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섭: 국가·주권

 

국가.주권 - 10점
박상섭 지음/소화

<한국개념사총서> 발간사
저자의 말

서론-국가 개념의 다의성과 연구의 의의

Part 1 국가

1. 서양에서 국가 개념의 변화
Status/Stato의 기원|국가이성|근대적 국가 개념의 성장|독일에서의 국가 개념의 형성과 발전
2. 한자 문명권에서 국가의 개념
중국에서의 국가 개념|일본에서의 국가 개념
3. 한국사 전통에서 국가의 개념
고구려/고려(<삼국사기>-<삼국유사>)|조선조의 기록물|새로운 국가 개념의 시작|
취약한 국가 전통과 국가지상주의의 위험

Part 2 주권

4. 근대 유럽사에서 주권 개념의 형성 과정
서양 주권이론의 전사|근대적 주권 개념을 위한 준비|
근대 주권이론의 탄생-보댕과 홉스|대외적 주권|근대 국제정치질서에서 최고 규범으로서의 주권
5. 주권 개념의 조선 전래
주권 개념 전래의 의미|김윤식과 양편론/양득론|유길준과 양절체제|유길준 이후|
주권 현실의 부재와 주권 개념 확립의 지연

결론

문헌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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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246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서양에서 새로운 (근대적) 국가 개념의 창출은 서양 사회가 갖는 성장 또는 발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내부적 갈등의 과정과 그 결과를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었다. 근대국가the modern state는 16세기 유럽에서 배타적 영토 관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중앙집권적인 독특한 권력조직의 유형을 말한다. 이러한 배타성은 유사한 주변국들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데, 말하자면 주변국들과의 긴장된 군사적 경쟁관계는 이들이 출현하였던 환경적인 조건이었다. 우리는 이 (정치적) 환경을 일컬어 근대국가 체제the modern state system 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고대와 중세적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republic · commonwealth' 로서의 국가의 개념을 뒤로 밀어내고 'state'라는 새로운 개념이 국가를 지칭하는 대표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근대국가를 중심적 체제로 하는 새로운 질서의 수립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주변국들과의 군사적 경쟁관계 속에서 근대국가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 국가들의 항구적 역동성의 원인이 되었고, 또한 이러한 역동성은 개별 국가들의 구조 속에 각인되었다. 경쟁관계 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노력은 내부적으로 일원적이고 효율적 통치제제 수립의 필요성을 직접 자극하였고, 또한 이를 위한 작업은 각종 저항을 야기하였다. 이에 따른 정치적 · 사회적 및 종교적 갈등은 효과적인 정치권위에 의한 정치안정화 작업의 필요성을 더욱 자극하였다. 그 결과 제출된 논의가 국가주권론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근대국가의 이론은 곧 주권의 이론이었고, 근대국가 개념의 역사는 주권 개념의 역사와 동일한 궤적을 그려왔다고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 경우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국가 개념의 특성을 기본적으로 주어진 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의 특성과의 연계 속에서 이해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국가는 특정 정체라는 관점에서만 이해되었다. 이에 비해 토머스 홉스에 의해 처음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다고 평가되는 근대적 국가 개념화 작업은 정체의 성격과 무관하게 모든 정치공동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최고의 정치권위, 즉 주권적 실체라는 점에서 정립된 것이었다. 그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정체의 종류에 무관하게 주권적 권위체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작업이었다. 기왕의 기독교적 설명을 배제한 바탕 위에서 인간적 효용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볼 때 안정된 사회는 자기보존이라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설명되었고, 이러한 사회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상호 간의 합의와 약속을 통해 수립된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칼swords로 무장한 최후의 심판자의 보증이 없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은 단지 말words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주권자의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하고, 따라서 다시 새로운 계약을 통해 주권자를 수립한다고 말한다. 이 주권자는 우리의 필요와 효용 때문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수립한 권위체인데, 홉스에게 국가는 바로 이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국가이론이 단일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유포된 것은 결코 아니다. 홉스의 주장은 그것이 제시될 때의 영국과 프랑스의 내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특수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모든 국가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 여러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에게는 나름대로의 특수한 사정이 있었던 까닭으로 국가의 논의는 홉스의 그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강조되면서 다시 짜이게 되었다.

홉스의 논의는 국가라는 권위체를 그것이 봉사하게 되는 모체 사회 또는 공동체의 구체적 성격과 애써 분리시킨 채 정의하는 작업이었는데, 실제에서 국가조직과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절대주의 왕정을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였기 때문에 국가라는 조직의 결합을 공동체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설명하는 시도가 더 큰 대중적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이론적 시도는 문화적 단일체 의식은 갖추고였었지만, 그것에 합당하는 단일한 정치조직으로서 통일국가를 갖추지 못했던 독일에서 강력하게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국가는 단순히 모체사회의 안녕을 보장해 주는 수단적 장치의 성격을 넘어서서 이미 단일한 조직으로서 결성되어 있는 민족집단Volk의 정치적 외피로 규정됨으로써 민족에 대한 규정은 그대로 국가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즉 처음에는 민족이 하나의 유기체적 존재로서 비유적으로 규정되는 데에서 출발하여, 이러한 유기체적 성격이 바로 국가를 규정하는 특성이 되었다. 그리고 국가는 윤리적 실체로서 고양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처음 수용한 서양적 국가 개념은 바로 독일에서 성장한 이 유기체이론이었음은 이미 앞에서 지적된 바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도 나름대로 상당히 오래된 국가의 개념이 있었다. 그러나 서양과 달리 '국가 부재'를 경험한 시기가 없었던 관계로 국가의 개념은 상당한 안정성을 누려 왔다. 현실의 정치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주어진 정치공동체를 포괄하는 윤리적 공동체라는 관념이 유교이론을 바탕으로 생명력을 이어 왔다. 이러한 관념은 서양의 commonwealth, republic 으로서의 국가 관념에 비유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 제국주의의 전 지구적 확장 과정에서 동아시아적 국가조직의 후진성이 여실히 폭로되었고, 이 과정에서 겪은 '수모'를 극복하려는 개혁운동은 국가에 관한 새로운 개념화 작업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물론 이러한 개혁운동의 자발성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구체적 프로그램은 서양에서 유래된 국가 개념에서 자극된 바 적지 않다. 우선 일반 대중을 국민으로서 재규정하여 국가적 활력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민족주의 프로그램이 먼저 제시되었고, 부국강병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 능력의 제고가 그 다음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실제 근대국가의 성장과 관련된 핵심문제는 두 번째의 작업을 위 해 첫 번째의 작업을 진작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러한 '근대화' 작업의 선도국에서는 구체적으로 그러한 문제에 대한 별다른 의식 없이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후발 국가에서는 의식적으로 그러한 프로그램을 이론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는데, 아마도 독일을 그 성공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의 이러한 성공 사례와 유기체적 국가이론이 갖는 동아시아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의 친화성 때문에 독일의 국가이론들이 일본과 중국의 이론가들을 거쳐 한국에도 비교적 쉽게 전파되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의 단적인 예를 단채 신채호의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논의들이 그에 앞선 논객들과 구분되는 점은 바로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민족문제를 국가론의 중심 논지로서 채택했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논의의 맥락이 한일합방에 따른 국권상실의 사태와 함께 일단 중단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논의가 다시 한국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이어진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주어진 분단의 정치적 환경은 한국인의 정치적 정체성을 논의하는 이론적 환경을 바로 압도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는 정치이론들도 분단된 형태를 취했다. 분단되지 않은 점을 들자면 남북한모두에서 국제정치의 맥락에 유입된 외래의 정치이론들이 모두 강제적으로 부과되어 정치현실과 무관한 채 왜곡된 정치현실을 호도하는 이 데 올로 기적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남북한 모두에게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장기간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이후 국가조직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남북한 공히 민족주의의 이념이 갖는 정치적 권위는 다른 어떤 정치적 가치를 앞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국가건설, 사회동원 및 경제기반의 구축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항이었다. 사회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작업을 수행함에 강력한 국가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 또한 남북한 모두 공통된 사항이었다. 한편 국가의 주도적 역할과 이로 말미암은 권위주의 정치의 정착은 별도의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모두가 표면적으로는 최고의 정치적 가치 원천으로서 민족의 이름을 빌려 이루어졌다. 그리고 국기를 민족과 동일시하는 논의를 바탕으로 국가 그 자체를 최고의 정치적 가치로 삼는 국가주의 또는 국가지상주의의 사유가 성장하게 되었다.

남북한의 상황은 그 다음부터는 다른 모습을 취하면서 전개되었다. 북한의 경우는 자유로운 지적 활동이 원천적으로 국가에 의해 봉쇄되었기 때문에 사회가 자신에 알맞은 새로운 정치 이론 또는 사회 이론을 만드는 일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남한의 경우는 자유로운 의사 표출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체제가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적 대결구도 속에서 위선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고, 현실세계에서는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명분하에 국가권위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남한의 경우 장기간의 억압 상황을 벗어난 후 갑작스럽게 자유로운 토론 환경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외래 세계와 접하게 되면서 이론적 세련도의 면에서 기성의 토착 이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다양한 이론이 아무런 여과 과정이나 현실과의 적실성에 대한 검토의 기회도 갖 찌 않은 채 동시적으로 유입되어 현실문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의 자원 또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우리 나름대로 갖고 있던 사회적 토론을 위한 전통상의 이론적 자원들이 일거에 경시되거나 부인되었고, 서양에서 유입된 다양한 논의들이 소위 '보편적 민주화'의 상황에서 그 원산지에서 갖고 있던 상호 연계성이나 맥락 또는 계층구조 등에 대한 별다른 비판적 고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수용되는 지적 풍토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풍토는 현실과의 높은 적실성을 보이는 소위 '주체적'인 지적 환경의 성장을 현저히 방해하였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와 관련된 논의는 수입된 기성 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상황이 변해도 이러한 행태는 반복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주어진 국가 개념의 주제를 두고 해방 이후의 시기를 별도로 고찰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러한 구체적 상황에 대한 논의는 이 글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 책의 후속 작업으로서 새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이 책에서 우선적으로 의도했던 점은 우리가 오랜 기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나름의 국가 개념이 의외로 그리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새로운 개념과 중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서양에서 만들어져 변형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된 국가 개념과의 연계 속에서 우리의 국가 개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점 등을 밝히는 것이었다.

실제 국가의 개념은 국가에 관한 일반적 학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주어진 삶을 규정하는 큰 틀에 관해서, 해당되는 사회가 갖는 관념들의 복합체를 말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삶이 가치 있고 의미가 있으며, 또한 인륜에 합치되는 것인가에 관한 나름대로의 판단도 포함되어 있다.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바람직한 판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조건에 맞는 일정한 제한된 폭을 갖는 의제 설정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조건은 구성원 각자가 자유스럽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지적 환경의 보장이다. 지적 토론의 지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의견 사이에는 중요도에서 선후와 상하가 있다는 점 또한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지식의 습득과 개진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러한 질서가 강제 없이 인정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의 진작과, 동시에 지식문제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권위의 수립 또한 대단히 긴요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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