. 평범한 어부와 농부들인 그 "열둘"이 메시아적 집합체인 통일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347 예수와 적대자들의 관계는 이율배반적이다. 예수는 "율법학자"들과 대조를 이루는 것 같지만, 가르침의 핵심(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관련해서는 같은 의견이었다.


347 놀랍게도, 편집 이전의 전승에는 예수의 갈등 및 논쟁과 수난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오히려 이전의 논쟁 대부분이 수난 설화에의 진짜 적대자는 예루살렘의 성전 귀족 계층, 특히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였다. 수난 이야기에지는 바리새인과의 적대자 이미지가 급격히 퇴조한다.


제9장 예언자 예수: 예수의 종말론

402 세례자 요한은 심판을 선포했으나, 세례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예수는 구원을 선포했으나, 심판의 위협을 배제하지 않는다. 현재에 주어진 구원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은 그만큼 가혹하다. 심판의 위협이 크면 클수록 모든 이들에게 약속된 구원은 더 강력해진다.


404 예수는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으나 "하나님 나라"와는 동떨어진 그리스도교가 탄생했다. 예수는 세상이 그렇게 오래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405 예수는 자기의 죽음 이후에 중간기를 거쳐 하나님 나라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마 예수는 그 시간의 간격을 잘못 짚었는지 몰라도 그 시간의 구조, 즉 서로 상이한 단계가 이렇게 이어지는 것만큼을 제대로 읽었다. 예수가 죽은 뒤에 그 중간기는 늘어났지만 그의 종말론에는 원칙적으로 변화가 없다.


제10장 치유자 예수: 예수의 기적

411 가장 당혹스러웠던 일은 예수의 기적이었다. 이 당혹스러움은 근대의 역사 비평적 연구가들에게도 나타났다. 한편으로 기적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옛 전승층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411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도전 앞에 서 있다. 그것은 기적 전승이 상대적으로 초기에 형성되었다는 사실과, 기적 전승에서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기대와 지적 요소들이 나란히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되 예수 전승 전반의 신뢰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450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삶을 감싸고 있는 "하늘의 표징"에 대해서도 전하려고 했으나, 예수 자신은 스스로를 믿게 만들기 위한 표적들을 거절했다.


450 다른 기적 행위자에게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낼 수 없을 때 기적은 문제가 된다. 역사적인 보도는 유비의 원칙에 의해 평가된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배치되는 것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454 기적은 예수의 활동을 통해 구체화된 하나님의 구원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렇듯 종교적으로 해석된 기적 카리스마 또한 사회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예수 전승에도 이런 측면이 엿보인다. 주변 세계의 믿음 없이는 카리스마적 기적 행위자도 활약할 수 없다. 사회적인 기대 수준과 설명의 패턴이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을 규정하는 요소인 것처럼, 사회적 기대 및 해석 또한 기적 행위자의 카리스마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된다.


455 기적이 핵심적인 신학적 통찰을 전달해 주는 도구가 된 것이다. 결국 예수는 기적에 대한 상징적 의미의 고양이 이루어지는 단초가 된다. 예수가 자신의 기적을 종말의 도래를 알리는 표징으로 해석했다면, 이것은 기적에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 된다.


제12장 스승 예수: 예수의 윤리

568 예수의 윤리는 유대교적 윤리다. 예수의 윤리는 우리가 당대의 유대교 문서에서 감지하게 되는 윤리적 감수성이 고조된 형태로 표출 된 것이다. 그 윤리의 중심 내용은 자유롭게 해석된 토라이며, 그 윤리를 움직여 나가는 힘은 지혜와 종말론이다. 예수는 유대교 랍비로서 그 윤리를 대변한다.


570 특히 비유에 많이 나타나는 지혜적 이미지인 피조물과 생명은 하나님 뜻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인간에게 요구를 해오는 하나님, 그리고 자비로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상황은 삶의 경험을 통해 여실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은 항상 윤리적 행 동의 모티브가 된다. 종말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말론을 통해 개개인의 윤리적 행동들은 대변혁에 참여하게 된다. 인간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570 예수 윤리의 급진성은 수많은 해석과 이론을 야기했다. 그것들 중 일부는 그러한 급진성을 어떤 식으로든 "되살리려"했고, 일부는 그 것의 실현 불가능성을 변명해 줄 만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것의 현실 적용에서 물러나 역사적 컨텍스트 안에서 그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제4부 수난과 부활

제13장 제의 창시자 예수

584 원시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제의"들을 발전시켰다. 몸을 씻는 일 - 원래는 정식으로 제의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했다 - 은 세례를 통해 핵심적인 입문 의식이 되었다. 소박한 식사에 고차원적인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 성만찬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던 피의 제사를 대치했다. 


584 이 두 가지 예식은 전통으로서가 아니라 혁신으로서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 둘은 예수의 죽음과의 관련성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원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방어 수단이던 세례가 종말론적인 성례전이 되었다.


584 성만찬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발전이 있었다. 역사적 예수의 밥상 공동체는 위대한 종말론적 식사의 표출이었다. 예수가 죽은 뒤 이것은 그 죽음의 재현으로 해석되었다.


625 세례는 최후 심판을, 성만찬은 종말론적 만찬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 행위의 기능이 모두 파악된 것은 아니다. 죄 사함의 세례는 사실상 성전 제의에 도전하는 경쟁적 의미의 예식이다. 성만찬은 사실상 희생 제의를 대체하는 예식이다. 이 두 가지 새로운 예식의 태동은 전통적인 제의 형식에 대한 불만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625 아마도 예수는 유월절 전날 -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예감,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곧 임재하여 자신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 제자들과 더불어 고별의 만찬을 나눈다.


626 원시 그리스도교의 성만찬은 두 개의 중요한 긴장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성만찬은 간소한 식사다.


626 유혈 제사에서 무혈 예식으로의 이전이라는 종교사적 "진보"가, 폭력에 의한 예수의 죽음이 야기한 인신 제사의 관념 - 이미 오래 전에 극복했다고 믿었던 - 으로의 "퇴행"에 의해 상쇄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긴장 관계는 원시 그리스도교 성례전의 내적인 역동성을 구성하기도 한다.


626 세례와 성만찬은 시간이 극도로 촉박한 상황에서 생성되었다. 임박한 심판을 맞이하여 회개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세례자는 회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죄사함의 세례"를 선포했다. 예수는 기존의 낡은 성전이 더 나은 성전으로 곧 대체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고별 만찬이 자리에서 종말론적 만찬을 미리 시행했다.


626 원래는 이 세상의 지속을 계산하지 않았던 상징 행위들이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구원을 매개하는 성례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성례전에는 바로 이러한 역설이 내포되어 있다. 상징적인 종교 행위들은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시간에 발 디뎌 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시간의 종말 - 그리스도교 성례전은 바로 이것으로부터 형성되었다 - 과의 만남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보증의 형태가 된 것이다.


제14장 순교자 예수: 예수의 수난

631 역사적 상황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살전 2, 14-15)고 말했다가 다른 곳에서는 "세상 통치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주장한다(고전 2,8). 나아가 바울은 그 죽음을, 예수가 스스로를 내어준 것(갈라 2,20)이며, 또 하나님이 예수를 내준 것(롬 8,32)이라고 규정한다. 이 진술들 가운데 어떤 것도 중립적인 역사적 증언이라고 할 수 없다. 해석으로 가득 찬 진술일 뿐이다.


667 예수는 죽음의 위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갔다. 예수의 일거수 일투족은 스스로 낙인을 찍는 성격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개방하고 의도적으로 주위의 공격이 자기에게 집중되도록 했다. 


667 당연히 우리는 예수가 주변의 공격을 당하게 된 요인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그리고 세 개의 측면을 그 대답으로 제시하게 된다 (1) 토라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 (2) 성전에 대한 비판 (3) 정치적으로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는 메시지 -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 혹은 메시아 주장. 이 세 가지 가운데서 성전 비판과 성전 예언은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다. 예수의 토라 비판은 원칙적으로 토라에 대한 진보적인 해석에 불과했다.


668 예수의 죽음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스라엘의 통찰을 재확인 해주었다. 선한 행동과 행복 사이의 관련성을 믿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신앙이다. 의로운 사람도 고난을 받을 때가 있으며, 고난받는 사람도 의로운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통찰이었다. 패배한 사람이 승리한 이보다 의로운 사람일 수 있다. 이때 하나님은 소외된 사람들과 미천한 사람들 편에 선다. 이런 이유에서 원시 그리스도교 공 동체는 예수의 죽음 이야기를 의로운 사람의 고난 모티브와 연결 지었다.


668 특별히 그의 죽음은 전혀 새롭고 대담한 해석에 의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 해석이란 예수의 죽음을 희생의 죽음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 해석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은 인간과 다른 인간,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형성될 새로운 공동체의 토대가 된다.


제15장 부활한 예수: 예수의 부활과 해석

715 신약 성서가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부활, 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부활은 현대의 세계상과 충돌을 일으킨다.


715 예수 부활 신앙을 오늘 우리의 삶의 언어로 옮기는 방법에는 원칙적으로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예수 부활 신앙을 현대의 신념 체계 속으로 통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부활 신앙의 빛에서 현대의 전제들을 수정하는 것이다. 


716 자유주의 신학 및 현대 신학의 주관적 환상이론과 부활을 철두철미하게 해석의 도구, 즉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해석의 도구로 이해하려는 시도 역시 여기에 속한다. 부활 사건을 해석하되, 현대의 전제들을 예수 부활 신앙과 일치시키려는 시도에는 객관적 환상 이론과 객관적 현현 이론이 있다. 전자에 따르면 예수 부활 현현은 하나님이 일으키는 것으로서 객관적인 정황을 계시한다. 또한 객관적 현현 이론은 다른 세계에서 나오는 실제적 현현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717 언제나 예수 부활 신앙은 지상의 예수, 그의 외침, 그의 선포를 지향한다. 그것들은 현재에 계속되며 현재를 위한 것이다.


717 공동체의 예수 부활 선포는 지상 예수의 메시지가 계속 선포됨을 의미한다. 이것을 통해 종말에 대한 기대가 생겨나, 예수는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는 존재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제16장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론의 태동

793 그는 전통적인 아버지-메타포를 활성화하여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내비친다. 그는 원칙적으로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사면, 즉 적의 용서를 약속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기적을 행한다는 의식 속에서 활동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가르침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언급했다. 그는 요한을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오시는 분"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요한이 선포한 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보기에 모든 예언자보다 뛰어난 예언자를 넘어섰다. 그의 자의식은 결코 격하될 수 없다.


795 예수에 대한 이미지 가운데서 "부활 사건 균열"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것들은 예수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다. 예수의 죽음과 더불어 그에 대한 모든 기대 - 암묵적인 것이든 명시적인 것이든, 혹은 유발된 것이든 - 도 일단 못박혀버린 다음 부활과 함께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부활 이후에 새로운 방식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세 개의 호칭은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 "인자 "이다. 부활 이전에는 전례가 없던 것으로서 예수에 대한 퀴리오스 숭배도 여기에 가세한다. 일상적인 말건넴의 형식이었던 "주님”이 그대로 격상되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있는 "주님"으로 숭배되었을 리는 없다.


795 예수를 통해서 메시아 대망은 성취되었다. 물론 이것은 고난과 죽음이라는 역설적인 방법에 의한 성취였다. 메시아의 고난은 죄와 허물을 떠맡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로써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의 눈에 비친 이방인들은 유일한 한 분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채 살아가는 끔찍한 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796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예수는 옛 언약을 확증해 주었다. 예수는 그 언약이, 고난으로 점철된 이 세상 한복판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그것은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했다. 이로써 예수는 그리스도교의 전제를 형성해 놓았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다시금 유대교를 어머니-종교로 인정하고 있으며, 유대교보다 우위를 점하려고 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이 세상 한복판에서 그 둘에게 공통된 언약의 성취를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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