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53 / 제33강(2)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3강(2)

-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는 ‘역사적 인간’의 탄생
- 섭리적 역사관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인문주의적 역사관: 볼테르, 데이비드 흄, 헤르더

 

2022.01.25 역사 고전 강의 — 53

⟪역사 고전 강의⟫ 제33강 2번째 시간이다. 지난 번에 헤르더의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를 설명하기 위해서 프랑스혁명이 독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독일에서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은 프랑스의 민족주의와 어떻게 달랐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오늘은 33강을 마치려고 한다.

376페이지 "온전한 의미에서의 '세계시민 이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해도 프랑스혁명은 인류의 주권 의식, 역사 의식, 세계시민 의식을 우리가 성취해야 할 하나의 이념으로 제시했다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한마디로 역사를 의식하는 인간, 즉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야말로 '대혁명'의 소중한 성과인 입니다."  이런 얘기를 읽으면 조금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인류의 주권 의식, 역사 의식, 세계시민 의식을 다 가지고 있나 생각해보면 1789년 프랑스혁명이 도대체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1789년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이런 생각이 있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몰랐다. 역사가 그렇게 한꺼번에 또는 단번에 앞서 나아가지는 않는데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단어 하나가 나오지만 그것 자체로 그렇게 쉬운 얘기는 아니다. 인간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게 역사적 인간이라고 하는 말의 아주 깊숙하게 들어있다. 사람이 뭔가를 해서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그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무기력한 인간이 아니라 그전에는 신이 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 우리가 인간이 뭔가를 해가지고 할 수 있다 라는 것이 프랑스혁명의 소중한 성과이고 이것을 조금 멋진 말로 또는 학문적인 개념으로 써두게 되면 그게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라는 말로 나간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역사 고전 강의⟫이다. '고전 강의 시리즈' 중에서 ⟪역사 고전 강의⟫가 개인의 인생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고 항상 공부를 할 때 역사부터 공부하라고 입버릇처럼 하기 때문에  ⟪역사 고전 강의⟫를 읽으면서도 재미있다. 역사라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국가가 또는 우리 민족이 이전에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이 뭐겠는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 또 앞으로 어떤 것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어떤 것을 할 것인가, 내가 해봐야 안될텐데, 내가 그것을 할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데, 또는 내가 그런 앞으로 일어날 일어 날들에 대한 주인공도 아닌데, 이런 생각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 의식할 필요가 없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건 간에 그것이 나의 힘에 의해서 또는 나의 능력에 의해서, 나의 노력에 의해서, 나의 의도에 의해서 이루어졌었고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면 의식할 필요가 없다. 즉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라는 말은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다 라는 것이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을 바탕에 놓고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다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라는 말을 놓고, 자 그러면 이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오긴 했는데 그중에서도 무엇을 중심으로 역사가 흘러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역사관이 달라진다. 

제33강 376 온전한 의미에서의 '세계시민 이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해도 프랑스혁명은 인류의 주권 의식, 역사 의식, 세계시민 의식을 우리가 성취해야 할 하나의 이념으로 제시했다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한마디로 역사를 의식하는 인간, 즉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야말로 '대혁명'의 소중한 성과인 입니다.

크게 나누면 377페이지에 '섭리적 역사관'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섭리적 역사관과 그 밑에 나오는 '인문주의적 역사관'이 나뉜다. 인문주의적 역사관는 인간 중심적으로 나뉘고, 즉 인문주의적 역사관이라는 것과 역사적 인간의 탄생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뭔가가 이루어진다고 하면 관념론적 역사관이 될테고, 인간의 물질적 활동에 의해서, 즉 경제적인 것에 의해서 인간의 역사가 바뀐다 전개되어 나아간다고 하면 유물론적 역사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유물론적 역사 이해"라고 적었다. 이게 바로 유물론적 역사 이해라고 하는 것은 섭리적 역사관과는 구별되는 인문주의적 역사관, 즉 역사적 인간의 탄생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 분류 기준을 생각해야 한다. 인문주의적 역사관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봐서 아테나이 고전주의 시대에도 등장했었고, 르네상스 인문주의 시대에도 등장했는데 이게 결정적으로 오늘날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독일 인문주의이다. 이 시기가 낭만주의 시기와 겹치는데 대체로 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부터 헤겔의 《법철학》 사이가 독일 인문주의 시대이다. 독일 인문주의 시대라고 하면 인문학의 열풍이 분 것으로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아주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인간이 나서서 뭔가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뭔가 할 수 없는 영역에는 관심이 없었겠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이게 바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다. 앞서서 우리가 읽었던 것처럼 칸트가 말하는 '세계시민 이념' 이런 것들도 다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생겨난 것이다.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이런 것들도 역사를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관점에 관한 책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제33강 377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관, 즉 유물론적 역사 이해를 천명하는 구절입니다.

프랑스혁명이 등장하기 전에 물론 계몽주의자들이 그런 관점을 갖기는 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볼테르이다. 378페이지를 보면 "역사 철학"이라는 말을 볼테프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설이다. 역사철학이라느 분야는 볼테르에서부터 시작했다. 데이비드 흄도 있다. 이 사람들은 다 기본적으로 섭리적 역사관에 대립되는 사람들이라는 것, 큰 분류 범위는 섭리적 역사관과 인문주의적 역사관이 있는데 인문주의적 역사관 아래 세부 분류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볼테르. 이 사람은 섭리적 역사관을 논박하고자 했고 계몽주의적 역사관, 즉 "인간 활동의 총체로서의 역사, 인과관계의 총체로서의 역사"를 옹호했다. 그 다음에 역사라고 하는 것에는 그런 것 없다고 말한 사람이 데이비드 흄이다. 주관주의적 역사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헤르더. 헤르더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되고 있는 헤겔. 이런 사람들은 섭리적 역사관을 완전히 부정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의미의 섭리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섭리적 역사관을 완전히 부정한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과연 역사에 대한 인문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로 봐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특히 헤겔의 역사철학이 역사신학이냐 아니면 정말로 인문주의적인 역사철학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그 문제에 대한 즉 헤겔의 역사철학이 가지고 있는 성격, 섭리적 역사관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냐 아니면 그런 흔적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는 그쪽으로 귀결된 것이냐에 대한 논자의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 말하자면 정해진 룰이다.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헤겔의 철학체계에서 절대적 정신론과 객관적 정신론의 관계을 어떻게 보느냐가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33강 378 그는 기독교가 제시하는 신 중심의 역사관을 타파하고 인간을 역사의 주인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계몽주의적 역사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러한 입장은 인간 활동의 총체로서의 역사, 인과관계의 총체로서의 역사를 옹호했습니다.

헤르더는 《인류의 도야를 위한 또 하나의 역사철학 Auch eine Philosophie der Geschichte zur Bildung der Menschheit 》이 있다. 한국어판 제목은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으로 되어있다. 번역본 제목이 어떠하던 간에 원래 제목은 "인류의 도야를 위한 또 하나의 역사철학"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라는 말은 '누구의 것과는 다른'이라는 말인데 누구의 것과 다르냐. 볼테르이다. 그만큼 볼테르의 역사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도전과제로 여기졌던 것이다. "Auch ein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이 말 자체가 볼테르에 대한 대립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고, 그런데 이 역사철학이 무엇을 위해서 어떤 것에 기여하기 위해서 쓰느냐. Bildung der Menschheit, 인류의 도야를 위해서, 그러니까 역사의 목적이 인류의 도야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Bildung이다. 독일 인문주의에서 사실  Bildung 이라는 말이 핵심개념이고, '도야 소설' 또는 '교양 소설', 교양이라는 말은 하나의 완성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고, 도야는 교양있는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당한다. 그래서 도양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떨까 한다. 맥락에 따라서 Bildung이라는 단어는 도야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보면 '교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고, 도야된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가리킬 때는 '도야'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나 한다.

《인류의 도야를 위한 또 하나의 역사철학》을 보면 인류의 문명을 단계별로 나눈다. 역사단계를 나눈다고 하는게 이 사람들의 특징이다. 역사단계론이라고 하는 것.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좀 위험하다. 그리고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는 과정이 하나하나 다 더 나은 것으로 가는 길목들을 거쳐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사실 위험한 것이다. 각각의 문명 그리고 각각의 시기는 그것 자체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기서 그런 것들을 이끌고 가는 기본적인 힘은 로고스인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여기서 로고스가 신이 아니냐라고 하면 할 말이 없게 되버리는 것, 그것이 아니라 신이 아닌 하나의 세계 이성이라고 이해하는데 그것을 밝혀 보이는 것, 헤겔에서 세계정신 또는 시대정신을 밝혀보이는 것이 바로 역사신학이냐 역사철학이냐 하는 그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해석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관건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헤르더는 아주 명백하게 "신의 섭리, 자연환경, 인간의 노력이라는 요소들이 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신의 섭리를 완전하게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자연환경, 인간의 노력 이런 것들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하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여서 하나의 거대한 체계 속에서다가 넣으려고 했던 살마이 헤겔이다. 그리고 신의 섭리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냥 암시적으로 뒤에 깔아둔 상태에서 헤겔 철학에서 아주 핵심적인 개념이 나온다. 그게 바로 노동Arbeit이다. "노동은 인간의 주체적 자각적 합목적적 활동을 총괄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주체적으로 또 자기 의식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노동을 통해서 세계 이성의 세계 정신의 로고스의 목적을 실현해간다. 이것이 바로 헤겔 역사철학의 밑바탕에 놓여진 생각인데 이것이 헤르더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면 역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가 바로 인간 개개인과 그 개개인의 총류로서 인류가 도야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 개개인과 인류가 도야하는 곳, 즉 학교입니다." 이런 관념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헤르더나 헤겔에서 보면 정신적인 것이 굉장히 강조된다. 그런데 이건 아닌데 하고 반발하고 나오면 유물론적 역사이해가 되는 것이고 바로 그런 생각이 역사에 관한 마르크스의 생각의 밑바당에 놓이게 된다.  

제33강 381 헤르더는 신의 섭리, 자연환경, 인간의 노력이라는 요소들이 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제33강 382 헤겔은 인간의 노력을 '노동Arbeit'으로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노동은 인간의 주체적 자각적 합목적적 활동을 총괄하는 말입니다.

제33강 384 역사는 인간 개개인과 인류가 도야하는 곳, 즉 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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