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왕초보, 육조단경 박사 되다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6. 17.
왕초보, 육조단경 박사 되다 - 김영욱 지음/민족사 |
1장 《육조단경》은 어떤 책인가요?
25 무엇 때문에 《육조단경》에 이러한 힘을 실어 주었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육조단경》은 크게 두 가지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종파적으로는 북종선을 비판함으로써 탄생한 남종선입니다. 사상적으로는 북종선의 점수에 대한 남종선의 돈오입니다. 바른 수행과 견해는 돈오에 따르고, 이것을 전수하고 있는 정통 교단은 남종선이라는 주장입니다. 바로 이 두 가지를 모두 선도하는 인물이 6조 혜능이며, 6조의 말을 경전과 같은 권위로 격상시켜 남종의 종지를 확고하게 굳히려는 의도에서 '경'이라는 제목을 달았던 것입니다. 후대에는 조사의 일상 언행과 법문 그리고 문답 등을 기록한 책에 어록이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육조어록》이라는 말이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육조단경》이 출현했던 시대에 남종의 선사들은 막강한 기존의 흐름과 맞서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종지를 세상에 강렬하게 알리기 위하여 '경'이라는 말로 단단히 못을 박아 두었던 것입니다.
28 북종을 비롯한 종래의 선법에 대한 《육조단경》의 비판이 정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좌선에 치우친 선법에 대한 비판 속에 그 선사상 전체를 축소해 놓은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돈오 선법은 남종의 전유물이 아니며 북종의 선법에도 그 단서가 발견됩니다.
그 정당성과 관계없이 고요한 삼매와 좌선에 치우친 선법의 폐단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정보다 혜를 선법의 핵심적 위치에 올려 놓게 됩니다. 이 내용은 뒤에 지속적으로 소개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법은 부동의 본체보다 동적인 작용이 점차로 선사상의 중심에 자리 잡는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와 더불어 점수와 좌선을 약화시키고 돈오의 방식을 현저하게 늘려갔던 것입니다.
《육조단경》은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사상적 변화의 연속선상에 있었지만 그 방향은 현저하게 전환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오와 관련된 동적인 선법들이며, 혜와 작용의 부각을 가리킵니다.
본래 선정 또는 삼매는 고요함과 활발함을 함께 구현해야 됩니다. 이것은 모든 이론과 실천에서 공유하는 특징입니다. 고요함은 정이고 활발 함은 혜이기에 하나의 바른 선정에는 정혜가 평등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보통 정혜쌍수라고 하는 말은 이러한 선의 본질 그 자체를 가리 킵니다.
그러나 좌선으로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려다 보면 자기 안에서의 정과 혜에 그치기 쉽습니다. 밖의 현실에서 그 두 요소를 다치지 않은 채 운용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좌선의 자리를 벗어나 이를 실현하려면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더욱 좌선에 치우치고 고요함에 탐닉하여 안정된 자리를 고수하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조 단경》은 당시 누구나 그렇게 살았던 평범한 생활인 혜능이 중국의 가장 이상적인 선사가 되기까지의 구도과정과 그 이후의 삶과 사상적 전개를 주요 줄거리로 하는 문헌입니다.
2장 혜능 이야기
84 선정에 의존하는 해탈이란 선정에 들어서 마음을 관찰하고 다스리며 점차로 높은 단계를 성취한 끝에 이루는 해탈이라는 뜻입니다. 표현은 다르게 했지만 사실상 점수를 가리키며, 여기서 선정이란 좌선과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오로지 견성만 말씀했다'라는 뜻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그것은 선정에 의존하지 않은 해탈을 말합니다. 선정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이 돈오이며 돈오의 방법에 의한 해탈이 바로 견성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견성은 분명히 돈오견성입니다. 해탈이라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더라도 그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에 견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 견성은 돈오를 그 방법적 특징으로 삼는 돈오견성입니다.
3장 북종선 비판
102 선정과 지혜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쌍으로 보는 관점은 《육조단경》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을 그 시대에 알맞은 맥락에서 응용하여 종래의 수행법을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선법을 개척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점은 바로 《육조단경》의 성과물입니다.
선정의 극치에서 실현되는 고요한 마음이 있어야 구체적인 현실에서 장애가 없는 지혜가 발휘됩니다. 이것은 불교 전반에서 공유하는 근본입니다.
《육조단경》에서는 이 근본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에서 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요함은 선정의 어둠에 갇혀 있지 않고 생생하게 감촉되는 밝은 현상 속으로 나옵니다. 삼매의 경계가 폭 넓고 다양하게 펼쳐지는 세계를 《육조단경》은 구현하려 했습니다. 선정의 고요함에 눌러 앉지 않고 일상의 무대에서 자신을 펼치는 조사선은 이러한 비판 사상에 힘입은 결과입니다. 《육조단경》은 조사선의 탄생에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103 《육조단경》의 정혜일체는 이처럼 시끄러운 환경 구석 구석에 구현되어 있는 고요함이었습니다. 그것은 6조가 걸었던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기도 했습니다. 6조는 북종의 수행법이 이러한 현실과 어긋난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동일한 의도에서 삼매에 들어가는 방법에 치우친 좌선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4장 돈오견성
164 선·악 등에 대한 분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만물과 적극적으로 어울려야 합니다. 모든 번뇌와 속박에서 풀려난 것을 해탈이라 합니다. 이 해탈에 대한 집착 없는 앎이 구비된 것을 해탈지견이라 합니다. 어떤 분별에도 속박되지 않지만 많이 듣고 배우는 방법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만물과 접하는 작용과도 일관되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텅 빈 지경에 침몰하면 혜의 작용이 없는 삼매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공의 이치와 상관 없습니다. 진실한 공이란 갖가지 대상과 함께 있어도 부작용과 집착을 유발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교학에서는 그것을 현과 떨어지지 않는 공이라 하여 색즉시공 또는 즉생공이라 합니다.
165 첫째, 돈오와 점수의 차이는 깨달음의 빠르기가 아니라 그 방법에 의해 결정됩니다. 둘째, 돈오견성은 좌선에 의한 견성을 비판한 성과입니다. 셋째, 돈오견성은 오로지 자성을 수행의 근거로 삼고 자성 밖의 어떤 방편도 설정하지 않습니다. 넷째, 돈오견성은 정보다 혜를 중시합니다. 이것은 자성 밖에서 전개되는 혜의 작용에 초점을 둡니다.
5장 반야(般若)의 선법
169 반야사상은 공을 핵심으로 합니다. 다만 《육조단경》은 돈오견성이라는 특수한 선법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한에서 반야사상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 반야 사상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세 가지 선법이 있습니다. 무념, 무상, 무주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선법은 반야사상을 바탕에 깔고 돈오견성의 이념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무념과 무상은 동일한 반야 논리에 따라 견성의 뜻으로 돌아갑니다. 무주도 동일한 취지이지만 무념과 무상이 모두 함축되어있는 사상입니다. 이는 6조가 최초로 불문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던 사상으로서 일생을 통하여 일관되게 나타나는 선법입니다. 이들은 경계 안에서 반야를 구체화시키는 실천 사상입니다. 그것은 《육조단경》의 특징으로서 혜의 작용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육조단경》의 지혜는 교학의 반야사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반야의 지혜는 자성 밖의 모든 존 재와 소통하고 그것을 한 덩어리로 통일시키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무념·무상·무주의 선법에 《육조단경》의 사상적 특징인 혜의 작용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반야사상의 실 천은 이 세 가지에서 극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정이 본체라면 혜는 작용에 해당합니다. 혜를 특징으로 삼는 돈오견성은 좌선 비판을 통하여 정립되었습니다. 이 혜가 반야이며 전통적인 반야의 논리가 돈오견성의 옷으로 갈아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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