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13장(3)

 

2022.04.11 옥스퍼드 세계사 13장(3)

《옥스퍼드 세계사》 13장 세번째 시간이다. 여러차례 얘기했듯이 13장은 촘촘하게 천천히 여러 번에 걸쳐서 읽는다. 『20세기 읽기』를 준비하는 일종의 예비시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20세기를 다룬다는 것은 짧은 문장 안에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넘어가기가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현재 인류세라고 부르고 있는 제5부를 읽고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1815년부터 2008년까지가 기간은 짧아도 아무래도 현대적인 일이니까 가까운 시대에 일어난 일이니까 여러가지가 많다. 

제국과 근대화, 제국주의가 전세계적으로 즉 17,18세기 서구 유럽에서 시작된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그에 이은 프랑스혁명 이후에 제국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전지국적으로 서구 국가들이 자기들의 세력을 펼쳐보이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식민지를 침탈하기 시작하면서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시작한다. 지난 시간에 근대화라는 것이 균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기존사회와 문화의 성격 및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불균등 근대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 사회와 문화의 성격 및 정체성" 옆에다가 불균등 근대화의 원인이라고 적어두면 되겠다. 근대화를 겪은 여러 나라들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기존 사회와 문화의 성격 및 정체성이다. 그렇지만 19세기 세계 정세에서는 제국주의가 거의 규범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서구 유럽 국가들에서만 통용되는 규범인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과 이집트, 에티오피아, 일본 같은 야심 찬 비서구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것까지 함께 살펴봐야 하는 문제가 되겠다. 

제13장 594 핵심요소는 기존 사회와 문화의 성격 및 정체성이었다.

제13장 595 제국주의는 19세기 세계정세에서 거의 규범이나 마찬가지였고, 중국과 이집트, 에티오피아, 일본 같은 야심 찬 비서구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1904년 영국 병력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진군하여 그 이전에 중국에 존재했던 더양한 문화적 형태들과는 다른 문화적 도전을 제기했다." 이게 바로 이제 이른바 중앙아시아의 그레이트게임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중앙아시아의 그레이트게임이라고 하면 영제국과 러시아의 세력 다툼. 러시아는 이때부터 러일전쟁을 거쳐서 소비에트연방까지 있다고 해도 이때부터 계속 제국주의를 펼쳐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연합이 보여준 무기력함. 프랑스혁명 이후로 근대사, 현대사에, 1815년부터 현대사라고 잡는다면, 가장 중요한 추상적인 이슈가 근대국민국가의 형성이다. 그런데 596페이지를 보면 "1919~1920년까지 제국 권력이 전 세계로 팽창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제국 권력이 더 포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시기는 20세기였다." 제국 권력이 포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라는 것은 국민국가, 근대적인 의미의 국민국가 형성을 방해하는 세력이 제국주의 세력이다. 근대국민국가라고 하는 것이 일정한 정도 자생적인 곳에서는 프랑스처럼,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서 왕정을 종식시키고 국민국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었다면, 이제 다른 지역들은 중국이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근대국민국가라는 것이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면서 형성되었다. 그런데 20세기에도 여전히 근대국민국가 형성이 잘되고 있지 않은 지역이 있다. 그 지역은 소련 공산주의의 바르뱌사 조약이다. 이른바 유럽의 동구권 나라들. 동구권 나라들이 근대국민국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소비에트제국이라는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련은 1917년부터 1991년까지 러시아 제국을 공산주의 독재정으로 통치했다." 이 문장이 그냥 간단한 것 같아도 이 필자는 1917년부터 1991년까지의 소비에트 연방을 러시아 제국이 통치형태만을 공산주의 독재정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라고 하는 것을 이 문장이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련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에 속해 있다가 그 이후 잠시 독립을 누렸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지를 장악했고, 2차대전 말기에 폴란드, 루마니아, 동독으로부터 영토를 획득했다." 이 문단이 소비에트 연방도 제국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1년 러시아 제국을 공산주의 독재정으로 통치했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근대국민국가가 중앙아시아라든가 중동부 유럽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그 마지막 끝단에 있는 것이 우크라이나이다. 이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패퇴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면 푸틴의 업적이 무엇인가. 러시아 제국의 차르를 꿈꾸던 푸틴이 러시아 제국이라고 하는 것, 19세기부터 계속되어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제국, 오랜 러시아 제국의 오랜 꿈을 드디어 완전히 깨뜨려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 제국 아래 있던 여러 식민 국가들을 드디어 근대국민국가로 만들어주는 폭발적인 계기가 된다. 그것이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이런 지역들은 이미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었다.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났고 러시아 영향력에서도 벗어났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이번에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서 폴란드, 헝가리는 예전에 근대국민국가가 되었는데 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아래 엤던 제국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동유럽 민주화를 거치면서 근대국민국가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는, 근대국민국가가 되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자기네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이른바 극우파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요즘에 헝가리가 극우파가 극도로 득세하는데 그 과정이 무엇인가. 근대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인 의미에서 좋은 의미의 미합중국 같은 제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그것은 어렵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된다. 그리고 발칸 반도의 오스만 제국 아래 있던 나라들이 해체된다. 그러면서 프로이센이 사라진다. 독일이라고 하는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본래는 오스트리아가 그 지역의 맹주였는데 오스트리아라고 하는 별도의 나라가 된다. 슐레지엔 지방 같은 경우는 폴란드, 체코 이런 근대국민국가가 성립되었고, 발칸 반도의 경우에도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그 형성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이이다. 그런데 이것이 완전히 작동해서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지는 않았고 제국의 야욕이 남아 있던 나라들끼리 서로 다시금 제국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전개되었다. 그러면 미처 근대국민국가가 되지 못했던 나라들이 1991년 소비에트 러시아가 해체되면서 중부유럽에서 다시 생겨났고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러면 크게 보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즉 합스부르크 제국의 소멸부터 시작해서 이번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전체적으로 중동부 유럽의 근대국민국가 성립이라고 하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제13장 594 1904년 영국 병력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진군하여 그 이전에 중국에 존재했던 더양한 문화적 형태들과는 다른 문화적 도전을 제기했다.

제13장 596 19세기에, 실은 1919~1920년까지 제국 권력이 전 세계로 팽창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제국 권력이 더 포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시기는 20세기였다.

제13장 596 소련은 1917년부터 1991년까지 러시아 제국을 공산주의 독재정으로 통치했다.

제13장 596 소련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에 속해 있다가 그 이후 잠시 독립을 누렸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지를 장악했고, 2차대전 말기에 폴란드, 루마니아, 동독으로부터 영토를 획득했다.


"제국주의는 이웃한 민족들 사이에서 선교, 역사적 운명, 승리주의, 인종주의, 문화적 오만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일제 식민지의 잔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머리속에 심어둔 피식민지 인들의 피해의식이 있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제국주의는 근대 서구 열강을 가리키긴 하지만, 수단을 상대하는 이집트의 태도와 오가덴 지역을 상대하는 에티오피아의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또 한국을 상대하는 일본의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일본국은 아직도 그런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잘 안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기회를 찾는 강대국 간 경쟁에서도 드러났다." 이게 서구의 제국주의가 어떤 형태를 보였고 그것을 흉내 낸 아제국주의는 어떠했는가를 이집트, 중국, 일본 이런 나라들에서 볼 수 있다. 596페이지를 보면 그러면서도 통제력에서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통제력에서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나게 된 것도 제국주의가 펼쳐지면서 심어놓은 일종의 근대적인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이 들어오면서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그런 근대화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근대국민국가라는 의식을 갖게 되면서 그 제국에 반대하는 세력이 되었다. 제국 덕분에 이런 반대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리고 또한 아이러니한 것은 "(광범한 탈식민지화를 경험한) 20세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주의의 고전기인 19세기보다 세계화에 훨씬 더 중요했던 시기로 드러났다." 19세기를 제국주의라고 부른다면 20세기는 세계화의 시기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사실 세계화라고 하는 것도 제국주의의 다른 명칭에 불과하다. "흔히 그렇듯이 이 역설은 얼마간 말재간에 지나지 않는데, 무엇보다 20세기 역시 제국주의 시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596페이지의 아래 두 문단은 아주 중요한 얘기를 담고 있다. 간과해서는 안된다. "20세기의 세계화는 인구의 대다수에게 다가가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세계화보다 더 집요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했던 것처럼 분쟁 중에,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정책 수단을 통해 현지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런 노력은 제국의 영토 통제력이 약해지는 듯 보일지라도 그것을 대체하는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다시말해서 20세기의 제국주의, 즉 세계화라고 하는 이름으로 펼쳐진 제국주의는 문화 제국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력으로 동부 유럽을 장악했지만 자기네들도 무너지고 그러면서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이런 나라들이 근대국민국가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근대국민국가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인 패퇴의 요인은 문화적 영향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미합중국을 미제국주의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그렇다. 군사력도 비견이 안되지만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제국주의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그래서 "이 논점은 제국 통치에 대한,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도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당연하게도 문화적 영향력이 있어야 하고 이제 이것이 한 나라 안에서도 A라는 정치적 집단과 B라는 정치적 집단이 서로 경쟁을 한다고 할 때 어떤 집단이 더 문화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문화라고 하는 것이 바로 20세기, 21세기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핵심어로써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제13장 595 제국주의는 이웃한 민족들 사이에서 선교, 역사적 운명, 승리주의, 인종주의, 문화적 오만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형태의 제국주의는 근대 서구 열강을 가리키긴 하지만, 수단을 상대하는 이집트의 태도와 오가덴 지역을 상대하는 에티오피아의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제13장 595 제국주의는 경제적 기회를 찾는 강대국 간 경쟁에서도 드러났다.

제13장 596 아이러니하게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제국의 통제력에서 반대하는 세력이 생겨난 것은 어느 정도는 제국들 내에서, 특히 영 제국 내에서 서구의 이념과 관행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제13장 596 (광범한 탈식민지화를 경험한) 20세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주의의 고전기인 19세기보다 세계화에 훨씬 더 중요했던 시기로 드러났다.

제13장 596 흔히 그렇듯이 이 역설은 얼마간 말재간에 지나지 않는데, 무엇보다 20세기 역시 제국주의 시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13장 596 20세기의 세계화는 인구의 대다수에게 다가가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세계화보다 더 집요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했던 것처럼 분쟁 중에,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정책 수단을 통해 현지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런 노력은 제국의 영토 통제력이 약해지는 듯 보일지라도 그것을 대체하는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제13장 597 이 논점은 제국 통치에 대한,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도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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