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감: 중국 도교사 ━ 신선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5. 3.
중국 도교사 - 모종감 지음, 이봉호 옮김/예문서원 |
제1장 초기도교의 배태와 탄생
제2장 위진남북조시대: 도교의 성장과 체계화
제3장 수・ 당대: 도교의 융성과 변천
제4장 송・ 금대: 도교의 전개와 창신
제5장 원대: 도교의 분파와 융합
제6장 명대: 도교의 세속화와 분화
제7장 청대: 도교의 쇠락
제1장 초기도교의 배태와 탄생
12 중국역사에서 독립된 교단 조직을 갖춘 대형 종교는 다섯 가지이다. 불교·도교·이슬람교·천주교·개신교가 그 것이다. 이 중에서 네 개 종교는 외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와서 점차 중국적 특색을 갖추게 된 것이고, 오직 도교만이 중국 고대의 문화와 종교에 근원한 토박이 종교이다. 도교는 비록 불교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했지만 중국 민족의 전통신앙적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 낸 종교이다. 도교가 숭배하는 최고의 대상은 '도'이다. 도는 천지만물의 본원이자 우주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러한 도는 우주 만물의 본체이자 사회와 삶의 최고 진리를 관통하고 있어서 가장 존귀하다. 도교의 설법을 살펴보면 도기가 변화하여 삼청의 존귀한 신이 된다. 이 신들 가운데 원시천존은 옥청경에 거주하고, 영보천존은 상청경에 거주하며, 도덕천존은 태청경에 거주한다. 이 삼청의 신들이 도교에서 숭배하는 최고의 신령이다. 이 중에서 원시천존이 가장 지위가 높지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신은 도덕천존 즉 태상노군이다. 이 신은 노자가 신으로 승화된 것이다. 태상노군은 천신으로 인정되는 동시에 도교를 창립한 교주로 인식되었으며, 또 그가 저술한 『도덕경」은 모든 도교 경전의 으뜸으로 인정되어 도교도들의 특별한 존경을 받아 왔다.
13 도교는 일반적인 종교의 공통점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내포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색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종교발생학의 관점에서 보면, 도교는 원시형 종교도 어떤 창교자에 의한 종교도 아닌 양자 사이에 끼여있는 종교이다. 도교는 통일된 형태로서의 도교를 만든 교주와 종교를 창조한 집중된 시기도 없었다. 그 탄생과 성장 과정은 시간적으로 완만하고 여러 시기에 분산되었으며, 다양한 과정을 거쳐 다양한 지역에서 발전하다가 점자로 하나로 합쳐졌다. 그래서 그 탄생의 시초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흔히 "노자가 도교를 창시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 신화일뿐 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장도릉이 창건한 것은 '도교'가 아니라 '오두미도'일뿐이다. 도교의 신앙 가운데 다신숭배와 자연숭배가 있는데, 이는 중국 고대의 종교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14 둘째, 종교교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도교는 여러 종교 중에서 현실생명을 가장 중시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현실의 삶은 잠깐 동안이며 고난의 연속이지만 하나님과 알라 신에 귀의하면 사후에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인식한다. 불교 역시 삶을 고통으로 보면서 "윤회를 벗어남"을 해탈로 인식한다. 오직 도교만이 삶을 즐거움으로 인식하여 생명을 중시하고 죽음을 싫어한다. 도교의 수련은 현실 생명을 기초로 삼아 몸과 정신이 서로를 지키는 것이다. 성과 명을 동시에 닦아 현실 생명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승화하게 하여, 최후에 환골탈태하는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성과 명이 영구히 견고하게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18 이러한 온갖 종류의 신들은 후대에 대부분 도교에 흡수되어 도교의 존귀한 신들이 되었다. 가령 천제는 옥황대제가 되었고 천·지·수의 세 신은 심관신이 되었으며, 북방 일곱 별의 신은 현무가 되었다. 그 밖에 최초의 민간 신앙의 대상이었던 동악대제, 사해용왕, 성황토지, 문지방신, 부뚜막신 등은 후대에 도교와 민간이 공동으로 제사 지내며 섬기는 대상이 되었다. 도교는 민간신앙 중에서 신령스러운 것들을 흡수하고 개조하였는데, 이는 초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후대의 발전 과정에서도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그 결과 이 두 집단의 신들은 뒤섞여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옛사람들이 신령을 숭배한 것은 복을 빌고 화를 면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신령은 심오하여 알기 어려웠기 때문에 신을 제사 지내는 방식을 강구 할 필요가 있었다.
21 초기도교는 전국시대로부터 진·한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신선전설과 방사들의 방술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도교의 신선은 일반적인 귀신과 달라 일상생활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정령이 아니다. 신선은 현실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개체 생명이 무한히 연장되고 신장되어 그대로 승화한 존재이다. 신선의 최대 특징으로는 그 형상이 보통 사람과 동일하지만 장생불사한다는 점, 자유롭게 소요하며 신통력이 무한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신선 숭배는 도교 신앙의 핵심으로, 도교가 다른 종교의 교의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다.
25 초기도교는 선진 시대 노장철학과 진한시대 도가학설에서 유래하였다. 노장사상과 진한대의 도가는 모두 학파이지 종교가 아니며, 노자, 장자, 열자, 회남자 등의 책은 모두 학술 서적이지 신학의 경전이 아니다. 그러나 도교는 이론적 측면에서 도가에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고 또 도가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어서 도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는 도교로 하여금 도가가 아니면서도 도가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27 유가가 적극적으로 입세간적이라면 도가는 차가운 눈으로 세상을 방관할 뿐이며, 도교는 자유롭게 세상을 초월하기를 주장한다. 그러나 도교는 도가를 종교 세계로 나아가는 교량으로 삼았기 때문에 시종 도가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두 사상은 장기간 결합하면서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진한시대의 무속과 신선방술은 단지 세속의 미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도가 이론에 결부되어 독특한 도교 신학체계를 형성한 이후로는 자기 자신만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로부터 도교는 유가 및 불교와 나란히 가는 대형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이지만 도교는 도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자를 높여 자신들의 교주이자 존귀한 신으로 받들었다. 이때 그들은 노자를 신화화하고 노자의 책을 받들어 학습하였는데, 이것이 초기도교가 탄생하게 된 중요한 지표이다.
43 『태평경』은 '태평'이라는 이상사회를 제시하였다 또한 '태평'이라는 말은 이 책이 후대에 남긴 인상 가운데 가장 빼어난 개념이다. "태란 크다는 뜻으로, 훌륭한 일을 쌓아나가면 하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평이란 통치가 지극히 고르고 조화로우며 모든 일에 이치가 있어 다시는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 "태란 크다는 뜻이고 평이란 바르다는 뜻이다." 태평 세계는 "해와 달과 별이 그 궤도를 잃지 않고 사시와 오행이 어긋나지 않는, 조화롭고 공정하며 평안한 세계이다. 모든 일이 그 바름을 얻어서 제왕은 너그럽고 백성은 원망이 없는, 도둑이 없고 칭송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이것은 지주계급 중의 개량파가 추구하는 봉건이상국가이다. 평화를 추구하고 전란을 반대하는 태평경의 이상은 전란 속 인간들의 심금을 울려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그 결과 한나라 말기에 민간도교가 탄생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제2장 위진남북조시대: 도교의 성장과 체계화
84 도교의 이론과 실천 활동은 화학, 의약학, 양생학, 천문학 등 자연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도교는 자연과학의 성과를 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연과학으로 하여금 신학에 복무하도록 하는 동시에 신학의 형식 아래에서 자연과학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때 저명한 도사 갈홍, 도홍경 등과 유명한 도서 『황정경』 등이 의약과 화학, 위생학 등의 발전에 공헌했다. 넷째, 아직 광대한 사원경제의 성립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 무렵 도교의 종파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는 전국 곳곳에서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국면이어서 도교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조직체계를 완성 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도교는 신도의 수가 불교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으며, 도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세 종교 중에서 가장 미약하였다.
제3장 수・ 당대: 도교의 융성과 변천
159 외단도는 현세적 실현만을 기대하는 것이어서, 불교의 삼세설과 같은 인과율에 따른 후세의 보답이나 사후 세계의 존재 등을 말하지 않았다. 또한 외단을 복용한다고 해서 신선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두 목격했듯이 외단의 복용은 자연스럽게 실패로 귀결되었다. 간혹 단을 복용하여 병이 낫거나 신체가 건강해진 예가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소수에 불과했고 그들 또한 장생은 할 수 없었다. 도리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생은 커녕 일찍 죽고 말았다. 당의 태종·헌종·목종·경종·무종·선종이 모두 단약에 중독되어 죽었고, 이도고·이포진 등의 여러 신하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량의 태조, 남당의 열조 역시 같은 이유로 죽었다.
163 당 황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전국을 교화하는 사상적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대당제국의 정권을 견고히 하는 데 복무하였다는 점이다. 당대 이전이든 이후 든 도교가 집권자의 도움을 받은 예는 많았지만 그것은 당나라가 도교를 직접적인 황실의 종교로 삼은 것과는 달랐다. 도교와 황권이 긴밀하게 결합한 당대에는 황제의 친척과 대신, 문사들이 분분히 도를 숭상하여 도교에 입교하였고 도교 서적들이 과거시험의 필수 과목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무종 때에는 도교가 국고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노자의 지위는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이 높아졌고, 도관과 사묘가 전국으로 펴져 나갔다. 이러한 상황은 두 가지 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종교를 이용하여 강제로 인민의 사상을 제압하고 우롱한 것인데, 이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적 안정을 이루어 낸 것인데, 강제적인 안정이었지만 이것은 성당 시대를 이끌어 낸 동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4장 송・ 금대: 도교의 전개와 창신
170 송대 도교는 당대 후기의 도교를 계승하면서도 도구에서 새로운 발전을 이룩해 내었다. 이 시기에는 진단과 장백단을 거치면서 나단학이 내용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체계화되어 도교 철학이 급속하게 성숙해지고 도교 내의 교과들이 분화되어 적지 않은 새로운 교파가 출현하게 된다. 이시기의 사회적 배경을 보면, 북송대에는 국력이 미약하여 판도가 크게 축소되었고 남송대에는 더욱 위축되어 강남 지역으로 편중된 가운데 밖으로는 애족이 강하게 위협하고 안으로는 농민들의 봉기가 빈번하였다. 이 때문에 통치자들은 도교를 더욱 높임으로써 그 함을 빌려 황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면서 다른 나라들을 포섭하려 했고, 민중들 역시 화하민족의 본래 색채를 가진 도교의 위무를 받아 심신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도교는 송대에 들어 대발전을 이루었고 지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 이후 금대에 이르면 새로운 도교가 모습을 드러나는데, 이것은 도교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6 왕철이 창립한 전진도는 부록과 외단을 버리고 종려내단학의 기초 위에서 불교와 유학을 융합해 내었다. 때문에 '삼교원융', '삼고평등'의 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진도는 심성 수련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담박하고도 뼈를 깎는 수행으로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할 것을 행위의 준칙으로 삼았다. 또한 유교와 불교를 도교에 융합하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는 것으로부터 더 나아가 득도하여 신선이 된다는 도교의 기본 종지를 위배하지 않는 전제 아래 도교를 도가의 학문으로 회귀하도록 하였다.
198 전통 도교의 교의에 따르면 신선이 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영생을 이루는 것이다. 모든 도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체 생명이 오래도록 흥성하고 쇠하지 않는 것, 즉 범인이 환골탈태를 통해 신선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왕철은 내단학의 기초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되 방향을 전환시켜서 영원히 장생하고 신선이 되어 선계에 오르는 설을 힘써 배척하고 참된 본성의 초월과 정신의 초탈을 적극적으로 선전하였다. 이것은 신선 도교로부터 멀어져 선불교에 접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5장 원대: 도교의 분파와 융합
245 정명도가 추구하는 장생은 육체의 영원한 보존이 아니라 덕성이 사라지지 않음을 이른다. 이는 유가의 성인관과 매우 가깝다. 정명도에서도 부록과 기도를 행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부법은 마땅히 내면의 수련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성으로 천지를 감동시키고 마음 속의 괴물과 귀신을 제거하면 외부의 사기를 자연스럽게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명도는 유가의 윤리를 직접적으로 구체화시켜서 교의와 계율로 삼았고, 도교의 종교 형식 속에 수신제가라는 유가의 인본적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는 유학을 종교화한 최초의 성공적인 시도였으며, 도교사에 있어서도 처음 선보이는 상당히 독특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도교가 유가쪽으로 접근해 간 모습으로, 도교 자신의 전통적 특징을 상실한 대가라 하겠다.
제6장 명대: 도교의 세속화와 분화
248 명대의 200여 년 동안 도교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금대와 원대를 거치면서 줄곧 융성함을 자랑하던 전진도가 쇠락하여 급기야 몰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전진도 몰락의 이유로는 다음의 셋을 들 수 있다. 첫째. 전진교가 원대 황실과 관계가 긴밀했던 탓에 명황실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전진교 후에 들면서부터 도사들이 세상을 구제하는 것보다 개인적인 성과 진의 수련에만 전념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수명양성의 내단술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 전진도를 따르는 무리들이 쉽게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전진도는 사회·정치적 무대의 중심에서 이탈하게 되어, 학자처럼 운둔하여 청수하는 길로 내달아 갔다. 그리고 그 대신 초제와 부록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정일도가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정일도는 무엇보다도 명황실의 총애를 등에 업었고, 이를 토대로 사회·정치 생활과 일상 생활을 결합시켜 냄으로써 전국의 도교를 지배하는 주도적 세력이 될 수 있었다. 이시기에 도의 이론은 다시 유학 및 불교와 밀접하게 융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도교의 교의와 활동은 더욱 넓어져서 사회의 실제 생활을 관통하였고 민간으로 확산되어 명대의 사상과 문화 곳곳에서 도교적 색체가 짙어졌다.
266 도교는 민간 종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교 문화의 확산은 민간에서 다신숭배의 풍습을 더하게 했다. 지속적으로 도교는 민간에서 새롭게 대두한 신령들을 흡수해 나가는 한편으로 자신들의 신선신앙을 또한 민간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관제, 현제, 문창제, 여조, 성황, 옥령관, 삼관, 진무 등과 같은 도교 신선의 사당이 각지의 성과 항에 세워졌으며, 이와 동시에 해신마조, 동악산, 토지신, 용왕, 송자낭낭 등과 같은 토속신의 사당도 세워졌다.
266 도교의 사상은 또 소설, 희곡, 가요 등 대중 문학에도 대량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수호전, 서유기, 봉신연의 등의 소설을 보면 불보살이나 신선도술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다. 이는 당시의 불교와 도교의 종교 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불교와 도교의 종교적 환상을 차용하여 작가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특히 후자의 측면은 낭만주의적 예술 사조로 발전하여 인간의 이상과 희망을 의탁하는 동시에 종교적 신령 사상과 숙명론, 인과응보 등이 도교적 관점들을 확산시켜 나갔다.
제7장 청대: 도교의 쇠락
297 청대의 도교 문화 역시 명대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민간을 향해 확산되어 민간의 다신숭배의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권선서가 더욱 유행하였고 민간의 종교들 중에 새롭게 생긴 많은 종파들은 도교의 영양분을 섭취하였다. 민간 문학과 문인문학의 지도적인 사상이나 예술적 구상 및 이야기의 내용 등에서는 유불도 삼교가 합일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도교의 인물과 고사, 연단술법, 도교적 이상이 항상 문학 창작의 소재로 채택되었다.
297 도교는 전형적인 다신교로 도교의 신선계보는 복잡다단하다. 한편으로 도교는 부단히 신을 만들어내어 사회로 전파하였고, 이 신들은 점차로 민간 신앙의 신이 되어 갔다. 태상노군, 옥황상제, 여조, 진무대제 등이 그 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교는 끊임없이 민간 신앙 속에서 새로운 신을 흡수하여 자신들의 신선 계보에 편입시키면서 신상을 조각하고 사당을 건립하여 그들을 숭배했다. 용왕, 토지신, 태산신, 송가낭낭 등이 그 예이다. 신들 가운데서도 특히 관성제군(관우를 신성화한 도교신)은 청대에 관방과 민간 도교에서 모두 특별히 존숭했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1) | 2019.05.26 |
---|---|
로버트 파우저: 외국어 전파담 ━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 (0) | 2019.05.23 |
일지 스님: 불교인문주의자의 경전읽기 (0) | 2019.05.19 |
지안: 경전으로 시작하는 불교 (0) | 2019.05.14 |
법륜: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1) | 2019.04.22 |
법륜: 관무량수경 이야기 (0) | 2019.04.14 |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의 서 ━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0) | 2019.04.10 |
에피쿠로스: 쾌락 (0) | 2019.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