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노스: 엔네아데스 (천줄읽기)

 

엔네아데스 (천줄읽기) - 10점
플로티노스 지음, 조규홍 옮김/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해설 ·······················ix
지은이에 대해 ··················xvii

엔네아데스 I 6: 아름다운 것에 관해 ·········3
엔네아데스 V 8: 정신의 아름다움에 관해 ······32
엔네아데스 III 5: 사랑에 관해 ···········77

옮긴이에 대해 ··················111

 


지은이에 대해
플로티노스(Plotinos, 204/205~269/270)는 고대 후기 그리스 철학자다. 플라톤사상에 몰두해서 가르쳤기에 사람들은 그를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라고 평한다. 북아프리카의 리코폴리스(Lykopolis)에서 태어나 로마제국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활동했다. 예컨대 고르디아누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에 참여했고, 나중에 갈리에누스 황제와 그의 부인 솔로니나의 신임을 받아 플라톤 왕국(Platonopolis)의 건설을 제안받기까지 했다. 몸소 네 번이나 신적 체험을 했다는 그는 만 마흔아홉 살의 나이가 되어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록 지병으로 풍을 앓아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언제든 토론을 즐겼던 성격의 소유자라 때로는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고서라도 몰입하는 열정을 자주 보였다고 한다. 부드러우면서 공정한 인품 때문에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를 후원해 주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플라톤의 사상에 심취했던 만큼 육체에 비해 영혼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였으니, 그의 가족 및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오는 것이 없다. [포르피리오스의 <플로티노스의 생애> 중에서].

  다행히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플로티노스의 작품 54권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전해져 온다. 포르피리오스는 스승의 전 작품을 9권씩 묶어서 총 6집으로 편집했다. 이때 그는 나름대로 스승의 뜻을 숙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숫자 9(enneas)는 '완성'의 의미를 띠었기에, 그렇게 스승의 가르침이 완전한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날 플로티노스의 작품을 가리켜 '엔네아데스 (Enneades)'라고 칭한다. 6집으로 배치된 작품들의 내용 및 주제를 보더라도 포르피리오스가 막연하게 편집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엔네아데스 I 6: 아름다운 것에 관해
1. 아름다움은 시각에 있어 완전함이다. 아름다움은 청각에 있어 단어들이 어우러져서도 이루어지고, 모든 음악 안에서도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거기서 선율과 리듬이 아름다움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각을 넘어서 위로 나아간다면, 그래서 아름다운 예술 행위와 실천과 습관들, 나아가 인식 활동과 소위 미덕들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거기서도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그런 모든 것들 위에 또 다른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자체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물질적인 것들로 하여금 눈에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며, 귀에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도록 만드는 것일까? 또한 어째서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영혼과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 더 나아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대로 하나이며 같은 것일까? 아니면 물질적인 것에 있어 아름다운 것과 또 다른 관점에 있어 아름다운 것은 서로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앞의 것은 무엇이고 뒤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묻는 까닭은 한편 물질적인 것들의 경우 그런 기체(基體, hypokeimenon) 자체에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서 아름다움을 알아보게 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기 때문이니, 예컨대 미덕(arete)의 본성(physis)이 그러하다. 게다가 물질적
인 것들 자체는 어떤 때엔 아름답다가도 어떤 때엔 아름답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아름다움 자체는 물질적인 존재들과는 다른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면 물질적인 존재들 곁에 함께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우리가 유심히 관찰해야 할 첫 번째 것이라고 본다.

  관찰하는 자의 눈을 자극해서 그 자신에게로 돌리게 하고는 계속 응시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도록 이끄는 그것은 무엇일까? 이 물음이 중요한 까닭은, 만일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다른 것을 관찰하는 경우에도 그 자체로 머물러 있는 아름다움의 일정한 요소를 따라 수준(단계)별로 말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이미 사람들이 운운해 왔듯이,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마치 그에 속한 부분들의 좌우대칭의 균형이 서로에게, 그리고 전체적으로 잡혀 있듯 여겨진다고, 또한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그런 색깔들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바로 그런 것들 각각에게 해당된다고 하거나 나아가 그런 요소들 전체가 함께 이루어 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9. 아름다움을 얻고자 한다면, 어찌 선한 영혼을 네가 보지 못하겠는가? 네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을 직시하라! 그래서 네 자신이 아직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면, 마치 조각가가 어떤 형상을 조각하듯이 아름답게 되어야 할 부분을 깎아내고 다듬어라. 또한 갈고 깨끗하게 손질하라. 형상의 자태가 아름답게 드러날 때까지 멈추지 말라! 그렇게 네가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 내고 비뚤어 진 것을 바로 세우고 어두침침한 것을 보다 더 말끔해지도록 공들여 그것이 광채를 발 할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네 형상을 다듬는 일'을 멈추지 말라. 너에게서 신을 닮은 형상이 미덕을 따라 밝게 드러날 때까지 말이다. 절제의 덕이 너의 고결한 토대로 자리 잡는 것'을 지켜보게 될 때까지 계속하라! 
[...]
그러므로 만일 신을 보고 싶어 하다면, 정녕 처음부터 모두 신을 닮고 또 모두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은 [누구나] 처음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 정신에 이르게 되고, 거기서 온갖 아름다운 형상들(eide)을 마주하고는 '이것이 아름다움이구나!'하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것을 달리 이데아(idea)라고도 부른다. 왜냐하면 거기 정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자 존재하는 것들(ousiai)에게는 한결같이 아름다움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엔네아데스 V 8: 정신의 아름다움에 관해
8. 그렇다면 저편의 세계는 첫번째로 아름다우며 전체로서, 어디에서나 전체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움에서 일부 변하기라도 하듯이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일이 없다. 그러니 누가 과연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왜냐하면 실장 저편의 세계는 그것이 전체로서가 아니라 부분으로서 아름다움을 지니든가 아니면 그의 일부 가운데 어떤 것이 아름답지 않은 그런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저편의 세계가 아름답지 못하다면, 대체 다른 무엇이 아름답다는 말인가? 분명 저편의 세계보다 앞서 아름다운 것으로 존재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차라리 최초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저편의 세계는 그를 직관으로 안내하여 그에게 형상이 존재하고, 그가 곧 정신의 대상임을, 그래서 그것이 또한 황홀한 존재임을 알아보게 해 준다.
[...]
만일 포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의미에서 '초미(超美, to uperkalon)'가 저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런 조건 아래서 또한 대체 무엇이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는 이 같은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엔네아데스 III 5: 사랑에 관해
1. 누군가가 그 기원을 이전에 영혼(들) 안에서 바라본 그의 아름다움에다 두고는 그것을 다시 알아보고 그와 결합하려고 함으로써 합리성을 넘어 내밀한 관계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행위라 풀이한다면, 내가볼 때 그는 참된 원인을 찾아 낸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반대되는 경우는 자연에 있어서든 신에게 있어서든 추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연은 생산할 때 아름다운 것을 응시하는 만큼 선(agathon)과 맞닿아 있는 것들을 확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추한 것은 그와 다른 것과 맞닿아 있는 것들로서 불확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
그런 점에서 에로스가 포로스와 페니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런 한에서 부족함과 추구하는 노력과 로고스에 대한 기억이 동시에 영혼 안에 자리함으로써 영혼이 선을 지향하는 능력을 낳았다고 할 때,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어미가 페니아인 까닭은 궁핍한 것들을 추구하는 노력이 항상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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