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숨은 신을 찾아서 — 13

 

⟪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17, 18장

❧ 신을 향하는 과정
마니교를 떠남, 지적인 여정, 정서적 겪음, 바울로의 서신 읽기, “확신의 빛”, 세례


❧ 자기내귀환 과정
“non dubita sed certa conscientia, domine, amo te.” — “의심이 아닌 확실한 의식으로, 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다가, 세상의 온갖 것을 겪은 다음에 자신 안으로, 자기의 기억으로 되돌아와서 바로 거기에서 신을 만났다 — 자기내귀환.


신을 찾아서 바깥으로 나갔다가, 세상의 모든 겪음을 기억 속에 담아 자기로 돌아왔다. 영혼 속에서 신을 찾았다. 그러나 신은 저 위에 계신다. 이제 신을 찾아서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위로.
“내 위에 계시는 당신 안에서(supra me in te)”

 

 

2021.06.01 숨은 신을 찾아서 —13

⟪숨은 신을 찾아서⟫, 17, 18장을 설명한다. 뒤에 32장에 한 번 더 나오기는 하지만 기나긴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은 끝난다. 

ⅩⅦ 《고백록》 5권부터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으로 향하는 여정을 기록한다. 그는 먼저 마니교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설교와 성서 해석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회의 예비 신자가 되는 길을 차곡차곡 밟는다. 지적인 여정만이 아니다. 어머니 모니카와의 애착이 강력해지고 동거인과 결별하며 세속의 명예와 여자 문제를 정리한다(제6권). 회심을 향한 정서적 겪음을 거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결정적인 지적 회심에 들어서서 신플라톤주의의 텍스트를 읽고 드디어 바울로의 서신들을 읽는다(제7권). 그러던 중 그에게 "확신의 빛"(8,12,29)이 들어와 의심을 거두어 내며, 세례를 받는다(제9권).

5,6,7,8,9권에 걸친 이야기를 짧게 정리했다. 순서를 보면 마니교를 떠난다. 그런 다음에 암브로시우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 것이 지적인 여정이겠다 하면 세속의 명예와 여자문제를 정리한다. 명예라고 하는 것은 마음 속의 명예와 세속의 명예는 분명히 다르다. 아주 쉽게 말하면 사회적인 체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괴롭히는 문제다.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가 아퀼레우스의 갑옷을 두고 싸움을 벌였는데, 이때 아이아스가 집착하고 있던 것이 희랍어로 티메, 명예라고 하는 문제다, 그러다가 바울로의 서신 읽었는데 "확신의 빛"이 들어와 의심을 거두어 내며 세례를 받는다. 지난 번에 아주 좋다고 읽어본 구절이 3권에 있는 "당신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에 계시며 내가 높이 도달할 수 있는 그 높이보다 더 높이 계셨습니다"이다. 이게 신을 만나는 방법이다. 더 높이 계신 분을 만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마니교를 떠나고, 암브로시우스의 도움을 받고, 정서적 겪음을 거치면서 세속의 명예도 정리하고, 지적 회심에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확인의 빛이 들어오고 세례를 받는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예비 신도들에게 또는 그 당시 기독교도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순서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제17장에 짧게 간명하게 정리한한 다음에 제18장에서 하나하나 설명한다. 

ⅩⅧ 세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무엇보다도 아우구스티누스가 당대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지적인 탐구 전부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그가 사랑한 대상들이었다. 육신에 대한 사랑을 시작하여 신플라톤주의의 통찰과 직관에 사랑에 이르기까지가 망라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것을 다 써둔 이유는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고익진 선생이 《불교의 체계적 이해》 머릿말에 이렇게 써놓았다. 아무리 선승들이 금강경 등 경전을 읽었다고 해도 경전에 근거해야 한다. 그것들 모두가 회심과 개종에서 반드시 겪었어야 하는 필연적 계기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앎만 아니라 회신 이전에 겪었던 정서적 경험들까지도 포함한 자신의 삶 전체가 신 안에 있었던 것임을 깨닫는다.

ⅩⅧ 세례를 받은 후 그는 그러한 앎만이 아니라 회심 이전에 겪었던 정서적 경험들까지도 포함한 자신의 삶 전체가 신 안에 있던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탁 털어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것들을 싸안고 가서 신 안에 들어간 다음 거기서 의미를 다시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삶 전체를 신의 입장에서 관상하게 되는, 자신의 기억 안에 들어가 있는 사태들을 재배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있던 것들을 버리고 간다고 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의미를 계속 부여하고 켜켜이 쌓여서 자신의 삶 전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삶에서 겪은 모든 것들을 신이 마련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ⅩⅧ 신이 마련한 길에 따라 겪었던 일들이므로 그 모든 것에는 신이 함께 하였다. 그 모든 일에 대한 기억은 그 일들에 함께 하였던 신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그러면 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기억 속에 있다.

자아가 너무 지나치게 비대한다. 그러면 신은 어디에 있는가. 기억 속에 있다. 기억이 아니라 사실은 깊고도 깊은 나의 내면에 있고 그러면서도 높고도 높은 곳에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 높고도 높은 곳에 있다고 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신인데 내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포인트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사람은 누구냐, 세 사람이다. 예수, 바울로, 아우구스티누스. 바울로의 서신을 읽어보면 그래도 여전히 신은 낯설고 두렵고 떨리는 그런 존재이다. 아브라함의 아케다 사건을 보면 말도 못하게 무서운 존재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내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내 기억속에서 신을 찾는다.

ⅩⅧ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다가, 세상의 온갖 것을 겪은 다음에 자신 안으로, 자기의 기억으로 되돌아와서 바로 거기에서 신을 만났다 — 자기내귀환.

자기내귀환이라는 말을 쓴 건 아우구스티누스이 한 말은 아니고, reflexion in sich 헤겔이 변증법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헤겔 변증법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계기, 또는 학문적인 모티브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있다는 것이 본인의 견해이다. 

ⅩⅧ "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함은 어떤 모호함 느낌에서가 아니고 확실한 의식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10,6,8). "non dubita sed certa conscientia, domine, amo te." — "의심이 아닌 확실한 의식으로, 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의식에 신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나의 의식에 신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면 사랑을 한다고 하는데 무엇을 사랑하는 것인가. 

ⅩⅧ 그는 묻는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10,6,8). "quid autem amo, cum te amo?" — "무엇을 도대체 내가 사랑합니까 당신을 내가 사랑할 때." 

무엇을 도대체 내가 사랑합니까. 당신을 내가 사랑할 때. 

ⅩⅧ "그것은 물체의 아름다움도 아니요, 시절(때)의 아름다움도 아니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찬란한 빛도 아니요, 여러 가지 노래의 아름다운 소리도 아니며, 꽃과 기름과 향료가 풍기는 향기도 아니요, 만나와 꿀도 아니며, 사랑으로 포옹할 때 흐뭇하게 느껴지는 손발도 아닙니다. (…) 당신은 내 안에 영혼에게 어떤 공간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빛을 비추시고, 시간이 나에게서 빼앗아가지 못하는 소리를 발하시며, 바람이 불어 흩어버리지 못하는 향기를 풍기시고,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음식을 공급하시며, 충족해도 떨어지지 않는 포옹을 해주십니다"(10,6,8) 이것들이다. 신을 사랑한다고 할 때 사랑하는 것은 이것들이다.

신 안에서는 다른 것이 된다. 신 안에서 다른 의미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 안에 들어와서 확실한 의식을 가지고 신을 사랑할 때 의심이 아닌 확실한 의식을 가지고 사랑할 때 무심코 보던 것들이 다시 보이는 것이다.  18장은 멋있는 문장들을 많이 써놓았다.

ⅩⅧ "direxi me ad me" ━ "나는 나를 나에게로 돌렸다."

이게 어렵다. 내가 사랑하는 신은 내 안 깊숙한 곳에 있지만, 저 높은 곳에 있기도 하다. 내면을 거쳐서 저 높은 곳으로 간다. 순서를 잘 생각해보면, 저 바깥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다시 내 안에서 쭈욱 내려갔다가 이제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ⅩⅧ 바깥으로 향하였던 시선을 자기에게 돌려서 내면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어가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이 세계가 항상 그러하였음을 관상하게 될 것이요, 그것은 신으로 올라가는 첫째 단계임을 알게 된다.

신으로 가려면 일단 바깥으로 나가서 어떤 지를 봐야 한다. 일종의 예비학이다. 그런 다음에 바깥에서 겪은 다음에 절대적 지에 도달한다. 절대적 지라고 하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바깥으로 향하였던 시선을 자기에게 돌려서 내면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어가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신으로 올라가는 첫째 단계이다. 그러면 헤겔에서 논리학을 거쳐서 자연철학, 정신철학으로 가는 것은 사실은 바깥 세상이 아니다. 신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내면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철학 맨 마지막에서 절대적 정신이라고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ⅩⅧ "내 위에 계시는 당신 안에서(supra me in te)"

"내 위에 계시는 당신 안에서(supra me in te)", 그게 바로 절대적 정신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안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부터 정신철학, 정신현상학의 처음이 감각적 확실성인데 거기서 부터 시작해서 절대적 정신에 이르는 것, 그래서 헤겔 철학 체계 전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참고서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라고 생각한다.

ⅩⅧ 진리는 그렇게 높은 곳에 있다. 그러나 그곳에 가려면 "내 자신의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면"(3,6,11)으로 내려가야 한다. 겸손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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