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49 / 제31강(3)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1강(3)

“지배계급으로의 편입이 어렵게 되자 제3계급은 제1, 2계급과 선을 긋고 제4계급과 결합했습니다. 이 당시 제4계급은 독자적 조직력과 혁명적 군중 동원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4계급에게 혁명적 군중으로 전환될 수 있는 힘 — 공통적인 이념과 집단적인 심성 — 이 없었다면, 제3계급은 제1, 2계급과 다시 협상했을 것입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떠올려 봅시다. 이 사건을 주도한 세력은 제3계급이 아니라 제4계급이었습니다. 제4계급은 이렇게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제3계급과의 결합을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합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22.01.11 역사 고전 강의 — 49

⟪역사 고전 강의⟫ 제31강 3번째 시간이다. "프랑스혁명하면 떠오르는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부터 이야기하려고 한다. 프랑스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이런 것에 관련된 책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고, 프랑스혁명이 지금에와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설명하는 것은 안해도 되는 얘기처럼 여기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는 모두 제3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이다. 그런데 "제3계급은 혁명의 와중에 분열했고, 제1공화정(민중 공화정)은 자코뱅 파 안의 한 분파인 산악파와 제4계급이 결합해서 성립했습니다." 프랑스라고 하는 나라는 공화국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헌법상의 규정은 아니지만 대체로 6공화국이라고 말한다. 결정적인 역사적인 맥락이 있을 때, 1987년 직선제 개헌 헌법 이후로 성립된 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제1공화정, 제2공화정이라고 쓰지는 않는다. 오늘날 현대 프랑스는 제1공화정 이후에 성립했다. "이전 체제인 온건 공화정이 자유주의 혁명 단계였다면 민중 공화정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전망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제1공화정은 공포정치의 시대이다. 이것에 대항하는 일종의 국제적인 연대가 생겼고, 프랑스혁명 시기에 프랑스혁명 전쟁이라는 것이 유럽대륙의 여러나라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산악파와 상퀼로트의 결합이 깨지고 상퀼로트가 중심이 된 군사 정부가 시작되자 군대가 혁명을 지키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이것이 혁명의 10년의 맨 마지막 단계이다. 이때 국민군이 등장한다. 

제31강 363 프랑스혁명하면 떠오르는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는 모두 제3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3계급은 혁명의 와중에 분열했고, 제1공화정(민중 공화정)은 자코뱅 파 안의 한 분파인 산악파와 제4계급이 결합해서 성립했습니다. 이전 체제인 온건 공화정이 자유주의 혁명 단계였다면 민중 공화정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전망을 열었습니다.

제31강 363 제1공화정이 성립하면서 프랑스혁명에 대항하는 일종의 국제적인 연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제31강 364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산악파와 상퀼로트의 결합이 깨지고 상퀼로트가 중심이 된 군사 정부가 시작되자 군대가 혁명을 지키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이라는 것이 지금 앞에서 혁명을 여러 단계로 혁명의 10년, 혁명의 25년, 혁명의 100년으로 말했다. 혁명의 25년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혁명의 25년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는 1815년까지니까 그 다음에는 반혁명의 시기이다. 파리코뮌이 진압되고 몽마르트 언덕에 사크레쾨르 성당이 세워진 1870년대까지가 혁명의 100년인데 후폭풍, 반동의 시기이다. 나폴레옹이라고 하면 어떻게 보면 독재자이다. 자기가 황제가 되버렸으니까 독재자니까 어떻게 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이 사람을 판테온에 안장을 할 생각을 했을까. "프랑스혁명에 대한 배반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서 혁명의 과업을 계승"했다 라고 보기 때문이다. "'혁명의 25년'의 관점에서 보면, 나폴레옹 전쟁도 혁명의 성과로 집어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폴레옹이 자기가 황제가 된 다음에 프랑스 국민들을 괴롭히고 자기 혼자 해먹으려고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했으면 '혁명의 25년'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에서 배운 바탕으로 눈부신 업적을 남겼고, 현대 '민법전'의 효시인 '나폴레옹 법전'은 인민주권을 확고하게 법률화했고, 이때부터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이때부터 확고하게 성립했다. 직업 관료제, 상비군, 경찰 제도 그리고 공학도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때부터 바로 프랑스라는 나라가 계몽주의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그런 나라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라는 국민 의식,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주권 의식"이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성립한다.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프랑스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프랑스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원칙이 성립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닐 수 있다. 여튼 원칙적으로는 혈통에 근거한 혈연에 근거한 민족주의가 아닌 프랑스인이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자부하고 국가의 국민으로 승인을 받으면 프랑스 민족이다라고 하는 이른바 문화적 민족주의라고 하는 문화적 개념의 민족주의가 이때부터 성립한다. 그것이 성립한 것과 그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완전히 몸에 체화해서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 부분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제31강 365 나폴레옹의 등장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배반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서 혁명의 과업을 계승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의 25년'의 관점에서 보면, 나폴레옹 전쟁도 혁명의 성과로 집어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31강 365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에서 배운 바탕으로 눈부신 업적을 남겼습니다. 현대 '민법전'의 효시인 '나폴레옹 법전'(1804)은 인민주권을 확고하게 법률화했습니다.

제31강 365 그 결과 중앙집권적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성립했습니다.

제31강 365 특히 중요한 것은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의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이라는 국민 의식,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주권 의식, 국민들 각자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라는 역사의식을 갖게 되었고, 이는 근대 정신의 주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일종의 여담처럼 혁명적 군중과 혁명적 지도자의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혁명적 집단심성이라는 것이 제31강 발문에서도 중요한 것이라고 여러차례 얘기했는데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하는 혁명적 군중과 로베스피에르라고 하는 혁명가의 관계, 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견해를 형성하게 된 것이 366페이지에 있는 조르주 르페브르의 《1789년의 대공포》이다. 1932년에 나왔으니 오래 전에 나온 책이다. 이 분야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조만간 『북리스트』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책은 휴 고프의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이다. 조르주 르페브르의 책에서는 혁명적 군중이라는 글이 있다. 그런데 휴 고프의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을 보면 "7장 새 공화국의 새 시민 만들기"가 있다. 50페이지에 걸쳐서 나온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이 8장에 나온다. 이 부분을 주목하는 것은 "혁명적 군중"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혁명이라는 말에서 무력이라든가 폭력, 난동, 공포정이라든가 이런 것만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상당부분 전환되었고 그것에 따라서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그 의식이 바뀐 것을 집단화해서 그것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정당이 있고, 그런 정당의 대의정, 대표자를 투표로 선출한 다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바뀐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지향을 정책으로 구현하도록 하면 그게 오늘날의 혁명이다. 선거 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따라서 어떤 지표가 되는 전환기라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아도, 더군다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이 굉장히 많이 발전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1800년대의 프랑스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모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결집시켜서 굳이 무력과 공포정과 폭력적인 사태를 거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서 체제를 변화시켜 나아갈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정치에 관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제31강 365 여기서 한 가지, 일종의 여담처럼 혁명적 군중과 혁명적 지도자의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혁명적 군중의 등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가능했습니다. 첫째, 민중의 기억. 둘째, 집단 정체성. 셋째, 뚜렷한 전선" 민중의 기억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해보면 "제4계급은 공통의 기억을 창출하고 집단심성을 공유하며, 지배계급과 대립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혁명적 군중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혁명 지도자의 역할이 컸다. 그렇지만 로베스피에르는 "공통의 기억을 창출하고 집단심성을 공유한" 혁명적 군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가 했던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혁명 지도자들이 했던 일은 뚜렷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혁명적 집단심성이 창충되었는데 그 심성과 에너지, 힘을 어디에다가 쏟아부어서 전선을 만들 것인가 이런 것들은 지도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 지도자들이 생겨나는 것은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사적 고찰》(세계 역사의 관찰)을 읽어면 국가의 운이다. 정말 우연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나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절멸시키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에 대한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곳은 예언자이다. 말로만 떠드는 예언자가 아니라 혁명적 군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예언자가 된다. 그러면서 로베스피에르의 시대에는 '내부 결집을 위한 혁명적 숭배 의식' 이런 것들, 혁명적 군중의 집단심성을 이끌어 가는 핵심 요소를 마련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의 왕정국가들이 프랑스를 두려워했던 것이고, 유럽왕국들의 해체가 가속화되었다. 32강에서는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하는 사람들 얘기를 하겠는데 그런 노심초사가 적극적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 역할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로베스피에르는 '피에 굶주린 몽상가'가 아니라 '혁명적 집단심성의 체현자'였습니다." 그도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는데 파리 시민들이 그를 버린 다음에 단두대에 올라갔던 것이다.

제31강 366 혁명적 군중의 등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가능했습니다. 첫째, 민중의 기억. 둘째, 집단 정체성. 셋째, 뚜렷한 전선戰線. 다시 말해서 제4계급은 공통의 기억을 창출하고 집단심성을 공유하며, 지배계급과 대립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혁명적 군중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31강 367 로베스피에르는 '피에 굶주린 몽상가'가 아니라 '혁명적 집단심성의 체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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