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카미 젠오: 미란타왕문경


미란타왕문경 - 10점
이시카미 젠오 지음, 이원섭 옮김/현암사


1. 성립과 구성

2. 어떻게 할 것인가

3.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4. 가르침의 맛

5. 그리스 사상과의 대비





1. 성립과 구성

15  「밀린다 왕의 물음」에 나오는 밀린다 왕은 그리스의 메난드로스 왕으로, 현존하는 인도 문헌에 그 이름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그리스계 국왕이다. 그는 대략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인도에 침입하여 인도를 통치했던 실재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의 신들을 신봉하기는했으나, 인도 일대에 전파해 있던 불교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껴서 불교 지식을 대담을 통해 얻어 냄으로써, 많은 불교 수도자들이 그의 논리적인 토론으로 혼이 났던 모양이다. 마침내 불교를 좋아하게 된 왕은, 불교를 위해 많은 것을 헌납하기도 했다. 경전에는 나가세나와의 토론 끝에 불교에 귀의했다고 적혀 있으나, 그 사실을 입증 할만한 자료는 아직 없다. 적어도 불교를 꽤 이해하고 있던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16 한편 나가세나는 바라문 출신이었으나, 베다를 학습하다가 의문을 품고 그것이 공허하고 무가치하다고 느껴 출가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한역 경전에서는 나가사나·나선·용군 등으로 번역했거니와, 그 내력은 알 수 없다. 


16 「밀린다 왕의 물음」은 여러 불교 경전 중에서도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으며, 전통적인 불교 사상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자유로운 사고를 하였고, 또 대승 불교의 싹이라고 생각되는 사상도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붓다 시대의 불교 사상에 가까운 형태를 지키면서도, 그것과는 다른 역사의 흐름을 좇아간 흔적도 지니고 있는 경전이다. 그런만큼 우리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 틀에 얽매이는 일없이 맛보고 읽어가야 하리라. 


19 그리스 왕 메난드로스의 질문은 불교를 전혀 모르는 청년 같이 날카롭다. 현대인이 한 번은 묻고 싶어지는 불교의 사고 방식에 대해, 마치 그 대표자로서 메난드로스가 질문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만큼 현재에도 생생히 느껴져 오는 대화가 여기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의문을 품고있는 현대의 청년이 메난드로스요, 그에 대답하는 불교계의 대표자는 나가세나라는 승려인 셈이다. 


19 불교는 난해하다. 그러나 불교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 생활과 유리된 듯 보이는 불교를 어떻게 파악하고 실천해야 할 것인가? 이런 일반인의 요구에 대해 질문이 일어났으며, 또 거기에 대해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 현대인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현대인이 서양의 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동양의 이방인이 되기 쉬운 이때, 메난드로스 왕은 바로 이런 현대인을 대표하여 질문하고 있는 셈이다.


2. 어떻게 할 것인가

68 원시 불교의 구원은 자신의 노력으로 자기를 구제하는 데 있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고, 그 어려움은 특히 재가신자에게 있어서 더욱 심했다. 사람들은 붓다 앞이나 붓다의 제자들 앞에서 참회하고 가르침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붓다가 돌아가신 후, 붓다를 염하는 것에 의해 구원받고 싶다는 소망이 나타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귀추였다 할 것이다. 이런 흐름이 이미 「밀린다 왕의 물음」 속에 엿보인다. 악으로부터 떠나고자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도저히 떠나지 않는 인간의 숙명! 그것을 구해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붓다 뿐이라는 강한 신념이다. 


70 이런 생각은 후일 정토종의 중심사상이 된다. 그러나 정토종의 염불은 선악을 초월한 행위여서, 지식도 없고 수도에도 정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한계 상황에 도달했을 때, 빌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염불의 시비는 물을 필요조차 없다. 오직 '훌륭한 어른 (붓다)의 분부를 받자 와, 믿는 것 밖에는 다른 이유가 없는' 당위인 것이다. 그 때에는 이미 붓다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의식조차 없어져서, 다만 취한 듯이 붓다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볼 따름이다. 


70 「밀린다 왕의 물음』에서 염불을 착한 행위의 하나로 치고 있는 것은, 정토종 발전의 맹아로 생각되어서 사상사적 의의가 크다. 또 배의 비유도 후일 나가르주나가 수립한 이행도 사상과 관련이 있다. 오직 아미타불을 믿기만 하면 되며, 그것은 마치 배를 타고 물길을 가는 것처럼 쉬운 길이라고 설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108 투시한다는 것은 자기 본위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가 애처로워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번민하는 모습을 응시하고, 사람이 갖는 추함·교활함은 꿰뚫어 보는 일이다. 붓다는 붓다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악마의 성질까지도 꿰뚫어 보셨다. 이렇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거니와, 일단 자기를 냉정히 관찰하고 난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도 차별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뿐 아니라 근원적인 예지라고나 할 지혜 속에 싸여있는 자기를 발견하게도 되는 것이다. 광명은 한 점에서부터 두루두루 주위에 번진다.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까지도 포용하여, 그 속에서 빚어지는 증오나 모순, 허전함·안타까움마저도, 동정이나 편견 없이 응시하기에 이른다. 이 작용이 광명이 갖는 특징인 것이다. 적나라한 자기를 자신이 발견했을 때, 차마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 자기가 오직 혼자서 붓다와 일대일로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둠에서 뛰쳐나와 빛에 싸여있는 자기를 그때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3.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125 붓다가 설명을 가하지 않았던 명제, 즉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따위 형이상학적인 문제의 이론적 처리를 유해하다고 본 것은, 그런 처리가 새로운 속박이 되는 까닭이었다. 그런 사유에 집착하는 것은 열반(영원의 편안)에 이르는데 도움이 안되며, 그런 사유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구제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도 그런 이유를 인정하여. "붓다가 이런 일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붓다의 생애에서 매우 큰 구실을 한 이 침묵의 힘은, 이렇게 그의 생각을 전달할 때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함으로써, 침묵의 배후에 숨은 무언의 압력과도 같은 침묵이 지닌 위대한 말씀에 대해 경탄하고 있다. 


125 붓다가 어째서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 침묵했는지는 대략 밝혀졌을 것으로 안다. 그와 동시에 붓다의 침묵이 지닌 의미를 매우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붓다의 침묵을 잘못 이해하여 조금이라도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침묵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쓸 데도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마룬카보다도 정도가 훨씬 얄지 않겠는가.


130 "대왕이시여, 새로 짜낸 우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엉기게 되 고, 엉긴 우유는 버터로 바뀌며, 다시 버터는 버터유가 될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만일에 '우유는 엉긴 우유와 같고, 또 버터가 버터 유와 같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바르게 말하고 있는 것이 되겠습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유에 의존하면서 별개의 상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그것과 마찬가지로 현상이 연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사람과 죽은 사람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앞 것도 아니요 뒷 것도 아닌 것처럼 동시에 연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같지도 않고 다른 것도 아닌 그런 것으로서 마지막 의식에 의해 통섭되게 되는 것입니다."


130 윤회의 주체는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타고 있는 불과 같이 주체의 연속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대자연의 모든 현상이 우리 개인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도 있다 하겠다.


5. 그리스 사상과의 대비

270 그러면 그리스와 인도 사이에 있는 사상적 문제란 어떤 것이었던가? 첫째 영혼의 유무에 관한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영혼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일반적으로 믿었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플라톤 같은 이도 이 입장에 서있다. 또 피타고라스의 제자인 알크마이온은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불교에서는 무영혼설을 명확히 주장했다. 이것은 양자의 극단적인 대립의 하나로 손꼽힐 만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지금껏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차라리 인류 공통의 관심사라고 하는 편이 온당할지도 모른다. 당시의 인도인이라 해서 그 실재를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리스인이라고 다 영혼의 존재를 믿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각기 반대되는 주장을 강조했다는 것은 두 사상의 차이를 보이는 것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271 인도적 사유에서는 의식이나 언행이 업을 형성한다는 생각이 뚜렷했던 터이지만, 그리스인은 이 점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대인 중에도 이것을 숙명론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터이니까. 또 인도 고유의 윤회 사상도 그리스인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스에서도 피타고라스 일파가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거니와, 그것은 철학적으로 정리도 안 됐고, 더구나 일반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구나 불교에서는 무아 사상에 입각하면서 이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것이 그리스인 눈에 수수께끼처럼 비쳤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71 시간론에서도 양자의 차이는 드러난다. 불교에서는 시간도 실체로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존재함으로써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과 내가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보기에 따라 시간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미혹을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이를 때 시간도 초월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리스 사상에서는 시간을 그것대로 긍정했던 것이므로, 불교의 시간론은 주체적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72 인간이 사후에 무로 돌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불교의 사고 방식 또한 그리스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죽은 다음에도 영혼이 존재해서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없이 되는 상태(열반)가 이상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음이 틀림없다. 또 훌륭한 사람을 두고 두고 숭배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한 인간을 신과 같은 존재로 인정할 뿐 아니 라, 최고신보다도 위에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인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273 지식을 중시하는 태도는 인도나 그리스의 공통적인 특색이었지만, 양자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하나의 모형으로 하여 진리는 객관성·타당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유의 방향은 인간의 힘이 인간의 현실을 변혁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낳고, 자연에 대한 관찰을 낳게 되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모태가 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인도의 지식은 주체적·주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다 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번뇌를 멸하여 궁극의 경지(열반)에 도달하느냐 하는 점에 모든 사고력을 동원한 느낌이 있다. 그리하여 무아·공의 사상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니, 세계에서 자아를 부정하고, 신을 부정하는 종교는 불교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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