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철학 고전 강의 — 02

 

⟪철학 고전 강의 -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제1강, 제2강

“그[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사색은 삶의 현장에서 고도로 숙련된 절대적 단순성에 대한 순수한 부정성으로서 시작된 것입니다.”

I부의 제목, “세계 전체에 대한 통찰”의 의미
❧ ‘신들의 계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신들의 계보⟫에 나타나는 여러 신들은 인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보면 안 되고, 자연 사물을 의인화하여 상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 신화와 이성의 구분은 명확한가: “그리고 이제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우주의 구성 요소, 행위자: “최초의 세 가지 힘들: 카오스, 가이아(대지), 에로스”

❧ 우주의 구조: “ 모든 사태가 하늘-대지-타르타로스의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 존재론과 인식론, 존재 자체와 그것에 관한 판단의 관계: “인간은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인 ‘진리를 닮은 것’ 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우주의 요소들을 움직이는 힘: “에로스는 우주의 원초적 생식력을 의미합니다... 후대 플라톤[에서는] 단순한 생식력이 아니라 인간을 형상形相에 이르게 하는 추상적인 원리인 것입니다.”

❧  인간의 진리값: “인간의 앎은 신이 알려준 진리를 얼마나 잘 모방했느냐에 따라 확실성이 달라질 것입니다.”

 

2021.05.04 철학 고전 강의 — 02

오늘은 ⟪철학 고전 강의⟫, 제1강, 제2강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를 다루고 있는 부분을 정리해서 설명하겠다. 제1강이 우주론, 철학적 사유의 시작이고, 제2강이 희랍사유에서 우주의 구조와 생성 과정으로 되어있다. 영역 형이상학은 우주론, 인간론, 신론을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우주론에 해당한다. 그런데 목차를 보면 I부의 제목이 “세계 전체에 대한 통찰”이다. 그리고 제 I부에서 다루는 책들이 《신들의 계보》, 파르메니데스의 단편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들이다. 즉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이 세 사람이 제1부에 해당한다. “세계 전체에 대한 통찰”이라는 제목에서 세계 전체, 저 바깥에 있는 것을 말한다. 내가 아니라 저쪽에 있는 것을 다룬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나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눈 앞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대상 의식이라고 하는데, 순서는 대상 의식이 먼저이다.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간다. 그래서 저 바깥 세상에 있는 것들부터 따져묻는 것이 존재론이다. 

본격적으로 1,2강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녹음 파일을 어떤 태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들을 것인가에 대해서 아주 짧은 잔소리를 하겠다. 이 ⟪철학 고전 강의》 첫시간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그의 철학적 사색은, 그는 소크라테스를 말한다, 그의 철학적 사색은 삶의 현장에서 고도로 숙련된 절대적 단순성에 대한 순수한 부정성으로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철학적 사색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쓴 말이다. "절대적 단순성에 대한 순수한 부정성"이 철학적 사색이다. 철학적 사색이라고 보다는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존재론적 또는 형이상학적 사색은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절대적 단순성은 이 경지에 이르려면 숙련이 있어야 한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인간 존재는 뭔가를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하던대로 하려는 보수적인 인간이다.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 만큼 인간은 숙련되어서 익숙해져서 몸에 밴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절대적 단순성이라는 말은 아주 익숙해져 있는, 그래서 너무나도 뻔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익숙해져 있는 것이 있다. 그러면 절대적 단순성에 대해서 낯선 것이 개입해서 들어온다. 그런데 완전히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해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사유 속에서는 가능하다. 내가 살면서 나에게 익숙해져 있는 그리하여 너무나도 뻔한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을 절대적 단순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사유한다고 하는 것은 순수하게 부정하는 것, 이 말은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생각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실존에는 어떤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의식 속에서는 전면적으로 재구축하는 것이 된다. 즉 이 존재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그 무엇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 이게 바로 순수한 부정성이라고 하는 태도에서 시작된 존재론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이 녹음파일을 듣는 분 중에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내가 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또는 절대적 단순성에 이르게 하는 필수적인 엘리먼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이 과연 나라는 사람에게 철썩 같이 붙어있는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니다,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그 요소를 떼고 나면 나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생각해보자. 왕자라고 하는 나에게 붙어 있는 속성이 필수불가결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적으로 붙어 있는 속성에 불과하구나, 뻔한 것인줄 알았는데 전혀 뻔한 것이 아니구나를 생각을 한, 그게 바로 석가모니의 도 닦기의 시작이다. 그렇게 도를 닦는 것이 바로 순수한 부정성이다. 그게 무지의 지이다. 전면적인 전면적인 부정을 통해서 재구축하려는 시도. 

첫시간 28 그의 철학적 사색은 삶의 현장에서 고도로 숙련된 절대적 단순성에 대한 순수한 부정성으로서 시작된 것입니다.

두번째로 ⟪철학 고전 강의⟫ 책을 놓고 녹음파일을 들으니 공부구나 생각하지 말고 철학이라는 학문은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학문임에는 틀림없는데, 지금 이 파일을 듣는 분은 편안한 마음으로 음미하면서 불경을 읽듯이, 본인은 철학 선생이고 책을 써야 하니까 연구해서 책을 쓰는데, 공부하는 분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나 자신의 정신의 위로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학습을 해야한다는 의식과 태도를 가지고 접근할 필요는 없다. 

⟪철학 고전 강의 34페이지를 보면 ⟪창세기⟫와 ⟪신들의 계보⟫의 차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부분이 있다. 창세기는 유대인들의, 그리고 유대인의 한 계파로 시작된 기독교들의 성서, 경전이다. 이를 문자 그대로 읽는 분들도 있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여기서 의미라고 하는 것이 공부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순수한 부정성을 통해서 전면적으로 재구축한다고 할 때 석가모니처럼 용감하신 분들은 왕자도 때려치고 나가지만 우리는 그게 안된다. 우리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다. 그것 또한 재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는 일차적으로는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내가 믿는 신은 이러이러한 존재라는 고백으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신들의 계보⟫ 또한 고백일 수 있다. 

1강 34 ⟪신들의 계보⟫에 나타나는 여러 신들은 인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보면 안 되고, 자연 사물을 의인화하여 상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신들의 계보⟫는 우주론이고, 성서 ⟪창세기⟫는 우주론처럼 보이지만 신앙 고백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8페이지 ⟪신들의 계보⟫의 목차를 보면 서사가 있고, 헬로콘 산의 무사 여신들, 올륌포스의 무사 여신들, 무사 여신들과 작별하다, 최초의 세가지 힘들: 카오스, 가이아, 에로스가 있다. 목차를 보면 헤이오도스가 쓸 때 서술의 순서를 냉적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것이다. 물론 표현은 무사의 여신들에게 자기가 들은 얘기를 전개한다 라고 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고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들의 계보⟫ 1강에서는 창세기와 구별해서 알아두면 되겠다.

그 다음에 36페이지를 보면 헤이소도스는 시인이다라고 얘기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라고 부분이 있다. "헤시오도스의 추종자를 비롯해서 모든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눈에 그럴 듯해 보이는 생각을 해냈지만 우리들의 관심사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시말해서 아리스토텔레는 헤시오도스를 좀 낮춰보는 것이다. 여기서 신학자는 신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신화적으로 꾸며낸 생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다시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헤시오도스 같은 사람은 "신화적으로 꾸며낸 생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뮈토스, 꾸며낸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고 자기는 논증을 통해 주장하는 사람이다. 사실 서양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우세해서 헤시오도스 같은 사람을 연구하는 것은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인은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1강 36 헤시오도스는 시인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1000a)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헤시오도스의 추종자를 비롯해서 모든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눈에 그럴 듯해 보이는 생각을 해냈지만 우리들의 관심사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신화를 꾸며낸 생각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헤시오도스는 신화를 말하는 사람이고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논증을 통해 주장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뮈토스, 즉 신화와 철학적인 논변이 담겨 있는 로고스의 구별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신화와 철학이 구별이 되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제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다.

1강 37 그리고 이제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힐쉬베르거의 《서양 철학사》를 봐도 뮈토스에서 로고스가 철학의 시작이라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콘터드의 책도 《종교에서 철학으로》으로 되어 있다. 아주 오랫동안 그것이 철학이라고 배워왔는데 정말로 그러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왔다. 다시 말하면 그것도 습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그런 것에 대해서 순수한 부정성을 통해서 철학의 출발점을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해봤다는 것이다. 그러면 제1강에 중요한 것은 ⟪창세기⟫나 ⟪신들의 계보⟫나 모두 다 우주론이다. 그런데 ⟪창세기⟫와 ⟪신들의 계보⟫ 모두 일종의 고백을 담고 있으나 특히 ⟪창세기⟫가 그러한 고백이 더욱 강력하다. 그렇다고 ⟪신들의 계보⟫가 그런 고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사서삼경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시경인데 그 부분도 재미삼아서 읽어보면 된다. 

특히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것도 순수한 부정성을 통해서 철학과 신학의, 또는 신화와 철학의 또는 뮈토스와 로고스의 의미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서 지금 하는 것이구나, 존재론에 관한 책을 쓰면서 자기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것에 대해서 존재론적 재검토를 했구나 라고 생각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제2강 희랍 사유에서 우주의 구조와 생성과정, ⟪신들의 계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이다. 대체로 15페이지 정도 된다. 우선 목차를 두었는데 이런 고전 텍스트를 읽을 때는 형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특히 서사는 프롤로그가 중요하다. 고대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보다 까탈스럽고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책 중에 형식의 변혁을 보여주는 아마 데카르트의 《성찰》일 것이다. 그 다음에 116~122행에 있는 최초의 세 가지 힘들: 카오스, 가이아(대지), 에로스에 주의해야 한다. 이게 말하자면 신화를 서술하는 방법이다. 어떤 힘들을 신격화해서, 인격화해서 표현한다는 것이다. 카오스, 가이아, 에로스는 행위자들인데 그 힘들을 인격화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격화된 힘들이 어디에서 움직이는가, 그 움직이는 곳이 바로 구조이다. 즉 41페이지에 있는 것처럼 "모든 사태가 하늘-대지-타르타로스의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정치체제, 사회구성체에서 산다. 이를 다 묶어서 레짐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행위자가 있는가. 국민이라는 행위자이다. 한국은 신분사회가 아니니까 평등한 국민의 행위자가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들의 계보⟫는 하늘-대지-타르타로스의 구조 속에서 여러 힘들이 움직인다. 그런데 헤시오도스는 그 여러 힘들을 인격화해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두면 되겠다. 

2강 39 최초의 세 가지 힘들: 카오스, 가이아(대지), 에로스"입니다. 여기서 "힘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2강 41 모든 사태가 하늘-대지-타르타로스의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구조가 있고 그 구조 속에서 움직이는 행위자가 있는데, 그런 얘기를 헤시오도스가 들려주고 있다. 그러면 헤시오도스가 진정성이 있는 얘기다라는 것을 남들에게 설득력있게 말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이야기를 신들에게 전해들었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을 많이 할 줄 아노라. 그러나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진실도 노래할 줄 아노라." 신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2강 44 "우리는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을 많이 할 줄 아노라. 그러나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진실도 노래할 줄 아노라."

여기에 헤시오도스의 말이 파르데니데스 단편 서사에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해들었다'는 얘기이다. 우주의 기원과 생성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신에게 전해들은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진리에 관한 얘기가 들어있다. 인식론의 문제. 그것이 참이냐 거짓이냐의 문제. 이것은 연필이다는 말이 참이려면 연필을 가져다가 보여주면 된다. 그런 것처럼 존재론은 우리 눈 앞에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 따져묻는 것인데,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그 존재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믿을만한 사람이 이야기해야 믿을 만한 이야기가 된다. 헤시오도스의 이 이야기는 존재에 대한 탐구와 그 탐구를 이야기하는 것의 구별이 여기에 살짝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존재론과 인식론의 문제다라고 할 수 있다. 45페이지를 읽어보면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은,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주 생성론이면서 동시에 우주 생성론의 기원을 밝혀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존재론이면서 동시에 인식론의 논제들이 여기에 들어있다. 헤시오도스가 설득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겠는가. "자신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생성에 관한 이야기는 신에게 배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발짝 더 가면 인간은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고, 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를 주는 여신인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2강 45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은,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주 생성론이면서 동시에 우주 생성론의 기원을 밝혀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2강 45 자신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생성에 관한 이야기는 신에게 배웠다는 것입니다.

2강 45 인간은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인 ‘진리를 닮은 것’ 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주를 움직여가는 원리는 무엇인가."불사신들 가운데 가장 잘생긴 에로스"이다. 에로스는 우주의 원초적 생식력을 의미한다. 플라톤에서도 그렇고 희랍철학에서 에로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플라톤은 신화적인 표현을 많이 썼고, 대화편을 읽어보면 신화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없다. 에로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에로스는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나오는 에로스보다 굉장히 추상화되고 원리화된다. 다시말해서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나오는 에로스는 훨씬 더 인격적인 성격이 강하다.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이성과 의도를 제압"한다. 그런데 《향연》에서의 에로스는 "단순한 생식력이 아니라 인간을 형상에 이르게 하는 추상적인 원리"이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세계의 궁극적인 원리를 말한다. 이 형상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에로스이다. 그러면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같은 사유구도를 가지고 있다. 에로스, 신들의 세계로 올라간다. 

2강 51 우주의 생성을 이끌어가는 원리는 무엇이겠습니까. "불사신들 가운데 가장 잘생긴 에로스"입니다. 에로스는 우주의 원초적 생식력을 의미합니다. ⟪신들의 계보⟫에서는 에로스기 이런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후대 플라톤의 대표화면, 이를테면 《향연》을 보면 에로스는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 집니다. 단순한 생식력이 아니라 인간을 형상에 이르게 하는 추상적인 원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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