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철학 고전 강의 — 33

 

⟪철학 고전 강의 -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제37강

❧ ⟪철학백과⟫ 서론의 내용
1-5: 철학적 사유, 개념파악적 사유 일반론
6-7: 사유와 세계, 경험
8-12: 개념파악적 사유와 비판적 사유의 구별
13-15: 철학이란 무엇인가, 즉 철학사에 관하여
16-17: 백과전서에 관하여
18: 백과전서의 분류

❧ 개념파악적 사유
절대적 진리로서의 신과 유한자(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연속체 속에서 사유하는 것
인간은 감성, 직관, 표상 등과 같은 ‘의견’을 거쳐 자신의 사유를 다시 사유함으로써 무한자에 대한 앎에 이르려고 한다.

❧ 신
‘좋음’은 선재先在하는 ‘본’本(paradeigma)이며, 현재의 과정에 臨해 있는 작용인作用因이며 이 과정이 도달해야 할 목적(telos)이다.
신은 앞서가면서 함께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의 귀결에 존재한다.
종교는 신을 믿지만, 철학은 신을 알려고 한다. 적어도 앎을 통해서 신을 믿고자 한다.

 

2021.05.04 철학 고전 강의 — 33

앞서 제36강을 설명하면서 헤겔 형이상학의 기본개념들을 이야기했다. 헤겔의 형이상학의 목표가 헤겔이 형이상학을 제시한 근본적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신적인 입장에 올라선다, 즉 인간이 비록 유한자이지만 이런 유한자의 유한성을 딛고 신과 같은 인식을 가지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형이상학의 근본 목적이다. 인간은 육식으로는 소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신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헤겔은 고대 세계의 플라톤이나 또는 오리게네스의 사유를 본받아서 인간이 신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런 것을 근대철학자답지 않게 자신의 형이상학의 목적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면 신적인 입장에 올라서는 것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가능한가, 이것을 따져보는데 헤겔이 제시한 이 방법이란 개념파악적 사유이다. 즉 인간이 자신의 인식의 한없이 상위 개념으로 올라가서 이 세계 만물에 대한 앎을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개념파악적 사유이다. 그런 개념파악적 사유, 다시 말해서 사변적 사유라고 얘기도 하고, 변증법적 사유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제37강은 바로 개념파악적 사유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따져보는 것이다. 신적인 입장에 올라서려면 개념파악적 사유를 해야한다고 헤겔이 얘기 해놓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철학적 사유를 하면 된다. 말이 쉽다. 그래서 이 사람이 아주 저급한 단계의 인식부터 시작해서 신적인 입장에 올라선 사유 전체의 과정을 써보겠다고 해서 내놓은 것이 바로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 즉 《철학백과》라고 하는 것이다. 백과사전인데 우리가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어쨌든 백과사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했을 떄, 이 사람의 독창적인 창안은 아니다. 계몽주의의 백과사전이 있다. 이 이름이 유행했다. 이것을 가져다가 헤겔이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이다,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냥 망라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저급한 것부터 시작해서 제일 고급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는 것이 바로 백과사전이다. 헤겔의 책들은 문장이 조금 조잡하고, 똑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써버린다. 예를 들면 '필연적'을 앞에서는 자연과학적인 의미에서 인과적 필연성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또 다른 자리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헤겔 철학의 책을 읽을 때 난감한 것이 그런 것들을 식별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감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갖고 있지 못하니까 시행착오를 거쳐서 알아차리는 방법밖에 없다. 

일단 《철학백과》를 다 읽기가 어려우니까 방편으로 내놓은 것이 서론을 읽는 것이다. 책세상에서 서론만 번역해서 내놓은 것이다. 헤겔 철학을 무엇부터 읽어야 하는가. 헤겔 철학을 보는 관점에 따라 사람들이 접근방법이 다를텐데 일단 《철학백과》 서론이 가장 읽을 만 하다. 이 서론은 헤겔 형이상학의 기본 개념을 두가지를 집약해서 말하고 있다. 우선 보면 개념파악적 사유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장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철학백과》 서론이다. 《철학백과》 서론은 18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1-5절까지가 철학적 사유, 개념파악적 사유 일반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그것을 다시 개념파악적 사유를 비교해보려면 어떻게 하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과학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를 구별해서 설명을 해본다고 해서 6-7절이 자연과학적 의미의 사유와 철학적 의미에서의 사유, 또는 자연과학적 의미에서 경험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철학적 의미의 경험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경험이라고 하는 우리가 두 가지 의미로 쓴다. 하나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뭔가를 알아냈을 때가 경험이다. 그런데 그것만을 경험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세상사를 겪는다고 말할 때에도 경험이다. 그러면 그 경험은 그냥 감각 기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 경험이다. 이것을 헤겔이나 칸트는 반성적 사유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두가지 의미에서 경험을 6-7절에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8-12절에서는 앞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했던 개념파악적 사유의 원리와 방법을 다시 이야기한다. 헤겔은 이렇게 똑같은 주제를 계속 되풀이해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좋게 말하면 중첩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한 말 또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13-15절까지는 철학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것을 왜 이야기하는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또다시 얘기한다. 개념파악적 사유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얘기해놓고 철학적 사유란 무엇인지에 얘기하기 위해서 다시 또 철학의 역사를 자기 나름대로 집약해서 이야기하면서 철학의 역사속에서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 어떻게 논의되고 있고 이런 것들을 얘기한다. 그 다음에 16-17절에서는 다시 백과전서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18절에서는 백과전서가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으로 나뉘어진다, 분류해서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백과》 서론이 이렇게 되어 있는데 핵심적인 것을 추려서 이야기해보겠다. 《철학백과》 서론에는 앞서 얘기했던 것, 즉 신적인 입장에 올라서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무한한 존재이다. 절대적 진리를 가진 무한자이다. 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한 존재인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면 신이라고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파스칼의 입장을 놓고 생각해보면, 신은 파악하지 못하겠다, 신에 대해서는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헤겔은 그건 종교다라고 말한다.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것은 종교다. 그러면 앞서 형이상학의 두가지 목표, 신적 입장에 올라선다. 그리고 그것의 방법론은 개념파악적 인식이라고 했다. 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작정 믿어버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교는 믿음이고, 철학은 지식이다. 즉 무한자에 대해서 믿음을 갖는 것은 종교이고, 무한자를 알려고 하는 것, 개념적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철학적 인식, 개념파악적 인식이다. 앞서 철학은 그것을 실제로 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논리적으로 로드맵이라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철학이 하는 일이다. 종교는 믿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아주 일반의 보통의 상식으로는 종교가 철학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데 헤겔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사유를 하기 때문에 종교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철학백과》 서론의 내용을 간추려서 얘기했는데, 《철학백과》 서론은 《철학백과》 전체를 간략하게 집약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우리가 신적인 입장에 올라서는 방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즉 신을 믿는 방법이 아니라 신을 아는 방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의해야 한다. 그러면 그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헤겔이 독창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선행하는 모델이 하나 있다. 그 모델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참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이 쓴 짧은 논문인 헤겔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부동의 원동자에 이르는 방법은, 인간의 앎은 감각에서 시작해서 신적인 입장에 오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헤겔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갑자기가 아니라 누적되어서 신적인 인식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헤겔은 감성이라든가 우리가 인간이 외부로부터 데이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직관,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표상이 있다. 여기까지는 플라톤도 말했던 의견의 단계이다. 그런데 그런 의견이나 또는 반성적 사유에 대해서 인간이 계속해서 자신의 사유를 다시 사유한다, 사유에 대한 사유, 이게 바로 사유에 대한 음이, 이것이 사상의 형식으로서의 사유이다. 그것을 하게되면 고차적인 사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견들이 있다. 플라톤이 말하는 doxa, 그것을 검증해보고 체크해보고 하다보면 그것이 바로 고차적 사유, 즉 신을 철학적으로 인식하는 무한자에 대한 진리로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념파악적 사유이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가는가. 그것을 헤겔이 논리적으로 프로세스를 제시해놓은 것이 바로 《철학백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신적 입장에 올라선 유한자는 어떻게 해야 그 입장에 올라설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사유를 하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색을 거치면서 개념파악적 사유가 되는데, 그렇게 하면 바로 무한자를 아는 인간이 된다는 얘기이다. 

《철학 고전 강의》의 부제가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즉 무한자는 존재하고 그 무한자의 존재를 사유를 통해서 유한자는 이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념파악적 사유이다. 그러면 한가지 난점이 있다. 정말로 그런 무한자가 있는가. 헤겔은 그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는 나쁘게 말하면 믿고 가는 것이다. 플라톤에서 그렇다. 좋음이라고 하는 것, 좋음의 이데아가 선재한다. 좋음은 paradeigma로 먼저 있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뭔가를 행할 때에도 변함없이 계속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것에 의해서 움직여 있는 것이다. 우리 과정에 임해있는 작용인이고, 좋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paradeigma, 작용인, 목적이라는 것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다. 그것을 플라톤에서는 철학적 통치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종교인은 신을 그렇게 전제하는 것이다. 신이 있으면 무작정 믿어버리는 되지만 사실은 무작정 믿는다기 보다는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는 끊임없이 신이 나에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계속해서 나의 내면 속에서 검증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신에 도달한다. 그런데 그렇게 도달한 신은 원래 있던 것이다. 처음부터 신이 있다고 믿어버리고 검증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사유하지 않고 그냥 믿고 가버리면 그 신은 처음의 신 그대로 이지만 우리가 그 신이 참으로 있다는 것을 믿고 정말로 그러한 지를 일생에 걸쳐서 계속 체크하고 검증하는 이 과정을 거쳐간다고 하면 그런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속편하게 믿어버리면 되지 않나.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절망하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애초에 나에게 임해했던 신이 참으로 있는 것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철학적 사유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믿음과 철학적 사유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헤겔의 이른바, 달리말하면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맹목적으로 있다고 전제하고 믿어버리는 것과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검토하는 태도, 이 태도가 바로 철학적 사유와 신적인 사유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끊임없는 검토의 과정, 이것을 한번 샘플로써 내놓은 것이 《철학백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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