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백치(하) ━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세트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세트 - 전8권 - 10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홍대화 외 옮김/열린책들

 

제3부
009 우리나라에는 실무적인 인물이 없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예를 들어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장군들, 그리고 언제나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온갖 분야의 경영인들은 많으나 실무적인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불평하고 있다. 몇몇 기차역에는 제대로 된 역무원 하나 없고 어떤 선박 회사에서는 그럭저럭 쓸 만한 간부진을 갖추는 일조차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개설한 어느 철로에서는 기차가 충돌했다느니, 어떤 철교에서는 객차가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기차가 눈 덮인 벌판에서 겨울을 날 뻔했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기차가 몇 시간 달리다가 제자리에 멈추어 닷새 동안 눈 속에 갇혀 있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수천 파운드나 되는 물건이 이제나저제나 발송을 기다리다 그냥 썩어 버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곧이 들리지 않는 얘기지만). 어떤 역에서는 행정 책임자가, 아니 그렇다기보다 현장 감독이, 물건을 부쳐 달라고 어느 상점 종업원이 졸라대자 물건을 부쳐 주기는커녕 오히려 따귀를 때리고 나서, 자신의 그와 같은 행정적 조처를 그저 〈약간 흥분해서〉라고 해명했다. 그와 같은 관청의 숫자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할 정도로 많다. 수많은 사람이 그런 관청에서 근무했고, 지금도 근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근무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와 같은 인적 자원으로 능률적인 선박 회사의 경영진 하나쯤 편성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이러한 의문에 가끔 지극히 간단한 해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 답이 너무나 간단해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이렇게들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백 년 동안 가장 좋은 독일식 모델을 따라 증조부에서 증손까지 모두들 근무를 해오고 있는데, 근무자들은 가장 실질적이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상성과 실무지식의 결여가 마치 최상의 장점이나 꼭 그렇게 해야되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우리는 공연히 근무자들에 관해 언급한 모양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실무적인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심하고 창의성이 부족한 것이 실무적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으레 간주되어 왔다.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이다. 만약 이러한 견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우리 러시아인만을 비난해야 하는가? 세계 도처에서 언제나 독창성의 부족은 먼 옛날부터 실질적인 실무자의 첫번째 자질이자 표본이 되어 왔다. 적어도 1백 명 중 99명은(최소한으로 잡아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왔고, 1백명 중 한 명만이 항상시각을 달리해 왔을 뿐이다.

 


제4부
273 우리 얘기의 두주인공이 초록색 벤치에서 만난지 1주일이 지났다. 햇살이 밝은 어느날 아침 10시 반쯤에 친지를 만나러 나갔던 바르바라 아르달리오노브나가 침통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집으로 돌아왔다.

유형적인 면에서나 성격적인 면에서 한마디로 어떤 인물이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보통 〈평범하다〉든지 〈대부분에 속한다〉는 말로 불린다. 사실상 그들은 모든 계층의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작가들은 각계각층의 전형을 자신의 소설 속으로 도입하여 그것을 다시 예술적으로 나타내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전형은 현실 세계에서 드물게 나타나지만 현실 자체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등장한다. 폿콜료센은 전형의 측면에서 아마도 과장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다지 유례없는 인물은 아니다. 다수의 현명한 사람들은 고골의 작품을 통해 폿콜료신을 알고 나서, 그들이 알고 있는 수십 명 수백 명의 착한 알음알이들과 친구들이 폿콜료신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고골의 희극이 나오기 전부터 그들은 친구들이 폿콜료신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들이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는 점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실제로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신랑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우는 매우 희박하다. 뭐니 뭐니 해도 그런 짓을 하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결혼식 직전에 신랑들이란, 심지어는 아주 마음가짐이 곱고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신이 바로 폿콜료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한다. 물론 모든 남편이 그럴 때마다 <이거야말로 네가 바라 마지 않던 것이다, 조르주 당댕 〉이라고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밀월이 끝난 후 이 세상의 남편들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그러한 외침을 수백만 번 수십억 번 되풀이하지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바로 결혼식 다음 날부터 그렇게 외쳤는지 누가 알겠는가?

572 가족이 아글라야를 백작에게 내주면서 우려했던 점들이 반년 사이에 전부 현실로 드러났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사실까지 벗겨졌다. 그 백작은 알고 보니 진짜 백작이 아니었다. 그가 실제로 망명자였다 하더라도, 조국에서 뭔가 뒤가 구린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순결한 영혼으로 조국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지극한 고결함으로 아글라야를 사로잡았다. 아글라야는 그의 포로가 되어 결혼도 하기 전에 폴란드 부흥 해외 위원회의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백작의 친구라고 하는 어느 가톨릭 신부를 광적으로 숭상하여 그의 고해실을 드나들었다.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와 S 공작이 확인한 거의 반박할 수 없는 자료에도 불구하고 백작의 막대한 재산은 완전히 허구였다. 그뿐이 아니다. 결혼 후 반년 동안 백작과 그의 친구인 저명한 가톨릭 신부는 아글라야를 부추겨 가족과 싸우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 몇 달 동안 가족은 아글라야를 보지 못했다. 요컨대 할 얘기는 많지만, 이 모든 〈테러〉에 혼쭐난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와 딸들, 심지어는 S 공작까지, 예브게니가 아글라야의 연애에 얽힌 사연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예브게니와의 대화에서 그 일을 언급하기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다. 가없은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러시아로 가고 싶어 했다. 예브게니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외국 것이라면 무엇이든 신경질을 부리며 일방적으로 비판했다는 것이다. 〈어딜 가든 빵 하나 제대로 굽는 데가 없어! 겨울에는 마치 쥐새끼처럼 지하실에서 비들바들 떨고들 있다니까〉라고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말했다 〈최소한 이런 데서는 이 불쌍한사람을 보고 러시아어로 슬퍼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말이야.〉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공작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덧붙였다. 〈그만큼 외국 것에 한눈을 팔았으면 충분하지. 이젠 이성을 찾을 때도 됐는데 말이야. 이 모든 것, 이 모든 외국 것, 당신네 유럽의 모든 것은 오직 환상에 불과해······. 외국에 나와 있는 우리 모두도 환상일 뿐이야. 예브게니, 내 말을 새겨들어요. 당신도 직접 보게 될 테니까요!〉 그녀는 예브게니와 헤어지면서 분통이 터질 듯한 소리로 외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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