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51 / 제32강(2)
- 강의노트/라티오의 책들 2021-24
- 2022. 1. 22.
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2강(2)
칸트,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1784), 제8명제.
“인류의 역사는 전체적으로 보면 자연의 은밀한 계획, 즉 내적으로 완전하며, 이 목적을 위하여 외적으로도 완전한 국가조직을 성취하기 위한 계획의 수행이라 볼 수있다. 이때 국가조직은 자연이 인류에게 준 모든 소질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태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2022.01.18 역사 고전 강의 — 51
⟪역사 고전 강의⟫ 제32강 2번째 시간이다. 지난 시간에 보수수주의에 대해서 설명했다. 보수주의에 대해서 더 붙여서 말하자면 보수라든가 진보라든가 이런 표현들이 한국사회에서 오늘날에도 어떤 특정한 정치세력을 가리키거나 또는 어떤 정치적인 성향과 이념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그런데 보수주의라고 할 때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보수적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진보적인가. 그러면 보수는 규정하기가 쉽다.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 이전에 있었던 것을 지키려고 한다, 이전에 있던 것만 찾으면 되는데 진보라는 것은 눈 앞에 있지 않은 것, 현재 지금 실현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앞당겨서 실현하려는 그런 노력 또는 그런 움직임 또는 그런 집단적인 태도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진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간단히 말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옳은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그런 언명 자체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그것이 올바르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라는 것에 대해서 누구나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진보라고 하는 것은, 가령 진보 운동을 한다고 할 때는 두 가지가 동시에 요구된다. 첫째는 무엇이 옳다,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다 라는 것을 탐색해야 한다. 그것을 탐색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또 다른 문제이다. 탐색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설득은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가령 지금 ⟪역사 고전 강의⟫를 읽고 있다. 해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역사 고전 강의⟫가 좋은 책이다, 한번쯤은 꼭 읽어봐야 한다,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번 읽어봐야 한다 라고 설득하기 위해서 이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 고전 강의⟫가 좋다는 것은 혼자서는 확신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좋은가, 이렇게 좋다. 또는 그냥 직접 쓴 책이니까 밑도 끝도 없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거 좋은 책입니다, 읽어봐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해서 그 증명을 바탕으로 하여 설득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그냥 보수는 있던 것이다. 그대로 하면 안되요 라고 말해버리면 굉장히 쉽다. 따라서 보수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하던 것이니까 하던 것은 까닭이 있겠지, 기왕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진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을 찾아내야 하고 그것이 또 좋다고 하는 것을,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좋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고, 그러니까 진보운동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에 비해서 까탈스럽다.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애드먼드 버크가 쉬운 길을 가려고 마음 먹었겠는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만 해도 이것이 향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200주년을 기념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가정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것에 대해서는 정말 알 수 없었겠다. 다만 버크가 지난 번에 지적했던 것처럼 혁명적 군중의 집단심성을 통해서 어떤 프랑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예측한 것은 어느정도 들어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볼 때 단 한가지의 원인을 가지고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태도이고, 어떻게 보면 아니 아주 분명하게 아주 게으른 태도이다. 여러 개의 요소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하나의 큰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면 그 요소들을 낱낱이 하나하나 모두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현상을 가리킬 때 쓰는 말 중에 섭동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攝攝, 영어로는 perturbation. 여러 개의 다른 물체로부터 명확한 중력 효과를 겪은 하나의 큰 물체가 보이는 복잡한 움직임. 행성의 운동을, 별들의 운동, 움직이는 천제를 대개 쓴다. 일정하게 운동하고 있던 것에 아주 작은 변화가 주어지고 그것으로부터 일파만파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면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역사에 가져다가 사용한다. 또 우리가 혼동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역사에 있어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는 것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봉건제가 쇠퇴하면서 등장하였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맞는 얘기인 것 같은데, 봉건제가 쇠퇴하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는가. 봉건제의 토대를 건드리는 어떤 섭동적 사건이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자본주의적인 어떤 현상이나 사건들이 조금이라도 미약하게나마 일어나게 그렇게 일어난 것들이 봉건제의 토대들을 건드리면서 봉건제가 무너지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봉건제 안에서 여전히 봉건적인 사회구성체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자본주의적 색체를 띠고 있을 경우에 그런 요인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을 경우에 그것이 봉건제의 토대를 미약하나마 뒤흔드는 힘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자본주의적 진보가 봉건제의 쇠퇴의 원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은 여전히 굳건한 봉건제적 토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시말해서 그런 봉건제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도 않을 사건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우리는 봉건제가 사실은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어떤 원인이 되지 않겠나 라는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둘러싼 얘기는 근대 자본주의의 성립 300년에 걸쳐서 일어났던 과정에서 이런 논의가 많이 오고 갔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한다. 경제적인 역동성이 중요하다, 제도의 차이가 중요하다, 또는 우리가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이 원인이다. 이를테면 그럴 때 쓰는 말이 Omitted Variable Bias 생략변수편향이라는 것, 대표적인 예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보면 종교적인 심성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왜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느냐, 그런 것이 생략변수이다 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런 유럽의 기적 또는 대분기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옥스퍼드 세계사》에서도 나와있듯이 더이상 유럽이 더 앞섰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왜냐 섭동의 요인들을 찾아내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서술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얘기한다.
에드먼드 버크가 혁명적 군중의 집단적 심성을 얘기했는데 이런 것들이 사실 프로이센 지역으로 넘어올까봐 프로이센 지역에서는 굉장히 걱정을 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는 오늘날 독일이라고 불리는 지역 또는 칸트가 살고 있던 지역까지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러시아 연방 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동쪽으로 점점 나아갔다. 논쟁이 벌어지는데 칼 폰 클라우어의 《새로운 프랑스 입헌[체제]의 근거로서 인류의 권리에 대하여》, 법률에 근거한 체제를 가리킬 때 constitution이라는 말을 쓴다. trophe 삶의 양식, 생활 양식에 근거한 것도 체제라는 말을 쓴다. 플라톤의 《메넥세노스》을 보면 우리의 정체는 우리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럴 때는 생활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규정된 법률 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Politeia 라는 헬라스어가 regime 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그때 regime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나는 말그대로 자연적 체제, 생활 양식에서 나오는 체제가 있고 또 하나는 constitution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체제가 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명백하게 법률에 근거하여 체제가 세워졌기 때문에 이때 사람들은 constitution이라는 단어를 명백하게 쓴다.
칸트에게도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든 사태에 대해서 의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칸트의 의견은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는데 칸트는 1804년까지 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라고 하는 논문이 1784년에 나왔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나온 것인데 사람들이 칸트에게 프랑스혁명에 동조하는 거 아닙니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급적용을 하게 된 셈이다. 칸트가 무슨 예언자처럼 여겨지던 상황이고, 잠재적인 자코뱅으로 간주되던 상황인데 사실 자코뱅이라는 말이나오는데 자코뱅은 프랑스혁명 당시의 특정 정파를 가리키는 말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과격한 체제 파괴를 일삼을 정도로 체제를 완전히 파괴하면서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이념을 현실화 시키려고 하는 정치적 세력을 자코뱅이라고 한다. 까닭없이 과격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일 정도로 자코뱅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그것이 함축된 의미가 똑같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빨갱이, 예전에는 좌익이라고 했는데, 지금 좌파라는 말을 쓰는 것은 조금 순화된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라는 말을 쓰면 굉장히 자코뱅이라는 말이 그 당시에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여순반란 사건 이후 빨갱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빨갱이의 탄생이라는 이 사태. 그런데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라고 하는 논문이 9개의 명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제8명제가 프랑스혁명이 추구한 이념에 대한 탁월한 설명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 꽤 길지만 인용을 했다. 군데군데 중요한 부분을 읽어보려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체적으로 보면 자연의 은밀한 계획, 즉 내적으로 완전하며, 이 목적을 위하여 외적으로도 완전한 국가조직을 성취하기 위한 계획의 수행이라 볼 수 있다." 이 첫째 문장이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칸트는 역사철학에 관한 책을 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칸트가 쓴 역사에 관한 여러가지 논문들이 있는데 그 논문을 묶어서 이한구 교수가 낸 《칸트의 역사 철학》이 있다. "자연의 은밀한 계획"은 인간이 알아 낼 수가 없다. 칸트는 인류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전개되는 것이 "자연의 은밀한 계획" 이것은 선학 목적을 생각한다. 《판단력 비판》에서도 "내적 합목적성"이라는 말을 쓴다. 자연은 선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칸트는 아주 명시적으로 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신을 말하기에는 칸트는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신을 말하지 않자니 찜찜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실천이성의 요청"을 얘기한 것을 보면 그것을 칸트는 "자연의 은밀한 계획", 선한 것을 향해가는 자연이라고 하는 것으로 가정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체적으로 보면 자연의 은밀한 계획", 이것은 칸트가 선한 목적을 가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적으로 완전하며, 이 목적을 위하여" 내적으로 완전한, 이것은 '숨겨져 있는' 이런 말이다. 완전한 국가조직이라는 것이 자연의 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칸트가 이 두가지를 얘기한다. 이 구도,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라고 하는 구도는 다음에 읽을 헤르더라든가 이런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리고 데이비드 흄과 같은 사람과는 다르다. 헤르더가 칸트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인데 헤르더가 1744년생이고, 칸트가 1724년생이니까 20년 정도 나중에 태어난 사람인데, 헤르더의 이런 생각, 우리가 다음에 읽을 《인류의 도야을 위한 또 하나의 역사철학》에 나오는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이사야 벌린이 말한 것처럼 낭만주의자, 헤르더는 명백하게 낭만주의자로 분류되는데, 로만티커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자연의 은밀한 계획, 즉 자연의 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그런 과정이라는 생각이 이 당시 사람들이, 헤겔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저작의 방탕에는 그런 생각이 놓여있다. 이게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큰 사상의 덩어리가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나누어져 있었던 것인데 칸트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때 국가조직은 자연이 인류에게 준 모든 소질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태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자연의 은밀한 계획, 자연의 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명시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은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97%되는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을 우리는 자연목적론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면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느리게 움직인다. "태양이 행성 전체를 거느리고 광대무변한 항성계를 돌아가는 운행이 지금까지의 어떠한 천체관측에 의해서도 불확실하게만 규정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연의 운행이 완결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되는데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짧고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확실하게 알아낼 수 없다, 일단 거기까지가 한 부분이고, "오늘날에는 이미 국가 간에 인위적인 대외 관계가 맺어져 있어서, 어떠한 국가라도 국내의 문화가 침체되면 타국에 대한 힘과 영향이 줄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자연의 이러한 목적의 진보는 그렇지 못하다 해도, 적어도 그 유지는 각 국가의 명예를 잃지 않으려는 의도에 의해서도 상당히 보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나라든지 인위적인 대외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쪽 한 나라에서 발전하면 저쪽 나라는 쇠퇴한 나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으로부터 칸트는 개인의 활동에 가해지는 제한이 점점 철폐되고 그 다음에 여러 나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더 나은, 한 나라만이 아니라 인류전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태양계의 운행을 생각해보면 된다. 세계시민적 관점에서는 자연의 은밀한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 세계시민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나라에 시민들의 상태도 그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칸트가 이런 글을 쓰고 할 때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군주제 국가,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군주제 국가였다. 그래서 칸트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평화와 시민권의 증진을 위해서는 군주들이 모여서 의논도 하고 선의를 가지고 목표를 세워서 함께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더러 어떤 사람들은 칸트가 제1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의 선구자가 아닌가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칸트가 생각하는 국가는 그냥 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에 군주들이 모여서 잘해보는 것이었지 굳이 오늘날 같은 국가 그 자체가 하나의 군주 개인의 인격체의 구현체가 아닌 국가 자체가 하나의 법인체로서 의미를 가진 그런 존재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의 국가가 결집된 국제연맹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 것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32강 371 인류의 역사는 전체적으로 보면 자연의 은밀한 계획, 즉 내적으로 완전하며, 이 목적을 위하여 외적으로도 완전한 국가조직을 성취하기 위한 계획의 수행이라 볼 수 있다. 이때 국가조직은 자연이 인류에게 준 모든 소질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태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 태양이 행성 전체를 거느리고 광대무변한 항성계를 돌아가는 운행이 지금까지의 어떠한 천체관측에 의해서도 불확실하게만 규정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오늘날에는 이미 국가 간에 인위적인 대외 관계가 맺어져 있어서, 어떠한 국가라도 국내의 문화가 침체되면 타국에 대한 힘과 영향이 줄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자연의 이러한 목적의 진보는 그렇지 못하다 해도, 적어도 그 유지는 각 국가의 명예를 잃지 않으려는 의도에 의해서도 상당히 보증되고 있는 것이다. _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제8명제
그 다음 373페이지를 보면 "프랑스혁명을 둘러싼 독일 지식인 사회의 논쟁은 '법전 논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나폴레옹 법전, 굉장히 중요하다. 라인란트 지방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여기서 나폴레옹 민법적이 시행되고 그랬다. 그러면서 제도가 바뀌었고 앞서 말한 '섭동'의 요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도이칠란트의 산업과 문화의 발전에 밑바탕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속칭 식민지 근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거기를 침략한 것은 군사적 목적 때문인데, 일본제국이 조선을 침략해서 식민지 근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논박이 되어 있으니까 식민지 근대화라는 말 자체가 어이없는 표현인데 도이칠란트는 그렇지 않다. 나폴레옹 법전이 이것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제32강 373 프랑스혁명을 둘러싼 독일 지식인 사회의 논쟁은 '법전 논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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