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48 / 제31강(2)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1강(2)

“지배계급으로의 편입이 어렵게 되자 제3계급은 제1, 2계급과 선을 긋고 제4계급과 결합했습니다. 이 당시 제4계급은 독자적 조직력과 혁명적 군중 동원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4계급에게 혁명적 군중으로 전환될 수 있는 힘 — 공통적인 이념과 집단적인 심성 — 이 없었다면, 제3계급은 제1, 2계급과 다시 협상했을 것입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떠올려 봅시다. 이 사건을 주도한 세력은 제3계급이 아니라 제4계급이었습니다. 제4계급은 이렇게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제3계급과의 결합을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합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22.01.08 역사 고전 강의 — 48

⟪역사 고전 강의⟫ 제31강 2번째 시간이다. 지난 번에 발문을 이야기하고 프랑스 혁명에 관한 잡담을 늘어놓았는데 프랑스혁명과 계몽주의, 그리고 여러가지 사상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한한 책은 2권 정도를 거론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읽고 들어가줘야 한다는 책이 2권 정도 있는데 『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도 거론한 바가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 로제 샤르티에가 쓴 《사회학자와 역사학자》하면서 소개했다. 우선 다니엘 모르네가 쓴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이 있다. 프랑스혁명 2백주년 기념총서로 나온 것 중에 하나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로제 샤르티에의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이다. 다니엘 모르네 책이 지적기원이고, 로제 샤르티에 책이 문화적 기원이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지적기원은 계몽주의가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고, 문화적기원은 그렇지 않다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까 대혁명이라고 하는 사건과 지적인 흐름 또는 사상의 영향력들을 일의적으로 일대일 대응하는 식으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니다라는 쪽이 문화적기원이다. 프랑스혁명과 사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상호되먹임 관계이다. 진행되어 나가다보니 일이 커졌고 커지면서 사람들이 생각이 변화하고 그렇게 된 것, 그것이 프랑스혁명의 관계이다. 그래서 처음에 다니엘 모르네의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이 굉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로제 샤르티에의 책을 읽을면서는 이게 그냥 간단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가들의 책은 인과관계를 될 수 있으면 추려내서 말을 하려고 하니까 후일담에 불과한 것이니까 그게 아주 간명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역사가들의 책만 읽다보면 사상이 사건을 완전히 장악하고 지배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359페이지 "에릭 홉스봄이 말한 이른바 '이중 혁명', 즉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산업혁명은 막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 사회의 경제적인 구조와 사회 전반을 총체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프랑스혁명은 정치적인 지배구조를 확실하게 바꾼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또 한마디 덧붙이자면 "부르주아계급은 19세기 전반을 완전히 장악하고 말 그대로 '19세기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비로소 서구사회는 귀족이 아닌 사람들이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서양사람들은 people, 우리식으로 말하면 인민, 민중이라는 단어는 지칭이 불투명해서 쓰고 싶지 않은데, 인민이 정치적인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인민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프랑스혁명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부르주아 계급도 마찬가지이고 지난 시간에 거론했던 상퀼로트 계급도 그렇다. 그런데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인민이 정치의 주체는 아니었지만 민을 계속해서 정치를 한 것은 틀림없다. 물론 확실한 계급이 있어서 신분의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조선시대만 해도 적어도 법적 제도적으로는 그런 천민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과거에 응싱할 수 있는 자격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에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고,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었고 1800년에 정조가 죽었으니까, 다시말해서 인민이 정치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을 법적 제도적으로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 훨씬 더 우리사회가 연원이 깊다. 따라서 인민의 정치참여 또는 인민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 그런 지적인 자원은 우리가 더 오랫동안 풍요롭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왕의 목을 잘라본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더 해보니까 그런 지적인 자원들의 연원은 우리가 더 오래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까지는 아닌데 민본주의라는 생각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아테나이 폴리스에서 잠깐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1789년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민주론이라는 것이다. 백성민 民에 배주舟를 써서 백성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가라앉히기도 한다. 이런 생각 자체가, 백성이라고 하는 것, 즉 민이라고 하는 것, people이라고 하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의식이 로마공화정이 가장 가깝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고, 로마공화정은 명백하게 귀족정이다, 귀족정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아테나이 폴리스를 제외하고는 서구사회에서는 그런 정치적인 제도와 장치의 지적인 원천 자체가 없다. 그래서 섣부른 주장이겠지만, 앞으로 논증을 해 나갈 생각이지만,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 민주정 이런 것은 동아시아 3국중에서 한국이, 민주정이라는 제도적 장치와 people 인민 평등의 국가는 한국이 가장 강력하고도 오래된 지적 전통과 정치적 제도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지고 프랑스대혁명을 보면 프랑스대혁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갔는가 그게 프랑스혁명의 전개과정에서 주요하게 눈여겨 보아야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31강 359 근대의 형성에 기여한 주요 혁명은 에릭 홉스봄이 말한 이른바 '이중 혁명', 즉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산업혁명은 막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 사회의 경제적인 구조와 사회 전반을 총체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프랑스혁명은 정치적인 지배구조를 확실하게 바꾼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들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계급은 19세기 전반을 완전히 장악하고 말 그대로 '19세기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우선 10년, 25년, 100년 단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혁명의 10년'은 1789년 5월 삼부회 소집부터 1799년 11월 9일(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의 군사 쿠데타까지를 말합니다."  이를 '혁명의 10년'이라고 부른다. '혁명의 25년'은 1789년부터 나폴레옹의 몰락까지, 그러니까 나폴레옹은 15년이다. 그 다음에 '혁명의 100년'은 파리코뮌이 진압되고 몽마르트 언덕에 사크레쾨르 성당이 세워진 1870년대까지. 그래서 프랑스혁명을 혁명의 100년으로 본다면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상파 화가들도 프랑스혁명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혁명의 10년'은 1794년 7월 27일(테르미도르 9일)을 기준으로 둘러 나눌 수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혁명의 후반부는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당한 날짜까지이다. 이 부분은 연대기적을 살펴보는데 흔히 프랑스혁명의 출발점이 된 것이 삼부회가 소집된 것이라고 하는데 삼부회가 소집되면서 "제3계급이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동등한 투표권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대신 정치적 권리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신분 사회의 종식을 의미하기 때문에,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제1계급과 제2계급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789년에 제1계급과 제2계급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신분사회가 조선에서는 없었다. 그러니까 훨씬 더 정치에 가담하는 그런 의식 또는 의식을 뒷받침하는 제도는 조선이 더 앞서가 있었다. 한국사람들이 지나치게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당연한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예를들어서 대통령을 탄핵해서 쫓아냈다. 그것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는 정치적으로 주체적인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경험들이 한국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 굉장히 중요하다. 그 고관심층의 관심을 어떻게 잘 조직하고 정확한 지식으로 무장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 다음 "'혁명의 10년'에는 어떤 체제가 성립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어떤 정파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각 체제의 핵심 세력이 되었느냐를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됐다 싶은 것이 제1계급과 제2계급이 제3계급에게 투표권을 일정한 정도로 보장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안타까움이 통일신라 말기에도 있었다. 

제31강 360 프랑스혁명은 우선 10년, 25년, 100년 단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혁명의 10년'은 1789년 5월 삼부회 소집부터 1799년 11월 9일(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의 군사 쿠데타까지를 말합니다. 

제31강 360 '혁명의 25년'은 1789년 삼부회 소집부터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는 1815년까지를 말하고, '혁명의 100년'은 파리코뮌이 진압되고 몽마르트 언덕에 사크레쾨르 성당이 세워진 1870년대까지를 가리킵니다. '혁명의 100년'의 관점에서 본다면,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상파 화가들도 프랑스혁명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제31강 360 '혁명의 10년'은 1794년 7월 27일(테르미도르 9일)을 기준으로 둘러 나눌 수 있습니다.

제31강 361 제3계급이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동등한 투표권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대신 정치적 권리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신분 사회의 종식을 의미하기 때문에,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제1계급과 제2계급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제31강 362 '혁명의 10년'에는 어떤 체제가 성립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어떤 정파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각 체제의 핵심 세력이 되었느냐를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배계급으로의 편입이 어렵게 되자 제3계급은 제1, 2계급과 선을 긋고 제4계급과 결합했습니다. 이 당시 제4계급은 독자적 조직력과 혁명적 군중 동원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3계급과 제4계급의 결합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혁명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게 "바로 제4계급에게 혁명적 군중으로 전환될 수 있는 힘 — 공통적인 이념과 집단적인 심성" 이것이 중요하다. 특정한 국면에서 그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연대, 연대가 필여하고 그 연대를 이끌어가는 "공통적인 이념과 집단적인 심성" 이 두가지가 꼭 필요하다.

제31강 363 지배계급으로의 편입이 어렵게 되자 제3계급은 제1, 2계급과 선을 긋고 제4계급과 결합했습니다. 이 당시 제4계급은 독자적 조직력과 혁명적 군중 동원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4계급에게 혁명적 군중으로 전환될 수 있는 힘 — 공통적인 이념과 집단적인 심성 — 이 없었다면, 제3계급은 제1, 2계급과 다시 협상했을 것입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떠올려 봅시다. 이 사건을 주도한 세력은 제3계급이 아니라 제4계급이었습니다. 제4계급은 이렇게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제3계급과의 결합을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합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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