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철학 고전 강의 — 31

 

⟪철학 고전 강의 -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제36강(1)

❦ ‘신적 입장에 올라섬’의 의미
❧ 플라톤의 인간론
호메로스에서 인간: 육체(sōma)와 영혼(psykhē)
플라톤: 육체(sōma)와 영혼(psykhē)을 전제하고 여기서 영혼을 세 영역으로 나눈다.
영혼 삼분법: nous(누스, 지성), thymos(튀모스, 분노), epithymia(에피튀미아, 탐욕)
인간은 신을 모방(mimēsis)하여 신적인 존재, 신을 닮은(homoiōsis)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때 신과 혈연관계(syggeneia 슁게네이아) 또는 친교관계(oikeiōsis 오이케이오시스)를 맺는 부분은 nous이고, 이렇게 하는 힘은 eros이다.

❧ 오리게네스의 인간론
인간은 육체(sōma), 영혼(psykhē), 영(pneuma, spiritus)으로 이루어져 있다.
악에 물든 육체는 sarx(사르크스, caro)라 불리며 이는 경멸적인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신의 모상(imago Dei)이므로 성부에 참여하고 성자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 ‘모상에 따라’의 의미
인간에서 모방을 하는 영역은 영이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nous, 즉 신으로 향하는 인간의 역동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모상에 따름으로써 변용된 인간은 이성체(logika)이며, 이를 이성적인(logikos) 존재라 할 수 있다.

❧ 헤겔의 인간론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가진다.
인간의 정신은 플라톤에서처럼 탐욕, 분노의 영역도 있으며 사물을 분별하는 오성(Verstand)도 있고, 신적인 정신에 닿을 수 있는 이성(Vernunft)도 있다.
헤겔에서 정신(Geist)은 1.우주적 원리, 2.인간에 있어서 신적인 부분, 즉 프네우마, 이성, 3.인간을 신으로 향하게 하는 역동적인 힘, 이렇게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2021.05.04 철학 고전 강의 — 31

⟪철학 고전 강의⟫ 제36강 헤겔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들을 설명하겠다. 헤겔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실 헤겔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들까지 하고 《철학백과》에 나오는 사변적 사유와 정신철학에 대한 일반적 논의 37강이 분량이 굉장히 많다. 이런 것들을 읽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개념이 무엇인가. 바로 헤겔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책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기본 개념들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선행하는 이론들이 있다. 그래서 36강은 두 번에 나누어서 설명한다. 첫째가 헤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신적 입장에 올라선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개념 파악적 사유라는 것이 있다. "무한자의 입장에 서서 모든 사태를 인식하는 것을 헤겔은 '개념파악적 사유'(Begreifen)"라고 하는데 이게 변증법보다도 중요한 것이고,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인 술어를 가지고 가리킬 때 변증법이라고 하고 헤겔은 '개념파악적 사유'(Begreifen)라고 말한다.

제36강 398 무한자의 입장에 서서 모든 사태를 인식하는 것을 헤겔은 '개념파악적 사유'(Begreifen)라고 합니다.

칸트에 바로 이어지는 헤겔의 여러가지 사유를 보면 도대체 이 두 사람이 같은 시대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의심이 될 정도로 생각하는 방식이 아주 다르다. 어쩌면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로 묶기 어려울 수 있다. 칸트가 살던 동네는 오늘날 리투아니아 지역 사람이다. 헤겔은 슈투트가르트 지역 사람이니까 오늘날로 치면 바이에른 지역 사람이다. 도이칠란트도 우리 한국처럼 지방언어가 있다. 1800년대 독일에서도 언어의 차이가 있고 종교적인 차이가 있다. 헤겔과 다르게 칸트는 아주 드러내 놓고 반기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칸트에게 놓여있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과학, 과학주의이다. 칸트는 과학자에 훨씬 가깝다. 칸트와 헤겔 모두 독일 사람이지만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이해의 출발점을 잡을수 있다. 칸트에서는 오성Verstand이라고 하는 말이, 오성Verstand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인간이 의미있고 생산성있는 뭔가를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이고, 이성Vernunft은 사변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을 꾸며내거나 아니면 체계적으로 뭔가 얘기를 하려니까 동원해야 하는 마지못해서 끌려나오는 능력이다. 그리고 오성과 이성을 연결하는 것이 판단력Urteilskraft이다. 헤겔은 칸트가 무한자의 영역으로 남겨놓은 부분에서 뭔가를 펼치는데, 헤겔은 아주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철학자라기 보다는 신학자이다. 신적인 입장에서 올라선 인간을 이야기하니까 신학자이다. 대학도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이다. 칸트하고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헤겔에서도 오성Verstand이 있고 이성Vernunft이 있지만 이 의미가 칸트와는 아주 다르다. 아주 뚜렷하게는 이성Vernunft의 차이가 있다. 헤겔에서 이성Vernunft이라는 말은 신과 같은 뭔가를 알아내는 인간의 능력으로 쓴다. 칸트에서는 이성Vernunft라고 하면 '사기'이다. 그런데 헤겔에서 이성Vernunft은 신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벌써 이 지점에서 인간에 대한 관점, 인간은 이런 존재라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요한복음을 보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에 사셨다"에서 "말씀"은 logos인데 말씀이 사람이 된 것이 육화incarnatio라고 부른다. 우리 가운데 사셨다, logos가 사람이 된 것, 구체화된 것, 육신을 입은 것, 이것을 희랍어로 logika라고 한다. 로고스적인, 육체를 입은 형용사로 하면 logikos라고 하는데 이성이라고도 번역이 된다. 그래서 희랍어 logikos를 독일어로 옮기면 vernünftig 이성적인으로 옮길 수 있다. 헤겔을 읽을 때는 신학으로 읽어야 하는 지점들이 굉장히 많다. 

먼저 플라톤과 오리게네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희랍사람들은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에 육체의 덩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육체의 덩어리 안에 혼 psykhē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보면 나오듯이, 사람이 죽으면 몸뚱아리에 들어있던 psykhē가 빠져나와서 하데스로 간다고 얘기한다. 거기까지가 호메로스 시대의 인간론이라고 한다면 플라톤은 육체 sōma와 영혼psykhē을 출발점으로 삼고, 영혼 삼분론, psykhē가 세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고대 희랍사람들의 생각은 sōma와 psykhē가 딱 나누어져 있다. 현대의 과학에 성과에 따르면 sōma와 psykhē가 긴밀하게 붙어있다. sōma가 있은 다음에 psykhē가 나온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 뭔가 기질이 있고 외부세계와 교류하는 가운데 그 사람의 고유한 정신이 생성되는 것이고, 더 이상 외부 사회와 교류할 수 없게 되면, 즉 육신이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고대 희랍사람들이 생각한 육체sōma와 영혼psykhē.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psykhē을 셋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가 nous 지성, thymos 분노, epithymia 탐욕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고 봤다. 플라톤 이전 사람들보다 상세해진 것. 그냥 그 전에는 sōma와 psykhē만 있었는데, 플라톤에 와서는 sōma와 psykhē를 기본으로 하고, psykhē을 셋으로 나눈다. 그러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나 이 두 사람 모두 당시의 사람들을 본 것이다. 그 사람들을 보니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nous 지성도 있고 thymos 분노도 있고 epithymia 탐욕도 있고, 그런데 왜 thymos를 nous를 가다듬는데 쓰지 않고 epithymia를 충족시키는데 쓰더라 이것이다. 그리고 정치체제도 민주정에서는 탐욕을 장려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것은 안되겠다 생각해서 thymos는 가운데 있는 놈이니까 지성을 갈고닦는데 사용해야지 epithymia를 갈고닦는데 사용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지성을 갈고닦는데 사용하는 것을 말하자면 신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nous를 갈고닦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살고있는 세계는 nous를 갈고닦는 것을 권장하고 장려하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그게바로 좋음 위에 인간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자는 이론이다. 그래서 이것을 라틴어로 표현하면 Imago Dei, 신의 모방이다, 신의 모상이다, 신의 닮은 꼴이다. 그래서 플라톤 철학의 목표는 신을 모방mimēsis하는 것이고, 신을 모방하는 힘이 eros이다. thymos를 순화해서 말하면 eros이다. 신을 닮으려는 것, 기독교 삼위일체론에서 말하는 homoiousios 호모이우시오스이다. 호모우시오스 homoousios는 동일본질이고, 호모이우시오스 homoiousios는 유사본질이다. 그게 무엇이냐, 플라톤은 그것을 가지고 nous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신처럼 된다. 헤겔이 가진 철학관은 신을 닮으려는 것에서 일단 시작한다. 헤겔이 플라톤과 유사한 지점이 하나 있다. 인간에게는 nous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신을 닮으려고 한다. 

여기서 한사람을 더 이야기해야 하는데 오리게네스이다. 오리게네스는 나중에 이단으로 몰려서 성인으로 되지는 못했지만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신학과의 중간 매개 지점에 있는 사람으로 봐둘 필요가 있고, 헤겔도 오리게네스와 가까운 지점이 있다. 오리게네스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일단 육체sōma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말그대로 생물학적 body 덩어리. 그 다음에 영혼psykhē이 있다. 플라톤에서는 psykhē가 sōma가 대립되어있는 부분인데 오리게네스에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 일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있는 것이 프네우마pneuma이다. 영혼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영이라고 번역한다. pneuma는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다. 오리게네스에서는 인간에게 육체 덩어리가 있는데 죄를 지은 육체를 가리킬 때는 sarx 사르크스라고 해서 경멸적인 의미로 쓰인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육욕을 가리킬 때 쓴다. 기독교의 구원론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믿어야 구원을 믿을 수 있다. 그러면 구원은 무엇인가. 정통 교리, 즉 칼케돈 신조에 따르면 인간이 하느님 같은 존재가 되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러는가. 기독교의 구원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헬레니즘 세계에서 가장 고등화된 구원론, 신론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최고의 말하자면 구원 이론이었을 것이다. 신적인 인간이 되는 것, 즉 구원이다. 오리게네스에서 있어서 구원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가 인간이고, 인간은 자신의 육신에 있는 죄를 털어내버리고 신처럼 되는 것, 신과 유사한 존재가 되는 것, 이게 바로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오리게네스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pneuma, 이것은 신으로 향하는 영역이고, 그 다음 인간 영역인 psykhē가 있고, 그 다음에 그냥 육체 덩어리인 sōma가 있다. 그러면 인간의 pneuma를 촉발해서 성부와 성자에게 향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오리게네스에서는 nous이다. 플라톤에서는 지성이 nous였는데, 인간을 신으로 향하게 하는 역동적인 힘이 nous이다. 

헤겔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성적 존재이다. 육체가 있고 영혼Seele이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정신이라고 하는 것도 있고, 이성이라는 것도 있다. 헤겔에서 정신이라는 것은 세가지를 가리킨다. 첫째 이 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인 원리로서의 정신이 있고, 인간에게 신적인 것을 향하게 하는, 신적인 것과 맞닿을 수 있도록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적인 부분을 정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면 이성Vernunft과 다르지 않다. 세번째는 인간을 신으로 향하게 하는 역동적인 힘, 이것도 정신이라고 부른다. 인간에 있어서 신적인 부분은 오리게네스에서는 pneuma이다. 영혼이라는 것이 정화되어서 신을 향하게 하는 오리게네스에서 말하는 pneuma, 즉 Vernunft도 형성된다. 그것을 움직여서 정신으로 나아가게 된다. 

헤겔에서 말하는 신적 입장에 올라선다, 개념파악적 사유를 한다는 것, 이것은 플라톤에서 말하는 homoiōsis, 신을 닮다, 오리네게스에서는 성부와 성자에 참여하는, 신의 모상을 따라서 참여해서 logika가 된다, 즉 이성적인 logikos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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