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오: 노자를 읽다


노자를 읽다 - 10점
양자오 지음, 정병윤 옮김/유유


서문: 동양고전을 읽는 법


1. 노자와 장자는 다르다

2. 남방의 은자 문화

3. 도를 아는 것과 도를 행하는 것

4. 커다란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다

5. 고난과 난세 속에서 탄생한 철학


역자 후기: 은자의 고뇌로부터 나온 무위의 역설




서문: 동양고전을 읽는 법

19 고전을 읽고 해석할 때 생각해야 할 몇 가지 기본 문제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을까? 당시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였을까? 왜 이런 내용이 고전이라 불리면서 오랫동안 변함없이 전해졌을까? 이 작품이 지닌 힘은 다른 문헌이나 사건, 사상 등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앞선 고전과 뒤따르는 고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 노자와 장자는 다르다

33 장자에게 권력과 그것이 가져다 주는 지위는 한 인간의 자유롭고 활력 넘치는 생명력을 질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권력과 지위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여 자신의 본성에 위배되는 굴레 속으로 자기 자신을 얽어 맨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노자는 권력을 좀 달리 보았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둘 다 '도'를 근본으로 삼아, 모든 현상과 변화의 이면에는 일체의 자연을 움직이는 법칙이 있다고 믿었고, '도'가 그 법칙의 주재자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도'의 존재를 명확히 이해하고 '도'의 규율을 탐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었지요. 그들의 공통점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34 노자가 '도'를 이해하는 목적은 이 '도'를 처세와 권력에 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권력을 장 악하고 권력을 사용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2. 남방의 은자 문화

56 이러한 안팎의 증거를 총괄해 보면, 첫째, 노자의 저자는 전국시대의 인물이고, 둘째, 노자의 제작시기는 장자 내편보다 늦은 전국시대 후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이'라는 인물의 일생과 생존 연대는 늦어도 한나라 초 사마천의 시대에 이미 '노담'이라는 또 다른 인물과 혼동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7 공자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주나라 태사 '노담'은 노자를 쓴 '이이'보다 3백 년 가까이나 앞선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쩌면 노자라는 이 책의 제목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이'는 '노담'이 되고 그에 따라 노자라는 책은 사실보다 3백 년이나 앞서 이루어진 것으로 오인된 것입니다. 


59 은자가 은자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종법 제도의 붕괴가 가져오는 난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를 취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종법 제도가 무너지고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음을 일찌감치 간파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난세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여 상처받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평온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고자 지혜를 모았던 것입니다.


3. 도를 아는 것과 도를 행하는 것

63 노자에는 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정황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는 노자가 정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함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맹자나 장자와 달리 노자에는 논쟁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입장, 다른 견해를 지닌 인물의 등장도 없고, 그러한 인물과의 열띤 의견 공방 같은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64 노자의 또 다른 특색은 내용이 지극히 간단하다는 점입니다. 흔히 노자를 가리키는 노자 5천언 또는 도덕경 5천언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전체가 약 5천 자에 불과합니다. 글자 수로만 따지면 장자의 비교적 긴장 하나와 비슷한 분량입니다. 글자 수가 이렇게 적은 탓에 노자는 독자에게 문구가 압축적이고 정보가 농축되어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합니다. 그리하여 노자의 해설서들은 가능한 한 그 글의 뜻을 확장하여, 백 마디로 노자의 한 마디를 설명해야 옳다고 여겨 왔습니다.


66 노자는 결코 현묘하지도 심원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장자만큼 현묘하거나 심원하지 않습니다. 노자에서 보이는 도리 또한 그렇게 변화 무쌍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맹자만큼 도요.


66 노자에서 알리고자 하는 첫 번째 내용은 만물에 앞서는 '도'의 존재입니다. 노자에서 말하는 '도'는 모든 사물을 관할하고 통솔하는 주재자입니다.


79 '현인 숭상'은 묵자와 묵가에서 특히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묵가에서는 과거 봉건제도의 귀천 구분을 없애고 오직 사람의 능력과 덕행만을 보아, 능력있고 덕행이 높으면 그를 중용하여 높은 관직과 권력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노자는 '현인 숭상'이 높은 관직과 권력 쟁취로 사람을 내몰아 결과적으로 분쟁만 일으킨다고 보고 있습니다.


4. 커다란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다

89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 어떤 사물을 특별히 아끼는 바 없이 만물을 '일시 동인'합니다. '일시 동인'이라는 사자성어에는'인'에 대한 도가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장자와 노자가 말하는 '인'과 '애'에는 모두 '편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인'은 위에서 아래로의 편애를 뜻하고,'애'는 평등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편애를 뜻하지요. 그러니 '도'가 만물을 '일시 동인'한다는 말은 '불인', 즉 어떤 편애도 없이 만물을 똑같이 대한다는 뜻입니다. 햇빛이 대지를 골고루 똑같이 비춰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난이 닥칠 때도 '도'는 무언가를 특별히 사랑하는 일이 없기에 모든 만물이 예외 없이 자연의 희생물이 됩니다.


110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자아와 사리사욕이 있고, 신체의 감각 기관이 각종 자극을 받는 까닭에 정신적으로 평정심과 평상심을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태도로 자아와 자기 몸을 대해야 합니다. 즉 단순히 자기 중심적이거나 자아 확장의 생각을 갖지 않는데 그치지 않고 가능한 한 자아를 제거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배려와 관심과 우려를 내던지는 것입니다. 자아와 자기 몸을 버릴 수만 있다면, '걱정거리'는 사라지고 이해득실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며 근심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5. 고난과 난세 속에서 탄생한 철학

128 노자의 핵심 개념인 '무위'는 전국시대의 빈번한 전쟁에 대한 저항 의식에서 생긴 것입니다.


128 노자의 이러한 주장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좀 불합리 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너무도 많은 반지혜, 반문화의 요소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여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 반지혜의 태도이고, 지식을 열어내고 또 덜어내어 재능도 재물도 내던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 반문화의 태도입니다. 


129 노자는 비일상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 맞서는 일련의 지혜입니다. 그 시대 권력자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었고, 그에 대항할 아무런 힘도 지니지 못한 백성은 권력자의 이러한 욕망 충족을 위해 끊임없이 강제 동원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31 한나라의 사상 속에서 노자는 황제와 함께 황로로 불리며 무위청정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 무위 청정은 일반인과는 무관한 왕실의 통치 원리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나라 말에 사회가 몹시 어지러워지고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위진시대 이후로 내려와 비로소 장자와 결합되어 '노장'으로 불리게됩니다.


131 장자가 노자보다 먼저 이루어졌다는 시대 검증은 옳습니다. 우리는 노자의 시대가 장자의 시대보다 훨씬 더 가혹했음을 압니다. 전쟁과 살육이 장자의 시대보다 오래 지속되었고, 상대 나라를 먹지 않으면 내 나라가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국면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요.


133 노자는 전국 시대의 군왕들을 설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학설이 제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진나라의 무력 정벌을 통한 전국 통일, 그 후 다시 진나라 말에서 한나라 초에 이르는 전란을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심신의 휴식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한나라 황제는 황로를 신뢰하고 부분적으로 무위 정치를 펼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백 년간의 잔혹한 전란은 종지부를 찍었고, 한나라 왕실의 통치기반은 노자의 말대로 탄탄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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