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알레프


알레프 - 10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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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

신학자들

전사(戰士)와 여자 포로에 관한 이야기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1829년~1874년)의 전기

엠마 순스

아스테리온의 집

또 다른 죽음

독일 레퀴엠

아베로에스의 탐색

자히르

신의 글

자기 미로에서 죽은 이븐 하캄 알 보크하리

두 명의 왕과 두 개의 미로

기다림

문다의 남자

알레프

후기


작품 해설

작가 연보




204 그는 머뭇거리더니, 우리가 어떤 내밀한 것을 털어놓을 때 사용하는 무덤덤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자기의 시를 끝마치기 위해서는 그 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지하실 한 쪽구석에 '알레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알레프'란 모든 지점들을 포함하는 공간 속의 한 지점이라고설명했다.


"부엌 지하실에 있어." 그는 걱정스러운 탓인지 말을 서둘렀다. "그건 내 거야, 내 거란 말이야. 어렸을 때 내가 발견한거야.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지. 지하실 계단은 아주 가팔라. 그래서 삼촌들은 내게 그 계단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했어. 그런데 누군가가 그 지하실에 하나의 세상이 있다고 말했어.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여행 가방'을 뜻하는 말이었지. 하지만 나는 거기 하나의 세상이 있다는 줄 안 거야. 나는 몰래 내려갔고, 금지된 계단에서 뒹굴고 말았다. 그런 다음 눈을 떴을 때 나는 '알레프'를 보았지."


"알레프라고요?" 나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곳이야. 나는 이 발견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다시 그곳을 찾아갔어. 어린 나는 인간이 시를 지을 수 있도록 부여된 특권이 자기에게 내려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 수니노와 숭그리는 내게서 그걸 빼앗을 수 없어. 안돼, 절대로 안돼. 걸어 다니는 법전이라는 순니 박사가 내 알레프는 '빼앗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줄 거야."


나는 그와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지하실은 아주 어둡지 않아요?"

"고집스러운 태도에는 진실이 들어설 수 없는 법이지. 만일 '알레프' 속에 지구상의 모든 장소들이 들어 있다면, 거기에는 모든 별들과 모든 등불들, 모든 빛의 원천들도 있겠지."

"지금 당장 그걸 보러 가죠."


나는 그가 안 된다고 말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전에 떠올리지 못한 분명한 일을 한순간에 즉각적으로 눈치채는 데는 딱 한 가지 사실만 알면 충분하다. 나는 그때까지 카를로스 아르헨티노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사실상 비테르보 집안 사람 모두가 그렇듯… … 베아트리스(나는 스스로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는 거의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통찰력을 지닌 여자, 그런 어린 여자였지만, 그녀 안에도 어쩌면 병리학적 설명이 요구될 만한 무심함과 산만함, 그리고 경멸과 진정한 잔인함이 들어 있었다. 카를로스 아르헨티노가 미쳤다는 사실은 나를 악의로 가득한 행복감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사실 우리는 내심 서로를 항상 증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이 거리에 도착하자, 하녀는 내게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다네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하실에서 사진을 현상하고 있었다. 아무도 치지 않는 피아노 위에 놓인, 한 송이의 꽃도 없는 화병 옆에 베아트리스의 색 내 바랜 커다란 사진이 미소 짓고 있었다. (시대착오적이라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우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애정 어린 절망감에 사로잡혀 사진 앞으로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 엘레나, 베아트리스 엘레나 비테르보, 사랑하는 베아트리스, 영원히 사라져 버린 베아트리스, 나야 나, 보르헤스야."


잠시 후 카를로스가 들어왔다. 그는 짧고 냉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알레프'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저 코냑 비슷한 술 한 잔 어때?" 그가 말했다. "그런 다음 지하실로 들어가도록 하지. 자네도 알겠지만, 반드시 드러누워야 해. 또한 완전히 어두워야 하고, 절대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어느 정도의 시력 조절도 필요해. 타일 바닥에 누워서 눈을 지하실 계단 열아홉 번째 발판에 고정시켜. 나는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 나가겠어. 자넨 뚜껑 문 아래에 혼자 있게 될 거야. 쥐 같은 것 때문에 겁을 먹을지도 몰라. 충분히 그럴 수 있을거야! 몇 분만 지나면 자네는 알레프를 보게 될 거야. 연금술사들과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의 소우주이자, 널리 알려진 우리의 친근한 한마디, '작지만 많은'이란 말이 구체화된 것을 보게 될 거야."


식당에 이르러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네가 그것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건 자네가 무능한 탓이지 내가 말한 그 어떤 것도 무효가 되지 않으리라는 건 분명해…… 자, 내려가도록 해. 자네는 베아트리스의 모든 모습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거야."


그의 군더더기 말에 넌더리가 난 나는 급히 내려갔다. 층계보다 약간 넓은 지하실은 우물 혹은 구덩이와 매후 흡사했다. 내 눈은 카를로스 아르헨티노가 말했던 가방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빈 병이 담긴 몇 개의 상자와 범포자루 몇 개가 한쪽 구석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카를로스는 자루 하나를 집어 들고서 반으로 접더니 그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히 놓았다.


"배개가 변변찮아." 그가 설명했다. "하지만 자네가 1센티미터라도 들어 올리면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될 거야. 그러면 무안하고 창피한 노릇이겠지. 자네의 크고 굼뜬 몸뚱이를 바닥에 쭉 펴고 열 아홉 개의 계단을 세도록 해."


나는 그의 우스꽝스러 운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랐다. 마침내 그가 나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뚜껑 문을 닫았다. 비록 나중에 틈새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어둠은 완전히 깜깜했다. 갑자기 나는 내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잔의 독을 마신 후, 나는 어느 미치광이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되었던 것이었다. 카를로스의 허풍 속에는 내가 그 기적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 못할 두려움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자신의 정신 착란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나를 죽여야만 했다. 나는 막연한 불안을 느꼈고, 그것을 마약의 효력 때문이 아니라 꼼짝도 못하고 있는 자세 탓으로 여기려고 노력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바로 그때 나는 알레프를 보았다.


이제 나는 말로 다하기 어려운 내 이야기의 핵심에 이르고 있다. 바로 여기서 작가로서의 나의 절망이 시작된다. 모든 언어는 상징들로 이루어진 알파벳이고,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하나의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겁에 질린 내 기억이 간신히 간직하고 있는 그 무한한 알레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이와 비슷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신비주의자들은 많은 상징을 사용한다. 신성을 의미하기 위해 어느 페르시아 사람은 어쨌거나 모든 새들인 한 새에 관해 말한다. 알라누스 데 인술리스는 중심이 모든 곳에 있고, 원주는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어떤 구체에 대해 말한다. 에제키엘은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동서남북을 동시에 바라보는 어느 천사에 대해 말한다(내가 이런 믿기 힘든 유추를 떠올리는 것은 절대로 무용한 짓이 아니다. 이것들은 알레프와 어느 정도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신들은 내가 동등한 이미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테지만, 이런 이야기는 문학과 거짓으로 오염되어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중심문제 ━ 무한한 전체를 부분이나마 열거하는 것 ― 는 해결될 수 없다. 나는 그 거대한 찰나에서 즐겁고도 끔찍한 수많은 행위들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서로 겹치거나 투명하지도 않게 동일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내 눈은 동시에 그런 것들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연속적 순서로 글로 옮길 것이다. 바로 언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이 닿는 한 뭔가를 포착해 볼 작정이다.


층계의 아래쪽 오른편에서 나는 거의 견디기 어려운 광채를 지닌 무지갯 빛의 작은 구체 하나를 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그런 움직임이 그 구체 속에 담긴 현기증 날 정도의 광경들 때문에 생겨난 환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레프의 직경은 2~3 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지만, 우주의 공간은 전혀 축소되지 않은 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각각의 사물(예를 들자면 거울의 유리 표면)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 었다. 그것은 내가 우주의 모든 지점들에서 그 사물을 분명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붐비는 바다를 보았고, 여명과 석양을 보았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군중을 보았고, 검은색 피라미드의 한가운데에 있는 은색 거미줄을 보았으며, 산산조각 난 미로(그것은 런던이었다.)를 보았고, 아주 가까이 있는 무한한 눈들이 마치 거울에 있는 것처럼 내 안에서 자신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지구상에 있는 모든 거울들을 보면서도 그 어떤 거울도 나를 비추고 있지 않는 것을 보았고, 솔레르 거리의 뒷마당에서 삼십 년 전 프라이 벤토스의 어느 집 현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타일을 보았으며, 포도송이들과 눈과 담배와 금속의 줄무늬와 수중기를 보았고, 적도의 볼록한 사막과 그곳에 있는 각각의 모래알을 보았으며, 인버네스에서 결코 잊지 못할 어느 여자를 보았고, 그녀의 심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도도한 육체를 보았으며, 그녀의 가슴에서 암을 보았고, 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던 오솔길에서 원 모양의 메마른 땅을 보았으며, 아드로게에 있는 별장을 보았고, 플리니우스의 최초 영어번역본 한 부를 보았으며, 각 페이지 안에 있는 각각의 글자를 동시에 보았고(어렸을 때 나는 닫힌 책 속의 글자들이 밤을 보내는 동안 서로 뒤섞이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밤과 낮을 동시에 보았으며, 벵골에 있는 어느 장미의 색깔을 반사하고 있는 것 같은 케레타로의 석양을 보았고, 아무도 없는 내 침실을 보았으며, 알크마르의 서재에서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놓인 지구본과 그 거울들이 지구본을 끝없이 증식시키는 것을 보았고, 새벽녘의 카스피 해의 해변에서 바람을 맞아 갈기가 뒤엉킨 말들을 보았으며, 어떤 손의 가날픈 뼈마디들을 보았고, 우편 엽서를 보내고 있는 한 전쟁의 생존자들을 보았으며, 미르자푸르의 어느 진열장에서 스페인 트럼프 한 벌을 보았고, 어떤 온실 바닥에서 양치류 식물들의 비스듬히 기운 그림자를 보았으며, 호랑이와 금관 악기와 들소와 거대한 파도와 군대를 보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미들을 보았으며, 페르시아의 천체 관측기를 보았고, 한 책상 서랍에서 베아트리스가 카를로스 아르헨티노에게 보낸 음탕하고 믿을 수 없으며 상세하게 쓴 편지(글씨를 보자 떨지 않을 수 없었다.)를 보았으며, 차카리타 공동묘지에 세워진 사랑스러운 기념비를 보았고, 한 때는 달콤하게도 베아트리스 비테르보의 것이었던 끔찍한 유해를 보았으며, 내 어두운 피가 순환하는 것을 보았고, 사랑의 톱니바퀴와 죽음으로 인한 변화 과정을 보았으며, 모든 지점에서 알레프를 보았고, 알레프 안에서 지구와 또다시 지구 안에 있는 알레프와 알레프 안에 있는 지구를 보았으며,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고, 네 얼굴을 보았으며, 현기증을 느꼈고, 눈물을 흘렸다. 내 눈이 그 비밀스럽고 단지 추정적인 대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사람들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만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 그러니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였다.


나는 무한한 존경과 무한한 연민을 느꼈다.

"자네를 부르지도 않았던 곳을 그토록 살살이 살펴보았으니 지금 어리둥절할 거야." 유쾌하면서도 혐오스러운 목소리가 말했다. "자네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짠다고 해도, 백 년 내로 이런 계시에 대한 보답은 결코 하지 못하겠지. 정말 굉장한 관측소 아닌가, 보르헤스!"


카를로스 아르헨티노의 신발은 계단의 맨 윗부분을 밟고 있었다. 갑작스런 희미한 불빛 속에서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더듬더듬 입을 열 수 있었다.


"굉장해. 정말 굉장해."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이상할정도로 냉담했다. 조마조마해진 아르헨티노는 끈질기게 물었다. 


"모든 걸 분명하게 보았어? 그 색깔 그대로 보았어?"

그 순간 나는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아주 다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불쌍히 여기면서도 초조해하고 회피하는 표정으로, 나는 카를로스 아르헨티노 다네리에게 지하실을 보여준 호의에 대해 감사했다. 그리고 그의 집이 철거되는 기회를 이용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 내 말을 믿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어! — 유해한 그 도시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했다. 나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알레프에 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를 껴안았고, 그에게 시골과 조용한 삶이야 말로 위대한 두 의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거리에서, 콘스티투시온 광장의 층계에서, 지하철에서, 나는 모든 얼굴들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이제는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내가 이미 보았던 것에서 다시는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밤의 불면 끝에 다시 망각이 내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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