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50 / 제32강(1)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2강(1)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은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한다. 영국의 버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도 지식인들이 대혁명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어쨌든 혁명은 인류가 끝없이 향해 가야 할 이상을 하나 덧붙인다.”

 

 

2022.01.15 역사 고전 강의 — 50

⟪역사 고전 강의⟫ 제32강이다. 32강은 여섯 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데 하나의 챕터로 분류되어 있다. 그 까닭은 칸트의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제8명제를 인용해놨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번에 읽어내기는 어렵고, 분량은 적지만 32강은 두 번 정도 나누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오늘은 32강 전반적인 얘기를 하고, 다음번에는 칸트의 제8명제와 프랑스혁명에 관한 도이치 지식인들의 논쟁을 얘기하려고 한다. 

오늘은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은 좋은 책이기도 하고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중요한 책이기는 하지만 역사철학에 관한 저작은 아니어서 설명은 짧다. 버크는 정치사상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이고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개념인 보수주의라, 보수와 진보의 대결, 보수가 도대체 뭐냐고 할 때 어드먼드 버크부터 얘기를 한다.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뭐냐고 할 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사실 떠오르는 몇가지 개념들이 있고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아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안타깝기는 한데 우리사회의 모습이 그렇데 어쩌겠는가. '공부에 관한 한은 보수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또 '철학에 관한 한 보수적이다' 이런 얘기들을 했다. 그때 그러면 보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것은 많이 생각해볼만한 것들이다. 보수는 굉장히 진보라는 것보다 폭이 넓어서 아무나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다.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상대적으로 어떠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선 발문을 보겠다.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은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한다. 영국의 버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도 지식인들이 대혁명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어쨌든 혁명은 인류가 끝없이 향해 가야 할 이상을 하나 덧붙인다."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을 말할 때 우리는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 사실 기존 질서라는 것은 밑도 끝도 없다. 다시말해서 보수라고 하는 것은 뭔가를 지키려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지키려고 할 때 '그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적극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그냥 보수를 위한 보수가 되는 것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면, 훌륭한 것을 지킬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능력에 관계없이 인간 자체로서 존중받아야만 한다.' 그것은 생겨난지 얼마되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인권선언 이후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지켜야 된다 그러면 나는 인권에 관한한 보수적인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으로서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은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면 누군가 근거가 뭔데라고 물을 수 있다. 능력도 다른데 대접을 똑같이 받아야 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대접을 똑같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사람으로서의 존재 그 자체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사실 그런 말은 근거가 없다. 근거가 없기 때문에 신을 끌어다가 신께서 창조하신 동등한 피조물이라도 얘기하기도 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논변들을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니까. 정치사상이 되었건 심지어 자연과학이 되었건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고 인간을 설득하는 것에 관한 학문이 수사학이다. 말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테렐스의 《수사학》을 보면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수사학이라고 하고 있다. 설득하려면 수사학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존엄성으로부터 인간은 자유가 있고 인간은 평등하고 그런 것들에 관한 논변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 그런 것들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공동체 속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정교하게 논변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설득하려는 학문분과가 정치철학이다. 정치철학은 시대와 맥락 속에서 어떤 정치가 훌륭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정치적 공동체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고귀한 가치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에 근거해서 정치 공동체가 세워졌을 때 인간에게 최대한의 편익과 즐거움과 행복과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가치, 뿌듯함, 만족감 그런 것들을 줄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왜 그러면 자꾸 정치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가.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도 얼핏보기에는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하던 영국의 지식인이 '우리나라에 대혁명이 들어왔다가는 큰일나겠네. 걱정되네. 어떻게든 막아야겠어.' 이렇게 생각한 것을 길게 써놓은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읽어보면 그런 강력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및 그 사건에 관련하여 런던 일부 모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관한 성찰"이 이 책의 원제이다. 그 밑바닥에는 프랑스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이나 그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이나 그 밑바닥에 놓인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잘 살 수 있을까, 돈이 많아서 잘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그러면 혼자서 고립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존재가 살아가고 있는 정치적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잘 만들어져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정치철학에서는, 정치사상은 시대적인 맥락을 보니까 아주 당연한데, 정치철학도 하나의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연구하지는 않는다. 정치라고 하는 사태의 국면에서 인간 모습을 연구하고 그 국면에서, 아무리 신을 다루는 형이상학이라고 해도 그 신이 인간과는 무관한 신을 다루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 인간과 무관한 것을 다루는 학문은 없다. 정치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 정치 공동체에서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이 되었건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사람의 보수주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이 되었건 그들의 밑바탕에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따라서 나는 프랑스 혁명이 좋아. 버크의 책은 읽을 필요 없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프랑스 혁명이 인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해서 그것이 완전한 사건은 아니고 모든 이상과 선을 실현한 사건도 아니다. 버크가 그것에 대해서 어떤 점을 문제 삼았는가를 들여다보면서 이것은 실수했네, 잘했네 이런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을 읽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제32강 368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은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한다. 영국의 버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도 지식인들이 대혁명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어쨌든 혁명은 인류가 끝없이 향해 가야 할 이상을 하나 덧붙인다.


"유럽의 왕정 국가들은 프랑스의 혁명적 국민정신을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이게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자기네들은 그때까지 겪어보지 않은 그런 사태였으니까 놀라기는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의식이 자신의 국가로 번질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런 의식이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의식이 전환이 되면 돌이키기가 어렵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의식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데 프랑스 혁명이라는 것이 유럽 대륙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 것은 혁명 이후에 일어난 여러가지 물리적인 사건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이제 국가와 공동체와 귀족이나 왕을 보는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 이념의 원조로 불리는 사람인데, 아까도 읽었듯이 이 책의 원제는 "프랑스혁명 및 그 사건에 관련하여 런던 일부 모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관한 성찰"이다. 버크는 이제 런던에서 일부 사람들이 경거망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수주의는 본래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혁명 이데올로기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에 관한 제일 좋은 책은 이념으로서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에 대해서 읽어본 책들 중에는 C.B.맥퍼슨의 《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가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다.

제32강 368 유럽의 왕정 국가들은 프랑스의 혁명적 국민정신을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의식이 자신의 국가로 번질까 노심초사했습니다.

제32강 368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 이념의 원조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프랑스혁명 및 그 사건에 관련하여 런던 일부 모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관한 성찰"입니다.

제32강 368 프랑스혁명 이듬해에 출간된 이 책을 보면 보수주의는 본래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혁명 이데올로기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 얘기해지만 서양근대 정치철학은 홉스와 헤겔. 정치철학에서나 정치사상에서나 두 영역 모두 중요한 사람이 홉스이다. 헤겔은 시대적인 맥락에서는 조금 벗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정치사상적으로는 헤겔의 역사철학강의가 중요하지만 홉스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정치철학적의 방법론도 그렇고 그가 주장한 자연권 이론들도 정치철학의 개념으로 아주 중요하고, 잉글랜드 내전이라고 하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정치공동체와 주권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즉 정치사상적인 통찰도 훌륭하고 그만한 사람이 없다. 살기도 오래살았고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기도 번역했으니까 고전학으로서도 더할 나위가 없다. 이 영역에서 한 명만 꼽는다는 홉스이다. 플라톤보다도 더 중요한 본받을만한 사람으로서의 홉스.

보수주의는 본래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혁명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면 1789년 프랑스혁명, 에드먼드 버크는 1797년에 죽었으니까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얼마되지 않아서 죽었다. 버크는 1800년대의 사태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을 봤으면 어떤 책을 썼을까가 궁금하다.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이후에 어떤 책을 썼을까 하는 궁금한 지점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 관심을 가지고 봐야할 것은 프랑스혁명은 그 당시에는 진행중인 사건이었다. 버크의 이 책이 나온 것이 1790년이다. 그런데 90년에 곧바로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혁명 이데올로기로서 버크가 주장한 것이 등장했으니까 정말 당대의 논쟁이었닫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때는 진행중이었다고는 하지만 프랑스혁명을 어떤 이념으로 규정할 것인가가 제일 먼저 시도된 것이 버크에 의해서이다. 그러니까 반혁명 이데올로기로서 뭔가가 나왔는데 프랑스혁명에 대한 규정을 관찰자로서, 구경꾼으로서, 이론가로서 프랑스혁명이라고 하는 것을 본 사람이 버크니까 버크의 규정이 프랑스혁명에 대한 첫번째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도버 해협을 넘어 저 프랑스라고 하는 나라가 난파되어 있구나.'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난파선과 구경꾼》 책 제목을 가져가다가 써보면 난파되고 있는, 그 격량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버크가 얘기하는 것이다.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형성된 파리의 힘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체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기하학적인 정책이 채용되었다는 점, 모든 지역적 이념은 억제된다는 점, 그리고 더 이상 가스코뉴 인도 피카르디 인도 브르타뉴 인도 노르망디 인도 아니며, 하나의 나라, 하나의 가슴, 하나의 의회를 지닌 프랑스 인이라는 점이 자랑거리로 내세워진다." 버크가 보기에는 프랑스혁명의 핵심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국민'이라고 하는 즉 국민주의이다. "기하학적인 정책이 채용되었다는 점, 모든 지역적 이념은 억제된다는 점" 하나로서로 통일하려는 것, 이 설명을 보면 버크가 보기에 프랑스혁명은 한 가지로서 모든 것을 통일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즉 버크의 규정에 따르면 프랑스혁명은 일원주의인 것이다. 이를 보면 자기는 다원주의적 국가가 더 나은 공동체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 국민의식이 하나로 묶인 다는 것을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 나라라고 하는 것은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계층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신이 달라서 그런 고유한 정신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공동체이지 온 국민이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것을 따라가게 된다면 그것은 안된다. 지금 오늘날 우리가 보수주의라고 하면 전체주의와 가깝다. 그런데 원래 버크에서 시작된 보수주의는 그게 아니라 다원주의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프랑스혁명이야말로 전체주의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지금 봐도 그렇고 버크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니 보수주의는 유연하고 다양한 것을 강조하고, 물론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질서은 귀족질서니까 못마땅하기는 한데, 그런 반면에 당대에 보수주의가 등장하던 무렵에는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은 다원주의이고, 버크가 보기에는 프랑스혁명은 전체주의의 씨앗이 들어있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데올로기 논쟁이 시작된다. 왜냐 그 전에는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인지 논쟁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혁명에 의해서 나라를 뒤짚어 엎어보고 새로 세워보고 하는 시도들을 하다보니까 어떤 식으로 엎어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19세기 1800년대부터는 이데올로기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제32강 369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형성된 파리의 힘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체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기하학적인 정책이 채용되었다는 점, 모든 지역적 이념은 억제된다는 점, 그리고 더 이상 가스코뉴 인도 피카르디 인도 브르타뉴 인도 노르망디 인도 아니며, 하나의 나라, 하나의 가슴, 하나의 의회를 지닌 프랑스 인이라는 점이 자랑거리로 내세워진다. _《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제3부 국민의회의 새 국가 건설 사업

오늘 한 얘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그리고 버크에 의해서 시작된 보수주의가 그 당시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기억해두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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