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경: 칸트 철학에의 초대


칸트 철학에의 초대 - 10점
한자경 지음/서광사



서론 - 인간이란 무엇인가?


1장 인식과 존재: 아는 나와 알려진 세계는 어떤 관계인가?

2장 유한과 무한: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3장 욕망과 자유: 도덕의 근거는 무엇인가?

4장 덕과 행복: 덕복일치의 최고선은 실현가능한가?

5장 아름다움과 숭고함: 미적 판단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6장 기계와 유기체: 자연은 어떤 존재인가?

7장 도덕과 법: 개인의 도덕성과 사회의 법은 어떤 관계인가?

8장 인간과 역사: 인류의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결론 - 칸트와 독일관념론




1장 인식과 존재: 아는 나와 알려진 세계는 어떤 관계인가?

40 합리주의의 독단론과 경험주의의 회의론을 피해 제3의 길을 개척해나간 것이 바로 칸트의 비판철학이다. 수학이나 이론물리학적 진리가 세계의 존재질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인식이 신으로부터 본유관념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로부터 경험적으로 얻어낸 것도 아니라면 그 인식의 기원은 과연 무엇인가?


40 이는 곧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종합적 인식이면서도 그 기원이 경험에 놓여 있지 않은 선험적 인식, 한마디로 '선험적 종합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의 물음이다. 여기서 종합판단은 분석판단에 대비되고, 선험적 판단은 경험적 판단에 대비되는 말이다. 분석판단이란 그 판단의 술어가 단순히 주어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얻어지는 판단으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주어개념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판단을 말하며, 종합판단은 개념분석을 넘어서서 새로운 정보가 더해진, 종합된 판단을 뜻하고 따라서 이는 개념설명을 넘어서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확장판단이다.


42 인간은 바로 인식주체로서 그 자신의 고유한 틀과 형식에 따라 세계를 보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인식대상으로서의 세계는 바로 그 형식에 따라 보여지고 이해되고 해석되기에, 그 형식은 인식된 대상세계에 대해 객관적 타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즉 주관의 인식형식이 곧 인식된 대상세계의 존재형식이 되며, 따라서 인간의 선험적 종합판단이 세계의 존재질서에 대한 인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식주체와 객체 간의 공통의 매개는 신도 세계도 아니고 인간 자신이 된다.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근거나 기준을 인간 바깥의 다른 것에서 구하지 않고 바로 인간 자신 안에서 구한다는 점에서, 칸트는 자신의 초월철학적 시도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부른다.


2장 유한과 무한: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90 시간과 공간이 객관적인 절대시간 절대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직관형식일 뿐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시공간 형식에 따라 경험하는 세계는 객관적인 물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직관형식에 의해 시공간적으로 전개된 현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91 세계를 유한하게 경계짓는 것, 세계의 경계가 그어지는 곳, 따라서 세계 안과 세계 밖을 포괄하고 있는 지평이나 터전은 수학적 또는 물리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심성론적 또는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성립한다는 말이다. 세계를 유한화하는 무한과 절대가 세계 경계 너머의 신이나 이데아 또는 절대 시간 절대공간처럼 인간 정신 바깥의 객관적 실재라면 그것은 결국 인간이 직관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세계 내 사물을 직관하고 인식하는 경험의 지평으로 작용할 수도 없는 것이 될 것이다.


3장 욕망과 자유: 도덕의 근거는 무엇인가?

123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는 그 의지가 무엇을 욕구하는가의 내용상에서 보면 서로 상이하고 사적이고 우연적이지만 형식상에서 보면 인간 의지는 바로 보편의지이다. 따라서 보편적 도덕법칙은 의지규정상의 보편적 형식에 따라 얻어질 수 있다. 즉 의지를 그것이 지향하는 대상에 의해서 내용적으로가 아니라 의지 그 자체의 보편적 형식에 따라 규정할 경우 보편타당성의 도덕법칙이 가능한 것이다. 


127 보편화가능성이라는 순수 형식에 따라 규정가능하다는 것은 곧 인간의 의지가 대상에 의한 규정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인간 의지의 자율성이다. 의지가 그것이 지향하는 대상인 경험적 내용에 의해 완전히 규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이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을 계산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 인간은 보편적 이성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자율성을 지니는 인간의 의지를 '자유의지'라고 한다.


127 순수 형식만을 법칙으로 삼을 수 있는 의지는 사적인 경험적 내용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채 의지로서 작용하므로, 보편 의지이며 동시에 자유의지이다. 도덕법칙이 가능한 근거는 바로 인간 본성의 자유 또는 의지의 지유인 것이다.


4장 덕과 행복: 덕복일치의 최고선은 실현가능한가?

153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의지가 지향하는 대상인 최고선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혼이 무한히 존속하며 그 인격적 동일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고선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조건이 결국 영혼불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도덕적 의지의 대상인 최고선을 지향한다면, 그 인간은 그 가능근거로서의 영혼불멸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55 행복을 부여할 자연이 인간 자신의 산물이 아니기에 인간의 덕이 아무리 완성되어도 그 덕에 상응하는 복을 스스로 창출할 수 없다면 그런 덕과 복의 일치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자는 결국 자연을 창조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인 신일 수밖에 없다. 


156 결국 인간이 지향하는 최고선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 너머의 절대자인 신이 존재하여 덕과 복의 일치, 덕에 상응하는 복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고선의 실현가능 조건으로서 도덕적 이성이 요청하는 것은 신의 존재이며, 이것이 바로 제 2 요청이다.


156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의지가 지향하는 최고선의 실현가능조건으로서 두 가지 요청을 제시한다. 하나는 도덕성의 완성을 위한 조건으로서 인간 영혼의 불멸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완성된 도덕성에 상옹하는 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신의 존재이다.


5장 아름다움과 숭고함: 미적 판단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177 미적 만족의 쾌감이 무관심적이고 비의도적이므로, 그 쾌감의 표현인 취미판단은 감성적이고 주관적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상대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판단이 될 수 있다. 다시 미적 판단의 보편성은 바로 그 무관심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특정 관심과 의도의 충족에서 오는 쾌적감은 의도나 목적에 따라 그 느낌의 만족여부가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그 판단은 상대적이게 된다. 무엇을 욕구하고 어디에 관심을 갖는가에 따라 무엇에 만족하는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쾌적함의 느낌은 경험적이고 상대적이다. 그러나 취미판단에서의 미적 만족은 그처럼 서로 상이한 주관적 욕구나 관심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따라서 대상의 실질적 내용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 차이를 넘어 보편적일 수 있다.


187 자연 앞에서 숭고의 판단을 내릴 때 숭고를 느끼는 내가 숭고하다고 판단하지 않고 자연 자체가 숭고하다고 판단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에 숭고가 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 현시가 불가능한 무한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현시되어 나타나는 것 즉 자연이 개념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의 이념에 일치하고 있다는 것 한마디로 개념적으로 규정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 말로써 표현되고 있다는 부정적 현시방식이 바로 숭고의 본질이다.


6장 기계와 유기체: 자연은 어떤 존재인가?

204 자연의 이 초감성적 기체는 현상처럼 규정기능한 인식대상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현상을 규정적으로 설명하는 규정적 판단력의 작용일 수가 없다. 즉 현상 너머의 초감성적 기체가 가지는 합목적성에 대한 판단은 규정적 판단력의 작용이 아니고 반성적 판단력의 작용이다. 다시 말해 자연의 목적성은 자연을 유의미한 하나의 통일적 체계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성적으로 필요로 하는 원리이지, 우리의 반성과 상관없이 자연 자체를 구성하는 객관적 원리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칸트에 따르면 자연의 합목적성은 자연을 그 자체로 규정하는 객관적 원리가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반성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주관적 원리이다. 이 점에서 칸트의목적론은 고대의 객관주의적 목적론과 구분된다.


7장 도덕과 법: 개인의 도덕성과 사회의 법은 어떤 관계인가?

213 자연은 인간의 도덕적 삶을 위해, 그것은 다시 문화의 형성을 위하여 존재한다. 자연은 궁극목적인 도덕과의 연관 하에서, 즉 도덕의 완성을 위해 존재하며 도덕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연적 본성으로부터 고양하여 보편적 가치의 문화를 창달해나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자연과 인류의 궁극목적이다. 이 문화를 통해 인간의 자연성 또는 경향성이 도덕성으로 고양됨으로써 결국 인간의 도덕성과 경향성, 덕과 복이 합치하는 사회가 가능해진다. 그러한 세계 안에서만 덕과 복의 일치 , 즉 최고선이 실현가능해지는 것이다 . 결국 자연의 궁극목적, 문화의 궁극 지향점은 덕복일치의 최고선의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목적, 그리고 도덕의 목적에 대한 목적론적 판단은 자연 전체 그리고 인류의 문화를 전체로서 조망하는 반성적 판단력의 원리일 뿐이지, 자연 자체로부터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현상 구성적 원리가 아니다.


8장 인간과 역사: 인류의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16 도덕성이란 행위자의 내면성에 입각한 고유한 덕목으로서 내적 의지의 차원에서 판단되어야지 외적으로 드러난 행위 자체 또는 그 행위의 결과에 따라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법은 암묵적이고 관습적인 예의범절뿐 아니라 예의와 상관 없이 공적 사회유지를 위해 요구되는 일정한 사항들을 외적 행동규범으로 정하여 명시적으로 성문화해놓은 것이다. 따라서 한 행위가 외적 행동규범에 맞는가 아닌가의 물음은 적법성의 물음이 된다.


243 국가가 개인의 무제한적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는 것처럼, 국제연맹은 각 국가의 무제한적 자유를 제함함으로써 다시 그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통일적 법적 체계를 갖추어나가야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국가 간의 평화가 확보되어야만 한 국가의 평화도 가능해지며, 결국 한 개인의 평화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칸트가 기획한 영구평화이다. 그렇지만 칸트에 따르면 "(국제법의 궁극목적인) 영구평화는 실현될 수 없는 이념"이다. 그것은 성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성취를 기약하기 힘든, 그런데도 우리가 끝없이 추구하고 접근해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269 인류의 발전 방식에 대해 칸트는 혁명보다는 개혁을 통한 점진적 진보를 추구하며, 그것도 아래로부터 위로의 개혁보다는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개혁을 기대한다. 위로부터의 교육과 계몽에 기대를 거는 것은 그가 계몽주의시대의 사상가로서 인간 본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론

273 인간주체가 현상세계의 이론적 인식에 있어 그 궁극적인 가능근거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단지 현상세계에 국한된 제약된 존재가 아니라, 현상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체적 특징은 현상적 차원에서 성립하며, 초월적 측면에서 인간은 사적 차별성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지닌다. 따라서 이런 초월적인 면을 '초월적 자아', '초월적 통각', '의식일반' 또는 '순수 자아'라고 부른다.


275 칸트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존재로 남겨놓은 것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인간관이 전제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은 현상세계를 인간 나름의 방식으로 그 형식에 따라 구성하므로 그렇게 구성된 현상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현상세계를 아는 자기 자신은 신이 만든 존재이다. 그러니 인간이 어떻게 인간 자신을 알 수 있겠는가? 인간을 아는 자는 신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인간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에 의해서 객관화된 현상에 대해서 '현상지'는 갖지만 주객으로 이원화되기 전의 인간 자체 주객미분의 실재에 대해 '절대지'는 갖지 못한다. 인간은 분별지만을 가질 뿐이다. 인간은 그 스스로 분별한 것 즉 현상에 대해서만 객관적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기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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