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5. 26.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 법륜스님 지음/정토출판 |
서문 부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서장 부처님이 오신 나라, 인도의 사상과 역사
제1장 신화의 세계에서 인간의 역사로
제2장 위대한 인간의 탄생과 성장
제3장 위대한 출가, 왕궁을 떠나 중생 속으로
제4장 고행과 성도
제5장 전도의 개시
제6장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 교화사례
제7장 위대한 열반, 새로운 역사
부록
연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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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신화의 세계에서 인간의 역사로
41 부처님의 삶과 사상이 함축된 전생담
우리가 부처님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삶이 너무도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현실적 삶의 문제들을 명쾌하게 해결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이 부처님의 가르침, 즉 진리를 추구하는 삶과 크게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을 신적 존재로 보는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뿐 아니라 부처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세계를 천상계로부터 시작하는 경전 서술은 당시 인도의 사상적 배경과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찬탄에서 기인합니다.
예로부터 인도인은 무수히 많은 전생 동안 수행을 했어야만 훌륭한 성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전생을 통해 이겨낸 고난도 많고 수행도 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현생에서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기까지는 전생의 끊임없는 구도행과 보살행이 있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전생에 대한 내용만을 묶어 경전으로 만든 것이 본생경입니다. 이 경전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민중 포교에 관심을 가진 제자들이 만든 것으로, 기존 경전에 근거를 두면서도 인도의 민간 설화 등과 접합하거나 새로 창작한 민중 교화용 경전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약 100년 간은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와 같이 승가가 운영되었으므로 걸식과 유행, 포교와 수행이 유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사회적 지지를 얻고 왕과 장자들에게 지원을 받게 되자 점차 포교와 수행이 분리되었습니다. 왕과 장자가 훌륭한 정사를 건립해주고 풍족하게 보시를 하자 수행자들은 유행과 걸식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출가 승려들은 교학 연구와 개인 수행에 전념 할 수 있었지만 반면에 민중과 접촉할 기회가 줄어들어 대중 교화를 방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변화된 승가의 모습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교화 활동을 하는 출가 승려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승려들이 열중하던 교학 연구가 논리적으로 난해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과도 유리되어 있음을 간파하고 대중을 교화할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이 살아가신 위대한 삶을 칭송하고 찬양하며,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만이 부처님의 올바른 제자가 되는 길임을 선언했습니다. 뒷날 대승불교의 성립에 영향을 미친 이러한 승려들을 '찬불승'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특정한 승가 조직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대중과 접촉했습니다.
찬불승은 대중과 쉽게 접근하기 위해 인도 민화나 전설을 소재로 부처님의 삶을 설명했고, 윤회 사상에 맞추어 부처님의 전생을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처님의 생애는 신화적인 표현으로 각색되었고, 윤리적이고 모범적인 내용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내용들이 단지 대중과 접촉하기 위한 수단의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불교의 핵심인 인간 해방 사상을 구제적인 실천으로 증명하기 위한 위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본생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경전들은 대승사상이 소승과 분리되어 '반야부'로 체계화 되기 전의 경전으로 본연부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처님의 생애를 말할 때, 흔히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역사적 사실만을 기술한다는 입장에서 이 부분을 제외하곤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전생 자체를 부정하면 우리는 부처님의 생애를 반쪽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찬불승은 본생경을 통해 종교적 신앙 고취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고통스런 현실과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을 해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불교도로서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적절한 예를 들어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본생경은 설화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부처님의 핵심 사상을 다른 어떤 교리보다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실천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7장 위대한 열반, 새로운 역사
556 끊임없이 정진하라
부처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계율을 존중하되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듯이,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는 듯이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계율은 너희들의 큰 스승이며,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 있다 해도 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계와 율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계와 율을 구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계는 수행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이며,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가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할 사항들을 불교의 가치 기준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율은 계의 기반 하에 수행자가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 금지 사항과 승가 공동체의 화합을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금지 사항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교단의 합의에 의해 소소한 계는 버리고 교단의 위아래가 서로 화합'하라고 하셨을 때의 그 소소한 계는 율의 의미를 갖는다 고 보며 교단을 보호하는 경과 계나 계정혜 삼학에 있어서의 계는 근본 가치 기준으로서의 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은 공동생활을 하는 승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계는 수행자이건 아니건 불교인이건 아니건 계를 받았건 받지 않았건 지켜야 합니다. 계를 지키지 않으면 타인과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계를 지킬 때 비로소 올바른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원칙만을 거창하게 강조하는 분이 아닙니다. 올바른 원칙과 함께 세세한 일상사 속에서 제자들을 충고하고 독려하고 이끌어 주는 분입니다. 부처님은 세심하게 제자들의 일거수 일투족. 나아가 그들의 마음 속 생각조차도 파악해서 잘못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처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고 비판 받고 교정 받을 수 있었기에 항상 힘을 잃지 않고 삿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에는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살아 계신다 하더라도 그와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은 계행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팽배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며 뜻이지 밖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아니라고들 말합니다. 사실 수행자에게 규율과 형식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관습에 의한 금기 등에도 얽매여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규율과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규율을 무시하거나 형식을 무조건 부정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규율이나 형식에 끌려 살아 가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올바로 설정하고 살아갈 때 저절로 규율이 필요 없게 되고 형식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즉 계율과 형식에 종속되지 말고 스스로의 삶 속에서 형식을 운용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강한 구도적 정열로 자기 중심적인 욕망을 버리고 수행하는 이들은 오히려 형식이나 규율 혹은 종교적 관습 등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자기 중심적인 욕망의 가치 체계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계와 율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계와 율을 경시할 때 수행자는 파탄이 나고 불교는 타락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의 불교 현실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고 또 그 해결 방안이 있겠습니다만, 승려들이 계를 스승과 같이 받는다면 문제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부처님은 계를 부처님과 같이 받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다짐을 하십니다.
"부디 마음 속의 분별과 망상과 밖의 여러 가지 대상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일함을 원수와 도둑을 멀리 하듯이 해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정각을 이루었다. 마치 낙숫물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정진해라. 비구들아, 이것이 여래의 최후의 설법이니라."
이 말씀을 끝으로 부처님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중생의 입장에서 말하면 열반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생사가 없으신 분이고 오고 감이 없으신 분이니 어찌 죽음이라 말하며 어찌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수백 수천의 밀알을 영글게 만들듯이 부처님은 오로지 한 몸으로 깨닫고 교화하고 열반에 듦으로써 지금 우리의 가슴 속에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부처님의 한 형상을 없앰으로써 수십 수백 수천억의 새로운 부처를 이 세상에 뿌려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정 불법을 아는 불자라면 이렇게 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래시여, 이제 안온하게 열반에 머무십시오. 여래께서 하시려고 했던 그 모든 일을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혼자 하신 것에 비교한다면 우리 수천 수만 명이 모여서 하는 일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한겨울에 대지에 싹을 틔운 분이라면, 우리는 천지 만물이 솟아나는 따뜻한 봄날에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가해야 할 일은 부처님께서 제시해 준 이 길을 따라 부지런히 수행 정진해 나가는 것이고, 우리에게 닥친 과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여래의 열반을 기리는 일입니다.
새로이 시작되는 부처님의 역사
중생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 부처님은 등불이 마지막 기름 한방울까지 모두 태우고 끝내 심지마저 태우 듯,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서 중생을 구원하다가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열반이란 죽음이 아니라 육신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고, 존재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구원의 실상이며, 삶의 완성입니다. 부처님은 오히려 육신의 한계를 버림으로써 진리의 법신이 되어 중생에게 더욱 큰 광명의 빛이 되어 돌아오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생애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육신을 가진 부처님의 생애는 다했으나 부처님의 진리의 역사는 새로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부처님의 역사, 인간 해방의 대장정이며 생명 해방의 길이기도 한 그 길을 가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불국 정토의 건설을 알리는 북소리에 맞춰, 새로운 부처님의 시대, 자유 평등의 용화 세계를 건설 행진의 대열로 함께 나서야 합니다.
수메다 행자가 발심한 이래 수 천억 겁 동안 무수히 몸을 던져 보살행을 한 끝에 부처를 이루었듯이, 미륵보살은 그의 서원 이래 지금도 이 땅에서 무수한 화현으로 나타나 보살행을 닦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장차 부처가 되리라 약속 받은 미륵 보살입니다.
부처님의 생애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새로운 부처님의 역사는 우리 모두에 의해 이제부터 비로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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