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숨은 신을 찾아서 — 18

 

⟪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27장

❧ 관념론
- “관념론은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진리라는 신념이다.”
- “영혼이 진리, 또는 신을 아는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관념론이다. 이것이 관념론의 둘째 의미이다.”

 

2021.06.19 숨은 신을 찾아서 —18

⟪숨은 신을 찾아서⟫ 데카르트 부분을 읽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서 데카르트에 왔는데 데카르트가 비록 근대인이라고는 하지만 데카르트의 관념론은 굉장히 중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그의 이런 생각들이 그렇게까지 낯설지는 않다. ⟪숨은 신을 찾아서⟫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를 얘기하는 것이 이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이서 한 때 유명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공부삼아 읽어보자는 그런 의도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서 뭔가 나온 테제들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모습에서 변함없이 늘 그러한 것들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내 얘기 같아 라고 읽히는 부분들이 있다. 나라는 자신도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 적에 내가 이랬었지 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데카르트의 관념론이라고는 것은 대체로 철학 개론에서는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말하는데 주관적 관념론이 옛날 얘기고 데카르트 때나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관적 관념론자이다. 내가 딱히 근거를 밝혀서 말하기는 어려운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118페이지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논증 불가능한 보편 명제를 논박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한 뒤 자신의 신화를 펼쳐 보이는 철학, 즉 형이상학은 종교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 믿음의 체계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증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생각해라는 생각. 이런 것이 논증 불가능한 보편 명제이다. "논박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한 뒤" 자기가 증명도 못하면서 토달지마라고 하는 것, 그리고 나서 자신의 신화를 펼쳐 보인다. 여기서는 신화라는 것이 허구의 이야기이다. 허구의 이야기이기는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앞뒤가 맞다. 그게 형이상학이고 사실은 종교다. 이런 생각의 근본 원천이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검증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애초에 그것은 논증 불가능한 명제가 아니겠다. 논증 가능한 명제는 이러이러한 것을 근거로 해서 주장해라고 말하는 것. 그러면 논박도 가능하다. 저러저러한 증거를 들어서 논박할 수 있다. 그것을 검증가능한 명제 또는 반박가능한 명제가 된다. 그런 것들은 신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형이상학이나 종교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데카르트는 근대 과학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광학이나 수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형이사항의 기본 토대는 주관적 관념론이다. 그리고 관념론의 가장 밑바닥에는 신이 있다. 신이 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신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논증불가능한 명제이고 신이 있으니까 토달지마 라고 하는 것은 논박불가능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ⅩⅩⅦ 논증 불가능한 보편 명제를 논박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한 뒤 자신의 신화를 펼쳐 보이는 철학, 즉 형이상학은 종교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 믿음의 체계이다.

"관념론은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진리라는 신념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관념론자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진리인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은 저기에 있고 "인간은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고, 노력해서 그것을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온전히 가져야만 하고, 온전히 가지지 못하면 그것을 모방이라도 해야 하고, 그것이 진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언젠가는 수정할 것을 각오하고서 '진리 닮은 것'이라도 가져야만 한다." 데카르트의 관념론이라고 하는 것은 느닷없이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플라톤에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영혼이 진리 또는 신을 아는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관념론이다." 내 몸이 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관념론이라고 하는 것이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가. 그러니까 데카르트의 주관적 관념론과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념론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특징들, 차이점들을 여기서 보면 된다. 팟캐스트 녹음을 듣는 분들도 아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에 가깝구나, 플라톤에 가깝구나, 데카르트에 가깝구나,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유형화할 필요가 있다. 

ⅩⅩⅦ 관념론은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진리라는 신념이다. 이 진리는 우리 인간이 아닌 저기에 있다. 

ⅩⅩⅦ 플라톤이 말하는 진리인,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은 저기에 있다. 인간은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고, 노력해서 그것을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온전히 가져야만 하고, 온전히 가지지 못하면 그것을 모방이라도 해야 하고, 그것이 진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언젠가는 수정할 것을 각오하고서 '진리 닮은 것'이라도 가져야만 한다.

ⅩⅩⅦ 영혼이 진리 또는 신을 아는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관념론이다.

첫째와 둘째 의미의 관념론을 전제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 모두 해당한다. 영혼이 진리 또는 신을 아는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육체를 부정한다. 관념론 1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진리라는 신념, 관념론 2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영혼으로 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 모두 해당한다. 그런데 둘은 다르다. 영혼으로 진리를 알기 전에 육체의 경험이 필요하지 않다면 데카트르, 육체를 통해서 얻은 경험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영혼으로 끌고 들어가서 "육체의 경험은 영혼의 자각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 즉 필연적 계기"라고 생각하면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체의 경험이 없다면 영혼은 텅 빈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겪지 않았을 때는 조급한 순결과 독단적 청빈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훨씬 더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더 공감을 하게 된다. 먼 옛날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데카르트는 육체의 모든 경험을 차단하는 반면에 아우구스티누스의 방식은 중세에 이어졌다. 그러니까 데카르트가 중세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부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진리를 깨닫는 다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다.

ⅩⅩⅦ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영혼으로 들어가기 전에 육체의 경험을 쌓는다. 육체를 통해서 얻은 경험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영혼으로 지양된다. 이는 의미있는 경험이다. 육체의 경험은 영혼의 자각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 즉 필연적 계기이다. 육체의 경험이 없다면 영혼은 텅 빈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데카르트에서도 자연적이라는 말은 있는데 '타고난'이라는 말이다. 이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경험과 영혼으로써 신을 만나는 신학자라면, 데카르트는 "철학자", 그리고 파스칼은 '나에게만 실존하는 신'을 찾는 자이다. 정신마저 읽어버린 공포의 절정에 처한 자이다. 이 부분이 책의 모티브가 들어있다. 이 책은 '철학자의 신, 신학자의 신'으로 했었는데 파스칼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이 나오고 아우구스티누스도 신을 찾고, 데카르트도 신을 찾는데 이런데 도대체 신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가, 본인도 신을 찾아 뭔가를 했다. 지금도 신을 찾고 있다. 

ⅩⅩⅦ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경험과 영혼으로써 신을 만나는 신학자라면, 데카르트는 "철학자", 파스칼은 '나에게만 실존하는 신'을 찾는 이다. 정신마저 읽어버린 공포의 절정에 처한 자이다.

파스칼이든 데카르트든 아우구스티누스든 관념론자이다. 그 관념론자 안에서 영혼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관념론자인데 차이가 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영혼을 간신히 추스린다. 그 허약한 영혼으로써 그는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신이 배경에 있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관념론의 과도한 전개이고 자신이 마치 창조주나 되는 것처럼 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변종이 되어버린 관념론이다. 그리고 이것이 근대 세계를 이끌고 가는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하다. 발터 슐츠라는 학자가 쓴 《근대 형이상학에 있어서의 신》이라는 책이 있다. 굉장히 얇은데 굉장히 어렵다. 데카르트에서는 정신이 중요하다.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유한자임을 철저하게 자각하는데, 그러한 자각이 자신에게 떠오르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무한자인 신을 알거니와, 이러한 앎, 즉 무한자를 아는 유한자가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ⅩⅩⅦ 데카르트는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영혼을 간신히 추스린다. 그 허약한 영혼으로써 그는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ⅩⅩⅦ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유한자임을 철저하게 자각하는데, 그러한 자각이 자신에게 떠오르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무한자인 신을 알거니와, 이러한 앎, 즉 무한자를 아는 유한자가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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