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 - 10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민음사


2부

6편 러시아의 수도승


3부

7편 알료샤

8편 미챠

9편 예심




7편 알료사 - 4. 갈릴래아의 카나

174 "즐거워하자꾸나." 여윈 노인이 계속했다. "새 포도주를, 새롭고 위대한 기쁨의 포도주를 마시자꾸나. 봐라, 손님들이 얼마나 많으냐? 여기 신랑 신부도 있고, 또 여기 현명한 과방장도 있고, 또 나도 여기 있지 않니.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양파 한 뿌리를, 그것도 작은 양파 한 뿌리를 내놓았을 뿐이란다. 그래, 우리 일은 어떠냐? 너도, 조용하고 온순한 나의 소년이여, 너도 오늘 갈증에 허덕이는 여인에게 양파 한 뿌리를 주지 않았느냐, 시작해라, 얘야, 온순한 아이야, 너 자신의 일을 시작해야지! 우리의 태양이 보이느냐, 너는 그분이 보이느냐?"


"무서워서 감히 쳐다보질 못하겠습니다." 알료샤가 속삭였다.


"그분을 무서워하지 말거라. 그분이 무서운 것은 우리에 비해 너무도 위대하기 때문이요 또 그분이 끔찍한 것은 우리에 비해 너무 높기 때문이지만, 

그분은 무한히 자비롭고,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며 손님들의 기쁨이 끊이지 않도록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새로운 손님들을 기다리고, 또 새로운 손님들을 끊임없이 정녕 세세토록 불러들이고 있는 거란다. 저기 새 포도주를 가져오는구나, 보이 느냐, 그릇을 가져 오는구나."


뭔가가 알료샤의 마음 속에서 불타오르더니 갑자기 뭔가가 그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득 채웠고, 환희의 눈물이 그의 영혼 속에서 솟구쳤다. 그는 두 팔을 뻗어서 소리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금 관, 열린 창문, 또박 또박 이어지는 조용하고 엄숙한 독경 소리, 하지만 알료샤는 더 이상 독경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잠이 들었는데 지금은 두 발로 서 있었으니, 그는 갑자기 꼭 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양 다급하고 확고한 걸음걸이로 세 발짝을 떼어 관 바로 곁으로 다가갔다. 심지어 파이시 신부의 어깨마저 건드렸지만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상대방은 순간 성경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 보았지만 당장 젊은이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고는 다시 눈을 돌렸다. 알료사는 삼십 초 정도 관을, 가슴에는 성상을 쥐고 머리에는 팔각형 십자가가 달린 두건을 쓴 채 미동도 없이 관 속에 갇혀 누워있는 고인을 바라보았다. 바로 지금 그는 고인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목소리는 아직도 그의 귀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귀를 기울였고 무슨 소리가 더 나길 기다렸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몸을 획 돌려 승방에서 나와 버렸다.


그는 현관 층계참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빨리 아래로 내려갔다. 환희로 가득 찬 그의 영혼은 자유를, 공간을, 드넓음을 갈망했다. 그의 위로 조용하게 빛나는 별들로 가득 찬 둥근 지붕 같은 하늘이 드넓게 아득하게 펼쳐졌다. 천정에서 지평선까지는 아직 그다지 선명하지는 않은 은하수가 두 줄로 나뉘어져 있었다. 신선하고 움직임이 전혀 없을 만큼 조용해 밤이 땅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하얀 탑과 성당의 황금빛 머리들이 호박 빛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건물 주위의 화단에서 자라 난 화려한 가을 꽃들은 아침녘까지 잠들어 있었다. 땅의 고요함이 하늘의 고요함과 뒤섞이는 듯했으며, 땅의 비밀이 별들의 비밀과 접촉하는 듯 했다. 알료샤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다리라도 꺾인 양 땅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땅을 끌어안고 있는지 몰랐으며, 왜 그가 이토록 억누를 수 없을 만큼 땅에 입을 맞추고 싶은지 온 땅에 이렇게 입을 맞추고 싶은지 구태여 해명하려 들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울면서 흐느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땅에 입을 맞추었고 그것을 사랑하겠노라고, 영원토록 사랑하겠노라고 미친 듯이 흥분에 휩싸여 맹세했다. "땅을 너의 기쁨의 눈물로 적시고 너의 그 눈물을 사랑하라 ……" 라는 말이 그의 영혼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무엇을 두고서 그는 울고 있었던가? 오, 그는 환희에 가득 차서, 심지어 저 심연으로부터 그를 비추어 주는 저 별들을 두고서 울었으며 '이 미친듯한 흥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모든 하느님의 무한한 세계들로부터 흘러나온 실들이 한꺼번에 그의 영혼 속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고, 그 영혼은 다른 세계들과 접촉하면서 온몸으로 전율했다. 그는 모든 이들을 모든 것에 대해 용서하고 싶었고 또 용서해 달라고 빌고 싶었다. 오! 결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위하여, 만물을 위하여 용서를 비는 것이니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용서를 빌어 주리라.' ━ 이런 소리가 다시금 그의 영혼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 궁륭처럼 튼튼하고 확고부동한 뭔가가 그의 영혼 속으로 내려오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분명하고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어떤 상념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듯 했으니 ━ 이제 평생 동안, 영원토록 그럴 것이다. 땅으로 몸을 던질 때의 그는 연약한 청년이었지만 일어섰을 때는 한 평생 흔들리지 않을 투사가 되어 있었으며, 이것을 바로 이 환희의 순간에 갑자기 의식하고 예감했다. 그리고 이후 알료사는 이 순간을 평생 동안 결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 시각 누 군가가 내 영혼을 찾아 주었던 것이다." 훗날 그는 자신의 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흘 뒤 그는 수도원에서 나왔으니, 이것은 그에게 "속세에 머물라"라고 명령한 그의 고 장로의 말씀을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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