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림 역주: 장자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7. 11.
장자 - 장자 원전, 안동림 역주/현암사 |
장자 사상의 현대적 이해
13 인간은 죽음에 묶여 있는 부자유 한 존재임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의 인간은 안팎으로 부자유 할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의 근원에서도 부자유하다. 자유롭기를 바라는 인간은 누구나 그 부자유로부터의 해탈을 추구한다. 『장자」는 해탈의 중국적 논리를 밝힌 책이다. 또한 장자의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부자유한 현실 속에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를 지닐 수 있는가를 밝히려 한다.
장자는 기원전 4세기의 전국시대, 곧 전쟁과 살육, 권모와 술수가 소용돌이 치는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살았다. 장자의 고향인 송나라는 옛날부터 4전지지라고 불렸을 만큼 사방으로 적을 맞아 싸워야 했고, 또 사방으로부터 전화가 집중되었던 고장이다. 전국시대를 통해 이 지역만큼 자주 전란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도 드물다. 송나라는 약소국이었다. 따라서 약자의 비애와 고통, 모욕과 굴욕, 전란과 기아)와 유망 등 이 나라 백성에게 내린 가혹한 역사적 현실은 인간 부자유의 극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예부터 중국에서 송나라 사람을 바보의 대명사처럼 일러 오게 된 것도 모두 이런 데에 기인한다. 어쨌든 장자가 산 시기는 그와 같은 역사적 현실 속이었다.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사고했다. 진흙투성이의 현실과 고투하면서 자유 없는 상황 속의 자유, 부자유의 자유를 필사적으로 추구했다. 이념의 철학이나 관념적 사고, 인간을 대상적으로 파악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한낱 추상의 무지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 다만 확실한 것은 각각의 인간이 현실의 고통과 죽음에 직면 한 채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며, 또한 각각의 인간이 '지금'이라고 하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뿐이다.
장자는 사후의 세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사후의 세계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인간이란 우연히 이 세계에 뚝 떨어져 나온 하나의 생명일 뿐이며, 인간을 창조한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필연 - 자연의 도라고 그는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은 다만 까닭 모를 필연을 따라 이 세상에 나온 자기 존재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 불교의 업보나 그리스도의 원죄 때문에 태어나지는 않았고 다만 그 자체로서 태어나고 죽어 갈 따름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는 선악의 가치 판단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다만 현재 내가 살고 있다는 틀림없는 사실뿐이다. 장자는이 엄연한 사실을 중시한다. 장자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 현실주의 • 현세주의적이다.
14 장자에게 신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장자에게도 인간의 힘을 뛰어 넘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사모와 동경은 있다. 그러나 그 초월적 존재는 그 앞에 무릎 꿇고 빎으로써 은총을 구하는 인격적인 신은 아니다. 장자가 말하는 초월적 존재란 인간을 만물과 동등하게 세상에 내던지고 생성 변화시키며 사멸시키는 천지 우주의 자유로운 작용이며 곧 자연의 도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는 대신 미워하거나 노하지도 않는다. 인간이라고 하여 따로 편애하는 일이 없고 금수나 초목이라고 유별나게 미워하는 일도 없다. 인간의 삶에 관계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인간의 존재와 근원적으로 관계를 가지는 비인격적 초월자이다. 인간은 다만 이 초월적 존재의 작용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다. 아무도 자기 대신 죽어 줄 사람은 없고 누구도 자기 대신 살아 줄 자도 없다. 내가 범한 죄를 대신 값아주고 나의 고뇌를 대신 져 줄 자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자에게 인간 존재는 애초부터 고독하며 매달릴 신)을 갖지 못한 채 불안 앞에 홀로 선 절망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그 고독과 불안을 참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하나만을 믿고 고통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장자의 결의의 모두이다. 현대에도 여전히 잃어버린 신을 찾아 고투하는 실존주의가 있음을 볼 때. 처음부터 신을 가지지 않은 인간의 자유를 추구한 장자의 철학은 이제부터의 인류의 생존 방식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근대 유럽 문화의 특징은 합리주의이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의 문화가 전근대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 중국 고대의 사상 문화는 말할 것도 없이 비합리에 가득 찬 역사적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되었다. 사실 장자가 산 현실은 흉포한 권력이 횡행하고 미망과 죽음과 비참이 소용돌이 치는 가장 비합리한 시대였다. 그는 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인간이란 본래 무엇이며 가치란 무엇인가, 이치에 맞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그의 사고는 인간 존재를 그 상한에서 이해하지 않고 하한으로부터 파악하려 했다는 데에 특색이 있다. 그에게는 인간이란 거의 모두가 형벌받은 불구자이고 태어나면서부터의 신체 장애자이며 추한 자, 가난한 자, 학대받는 자이다. 그는 세상의 현자들이 설정하는 갖가지 가치 체계와 편견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들의 독단성을 향해 반문한다. 인간이 진흙 속의 미꾸라지보다 가치 있다는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미는 어째서 가치 있고 추는 어째서 몰가치한가, 라고.
그는 또 인간의 합리를 인간에게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천지 만물 속에서 추구한다. 천지 우주 간에는 인간만 살지는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존재할만한 필연적인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사고이다. 장자가 추구하는 인간의 합리성은 전 우주적 규모로 확대된다. 인간의 두뇌만으로 이해하지 않고 대지를 굳게 딛고선, 다리로 파악한다. 그 다리 밑의 드넓은 대지 가운데에서 인간을 천지 우주간의 한 사물로 보고, 인간 존재를 전 우주적인 규모로 파악하며, 그 파악을 통해 인간의 합리성과 자유를 추구해 간 점에 또 다른 장자 철학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15 중국인은 곧잘 이론보다도 생명 그 자체를 좋아한다. 생명없는 질서보다는 생명 있는 무질서를 사랑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며, 법칙이 아니라 산다는 문제였다. 장자의 철학은 중국인의 이와 같은 사고를 가장 잘 대표한다. 장자는 생명을 무엇보다도 존중했다. 그의 철학은 생명있는 것을 그대로 생명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짓을 무엇보다도 미워했다. 장자는 인간이 만일 생명의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면 "살아있는 혼돈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고 한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도 생명 있는 무질서의 존중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또한 여기에서 장자만의 해탈의 논리가 생겨난다.
장자가 전개하는 해탈의 논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도, 실재의 혼돈화를 말한다. 장자의 도(실재)란 살아있는 혼돈, 모든 대립과 모순을 그대로 자기 안에 감싸는 커다란 무질서, 인간의 개념적 인식을 넘어선 발랄한 우주의의 작용이다. 살아있는 혼돈과 하나가 되고 살아있는 혼돈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곧 장자의 해탈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인 도(실재)를, 심지)로 따져서 분별한다. 시와 비, 미와 추, 대와 소로 나누고 꿈과 현실로 나누며 인간을 금수와 구분하지만, 실재의 세계에서는 시는 비이고 미는 추이며 대가 소이고 꿈이 현실이며 인간은 금수이다. 인간은 또 심지의 분별 때문에 모든 사상을 원인과 결과로 나누고 현재를 과거에, 미래를 현재에, 현상을 본체에, 인간을 신에게 인과 관계를 지우지만, 실재의 세계에서는 만상이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변화하며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인과 관계를 갖지 않는다. 본래 하나인 실재의 진상을 여러가지 가치 기준으로 나누는 데에서 인간의 슬픈 미혹과 망집이 시작된다. 본래 자생자화하는 만상을 인과적 사유로 천착하기 때문에,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꿋꿋한 인간 정신이 질식 당한다.
장자적 절대자는 인간의 심지의 분별을 실재의 하나로 혼돈화한다. 자기를 실재의 하나로 혼돈화한 무심 망아의 경지에서 장자적 절대자의 해탈이 성립된다. 인간의 모든 미혹과 망집, 모든 슬픔과 두려움이 거기에서 초극된다. 그는 다만 생멸 변화하는 만상의 자연 속에 자기를 허하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자기의 전부라고 긍정한다. 현재가 생이면 그 생을 꿋꿋하게 살아가고, 죽음이면 그 죽음을 달게 받으며, 꿈이면 그 꿈을 오로지 즐기고, 새이면 그 날개를 하늘 높이 퍼덕인다. 일체를 도에 두고 기꺼이 긍정하는 데에 커다란 자유가 있다. 장자적 절대자의 해탈이란 곧 일체를 진실재(자연)에 두고 기꺼이 긍정함을 말한다.
16 현대의 인류는 스스로가 쌓아 올린 문명 속에서 백치화되어 가고 있다. 인류의 끊임없는 지적 노력이 건설한 현대 사회의 거대한 메카니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이 낳은 광기 어린 센세이셔널리즘, 오만한 자존적 가치에 대한 도취가 자극하는 신경질적인 자기 주장, 여기에는 오직 잃어버린 자아를 더 광란케 하는 '문명의 노예가 있을 뿐이다. 장자는 육체적인 노예뿐만 아니라 정신의 노예도 많다고 한다. 현대인은 이미 단순의 위대성, 소박의 강인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체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늠름한 '자연'을 상실하고 있다. 현대인의 백치화야말로 장자의 이른바 '약상', 즉 슬픈 실향민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장자」는 현대인에게 고향으로의 복귀, 인간이 본래의 자기로 돌아갈 것을 가르쳐주는 위대한 저서이다.
17 장자의 이름은 주, 자는 자휴이다. 그의 생존 연대는 현대의 학자 마서륜의 고중을 따르면 기원전 370~300년경이었으리라고 한다. 시대로 보아 공자보다 약 150년 뒤지고 맹자와는 거의 동 연대의 약간 후배가 되는 셈이다.
장자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출생지가 송나라 몽 땅이며 아내가 있었고 몇 명의 제자를 거느렸으며, 같은 송나라 사람으로 위 나라 재상이 된 혜시와 가까웠던 점 등은 대체로 확실한 것 같다. 그 밖에 그의 출신과 경력이 어떠했으며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19 노자 사상의 근저는 '처세보민'에 놓여 있으면서도 아직 정치에 대한 적극적 의욕이 나타나 정치적 이상인으로서의 '성인'이 등장하지만, 장자에서는 허유가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요의 제의를 거절하는 이야기에도 보이듯이, 천하에 대한 매력이 부정되고 따라서 노자의 '성인'의 개념이 '지인', '신인', '진인' 같은 주체적 개인의 성격을 지닌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노자는 '도'에 대해 천지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정적 실재라고 여기지만, 장자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유전 그 자체로 생각한다. 따라서 노자는 '태고의 근에 복귀한다'고 생각하고, 장자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화에 탄다'고 강조한다.
또 도가는 '무위 자연'의 사상을 중시하고 있으나, 노자와 장자를 비교하면 그 개념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노자의 '무위'는 외물을 대상으로 하여 논위하고 장자는 내심의 문제로 파고 들어간다. 노자의 처세보민에 대한 관심은 장자에서는 지인•진인의 형성으로 바뀐다. 결국 노자•장자 사상의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자에게는 아직도 현실 세계의 성공을 원하는 처세적 경향이 강한 데 비해, 장자가 바란 것은 인간 사회의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하여 절대 자유의 정신을 찾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였다고 할 수가 있다.
19 현재 남아 있는 「장자』는 서기 4세기 서진 시대의 곽상이 정리하고 주석한 33편본이며, 그 내역은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분류는 곽상이 만든 것이며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52편본의 「장자』가 통용되고 있었다 하며, 그 이전인 전한 초, 사마천 시대에는 현존 「장자』 내용의 2배쯤 되는 방대한 양의 「장자」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당의 육덕명이 편찬한 「경전석문』 서록을 보면 곽상의 서진대에도 33편본 이외에 27편의 최선 주본과 26편의 향수 주본(내 • 외편 뿐이며 잡편은 없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주본들은 후대의 여러 「장자」 관계 서적에 산견될 뿐이며, 오늘날 전하는 유일의 「장자』는 곽상의 33 편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곽주본으로는 주로 송대의 남화진경이 있고 근대인으로 마서륜이 지은 「장자의 증」은 송본을 위주로 하면서 여러 판본을 교감, 이문을 표기하여 독자에게 가장 편리한 주석본이다.
곽상이 그 이전의 『장자』본에 정리를 가한 까닭은 내용이 잡다하고 장자 본래의 사상과 모순되며, 이를 어지럽힌 부차적인 왜곡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정리 한 33편본에도 『장자』의 내용에 대한 본말 진위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들 내용의 어느 만큼이 장주가 직접 썼고, 어느 부분이 장주 본래의 사상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 평가를 둘러싸고 학자들의 이론이 분분하다. 그렇지만 현재도 그렇듯이 「장자」에는 옛날부터 내편 • 외편의 구별이 있으며, 내편을 비교적 오래된 부분으로 한 점, 특히 처음의 소요유 편과 제물론 편 두 편을 장자 본래의 사상으로 보는 점에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21 내 • 외 • 잡 편의 진위 문제와 관련하여 내편과 외 • 잡편 간의 차이점을 살펴볼 때, 내편 자체에도 의심점이 없지는 않으나 그 체재와 작풍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첫째, 내편의 편명이 모두 각 편의 근본 내용을 나타내고 있음에 반하여 외 • 잡편은 첫머리의 두자를 따서 편명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잡편 중 네 편은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편명으로 삼았으나 이는 모두 가작으로 보인다.
둘째, 내편의 문세와 사상은 외 • 잡편과 비교하여 판이하게 다르다. 내편은 문장이 치밀하고 내용의 줄기가 뚜렷하며 아울러 뜻이 모두 하나로 연속성을 가짐에 비하여 외 • 잡편은 줄기가 서지 않고 연속성이 없다. 또 내편에서는 장자가 자신을 주라고 이름을 말하고 있는데 외 • 잡편에서는 장자라고 존칭을 쓰고 있다는 것도 주의할 점이다.
셋째, 외 • 잡 편이 모두 노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으나 내편에만은 그것이 전혀 없다.
넷째, 내편에서 기술하는 요 • 순 • 우의 성격이 외 • 잡편과 다르다.
내편이 비교적 믿을만한 요소가 많다는 설을 일단 인정할 만하다. 또한 내편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장자의 사상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는 데에 비해 외편 및 잡편은 내편의 사상을 해석 • 부연했거나 또는 장자 사상의 흐름을 추구한 사람들이 후에 부가시킨 이차적 저작으로 본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0) | 2019.08.20 |
---|---|
류쩌화: 중국정치사상사 1 ━ 선진 (0) | 2019.08.08 |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0) | 2019.08.05 |
이시카미 젠오: 미란타왕문경 (0) | 2019.08.01 |
마스타니 후미오: 불교개론 (0) | 2019.07.05 |
성철: 돈황본 육조단경 ━ 성철스님의 (0) | 2019.07.03 |
석지현, 윤창화, 일지: 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0) | 2019.06.23 |
김영욱: 왕초보, 육조단경 박사 되다 (0) | 2019.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