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

 

미의 역사 - 10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열린책들

 

서문

비교표

Chapter I.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미

Chapter II.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Chapter III. 비례와 조화로서의 미

Chapter IV. 중세의 빛과 색채

Chapter V. 괴물들의 미

Chapter VI. 양치기 소녀에서 천사 같은 여인으로

Chapter VII. 14세기와 15세기의 마술적 미

Chapter VIII. 귀부인과 영웅

Chapter IX. 우아에서 불안정한 미로

Chapter X. 이성과 미

Chapter XI. 숭고

Chapter XII. 낭만주의적인 미

Chapter XIII. 미의 종교

Chapter XIV. 새로운 대상

Chapter XV. 기계의 미

Chapter XVI. 추상적 형식에서부터 재료의 심층까지

Chapter XVII. 미디어의 미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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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찾아보기

 

 


서문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 ━ <우아한>, <사랑스러운>, <숭고한>, <경이로운>, <화려한> 같은 표현들과 함께 ━ 우리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경우에 아름답다는 것은 선하다는 것과 같아 보이는데, 사실 수 세기 동안 미와 선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경험을 토대로 판단할 경우,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을 선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에 대한 사랑, 정직하게 벌어들인 재산, 세련된 고급 요리 등이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 우리는 선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선이다. 고결한 행위가 선한 것으로 판단되었을 때, 우리는 그 일을 하고 싶어한다. 혹은 우리가 선한 행위로 생각하는 모범적인 행동에 고무되어 그렇게 가치있는 행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혹은 영웅의 장렬한 죽음, 헌신적으로 나병 환자를 돌보는 일, 목숨을 바쳐 자식을 구하는 부모들의 희생적인 삶 등 이상적인 어떤 원칙에는 부합하지만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들을 선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일이 선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기주의 또는 두려움 때문에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선으로 인정하지만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선이다. 우리는 그런 행위에 감동을 받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갈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직접 행하기보다는 바라보며 감탄하는 쪽을 택하는 그 고결한 행위를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선을 아름다운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게 해주는, 거리를 유지하는 그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면, 우리가 소유 여부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즐길 때 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심지어 건상을 생각해서 또는 먹고 싶지 않아서 케이크를 구입할 생각이 전혀 없을 때에도 제과점 진열대에 놓여 있는 잘 만들어진 웨딩케이크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케이크마저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설사 그것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일지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다. 물론 여기서 위대한 화가의 그림을 보고 그것을 소장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혹은 그것을 매일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혹은 경제적으로 큰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림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태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러 형태의 이런 열정, 질투, 소유욕, 시기, 탐욕은 미에 대한 감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은 샘물을 찾으면 물을 향해 달려들 뿐 그 샘물의 아름다움을 관조하지 않는다. 아마 갈증이 가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미에 대한 감각은 욕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성적으로 갈구하지 않더라도, 또는 결코 우리의 소유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우리는 어떤 사람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열망하지만 (못생긴 사람일 수도 있는) 그 사람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할 경우,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수세기에 걸친 미에 대한 사상을 개관해 봄으로써, 우리는 어떤 특정 문화 또는 역사적 시기에서 우리의 욕망과는 무관하게 관조의 기쁨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경우들을 확인해 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어떤 미에 대한 관념도 미리 상정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아름다운 것으로 지각했던 것들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를 안내하게 될 또 다른 척도는 근대 사회가 미와 예술 사이에 부과해 놓은 엄밀한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분명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근대의 미학 이론들이 자연미를 평가절하하며 예술미만을 인정했다면 다른 시대에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미는 자연의 사물들이 가질 수 있는 성질인 반면(아름다운 달빛, 예쁜 과일, 아름다운 색상처럼), 예술은 자신이 만들어야 할 사물들을 정해진 목적에 쓸모 있도록 〈잘〉 만들 임무만을 가지고 있었다. 화가와 조각가의 기술뿐만 아니라 조선공, 목수 혹은 이발사의 기술을 모두 예술로 간주했을 정도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미술개념이 정립되어 오늘날 우리가 공예라고 부르는 것과 회화, 조각, 그리고 건축이 구별되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미와 예술과의 관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의 미를 편애하기는 하지만 자연이 실제로는 위험하거나 혐오스러운 것일 때조차 예술은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 책에서는 미술(또는 문학이나 음악)의 역사가 아니라 미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므로, 우리는 앞으로 예술과 미의 관계를 제시하는 경우에만 예술 사상들을 언급하게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미의 역사가 예술작품들을 통해서만 증명되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 세기에 걸쳐 자신들이 아름답다고 간주한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표본을 남겨 준 사람들이 바로 화가, 시인,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농부, 벽돌동, 제빵사 혹은 재봉사 역시 자신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만들었겠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

다양한 미의 개념 뒤에 모든 세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몇 가지 독특한 규칙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것을 발견해 내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 차이들을 밝혀 보려 할 것이다. 그런 차이 밑에 숨어 있는 통일성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원리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아름다움(남자, 여자, 풍경의)뿐만 아니라 하느님, 성인, 사상 등의 아름다움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와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독자를 최대한 존중할 것이다. 우리는, 동시대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표현한 이미지들이 어떤 특정한 미 (인간, 자연 혹은 사상)의 모델을 찬양하는 동안, 문학은 전혀 다른 모델을 찬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한 그리스 서정 시인이 노래한 일종의 여성적 우아함이 오로지 후대의 회화와 조각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었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또 다른 천년기에 화성인이 갑자기 피카소의 그림과 동시대의 연애 소설에서 묘사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했을 경우에 얼마나 놀라울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아도 충분하리라. 그들은 미에 대한 두 개념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미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이 동시대에 어떻게 공존했는지, 그리고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서로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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