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필사본 - 김유리 외 지음/일파소 |
제 1장 비잔틴 필사본
제 2장 섬양식 필사본
제 3장 카롤링 필사본
제 4장 오토기 필사본
제 5장 스페인 중세 필사본
책머리에
30여 년 전, 뮌헨 소재 바이에른 주립도서관의 어둡고 큰 특별전시실에서 870년경에 제작된 성 에머람 필사본 원본과 마주하며 받았던 깊은 감동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시실 중앙에 홀로 세워진 커다란 유리 진열장에 오직 필사본 한 점이 희미한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고, 그 필사본의 빛 바랜, 낡고 두꺼운 양피지 책장들과 보석들로 장식된 화려한 황금표지가 뿜어내는 신비로움은 강한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오늘날 우리는 천년이 넘는 오랜 세월의 결이 차곡차곡 배어있는 중세 필사본을 대하게 되면 그 강한 아우라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사실 중세 필사본 원본을 대할 기회는 매우 드물게 주어진다. 현재의 소장기관들은 대부분 국 · 공립 도서관인데, 그들이 소장한 귀중본의 훼손을 우려하여 원본의 전시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각 소장기관이 주요 필사본 원본을 디지털화하여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역사학자들 간에 시대구분에 관해 이견이 없지는 않으나, 역사적으로 중세는 대략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부터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시기를 의미하며, 문화사적으로는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인들 삶의 중심이었던 중세의 미술은 교회 건축 공간을 중심으로 건축, 조각, 회화로 분류하여 관찰할 수 있는데, 교회 건축은 바실리카를 시작으로 로마네스크, 고딕 등의 거대한 양식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교회 내 · 외부 공간에 세워진 조각상과 부조는 교회 건축에 상응하는 조각의 다양한 양식상의 변화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에, 후기 로마네스크에 이르러 스테인드글라스가 교회 공간에 등장하기 전까지 중세 회화의 유일한 장르는 채색 세밀화가 들어있는 필사본이었다. 그러니까 한동안 필사본이 중세 회화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필사본에 들어있는 채색 세밀회는 교회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이나 부조 작품에서 보이는 조형적 특성(비 사실적 인체 비례, 소박하고 설명적인 장면묘사, 부정확한 공간과 배경의 처리 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에 더하여 필사본에 사용된 다양한 표현적 색채는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에 함유되어 있는 색채의 상징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사본의 중세 미술사적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며, 필사본이 지닌 조형적 특성은 바로 중세 회화의 조형적 진면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의 필사본은 대략 종교적 필사본과 비종교적 필사본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비종교적 필사본은 소량의 문학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식물도감이나 의학서 등의 실용적 용도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리스르의 전례 와 수도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된 종교적 필사본과는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비교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하여서 본 연구서에서는 중세 유럽의 종교적 필사본 즉 그리스도교 성서 필사본에 집중하였고, 특히 미술사적 의미와 가치가 높은 채색 세밀화가 들어있는 성서 필사본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성서 필사본은 교회의 전례적 수요와 용도에 따라 매우 다양한 종류로 제작되었으나, 가장 빈번하게 제작된 것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신약과 구약이 모두 들어있는 성경, 시편, 네 복음서가 모두 실려있는 신약성서, 교회력에 따라 주일미사나 축일미사에 읽히는 신약성서에서 발췌된 전례용 복음서, 미사기도문(혹은 미사전례기도집), 미사 때 바칠 기도문과 예식 순서를 모두 수록한 전례서인 미사경본 등이다.
중세의 성서 필사본은 제작장소와 제작연대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드러내며 전개되었다. 중동을 포함하여 비잔틴(현재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제작된 것과 서유럽에서 제작된 것, 그리고 아일랜드와 브리튼(영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대별된다. 연대기적으로는 비잔틴 양식, 섬 양식 Insular, 카롤링 양식, 오토 양식,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으로 세분된다. 그리스도교가 동방에서 탄생하여 서유럽으로 전파되었듯이, 성서 필사본도 시리아, 이집트 등 동방에서 처음 제작되어, 이후 그리스도교의 포교 루트를 따라 서진하며 확산되었고, 제작지역 고유의 민속적 요소와 융합되면서 각기 독특한 조형적 특성을 지닌 양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필사본 제작은 깊은 신학적 통찰, 축적된 경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전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긴 작업시간과 큰 비용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극히 소량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고, 주로 왕, 귀족 또는 고위 성직자 등 최고위층의 주문에 의해 제작될 수 있었다. 따라서 필사본 소장은 오직 최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지적 사치였다. 그 때문인지 화려하고 독창적인 채색 세밀화가 들어있는 필사본은 대부분 제작자가 아니라, 주문자나 소유자의 이름으로 전해져 왔다.
동물의 가죽이나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두루마리 형태로 전해져 내려오던 성서 필사본은 4세기경에 이르러 나무판 등의 단단한소재로 외장된 코덱스Codex 형태의 필사본으로 로마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코덱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반화되어 있는 책의 형태와 매우 유사한 구조로 제 작되었으며, 두루마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록 · 보존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코덱스의 신속한 확산은 아마도 원하는 내용을 확인하려면 처음부터 다 펼쳐야 했던 두루마리에 비해, 정보검색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기능성에 기인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5세기경부터 동로마 제국에서 화려한 저부조 금속 판넬로 외장왼 코덱스 형태의 성서 필사본이 제작되기 시작하여 널리 퍼져냐갔다. 필사본이 제작과정은 매우 복잡해서 필사단계에 이르기까지 양피지(혹은 우미지) 준비에만도 여러 단계의 작업을 거쳐야 했다. 동물 가축의 세척 작업으로 시작되어, 약품처리(석회소독) 단계를 거쳐 장시간의 건조 작업과 무두질 작업이 이어졌는데, 여기까지가 오랜 노동과 시간을 요하는 필수 선제 작업이었다. 양피지가 준비되면 비로소 필사가와 화가의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성서 한 권을 필사 · 제작하는 데에 전문 필사가와 화가가 꼬박 일 년여 동안 협업하며 전직으로 집중해야 했던, 어렵고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필사본의 크기는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되었는데, 대략 미사 중에 쓰이는 복음서나 전례서는 30×45cm 정도였고, 도서관이나 수도원의 보관용 필사본은 길이 20-35cm, 폭 15-25cm 정도 되었다. 그 밖에 개인 기도용 필사본은 휴대하기 편한 크기로 더 작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당대의 걸출한 필사가, 화가들이 심사숙고하고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필사본 원본에는 그들의 가뿐 숨결과 담백한 손맛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우리에게 전해지는 강한아우라는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이렇게 정성들여 제작된 수많은 필사본이 훼손되거나 파손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전쟁, 화재, 도난 등의 재해에 의한 파손이 대부분의 원인이었겠으나, 양피지가 워낙 고가인데다가 새로운 양피지 생산 또한 원활하지 못한 시기가 많았기 때문에 기존의 필사본을 재활용하기 위해 필사된 텍스트를 지우고 다시 사용한 경우도 허다하여, 그로 인한 파손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세 성서 필사본의 진수는 엄격하게는 로마네스크 후기 혹은 고딕 초기에 그 생명을 다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고딕 중기에 들어 목판 인쇄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필사본 제작의 가치와 의미는 자연스럽게 희석되어 갔기 때문이다. 종이는 유럽에 8세기 경부터 등장하였다고 전해지나 13세기에 이르러서야 그 사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중세 필사본 제작에서는 종이 사용의 예를 찾기 어렵다. 12-13세기부터 서서히 발전되어 온 목판인쇄술과 종이가 조우하면서 유럽에서 그 사용이 비로소 활성화되어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중세미술에 관한 개괄적 연구가 매우 미흡할 뿐만 아니라 중세미술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필사본에 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학문적 현실에서,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세 명(박성해, 김유리, 최경진)의 졸업생이 이 연구서 출간 프로젝트에 주축이 되었다. 그들의 지도자로 강의실에서 재학 기간 내내 마주했던 교수들도(김재원, 윤인복) 이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거들었다. 연구진은 오래전부터 반복적인 검토와 토론을 거쳐 중세 필사본의 각시대적 양식인 비잔틴, 섬 양식, 카롤링, 오토, 그리고 중세 그리스도교 회화사에서 특수한 위치를 점하는 스페인의 필사본을 탐구하였다. 그들은 각각의 학문적 관심에 따라 양식을 선택하였고, 그에 관하여 석사 논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연구진 기운데 몇몇은 자신의 석사논문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집필하였다. 그러니까 본 연구서는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사학 전공 교실에서 서로 마주하고 학문적 호기심과 열기를 뜨겁게 달구던 이들의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시대순으로 비잔틴 필사본(윤인복), 섬양식 필사본(김유리), 카롤링 필사본(김재원), 오토 필사본(최경진), 스페인 필사본(박성혜)으로 분류하여 각각 작성하였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중세 성서 필사본은 비잔틴 시기로부터 고딕 초기까지 이어진 유럽 그리스도교 회화사의 핵심적 부분이다. 아쉽게도 본 연구는 비잔틴, 섬 양식, 카롤링, 오토, 스페인까지의 필사본에 관한 개괄적 연구에 그쳤다. 결코 그 중요성이 작지 않은 로마네크와 고딕 초기까지의 필사본에 관한 연구는 채워지지 못했다. 멀지 않은 장래에 후속 연구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나름 심혈을 기울인 연구 결과를 담아낸 오늘의 이 결실이 비록 어설프고 부족하더라도 그들이 보여주는 중세미술에 관한 깊은 관심과 학문적 열정은 향후 더욱 탄탄한 연구 결과물로 문제점을 스스로 극복해 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더욱 촘촘하고 알찬 결과를 향한 진지한 지적과 채찍을 고대한다. 동시에 부족하나마 본 연구서가 중세 미술사 혹은 중세 성서 필사본 연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일차적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연구자들에게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끝으로 쉽지 않았을 결정을 내려 출판을 맡아주신 일파소 이동석 대표님, 최홍규 편집장님과 담당 제작진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일파소의 눈부신 활약과 번영을 기원한다.
2021년 깊은 가을에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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