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P. 케인즈: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 - 근대 철학의 문제와 흐름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 - 10점
하워드 P. 케인즈 지음, 강유원.박수민 옮김/이제이북스

옮긴이 서문
서문

1. 중세 철학에서 근대 철학으로의 이행
2. 프랜시스 베이컨
3. 야코프 뵈메
4. 르네 데카르트
5.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6. 니콜라스 말브랑슈
7. 존 로크
8. 후고 그로티우스
9. 토머스 홉스
10. 아이작 뉴턴
11.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12. 크리스티안 볼프
13. 조지 버클리
14. 데이비드 흄
15. 장-자크 루소
16. 임마누엘 칸트
17.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18. 프리드리히 요제프 셸링

후기: 헤겔의 입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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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or's Preface 옮긴이 서문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과 유사하게 철학은 기원전 7-5세기경 황금축 시대의 성현들, 즉 노자, 석가모니, 공자, 파르메니데스, 소크라테스 등이 설파한 진리를 시대에 걸맞게 해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언명과 주장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그리하여 천년도 더 넘은 고전들을 끊임없이 읽고 재해석하는 일이 "학문"의 이름 아래 수행되어 왔거니와, 이러한 수행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철학사라 할 것이다.

   그러면 현대에 사는 우리는 오로지 황금축 시대의 사상을 적실하게 해석하기만 하면 철학적 탐구를 다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선뜻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철학사를 철학적 텍스트의 역사로만 이해한다면 위의 주장에 수긍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철학사를 당대의 첨예한 문제 상황에 대한 보편적 개념적 파악의 시도로 이해한다면, 다시 말해서 철학사를 시대와의 연관 속에 등장한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건주한다면 철학사는 어느 누구의 철학에 대한 주석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사는 깊은 단절의 마디를 가진 세계사와 함께 항상 다시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각 시대의 철학사가 세계 철학사라는 유기적 전체의 부분이면서도 각각의 고유함을 완전히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며, 근대 세계의 연장선 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는 현 상황에 대한 철학적 대답을 플라톤에서 얻을 수도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근대 철학에서 구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근대는 "새로운 시대"라 불리기도 한다. 어느 시대든 자신감으로 기득 찬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근대는 과연 그 말에 합당할 정도로 새로운 시대였다. 수백 년 간 지속되어 온 과거와의 단절의 노력이 현실적으로 성과를 거두면서, 16세기와 17세기에는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는 공학적인 성취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저기에 섬처럼 솟아나던 도시들은 이제 사람들의 삶을 본격적으로 규율하는 일종의 제2의 자연이 되었다. 세계를 구성하는 기반적 구성 요소들이 극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변화된 세계 지평 속에서 철학자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문제들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으니, 이러한 사색의 성과물이 근대 철학이다. 근대의 철학자들은 신과 대결하기도 했으나 그 대결의 의도는 신을 드높이고 찬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연을 탐구하기도 했지만 이 탐구의 내면에는 인간을 위해 자연을 굴복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는 근대 철학의 여러 문제의식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근대가 새로운 시대인 만큼 근대 철학도 새로운 문제의식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헤겔은 탁월한 역사철학자인 동시에 철학사가였다. 그는 근대라고 하는 역동의 시대에 역사가 학적 인식의 대성이어야 함을 자각하고 그것에 천착했으니, 그 성과가 그의 역사철학이다. 역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철학사로 이어져, 그는 본격적으로 서양 철학사를 강의했다. 그는 철학사가 독립된 철학자들의 학설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그 기원부터 종국에 이르기까지 항상 동일한 문제의식을 주고받으면서 대립하고 대화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사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마찬가지로, 역사가 전개될 때는 어떠한 사건이든 그에 이어지는 것들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고 그런 까닭에 뒤에 이어지는 것은 앞의 것을 자신 안에 포함하면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가 강의한 철학사는 철학의 역사 속에서 제기된 주요한 문제들을 명료하게 개념화하고 이것들이 서로 어떠한 연관 속에 놓여 있는지에 주된 관심을 보이거니와, 그의 이러한 관심사와 철학사 서술 방식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근대 철학사 강의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강의는 독자들에게 근대 철학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대립과 통일까지도 보여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또한 헤겔의 이 철학사는 후대에 씐 철학사들의 서술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준거틀이 되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철학사들이 그가 제시한 서술 기준과 판단 규준에 근거하여 철학사를 조망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사를 읽는 것은 일종의 원형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으며, 근대 철학의 세부 항목들에 대한 공부로 나아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일종의 디딤돌인 것이다.

   이 책은 하워드 케인즈가 헤겔의 『근대 철학사 강의』 원전에서 주요한 철학자들에 대한 내용을 발췌하고, 그것을 현대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해설을 곁들여 재편집한 An Introduction to Hegel: The Stages of Modern Philosophy를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축약된 근대 철학사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간접적으로라도 헤겔의 강의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자체는 전문적이지만 가능하면 근대 철학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가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한 문장으로 옮기려 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인용한 헤겔의 용어나 원문 등이 지나치게 의역된 점도 없지는 않으나 베이컨에서 헤겔에 이르는 근대 철학의 흐름을 알기 쉽게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자신보다 앞선 세대의 철학지들에 대한 헤겔의 평가가 오늘날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독자는 이 책을 읽은 뒤 다른 참고문헌들을 읽음으로써 공부의 치원을 넓혀 나가야 하리라 본다.


2005년 9월
강유원 · 박수민 적음

 

Afterword: Hegel's Position 후기: 헤겔의 입장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형이상학 인식론, 그리고 철학의 다른 하위 분이에서 연구 작업을 하고, 철학사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규정하는 일은 다음 세대의 동조적이거나 동조적이지 않은 철학사가에게 남긴다. 그러나 철학과 철학사를 동일시했던 헤겔은, 철학사에서 자신의 입장을 규정하고 자신을 철학의 전개 과정에 위치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철학사 강의』에서 자신의 선행자들을 비판함으로써 이러한 일을 암묵적으로 수행하며, 다른 저작에서는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규정한다.

   헤겔의 평가에 따르면 철학적 "학문"은 자기 의식을 향한 인간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가시적인 척도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철학은 인류의 삶과 정신이 역사 속에서 자기 의식에 도달하게 하는 매개였다. 다른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철학사는 이야기다. 그것은 존재와 사유가 동일한 것인지에 관한 질문, 즉 존재와 사유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맨 처음 제기했던 파르메니데스 시대의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헤겔에 따르면,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것처럼, 파르메니데스 이래로 서구세계 철학자들이 씨름해 왔던 것은 다양한 변형태로 나타난 바로 이러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의 판단에 따르면, 승리한 야곱과 같이 철학이 자신의 목표를 도달 기능한 것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이다.

   칸트는 자신이 철학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가져왔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은, 과학적이고 종교적으로, 즉 철학 이전의 관점에서 사유의 보편성과 감각적 특수성을 조화시키려 했던 베이컨과 뵈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다음 데카르트는, 파르메니데스의 성과를 뒤집어서, 존재하는 것이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 주장함으로써 참다운 철학적 혁명을 일으켰다. 데카르트의 통찰력 있는 주장은 형이상학적 탐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시발점이 되었다. 데카르트의 뒤를 이어 스피노자는 사유와 존재의 통일을 논증하려 했다.

로크의 경험론,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흄의 회의론, 버클리의 관념론, 그리고 데카르트 이후의 다른 철학적 경향은 다양한 관점에서 사유와 존재의 통일에 관한 문제 를 드러냈다. 실재에 대한 사유 범주의 규정적으로 주장된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은 결함 있는 증명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18세기 후반 독일 철학에서 정점에 이르면서 이 문제의 전개를 더욱 가속화했다.

   독일 관념론은, 칸트의 테제를 받아들이고 칸트의 철학사적 "혁명"을 구체화함에 따라, 사유와 존재의 내적 관계를 칸트의 경우보다 더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타당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했다. 피히테는 전통적인 논리학의 판단 양식으로부터 자의적으로 범주를 연역한 칸트의 결점을 극복히려는 시도에서 시작했다. 피히테는 자아=지아라는 직관적인 원리로부터의 "필연적인" 연역을 그 해결 방법으로 제시했다. 뒤를 이어 셸링은 절대적 주관-객관에 기반올 둔 자연철학을 통해 피히테의 초주관주의를 보충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헤겔은 결국 셸링의 시도를 초객관주의로 보게 되었는데, 알려진 바대로 셀링은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을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객관적인 주관-객관을 주장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는 피히테의 주관적 주관-객관처럼 일면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1807년에 저술한 『정신현상학』의 끝 부분에서, 헤겔은 자신의 역할을 이러한 두 가지 최근의 시도들을 잇는 매개자로서 묘사한다. 우선 그는 명백히 피히테를 언급한다.

   자기 의식의 형식에서의 자아는, 마치 외재화된 존재에 대해 불안을 가지듯이 자신을 실체성과 객관성의 형식에 강력하게 대립시킬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정신의 힘은, 외재화하면서도 즉자-대자적 존재로서 자기 동일적이라는 것이며. 그것이 즉자적 존재를 정립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자적 존재를 하나의 계기로서 정립하는 것이다. (PSK, § 804)

   그러므로 자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피히테의 딜레마는 즉자와 대자의 역동성이라는 더 큰 맥락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자적 존재, 또는 주관적 측면만이 총체적인 변증법적 운동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계기"로서 표현되어서는 안되며, 셀링에 의해 성취된 객관적 측면, 즉 즉자적 존재가, 모든 차이들이 교묘한 철학적 자아에 의해 제거될 수 있는 주관과 객관의 절대적 통일성으로서 표상되어서도 안 된다.

  자아는 차이들을 절대자의 심연으로 귀환시키고 절대자 안에서 그것들의 "동일성"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매개하는 자가 아니다. (PSK, § 804)

새로운 인식 개념一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제시하는 "절대적 인식"━이 이러한 일면적인 입장을 대신해야 할 것이며, 결국에는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즉 구별 속의 역동적 통일로서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절대적〕 인식은, 구별되는 것이 자기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운동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금 자신의 통일로 전개시키는지를 고찰하는. 〔정신의〕 이러한 표면적인 비활동성에 놓여 있다. (PSK, §804)

   절대적 인식의 "비활동성"은 표면적일 뿐이다 사실 헤겔의 규정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의 인식은, 몇 세기에 걸쳐 서구 철학지들이 점진적으로 연구해 온 사유와 존재의 역동적 균형이다 헤겔은 일단 그것을 성취한 뒤, 자신의 후기 체계에서 새로운 종류의 범주—더는 객관화된 열 가지 범주,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판단들", 또는 칸트의 주관화된 열두 가지 범주가 아닌, 사유가 완전히 스며들어간 존재의 범주一를 전개하는 기반으로 삼는다.

   헤겔이 논리학에서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존재는, 외재적이거나 파르메니데스의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사유로 가득 찬 존재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자신의 전개 방법을 포함하고, 처음에는 단지 함축적이었던 하위 범주들을 점차 드러내는 존재라는 개념이자 주관-객관이다. 헤겔은 범주에 근거하여 주관적 규정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의 과정에서 변증법적 변형을 거쳐가게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헤겔이 논리학, 자연철학, 그리고 정신철학에서 펼칠 수 있었던, 내재적으로 전개되는 범주이다. 헤겔은 자기 자신이 엄격하게 체계를 창안한다기보다는 이미 있는 체계—마치 세포의 체계적인 증식을 설명하는 생물학자나 우주의 대폭발의 근원에 대한 모형을 만드는 물리학자처럼一를 완전히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베를린에서 했던 철학사 강의에서, 헤겔은 자신의 선행자들을 배진적背進均으로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유일한 철학적 체계의 지속적인 전개 과정에서의 단계들, 즉 그가 제시해 왔던 것을 최종적으로 정리한다. 이 최종 정리는 이전에 전개된 것들에 대한 명백한 철학적 자기 의식이며, 존재와 사유의 다양한 조화에 관한 새로운 변증법적이고 사변적인 연구를 포함하는, 철학적 순수 조율을 낳아 놓는 비판적인 검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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