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이름은 빨강 2



내 이름은 빨강 2 - 10점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민음사


34. 나는, 셰큐레

35. 저는 말입니다

36. 내 이름은 카라

37. 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38. 내가 화원장 오스만이다

39. 저는 에스테르랍니다

40. 내 이름은 카라

41. 내가 화원장 오스만이다

42. 내 이름은 카라

43. 나를 올리브라 부른다

44. 나를 나비라 부른다

45. 나를 황새라 부른다

46.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47. 나는 악마다

48. 나는, 셰큐레

49. 내 이름은 카라

50. 우리는 두 명의 수도승

51. 내가 화원장 오스만이다

52. 내 이름은 카라

53. 저는 에스테르랍니다

54. 저는 여자예요

55. 나를 나비라 부른다

56. 나를 황새라 부른다

57. 나를 올리브라 부른다

58.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59. 나는, 셰큐레


작품 해설

작가 연보





59. 나는, 셰큐레

우리 , 그러니까 나와 아이들은 행복했어요. 하지만 카라는 그렇지 않았죠. 그 첫 번째 이유는 어깨와 목의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사랑하는 남편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듯이 불구가되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외관상 조금 이상한 것 말고는 살아가는 데 크게 불편한 점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먼발치에서 그를 본 여자들이 내 남편이 잘생겼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고요. 하지만 카라의 오른쪽 어깨는 늘 믿으로 늘어뜨려져 있었고 목도 이상하게 뻐딱한 채 남게 되었죠.

나 같은 여자는 때때로 자신보다 못한 남자하고만 결혼할 수 있으므로, 카라의 장애가 그의 불행의 원인인 만큼 우리 행복의 비밀스런 이유라고 말하는사람들의 입방아도 내 귀에 들려왔습니다.


모든 입방아가 다 그렇듯, 그런 말도 사실 일리가 있었어요. 에스테르가 나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말했듯이, 최고로 아름다운 말 위에 등을 곧추 세우고 앉아 노예와 하녀에게 둘러싸여 이스탄불 거리를 한번 거닐어 보지 못한 것이 내게 아쉬움과 가난하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똑바로 고개를 들고 세상을 승리감에 가득 차 바라보던 전남편을 그리워한적도 있었어요.


이유야 어떻든 카라는 늘 우울했습니다. 나는 그의 슬픔이 대부분 어깨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의 영 혼의 은밀한 구석에 가장 행복한 정사의 순간조차 그를 우울하게 만드는 어떤 슬픔의 정령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 정령을 잠재우기 위해 때로는 포도주를 마시고, 때로는 책의 그림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떤 때는 세밀화가들과 밤낮으로 같이 지내고 그들과 함께 미소년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기도 했죠. 세밀화가들, 서예가들, 시인들과 말장난, 풍자, 은유, 아첨 놀이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던 시기도 있었고, 에으리 쉴레이만 파샤의 비서직과 공식 서기관을 하며 모든 걸 잊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카라의 페이지 장식과 그림에 대한 열정은 술탄이 죽은 후 등극한 새 술탄 쉴레이만이 이 일에 등을 돌림으로써 공공연한 쾌락에서 멀어졌습니다. 그저 닫힌 문 뒤에서 혼자 즐기는 비밀이 돼 버렸죠.가끔씩 작고하신 아버지가 남긴 책들 중 하나를 펼치고, 그 옛날 티무르의 아들 시대에 헤라트에서 제작된 그림, 그래요, 쉬린이 휘스레브의 그림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보곤 했습니다. 그는 그 장면을 궁전 주변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행복한 기예의 놀이로 보지 않고, 추억으로 남은 달콤한 비밀을 떠올리는 것처럼 죄책감과 술픔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새 술탄이 등극한지 3 년째 되는해에, 영국왕이 안에 바람통이 달린 악기가 든 신기한 시계를 선물로 보내왔어요. 영국 사절단은 그 거대한 시계의 다양한 부속품, 톱니바퀴, 그림, 조각상을 술탄 전용 정원의, 할리치 만을 바라보는 경사면에 몇 주를 들여 겨우 조립해 세웠지요. 구경하기 위해 할리치 만의 경사면에 모인 군중은 거대한 시계가 크게 음악 소리를 울며 작동하고, 사람 크기만한 조각상과 그림이 주위를 도는 걸 보았어요. 그건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마치 신의 창조물인 것 같았습니다 리듬을 타며 우아하고 의미 있게 움직였거든요. 또한 온 이스탄불에 시간을 알리기라도 할 것처럼 종을 울려대는 시계도 놀라웠습니다.


이스탄불의 하층민들과 아둔한 군중들이 끊임없이 경탄해 마지않던 시계는 술탄과 맹신자들에게는 이교도들의 힘의 상징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안감의 원천이 될 거라고 카라와 에스테르가 각기 내게 말해 줬어요. 그런 소문이 커지고 있을 즈음, 술탄 아흐벳이 정원의 그 시계와 조각상을 산산조각 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술탄이 꿈에서 예언자의 신성한 얼굴을 후광 속에 보았고 , 예언자가 그에게 경고를 했다더군요. 그림, 더욱이 인간의 모사물

을 술탄의 종이 지배하는것을 술탄이 허락한다면, 그래서 신의 창조물과 경쟁하게 만든다면 통치권이 신의 의지로부터 벗어날 거라고요. 그래서 술탄은 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철퇴를 들었다고 덧붙였어요. 술탄은 그 사건을 충실한 역사가에게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또한 서예가들에게 주머니 가득 금화를 주고 『역사의 진수』라는 책을 제작하게 했지만, 세밀화가들에게는 그림을 그리라고 하지 않았죠.


페르시아에서 영감을 받아 육성되고 이스탄불에서 100년 간 꽃을 피운, 이 그림 장식과 그림에 대한 열정의 빨간 장미는 이렇게 시들어 갔어요. 세밀화가들 사이의 다툼, 끝없는 물움의 계기가 됐던, 헤라트파의 옛 장인들과 유럽 장인들의 화풍 간의 대립도 어떤 결과에도 도달하지 못했죠. 왜냐하면 그림 자체가 버림 받았기 때문이에요. 화가들은 동양인들처럼 그리지도, 서양인들처럼 그리지도 못했습니다. 세밀화가들은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병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노인처럼 서서히 겸허한 슬픔과 체념으로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한때 경탄하며 추종했던 해라트와 타브리즈 출신의 위대한 장인들, 그리고질투와 증오 사이에서 주저하며 새로운 화풍을 부러워했던 유럽 장인들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궁금해하거나 상상하지 않았어요. 마치 밤에 집들의 문이 닫히고 도시가 어둠 속에 방치되는 것처럼, 그림도 고아로 버려졌습니다. 세상이 한때는 아주 다른 식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무자비하게 잊히고 말았죠.


아버지의 책은 안타깝게도 완성되지 못했어요. 완성된 그림들은 궁전 보고에 보관되었고, 그곳에서 유능하고 까다로운 도서관 직원에 의해 화원 소유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다른 그림들과 함께 제본되어 다양한 화집에 홑어져 들어갔죠. 하산은 이스탄불에서 도망쳐 사라졌습니다. 다시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셰브켓과 오르한은 할아버지의 살인자를 죽인 사람이 카라가 아니라 삼촌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않았습니다.


장님이 되고 나서 2년 후에 죽은 장인 오스만 대신 황새가 화원장이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의 재능을 감탄했던 나비는 여생을 카펫과 옷감, 천막을 장식하는 일에 전념하며 보냈습니다. 화원의 젊은 조수들도 같은 길로 들어섰지만 누구도 그림을 그만두는 걸 커다란 손실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 누구도 자신의 얼굴 그림을 실제로 정당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냐근 전 생애를 통해 두 점의 그림이 그려지길 은밀히, 너무도 갈구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첫 번째, 나의 초상화가 그려지길 바랐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죠. 왜냐하면 나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술탄의 세밀화가들 중 그 누구도 눈과 입을 중국인처럼 그리지 않으면 여자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헤라트파의 옛 장인들이 그랬듯이 나를 중국 미녀처럼 그린다면 , 어쩌면 그 그림을 보고 그 뒤에 숨겨진 나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후대 사람들은 내 눈이 사실은 동양인들처

럼 위로 치켜 올라가 있지 않았음을 안다 해도 실제 내 얼굴이 어땠는지는 전혀 알 수 없을 거예요. 아들들의 위로로 보내는 지금 이 노년기에 나의 젊었을 적 초상화가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텐데…….


두번째, 행복의 그림이 그려졌으면 했습니다. 란 출신의 시인 사르 나즘이 그의 마스나비에서 깊이 생각했던 것이 죠. 그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어요. 두 아이가 있는 어떤 어머니의 그림이죠. 그녀의 품에는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젖을 빠는 아이가 있고, 약간 질투하는 큰 아이와 엄마의 눈이 마주치고 있지요. 그 그림에 있는 엄마가 나였으면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새가 하늘에서 행복에 겨워 영원히 머무는 것처럼 표현하고, 시간을 멈추게 한 헤라트파 옛 장인의 화풍으로 그려졌으면 했지요. 알아요, 쉽지 않다는 걸.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려는 바보 같은 내 아들 오르한은 시간을 멈추게 한 헤라트파의 장인들은 절대로 나를 나처럼 그릴 수 없다는 걸 상기시켰어요. 반면에 아들을 안은 아름다운 어머니 그림을 쉬지 않고 그리는 유럽 화가들은 절대로 시간을 멈추게 하지 못할거라며, 아무튼 나의 행복의 그림은 절대 그려질 수 없다고 수 년 간 줄기차게 제게 말했지요.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우라는 사실 행복의 그림에 있는 미소가 아니라 삶 자체에서 행복을 찾이요. 세밀화가들은 그걸 알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리지도 못하는 것은 그거예요. 이 때문에 그들은 삶의 행복을 바라보는 행복으로 대체한 겁니다.


그려지지 못할 이 이야기를, 어쩌면 글로 쓸 수 있을거라 여겼기 때문에 내 아들 오르한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산과 카라가 내게 보낸 편지들과 가엷은 엘레강스의 몸에서 나온 물감이 번진 말 그림을 주저 없이 그 에게 주었지요. 그 애는 항상 신경질적이고 심술궂고 불만에 차 있으며,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공정하지 못한 평가를 내리지요. 이 때문에 카라를 실제보다 더 얼빠진 사람으로 묘사고 우리의 삶을 더 험난하계 쓰고 셰브켓을 나쁘게, 나를 더 아름답고 부도덕하계 묘사하더라도 여러분은 절대로 오르한을 믿지 마세요. 그 애는 이야기를 제미있게 하고 그럴 듯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하지 못할 거짓말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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