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숨은 신을 찾아서 — 20

 

⟪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33장

❧ 내 삶의 근거
“나는 무엇에 의거하여 살고 있는가. 내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 거창하게 물을 것 없이 내 삶에서 내가 훼손하고 싶지 않은 원칙이 있는가.”


❧ 나의 정체성
“무엇이 나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것인지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뚜렷하게 내놓을 수 없고,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그저 ‘나는 존재하는 생물’이라는 것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2021.06.26 숨은 신을 찾아서 —20

⟪숨은 신을 찾아서⟫, 33장 첫 문장이 "나는 무엇에 의거하여 살고 있는가. 내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을 늘 물어보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아우구스티누스도 읽고 데카르트도 읽었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탄탄한 사람들이다. 자기의 삶의 근거를 확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인데도 이렇게 "나는 무엇에 의거하여 살고 있는가. 내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계속 물어봤기 때문에 이런 텍스트들을 썼을 것이다. 우리도 이것을 늘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의거하고 있는 삶이 고요하고 사실 고요하게 사는 것도 어떤 때는 사치이다. 늘 물어본다. "나는 무엇에 의거하여 살고 있는가. 내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 탐욕은 아니다. 야망도 야욕도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책읽고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가르치고, 가르친 것을 정리해서 책을 쓴다.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근거이다. 이 근거를 감히 오만하게 이름을 붙여본다면 경건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닿아오지 않는 순간을 우리는 소멸이라 부르는데, 소멸이 죽음이다. 육신의 죽음의 순간, 소멸의 순간이 왔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에 관한 연습을 해야 한다. 소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경건하게 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이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이 결함되는 순간이다. 경건한 삶을 살고 싶다는 신념 체계가 있고 그 신념 체계를 실현하기 위해서 삶의 방식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나는 무엇에 의거하여 살고 있는가. 내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 거창하게 물을 것 없이 내 삶에서 내가 훼손하고 싶지 않은 원칙이 있는가." 본인은 경건하게 살고 싶다. 일상을 영위하면서 소멸의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게 맞이하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다.

제33장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를 읽고 한 번 쉬어가는 지점이다. 이렇게 쉬어가는 지점에서 안쉬어지면 34,35,36장을 읽어서 파스칼을 읽으라는 얘기이다. 지금까지 논의했던 "유한한 인간이요 우주의 티끌에 불과하니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병이 난다면 그대로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라는 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취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뭔가 잘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할 마음은 없다."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것은 사실상 없다. 무엇이 나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것인지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뚜렷하게 내놓을 수 없고,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그저 ‘나는 존재하는 생물’이라는 것뿐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고 했을 때 너는 무엇인가를 물으면 나는 생각하는 존재라고 하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을 덧붙여 놓은 것이다. 그것마저도 없는 상태, 그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ⅩⅩⅩⅢ 나는 무엇에 의거하여 살고 있는가. 내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 거창하게 물을 것 없이 내 삶에서 내가 훼손하고 싶지 않은 원칙이 있는가.

ⅩⅩⅩⅢ 나의 삶은 이러한 원리들로 지탱된다. 원리들이 서로 충동하기도 한다. 유한한 인간이요 우주의 티끌에 불과하니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병이 난다면 그대로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라는 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취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뭔가 잘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할 마음은 없다.

ⅩⅩⅩⅢ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것은 사실상 없다. 무엇이 나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것인지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뚜렷하게 내놓을 수 없고,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그저 ‘나는 존재하는 생물’이라는 것뿐이다.

파스칼의 《팡세》는 그러한 지점에서 신을 마주했을 때, 그런데 그 신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에 대비되는 하나의 무한한 인격체로서의 신이 아니라 사실은 《팡세》에 나오는 신은 그냥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절망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을 앞에 두고 비교를 해보고 있는 것이다. 절망이라는 것이 나쁜 의미는 아니다. 시야가 차단된 상태에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도대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생물체 이외의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어떤 것으로 되는가. 

제33장은 녹음파일을 듣고 여러분들이 한 번 촘촘하게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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