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3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3 - 10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민음사


4부

10편 소년들

11편 이반 표도로비치 형제

12편 오심


에필로그


작품 해설 / 김연경

작가 연보






11편 이반 표도로비치 형제 - 9. 악마, 이반 표도로비치의 악몽

295 "나를 죽이겠다고? 천만에, 미안하지만 말을 해야겠네. 이렇게 해서 나도 좀 기쁨을 누려 보자고 온 것이니까 말일세. 오, 나는 삶에 대한 갈망으로 전율하는 내 벗들의 열렬하고 젊은 꿈들을 사랑한다네! 지난 봄에 자네는 여기에 올 채비를 하면서 '그곳엔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라는 단정을 내렸지.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식인이라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다. 바보들 같으니, 나와 상의라도 좀 해보지 않고선! 내가 생각하기론 아무것도 파괴할 필요가 없고, 오직 인류의 내부에 있는 신에 대한 관념만을 파괴하면 되고, 바로 여기서부터 일에 착수해야 된다! 이것부터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먼 자들 같으니! 일단 인류가 하나같이 다 신을 거부한다면 (나는 이 시대가 지질학 적 시대와 나란히 평행선을 형성하면서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구태여 식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이전의 모든 세계관이 무엇보다도 이전의 모든 도덕률이 저절로 붕괴될 것이며 완전히 새로운 것이 도래 할 것이다. 사람들은 삶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삶으로부터 취하기 위해 한데 뭉치겠지만, 이는 기필코 오로지 이 세계에서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일 따름이다. 인간은 신성과 거인적인 오만함 덕택에 기고만장해질 것이며 그렇게 인신이 나타날 것이다. 이젠 자신의 의지와 과학의 힘으로 시시각각 무한히 자연을 정복함으로써 인간은 예전에 자신이 갈망했던 천상의 열락을 모두 대체해 줄만큼 드높은 열락을 시시각각 맛보게 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부활의 가능성이 없는, 그야말로 필멸의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되, 신처럼 오만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너무도 오만하기 때문에 인생이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도 전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이제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은 그저 삶의 순간만을 만족시킬 따름이지만, 그것이 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삶의 불꽃은 강렬하게 타오를 것이니, 그것은 이전에 무덤 저편의 무한한 사랑을 갈망하며 타 올랐던 그 불꽃만큼이나 강렬할 것이다.' 뭐 등등 이런 유의 얘기지. 정말 귀여워 죽겠다니까!"


이반은 양손으로 귀를 꽉 틀어 막고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래도 목소리는 계속했다.


"나의 젊은 사상가의 생각은 이랬다네. 이제 문제는 이런 시대가 언제든 도래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도래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인류는 최종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뼛속까지 배어있는 어리석음을 보건대 1000년이 더 지나도 이러한 세계가 건설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진리를 의식하고 있는 사람 중 누구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새로운 원칙에 따라 세계를 건설해도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시대가 절대로 도래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어쨌거나 신과 불멸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은 인신이 될 수 있으며, 설사 그런 사람이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어쨌거나 그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 받은 이상 필요하다면 예전의 노예와 같은 인간이 가졌던 온갖 도덕적 장벽을 가뿐한 마음으로 뛰어 넘을 수 있다. 신은 법률의 구애를 받지 않으니까! 신이 나타날 곳 ━ 그곳이 곧 신의 자리인 것이다! 내가 나타날 곳, 그곳이 지금 곧 제일가는 자리가 될 것이며,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것으로 끝이다! 정말 하나같이 귀여운 얘기라니까. 다만, 사기를 치고 싶었다면 진리의 승인 따위를 받을 필요가 어디 있나? 하긴, 요즘 러시아의 젊은 녀석이 다 이렇지 뭐. 진리라는 걸 얼마나 사랑하게 됐으면 승인을 받지 못하면 감히 사기를 칠 엄두도 못 내니까 말이야."


손님은 필경 자신의 뛰어난 웅변에 도취된 나머지 목소리를 높여가며 비아냥거리는 듯 주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할 말을 채 다 끝내기도 전에 이반은 갑자기 탁자에서 찻잔을 집어 웅변가에게 획 던져버렸다. 


"아, 하지만 이거야말로 바보짓이 아닌가 결국!" 상대방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차 방울을 툭툭 털어 내면서 소리쳤다. "루터의 잉크병이 떠올랐나보군! 자기는 나를 꿈으로 간주한다고 하면서 꿈을 향해 찻잔을 집어 던지다니! 이거야말로 여자들이나 써먹는 수법 아닌가! 하지만 내 이럴 거라고 생각 했어, 자네는 그냥 귀를 틀어 막고 있는 시늉을 했을뿐, 실은 다 듣고 있었던 게야."


갑자기 마당에서 집요하게 창틀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소리 안 들리나, 차라리 문을 좀 열어주게나." 손님이 소리쳤다. "저건 자네 동생 알료샤가 아주 뜻밖의 흥미진진한 소식을 갖고 온 걸세, 내 장담하지!" 

"입 닥치지 못해, 이 거짓말쟁이야, 저게 알료샤라는 걸 나는 네놈보다 먼저 알았어. 녀석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단 말이야. 물론 녀석이 그냥 왔을 리는 없으니까 물론 소식을 갖고 왔겠지…!" 이반은 미친 듯 흥분하여 이렇게 소리쳤다.


"문을 좀 열어주게. 얼른 열어주란 말일세. 밖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고, 그 애는 자네의 동생이 아닌가. 이 보게, 날씨가 어떤지 빤하지 않나? 이런 날씨엔 개도 바깥에 내놓지 않는 법인데."


노크 소리는 계속되었다. 이반은 창문으로 달려가고 싶었지 만 갑자기 뭔가가 그의 팔다리를 묶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가쇄를 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더 강해지고 또 커졌다. 마침내 갑자기 가쇄가 끊겼고, 이반 표도로비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몹시 생경한 듯 주위를 둘러 보았다. 양초 두 자루가 거의 다 타 버렸고, 지금 막 손님에게 집어 던졌던 찻잔은 탁자 위, 자기 앞에 놓여있고 맞은 편 소파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틀을 두드리는 소리는 집요하게 계속되었지만 방금 그의 꿈속에서 귓전에 맴돌았던 것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오히려 아주 절제된 것이었다.


"이건 꿈이 아니다! 천만에 맹세코, 이건 꿈이 아니었어, 이건 모두 지금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이반 표도로비치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창문으로 달려가 통풍창을 열었다.


"알료사, 너한테 오지 말라고 명령했잖아!" 그는 동생에게 광포하게 소리쳤다. "한 두 마디로 잘라 말해, 왜 왔어? 한두 마디라고 했다. 듣고 있니?"


"한 시간 전에 스메르쟈코프가 목을 맸어." 알료사가 마당에서 대답했다. 


"현관 쪽으로 와. 지금 당장 문을 열어 주마." 이반은 이렇게 말한 뒤 알료사에게 문을 열어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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