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60 / 제36강(1)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36강(1)

“19세기 세계에서는 국민경제들 사이의 경쟁이 절정에 이른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은 유한계급으로 변태하고, 세계에는 세기말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이 아직은 절멸되지 않은 상태이다.”

 

2022.02.22 역사 고전 강의 — 60

《옥스퍼드 세계사》를 읽다가 ⟪역사 고전 강의⟫를 읽으니까 마치 두 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이 《옥스퍼드 세계사》만큼이나 좋은 책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시기가 지금 비슷해졌다. 《옥스퍼드 세계사》를 읽으면서 ⟪역사 고전 강의⟫를 얼마나 제대로 썼나 점검해보는 그런 기회가 되기도 했다.  36강, 37강이 말하자면 근대세계의 끝자락인데 제4부가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이 부분이 현대이다. 현대라는 말을 안쓰려고 한다고 했는데, 이때 ⟪역사 고전 강의⟫를 쓸 때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역사에 대한 하나의 관점은 마르크스주의적인 경향, 지금도 변함이 없다.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늘 생각하면서 역사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어떻게 연결지어지는가, 그 다음에 최근에 지난 5~6년 전도 확고하게 가지게 된 생각이 인류세에 대한 생각이다. 이 세가지 정도가 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보는 기본적인 틀이고, 거기서 중요하게 보는 것이 국제관계적인 통찰, 민족중심주의는 좀 배척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19세기 세계에서는 국민경제들 사이의 경쟁이 절정에 이른다." 이게 바로 속된 말로 피터지는 국민국가의 싸움인데 국민국가의 싸움이 사실은 국민경제들 사이의 경쟁이었다는 것, 이렇게 보면 사회경제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뼈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가지고 있는 일종의 역사관이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은 유한계급으로 변태하고, 세계에는 세기말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변태라 단어는 형태가 변화했다는 말이다. 이것을 변화했다는 단어는 쓸 수 없다. 부르주아계급이 근면과 성실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는 일단 차치하고, 굉장히 근면하고 성실했다는 것은 인정을 해주자는 태도. 19세기가 되면서는 유한계급이 된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했다는 유한계급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기말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이는 문화적인 것인데 《옥스퍼드 세계사》 5부 2장, 제12장이 세기말적 징후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것의 구체적인 양태들은 《옥스퍼드 세계사》를 참조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기는 하다. 다만 ⟪역사 고전 강의⟫를 읽으면서는 국민경제, 세계적인 징후를 굵게 써놓은 것을 보면 이 두개의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보는구나를 뚜렷하게 잡아내면 좋을 것이다. ⟪역사 고전 강의⟫ 이 책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구체적으로 거론해가면서 서사를 만드는데, 그 서사를 어떠한 틀을 가지고 어떠한 패턴 속에서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저의 시도이다. 꼭 이 관점만 가지고 역사를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관점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가져다가 이 관점 속에서 이런 식으로 조망해 볼 수 있다는 하나의 예시를 들어서 보이는 것이다. 철학을 전공한, 전공이 실천철한 분야인데, 전공한 사람이 형이상학적인 기본학습을 한 사람이 적어도 세계사의 책들을 읽어서 자기자신의 하나의 역사관을 가지고 세계사의 사실들을 가져다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서 500페이지 정도되는 이런 책을 하나 써낸다고 하는 것, 이런 시도들이 사실은, 역사철학 전공자니까 한번 이렇게 해보는 것, 이게 다학제적인 학문연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문 고전 강의⟫에 이어서 두번째로 ⟪역사 고전 강의⟫를 썼는데 이것을 쓰고 났을때는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나름 스스로 뿌듯했었다. 그리고 지금 《옥스퍼드 세계사》를 읽으면서 보니까 그렇게 많이 어긋난 지점으로 가지는 않았구나 라는 위안도 갖게 된다. 이때 모형으로 삼았던 책이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였다. 《역사철학강의》는 전공텍스트이다. 열심히 읽어서 박사논문을 썼는데 《역사철학강의》를 읽으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왜 우리는 《역사철학강의》만 읽어야 하나. 우리도 《역사철학강의》 하나 쓸 수는 없을까. 헤겔은 세계사의 사태들을 자기가 생각하는 역사관에 가져다가 쓴 것이다. 그러니까 좀 오만하게 말하자면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는 고전텍스트를 가져다가 해설하는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와 같은 그런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 책이다. 제목은 ⟪역사 고전 강의⟫인데 속 내용은 부제처럼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전진하는 세계를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인간, 성찰하는 인간이 여러분도 되고 저도 된다. 일차적으로는 제가 썼으니 저인데, ⟪역사 고전 강의⟫라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강유원의 역사철학강의이다. 헤겔도 《역사철학강의》를 스스로 쓴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이 강의한 것을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것을 묶어서 내놓은 것이다. 

제36강 407 19세기 세계에서는 국민경제들 사이의 경쟁이 절정에 이른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은 유한계급으로 변태하고, 세계에는 세기말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이 아직은 절멸되지 않은 상태이다.

36강, 37강이 19세기인데 이 19세기부터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인류세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인류세의 시작은 자본주의 시대이고 부르주아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쓰게 되고 이 시대를 다룬 책들은 모두다 부르주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이다. 다만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들이 최후의 승리자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려고 했다. 파리코뮌에 관한 얘기가 408페이지에 있는데 이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정말 폭력적으로 진압된 것이고, 이것을 잘 알아두어야 하는데 "프랑스 정부군만으로는 진압하기 어려워서 국제 연합군을 조직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모든 나라가 참전함으로써 '국제적 연대를 통한 폭력적 응징'이라는 상징적인 효과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 기조를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 상징적인 것이 바로 예술가들이 모여산다고 하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다. 그곳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았던 코뮌 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포격을 했다. 그리고 이 사태가 얼마나 프랑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가. "파리는 1977년이 될 때까지 직선제 시장을 뽑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을 보면 공포정 시기에 죽인 사람보다 이 짧은 시기에 파리 코뮌에서 죽인 사람이 더 많다. 그만큼 강력한 사건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을 왜 지었느냐. '파리는 회개하노라'라는 의미이다. 파리 코뮌을 진압하고 지은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쓴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를 보면 그 성당의 건립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한때는 열심히 읽고 추천도 한 책이다. 이 책은 정말 명저 중의 명저이다. 

제36강 408 프랑스 정부군만으로는 진압하기 어려워서 국제 연합군을 조직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모든 나라가 참전함으로써 '국제적 연대를 통한 폭력적 응징'이라는 상징적인 효과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제36강 408 파리는 1977년이 될 때까지 직선제 시장을 뽑지 않았습니다.

파리코뮌이 폭력적으로 진압된 다음, 유럽의 부르주아계급 사이에는 이른바 민주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게도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제공해서 계급 갈등을 유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1871년 이후이다. 이렇게 보면 유럽 사회에서도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말하는데 결코 그런 말이 옳은 이야기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프랑스라고 해서 우리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서구 사회에서도 미국 사회를 제외하면 유럽도 본격적인 의미에서 민주정, 민주 헌법이 만들어져서 헌법에 바탕을 둔 민주정 체제라고 하는 것, 레짐이 만들어 진 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와도 똑같다. 우리도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해방이 되면서 제헌헌법이 제정되었다. 별 차이 없다. 물론 그들은 헌법을 만들면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우리는 제헌헌법이 어떻게 보면 거져주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렇지만 그들만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들의 희생을 업신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데모스가 지배하는 정치는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머리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민주화가 되면 혁명을 방지할 수 있지만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관철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부르주아는 상원 제도 같은 장치를 마련하여 인구 비례로 대표를 뽑은 하원을 압박했는데", 상원, 하원, 미합중국도 상원이 있다. 별로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다. 세네트라고 하는 것이 귀족정이다. 로마 원로원의 senaus에서 따온 것이니까 말그대로 귀족정이다. 그런 것들을 늘 생각해야 한다. 19세기부터 등장했던 경제적인 것보다는 지금 말하는 정치적인 변화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36강 409 파리코뮌을 폭력으로 진압한 다음, 유럽의 부르주아계급 사이에는 이른바 민주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게도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제공해서 계급 갈등을 유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제36강 409 민주화가 되면 혁명을 방지할 수 있지만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관철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부르주아는 상원 제도 같은 장치를 마련하여 인구 비례로 대표를 뽑은 하원을 압박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장치가 '대중 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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