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59 / 제35강(2)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5강(2)

❧ 19세기 부르주아 계급
- 능력있는 개인, 정치적 토대로서의 자유주의, 소유권과 지배권의 결합
❧ 기계장치의 확산과 분업에 대한 분석
- 자연과 인간의 관계, 현실의 생산과정, 일상의 생산과 재생산, 사회적 관계, 정신적 개념

 

2022.02.19 역사 고전 강의 — 59

⟪역사 고전 강의⟫ 제35강 2번째 시간인데 19세기 부르주아계급의 계급적 자부심과 그 상황에서 등장한 프롤레타리아계급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35강을 마치겠다. 35강까지 얘기하면 《공산당 선언》 본문에 관한 얘기는 끝나는 셈이다. 《공산당 선언》 본문이 이를테면 부르주아계급 등장과 전성기를 다루고 그리고 바로 그런 상황에서 부르주아계급이 자기자신을 멸망시킬 하나의 계급을 형성시켜 내는데,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다.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결말을, 원하지 않았던 결말을 피하기 위해서 행했던 일들을 오히려 원하지 않았던 결말을 불러오는 그게 비극이다. 

지난 번에 399페이지 아래 문단부터 읽겠다고 이야기하겠다. "19세기의 부르주아는 계급적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19세기의 부르주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19세기 부르주아의 심성구조라든가 그들의 사유방식이 지금 21세기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뭔가 그 시기 지체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19세기 부르주아가 설계했던 또는 청사진을 그렸던 사회체제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을 바꿔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참 오래 걸린다. 어떤 점에서는 현대사회에 있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직접적인 기원이 바로 19세기에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생겨난 갈등들을 잘 봐야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간략한 팜플렛이 불과한다. 그러나 여기에 쓰여있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함축을 잘 살펴본면서 확장된 공부로 나아가는 하나의 실마리를 삼으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의 기본적인 원천은 무엇인가.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다. "부르주아는 신분질서라는 "신성한 후광"을 찢어 버렸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능력 있는 개인individual'임을 입증하려고 했습니다." 이거 오늘날에 많이 한다. 무능한 놈들이 게을러서 가난한거야.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 얘기들이 19세기부터 형성되어 온 것이다. 사실은 부르주아계급도 사회가 제공하는 무형의 어떤 리소스, 자원을 이용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유능한 능력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등장한 파생물들이 무엇인가. "다윈주의에 열광하여 우승열패의 신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월자가 승리하고 열등한 자는 패배한다. 그것이 사회적 진화론으로 변형되었다. 진화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뿐이지 이것은 다윈의 본래 논지와는 많이 거리가 있는 얘기이다. 바로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19세기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가 형성된다. 토마스 홉스나 존 로크도 자유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 자유주의와 19세기 부르주아의 자유주의는 굉장히 다르다. 19세기 부르주아의 자유주의는 정말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가 형성된 다음에 나온 자유주의인데 그것의 기원이 토마스 홉스나 존 로크 이런 사람들에 있다는 논변도 있었다. 이를테면 '소유적 개인주의' 그런 얘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논변을 담은 책을 30년에 공저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공부를 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19세기 부르주아의 정치적 토대는 자유주의였습니다." 이것과 17세기의 자유주의, 우리가 리버럴리즘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기본적으로 등장한 상황, 맥락이 아주 다르고 그들이 생각한 개인과 19세기의 부르주아가 생각한 개인은 정말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19세기 부르주아의 정치적 토대는 자유주의가 지금 21세기까지 옳은 것으로 전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얘기한 것 같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이제 더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로크적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카합중국에 의해서 그것이 계속 신봉되고 있고 실질적으로 현실적 국가 안에 실현되고 있고 또 그 나라가 전지구적인 패권을,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옳은 것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 여기보면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허용한다는, 굉장히 좁은 의미의 시민적 자유주의입니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인의 심성구조와는 잘 맞지 않는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관철될 때에 자기들의 이익과 부패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가난한 자들이 착취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그들에게 자유를 용납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대중 정치를 시도하면 부르주아는 가차 없이 공권력을 동원하여 진압했습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파리코뮌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소유권과 지배권, 이게 정치적인 지배력이다, 이것을 결합하려고 했다. "소유권은 지상 최고의 원칙이므로 누군가 자신들의 소유권을 침해하려고 하면 곧바로 응징했습니다. 부르주아는 소유권을 통해 정치적인 지배권을 획득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합니다." 400페이지 이 두 문단은 굉장히 중요하다. 19세기 자유주의에 관한 핵심적인 특징을 정리해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지금 현재 21세기의 한국에서 개인의 능력이 무한히 존중되는 사회가 가장 훌륭한 사회다. 이것은 맞다. 그런데 개인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를 따져보자. 너라는 개인이 온전히 너 개인의 힘으로 되었는가, 모든 사회적인 상황과 가족적인 상황을 다 분리해서 실험적으로 조작된 공간에서 경쟁을 했을 때 그 말을 주장하는 너의 말이 입증될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무시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 자체가 개인이 사회적인 자원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회적 맥락을 이론적으로 차단한 상태에서 논변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논변이 틀렸다는 것이다. 전제가 틀렸기 때문에 주장하는 결론 자체가 어이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문단은 19세기에 나온 얘기인데 지금 현재 21세기에 떠드는 자들은 시대착오적이고 의식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이것은 더 이상 참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 이야기이고, '복지국가'라는 용어가 그 말자체가 시혜성이 가득 차 있는 말인 것 같아서 그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다른 용어로 대체했으면 좋겠지만, 복지국가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전국민의 삶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자유를 극대화하면서도 그 자유가 단순히 소극적인 의미에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은 한에서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면 굉장히 소극적인데, 그 자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국가, 그것이 현재 21세기에서 대다수의 국가 패러다임이 그쪽으로 진행되어 간다. 국가가 간섭하고 그런 것은 극도로 제약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19세기적인 자유주의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최첨단의 국가이론은 보편적 돌봄을 행하는 국가이다. 

제35강 399 19세기의 부르주아는 계급적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35강 399 부르주아는 신분질서라는 "신성한 후광"을 찢어 버렸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능력 있는 개인individual'임을 입증하려고 했습니다.

제35강 400 다윈주의에 열광하여 우승열패의 신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35강 400 19세기 부르주아의 정치적 토대는 자유주의였습니다. 여기서 자유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허용한다는, 굉장히 좁은 의미의 시민적 자유주의입니다. 부르주아는 가난한 자들이 착취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그들에게 자유를 용납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대중 정치를 시도하면 부르주아는 가차 없이 공권력을 동원하여 진압했습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파리코뮌입니다.

제35강 400 부르주아는 또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결합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소유권은 지상 최고의 원칙이므로 누군가 자신들의 소유권을 침해하려고 하면 곧바로 응징했습니다. 부르주아는 소유권을 통해 정치적인 지배권을 획득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합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함으로써 부르주아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아직까지는 프롤레타리아 희극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공산당 선언》 1장의 후반부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등장을 다루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이 등장하게된 첫번째 요인은 기계장치의 확산과 분업, 이것으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성격이 변한다. 마르크스가 앞 날을 잘 예언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운용되면서 기계장치의 확산과 분업은 오늘날에도 정말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분업이라고 하는 것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분업 이런 정도였겠지만 오늘날의 분업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이 분업이라는 것은 엄청난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계급도 정말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계급이 등장했다. 분업이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일을 나누어서 한다 그 정도가 아니라 똑같은 배달 노동자라고 해도 직접 고용이 있고 간접 고용이 있는 것, 이런 것들도 다 분업이라고 하는 것 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플랫폼노동자라고 하는 새로운 노동자 형태도 등장했다. 분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기업 형태에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도 분업이라는 것의 종류가 달라진다. 분업이라고 하는 말을 하나의 공장 안에서 제조 공정을 나누어서 이것만 점문으로 하는 사람, 이런 식으로 좁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계급으로 조직되고 정당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은 노동자 운동을 하는 분들이 많이 얘기했던 것. 노동자 계급의 정당. 그런데 노동자 자신들의 경쟁 때문에 파괴된다. 이런 것들도 가슴 아픈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선결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를 노동자의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극우적인 선동들, 그런 것들. 거짓 환상으로 세대를 갈라치는 것, 정말 악질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제35강 400 마르크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함으로써 부르주아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제35강 401 마르크스가 노동자계급을 다루면서 가장 먼저 거론하는 것은 "기계장치의 확산과 분업"입니다.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성격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제35강 403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으로 조직되고 그에 따라 정당으로 조직되는 것은 노동자 자신들의 경쟁 때문에 여러 차례 파괴된다. _《공산당 선언》, , 1장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면 "《공산당 선언》이 이 시기의 주요한 특징으로 거론한 "기계장치의 확산과 분업"은 기술, 자연과 인간의 관계, 현실의 생산과정, 일상의 생산과 재생산, 사회적 관계, 정신적 개념이라는 항목들을 가지고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여섯 가지를 거론했다. 지금 《역사고전강의》에서 상세하게 다룰만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알아내고자 할 때는 이 여서 가지가 굉장히 중요한 분석 항목이 된다. 이 여섯 가지는 마르크스가 쓴 《자본》에서 주로 가지고 분석을 한다. 일단 기술이 있고 기술이 발전한다. 그러면 기계적 생산을 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변화한다. 그리고 기계제 생산을 하면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고 사회 전반을 지배할 수 있게 되니까, 현실에서 생산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생산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어떤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가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인간을 배제할 수 있게 되니까 인간이 쓸모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떤 식으로 재생산되는가. 여기에 중요한 요점이 있다. 인간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인간이 필요없게 되었다. '일상의 생산과 재생산' 그 재생산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재생산도 포함된다. 이게 바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된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순히 아이낳는 사람에게 지원금을 준다 이런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존중받고 인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회경제 체제를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도 계몽주의자니까 그렇다. 생산이 발전하고 기계가 알아서 돌아가면 그때 인간은 기계에서 어려운 일을 맡겨놓고 인간은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안되버렸다. 그런 것들 다음에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 이전의 세상을 '구체제'라고 부르면서 귀족과의 관계를 단절했고('사회적 관계'), 동시에 인간이라고 하는,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종류를 새로 만들었다. 구획을, 범주를 새로 만들었다. 누구를 인간 이하로 취급할 것이고 누구를 인간으로 취급할 것인가, 거기서 바로 '냉혹한 현금계산'이라고 하는 것이 개입되어 있다. 그게 바로 물신숭배가 사람들에게 파고들게 된다. 그게 바로 '정신적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합리적이고, 실패한 사람은 비합리적 사람이라고 하는 결과론적 설명이 자리잡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의 세계관에 찬동하는 한에서만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체제의 작동원이를 부정하는 순간, 체제 밖으로 곧바로 떨려 나갑니다."  

제35강 405 《공산당 선언》이 이 시기의 주요한 특징으로 거론한 "기계장치의 확산과 분업"은 기술, 자연과 인간의 관계, 현실의 생산과정, 일상의 생산과 재생산, 사회적 관계, 정신적 개념이라는 항목들을 가지고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35강 406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의 세계관에 찬동하는 한에서만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체제의 작동원이를 부정하는 순간, 체제 밖으로 곧바로 떨려 나갑니다.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라는 말은 민주정과 민주주의를 가리킬 수 있는데 아주 좁은 의미로 의사결정 과정을 가리키는 민주정만 의미한다고 할 때 사실 대한민국의 목표는 공화국이다. 공화주의라는 말의 일번 뜻은 공동의 이익을 위한 국가라는 것이다. 아주 뻔한 얘기이다. 그러면 로마공화정은 SPQR, ‘세나투스 포풀루스크 로마누스Senatus Populusque Romanus’,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이다. 그러나 로마공화정을 자세히 보면 결국 원로의 이익에 복무하는, 공화라고 하는 것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국가라고 되어있는데, 공동 안에 누구를 집어넣을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 전인민의 공화국이라고 하면 인민공화국이다. 우리는 민주정이라는 절차를 걸쳐서 전국민의 이익을 위한 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공화국의 이념이다. 그런데 공화국이라는 것이 조금 허황되어 보이니까 민주주의를 추구해야할 필요가 있겠다.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앞세우고 그것을 현실화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때 전인민의 공화국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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