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숨은 신을 찾아서 — 12

 

⟪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14, 15, 16장

❧ Chant
Ensemble Organum and Marcel Pérès, Plain-chant de la Cathédrale d'Auxerre


❧ 한 분을 떠나 잡다의 세계로 감
“나는 오직 한 분(一者)이신 당신을 떠나 잡다한 세계로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렸으니 이제 나를 거두어 모아주소서.”(2,1,1)
아우구스티누스가 좇은 “사랑의 대상”은 “세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3권1장), ‘안목의 정욕’(3권 2장), ‘현실세계의 자랑’(3권 3장)이다.


❧ 세상의 지혜를 추구함
“나는 그 당시에 학예學藝라고 부르는 방면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을 구입하여 모조리 읽고 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4,16,30)


❧ 아우구스티누스의 실존적 신학, 철학, 인간학적 테제
“당신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에 계시며 내가 높이 도달할 수 있는 그 높이보다 더 높이 계셨습니다.”(3,6,11)

 

 

2021.05.29 숨은 신을 찾아서 —12

⟪숨은 신을 찾아서⟫ 14장부터 읽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제2권부터 제4권까지의 얘기이다. 5,6,7,8,9권은 신으로 향하는 여정과 세례를 받는 과정의 얘기이니까 2,3,4권은 신을 떠난 상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그가 신을 떠난 상태에 있다고 해도 신의 입장에 올라선 그런 사람의 자신감에서 기록한 것. 분명히 뭔가 더하고 뺀 것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쓴 상황으로 들어가 본다면, 1장부터 순서대로 쓰는 것이 아니다. 결론을 내리고 쓴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할지는 결론에 들어있다. 그러면 결론에 향해갈 수 있도록 선행하는 논변들을 구성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글을 쓸 때 가장 기본적인 공식은 결론은 앞에 나온 것과 같거나 적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쓸 때도 결론을 내린 상태. 내가 신의 입장에 올라섰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배진적으로 그것을 구성해 가는 것. 

신의 입장에 올라서 2,3,4권의 얘기, 즉 신을 떠난 상태를 이야기를 할 때, 어떻게 보면 구원의 빛이 자기에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좀 더 안심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어려웠던 상황, 신을 떠난 상황을 서술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자학적으로 쓸 수 있다. 자신이 불안한 상태에서 무너가 과거에 안좋은 일들을 회상한다면 축소해서 쓸 수 있었을텐데 그는 좀 더 심하게 자신에 대해서 쓸 수 있다. "나는 오직 한 분이신 당신을 떠나 잡다한 세계로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렸으니 이제 나를 거두어 모아주소서." 한 분이신 당신, 잡다한 세계, 일과 다, 그래서 한자어를 병기했다. the one and many. 그는 "한 분"을 떠났다. 그는 "잡다"로 향하였다. 일을 떠나 다로 향하게 한 힘은 그의 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랑이다. 이것도 사랑이다. 다를 떠나 일을 향하는 것도 사랑이고, 일을 떠나 다로 향하는 것도 사랑이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종류가 다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냐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 말하는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고백록의 핵심주제다. 신은 사랑이다. 그래서 시작도 끝도 사랑인 것이다. "나의 무게는 나의 사랑입니다." pondus meum amor meus. 

ⅩⅣ "나는 오직 한 분이신 당신을 떠나 잡다한 세계로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렸으니 이제 나를 거두어 모아주소서."(2,1,1) 그는 "한 분"을 떠났다. 그는 "잡다"로 향하였다. 일을 떠나 다로 향하게 한 힘은 그의 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랑이다.

신의 사랑을 깨닫고 그 안에서 안심을 얻고 그런 다음에 신이 만물을 사랑하는 방식을 본받아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 회신이다. 회심이라는 것의 핵심 계기이자 핵심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종류, 또는 질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사랑(amor)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다. 인간은 육신(corpus)과 영혼(anima)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둘 중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 사랑은 둘 다에 걸쳐 있다." 사랑이라고 육체에 걸쳐 있다고 하면 진흙투성이의 육체의 정욕이 된다. 무엇이 그 사람을 채우고 있는가. 그것이 다른 것이다.

ⅩⅣ 사랑(amor)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다. 인간은 육신(corpus)과 영혼(anima)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둘 중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 사랑은 둘 다에 걸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떠나서 extra te, 신을 등지고 abs te 사랑은 깨끗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고백록》 3권에서는 육신의 정욕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조금 나은 단계로 가는 것이 책에 대한 사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에서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 Hortensius를 읽는다. 이 책은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라는 권유를 담고 있다."  땅에 속한 것에서부터 당신에게로 나아가고자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었다. 그러면 이것은 철학책을 읽어서는 답이 안나오더라 이것이다. 이때만 해도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하고 있었듯이 이때만 해도 "이 사도[바울로]가 하신 말씀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만 키케로가 말하는 그 권유를 좋아한 나머지 그 책의 가르침을 따라 이 학파 저학파를 초월하여 지혜 자체를 사랑하고, 탐구하고, 소유하고, 포용하고자 일어섰고 불타 있었습니다."

ⅩⅤ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에서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 Hortensius를 읽는다. 이 책은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라는 권유를 담고 있다.

2권에서 3권 3장까지는 육신에 대한 사랑, 안목에 대한 사랑, 현실 세계의 자랑 이런 것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아직 신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중요한 말이 81페이지에 나온다. "당신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에 계시며 내가 높이 도달할 수 있는 그 높이보다 더 높이 계셨습니다." 아직은 이것의 의미를 명료하게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신을 바깥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신이 어디있는가를 물어보니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에 계신다고 말한다. 내 생각의 근원이요, 내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길어 올려지는 원천이 있고, 거기까지만 얘기하면 데카르트 수준인데, 높이 도달할 수 있는 그 높이보다 더 높이 계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에 있는 저 밑에 있는 것과 저 높은 곳이 맞닿는 것, 사실은 내 마음 안에 맞닿는 것이다. 이게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실존적 자기고백이면서 동시에 실존적 신학이다. 철학이라고 말하기도 신학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고백록》은 절대자에 관한 텍스트 중에 단연 최고가 아닌가 한다. 《고백록》이야말로 신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인간학, 그런 것들이 섞여 있는 굉장한 텍스트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3장 6장 11절의 "당신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에 계시며 내가 높이 도달할 수 있는 그 높이보다 더 높이 계셨습니다."이다. 이 부분에 오면 삼위일체론이나 이런 것은 일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ⅩⅤ 당신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에 계시며 내가 높이 도달할 수 있는 그 높이보다 더 높이 계셨습니다(3,6,11).

《호르텐시우스》을 읽은 후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고,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도 하고, 점성술에도 빠져들고, 20살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십 범주》도 읽었다. 그러나 4장 16장 30절 "그러나"(4,15,30) 왜 그러나에만 인용부호를 썼는가. 이것이 글쓰기의 묘미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러나"라고 했다. "나는 사실 사욕의 노예가 되어 있었으니 그렇듯 내가 책을 읽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나는 그 책들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만 그 책 속에 있는 참되고 확실성 있는 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빛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내 얼굴은 그 빛이 비추는 것들만 보게 되었습니다." 빛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플라톤 《정체》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이다. 반사된 빛을 보고 있으니 뭐가 있겠는가. "당신 밖에(extra te), 나 자신 밖에(extra se)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신에게 가야한다. 그래서 《고백록》 5권부터 신을 향하는 여정을 기록하게 된다. 

ⅩⅥ "그러나"(4,16,30) 나는 곧바로 이것을 무의미한 것이라 고백한다. "나는 사실 사욕의 노예가 되어 있었으니 그렇듯 내가 책을 읽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4,16,30) 

ⅩⅥ "나는 그 책들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만 그 책 속에 있는 참되고 확실성 있는 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빛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내 얼굴은 그 빛이 비추는 것들만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비추는 것들만 보고 있던 내 얼굴은 빛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4,16,30)

ⅩⅥ "당신 밖에(extra te), 나 자신 밖에(extra se)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으로부터 오지 않는 아름다운 것이란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4,16,5)

오늘 아우구스티누스의 실존 철학, 실존 실학, 실존 인간학, 이 구절, 인간이 절대자와 만났을 때 내놓을 수 있는, 나라는 인간과 절대자를 둘 다 호명하는, 부르고 있는 구절, 지난 번에는 나는 잘모르겠는데 절대자가 엄청나다라고 하는, 《고백록》의 첫구절 "Magnus es, Domine, et laudabilis valde.” ‘마그누스 에스, 도미네, 에트 라우다빌리스 발데.’ — ‘위대하시도다 당신은, 주여, 그리고 찬양 받으실 만 합니다 크게.’(1,1,1)" 이 말은 '나' 얘기는 없다. 인간이 없다. 여기에 이어져서 내가 절대자가 마주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은 “당신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에 계시며 내가 높이 도달할 수 있는 그 높이보다 더 높이 계셨습니다.”(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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