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 040 로널드 토비,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2018년 5월 28일부터 KBS 라디오 강유원의 책과 세계에서 진행되는 선생님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정리한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6843


20180720-040 로널드 토비,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朝鮮通信使来朝図

(http://www.city.kobe.lg.jp/culture/culture/institution/museum/meihin_new/701.html)

(江戸時代 延享5年(1748)頃)


華城行幸圖 屛風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14300000,11)

(正祖 19년(1795)






조선시대 일본과 조선은 그리 왕래가 빈번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건국 초기에 일본과 종종 사절을 주고 받았으나 1510년 중종 5년에 발생한 삼포왜란을 계기로 왕래가 끊겼고, 이후 1592년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전쟁이 끝난 다음 일본에 에도막부가 들어서면서 약간의 외교관계가 생겨나기도 하는데 1607-1624년까지 세번에 걸쳐서 조선에서는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를 파견한다. 일본에서 보내 온 서신에 회답을 하면서 겸사겸사 포로와 유민을 데러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교류는 1811년 순조 11년까지 십여차례에 걸쳐서 계속된다.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 파견된 조선의 통신사는 처음에는 전쟁 뒷처리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다른 목적도 가지게 된다. 그 명목은 에도 막부의 새로운 쇼군이 취임하는 축하였지만 그 과정에서도 부수적으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748년 영조 24년 때인데 이때 일본으로 간 통신사 행력을 그린 그림 조선통신사내조도가 일본에 남아있다. 계층과 신분에 따라서 아주 질서정연하게 앉아서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일본학자 로널드 토비는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에서 이 통신사 행렬을 아주 상세하게 분석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뭔가를 구경할 때 보이는 그런 질서정연한 태도가 그의 눈에도 몹시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에서는 왕의 행렬이 지나가도 백성들은 길가에 앉아서 어찌보면 무질서하게 앉아서 구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조가 수원 화성을 다녀오는 모습을 그린 화성행행도 병풍이 있다. 이것을 보면 못마땅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으나 왕에 대한 조선사람의 마음가짐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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