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47 / 제31강(1)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1강(1)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였으나 혁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군을 탄생시킨 혁명은 계몽주의적 엘리트 지식인 콩도르세를 처형하면서 대중들에게 힘의 과시와 체제 장악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혁명적 집단심성’의 위력을 드러내면서 ‘대혁명’이 된다.”

 

 

2022.01.04 역사 고전 강의 — 47

⟪역사 고전 강의⟫ 제31강은 프랑스혁명, 그리고 32강은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하는 사람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 서부 유럽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 세나라가 주요 국가이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영국에 있고, 독일은 그때만 해도 지적으로는 후진국이니까 지식인들이 대혁명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프랑스대혁명의 여파가 독일에까지 미쳤다 그러면 그때는 프랑스대혁명의 공포이다.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이라는 책도 있다.

오늘은 31강 프랑스혁명, 발문부터 설명을 하겠다.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였으나 혁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작은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이다. 역사책을 읽어보면 역사라고 하는 것이 어떤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은 그것이 지나간 다음에 우리가 되짚어볼 때야 가능한 얘기이지 그 당시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이상한 돌발 사태가 생겨나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한다.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사적 고찰》(세계 역사의 관찰)에서도, 부르크하르트도 역사철학을 시도했는데 그 당시의 랑케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시도를 했다. 그런데 부르크하르트는 정직한 것 같다. 법칙이 없다는 것에 좌절 또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라는 생각에 법칙을 세우지 않고 묘사와 서술에 그쳤다. 물론 묘사나 서술도 어느정도는 자기 관점이 개입되니까 논술이 될 수는 있다. 그래로 최대한 그것을 줄이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려고 했던 그런 태도를 가지고 역사를 본 점이 있다. 역사철학연구자로서 역사책을 보면서 시간 앞에 장사없고 시간이 가져다주는 소멸과 흥성과 멸망과 이런 것에 장사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혁명의 사태, 전개과정을 보면서 정말로 다각적이고 다면적인 사태였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해석이 아직도 1789년 프랑스혁명. 1989년에 200주년 총서도 나오고 했다.

제31강 359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였으나 혁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군을 탄생시킨 혁명은 계몽주의적 엘리트 지식인 콩도르세를 처형하면서 대중들에게 힘의 과시와 체제 장악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혁명적 집단심성’의 위력을 드러내면서 ‘대혁명’이 된다.

정치철학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만한 어떤 이념적인 것을 연구한다면 정치사상이라는 것은 당연히 똑같은 정치적인 수단이라든가 정책이라든가 이념이라고 해도 그 시기에 들어맞았는가를 봐야하는 것이 정치사상이다. 정치사상에 탁월한 사람이 되려면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로 촉이 있어야 한다.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현실정치를 늘 분석하면서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혁명처럼 하나의 단위가 있다. 거대한 정치적 단위가 있는데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이런 책도 봐야한다.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2월 초부터 오트프리트 회페의 《정치철학사》로 번역된, 원래 제목은 정치사상사이다,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할 것인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영원한 이념의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 사실 그것은 정치철학의 연구 주제인데 사실 그것은 윤리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바름. 윤리학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마지막에 정치학을 얘기를 한 것이다. 즉 정치가 지향해야 하는 바, 인간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바, 이것에 대해서 존재론적으로 연구하는 것. 또 올바름 이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형이상학적으로 연구하는 것, 이런 것이 정치철학이라면, 정치사상은 그런 것들이 어떻게 시간과 죽음과 소멸과 흥성의 맥락 속에서, 텍스트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철학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하찮아 보인다고 해도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사람이 있겠다. 이를테면 마키아밸리와 같은 사람, 대단한 사람이다. 또는 정치철학에서는 다루지도 않고 다룬다 해도 정치신학에서 다루는 사람이 사도 바울, 정치사상의 측면에서는 굉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도 마찬가지. 그런데 사상의 측면으로 끌어올렸다고 본다면 바울을 강조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면 모세와 바울 이런 사람들이 계보로 연결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보면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키케로 같은 사람인데, 로마공화정의 이념이 좋기는 한데, 그런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머리에 담고 프랑스혁명을 읽으면 이 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생생한 3차원의 이미지로, 심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군을 탄생시킨 혁명은 계몽주의적 엘리트 지식인 콩도르세를 처형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부르주아 계급과 엘리트 지식인 연합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지만 콩도르세를 처형하면서 사태가 급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그 배경에는 '나도 국가에 대해서 지분이 있단 말이야"하는 무장한 국민군, 이게 바로 상퀼로트Sans-culotte 계급이 전면에 나선다. 무장한 국민군이 되면서 나라의 지분이 생기는 것이다. 무장한 국민군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국가적인 또는 동질성을 유지하는 최소의 자산일 수 있다. "대중들에게 힘의 과시와 체제 장악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런 것을 계몽주의적인 엘리트, 투철한 엘리트 입장에서는 이것을 포퓰리즘이라고 하겠지만, 포퓰리즘은 민주정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다. 대중을 어떠한 방향으로 가게 할 것인가,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 그들을 경멸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혁명적 집단심성’의 위력을 드러내면서 ‘대혁명’이 된다." 한국에서 뚜렷하게 계급연합 차원에서 드러났던 부분이 1987년이다. 계몽주의적 엘리트 지식인도 있었고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급도 굉장한 정도로 해서 크게 두 갈래로 그 이후로 정당 정치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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