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새로운 인생

 

새로운 인생 - 10점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박우수 옮김/민음사

서문
1부 새로운 인생
2부 단테와 로세티
단테의 생애
로세티의 생애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서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13 『새로운 인생』(단테의 생애 중 스물일곱 살까지를 다룬 청춘의 자서전 혹은 정신의 기록)은 이미 원문으로나 논문, 혹은 완역이나 부분 영역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작품 자체 이외의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정교하고 친숙하면서도 아름다운 요소들과 경탄을 자아내는 개인적인 특성들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의 입을 통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에 그러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연옥 편 30곡) 당시의 젊은 단테가 이와 같았다. 이 작품에 대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본래의 의미에 충실하면서도 자유롭고 명료한 형태로 번역하고, 가능한 한 거추장스러운 주석을 없애고, 작품에서 다루어진 사건들에 대해 언급한 단테의 시들을 곁들이는 일 뿐이었다.

그러나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의 역할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새로운 인생』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우리는 그녀의 역할에 대해 단테가 초기에 가졌던 은밀한 생각들을 주도면밀하게 읽어냄으로써 단테와 같은 영혼에게서 엿볼 수 있는 잘못에 대한 풍자, 통렬한 상실감, 혹은 기억 속으로의 깊고도 열렬한 도피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나중에 「신곡」에서 경고와 증언을 위한 강한 목소리를 드높인 복종의 지혜에 대한 표현, 즉 자연스러운 의무감의 숨결을 바로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초원에 서 있는 사람의 귓가에 날아와 바다를 바라볼 준비를 하게 해주는 폭포수의 첫 웅얼거림과 같은 곡조가 『새로운 인생 』 전체에 흐르고 있다.

보카치오는 「단테의 생애」에서, 이 위대한 시인이 말년에 자신이 젊은 시절에 쓴 이 작품을 창피하게 생각했다고 전한다. 그러한 주장은 「신곡」에서 언급되거나 암시된 이 작품에 대한 인유들과 좀처럼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새로운 인생』이 젊은이만이 쓸 수 있는 책이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책으로 남아 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랑 자체에 더 가까운 베아트리체라는 인물은 이 젊은이들에게 자기 마음 속의 친구처럼 보일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 작품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서사인 이 작품이 뚜렷하게 보여주는 극도의 감수성 때문에 이 작가를 여성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못 된다. 비록 『새로운 인생』의 주제가 사랑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시기에 작가의 경험 가운데서 전쟁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아트리체가 죽기 한 해 전인 1289년 6월 11일 단테는 캄팔디노 대전투에서 최전선 기병대의 일원으로 싸웠다. 이 전투에서 피렌체 사람들은 아레초 사람들을 패배시켰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인해 그 도시가 "황량해진" 때인 1290년 가을에, 단테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도피책을 위험한 전투에서 찾았다. 「신곡」에 따르면(지옥 편 21곡) 그는 피렌체가 피사를 공격할 때에도 전투에 참여했고, 카프로나 함락에도 참여했다. 


1부 새로운 인생
19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내 기억의 책 속 어딘가에 붉은 글씨로 이와 같은 표제가 쓰여 있는 장(章)이 하나 있는데 이 장 앞부분은 읽을 것이 거의 없다. 그 표제 아래 많은 것들이 쓰여 있지만, 그것들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 본질적인 내용들을 나는 이 작은 책자에 옮겨 적을 생각이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 아홉 번이나 태양이 자전에 의해 거의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을 때 지금 내가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여인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베아트리체'라고 부르는 바로 그녀가 말이다. 그녀는 천계가 동쪽으로 12분의 1도 정도 이동하는 동안 이미 이 지상에 존재했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그녀는 것 아홉 살이 된 것 같고, 나는 거의 아홉 살이 끝나갈 무렵에 그녀를 만났다. 그날 그녀의 의상은 매우 고귀한 색상인 은은하고 예쁜 주홍빛이었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가 달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해서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모든 감각들이 자신이 지각한 것들을 가져가는 높은 방 안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령이 경이감에 가득 차서, 특히 눈의 정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의 축복이 출현했도다." 그 순간 인간의 영양분을 관리하는 곳에 사는 수명의 정령은 울기 시작했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내 신세야! 이제부터 계속 시달리겠구나!"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 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강한 상상력 덕택에) 너무나 명백하고 확실하게 지배해서, 사랑의 신의 명령을 계속해서 따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종종 이 나이 어린 천사를 내가 찾아보고 싶은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소년 시절에 때때로 그녀를 찾아나섰고, 그때 목격한 그녀의 자태는 너무나 고귀하고 칭찬할 만해서 시인 호메로스의 표현이 그녀를 두고 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의 딸이 아닌 신의 딸처럼 보였다."(「일리아스」 24장 258행) 항상 나와 함께했던 그녀의 이미지는 나를 사로잡아 두려는 사랑의 신의 담보물이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완벽한지라 충고가 필요한 경우마다 내가 이성의 충실한 조언을 듣지 않고 사랑의 신에게 지배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나 내 청춘기의 열정과 행동이라는 주제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머무름으로써 내 말들이 꾸며낸 것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이제 이것들을 제쳐두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생략한 채 내 기억의 책 속에 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주제들로 넘어가겠다.

앞서 언급한 이 우아한 여인의 출현 이후 너무도 많은 날들이 흘러 꼭 구 년째 되던 어느 날 이 경이로운 여인이 온통 하얀 옷을 차려입고 양 옆에 좀 더 나이 많고 점잖은 두 부인들을 대동하고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거리를 따라 걸어가면서 그녀는 내가 마음 졸이며 서 있던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금은 영생 가운데서 보답을 누리고 있는 그녀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예의를 갖추며 너무나 정숙한 자태로 나에게 인사를 보냈기 때문에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진정한 축복의 정점을 본 것만 같았다. 그녀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인사를 보낸 시간은 하루 중 정확하게 아홉 번째 시간이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서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자리를 떴다 외로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 고상한 여인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고, 그녀를 생각하면서 달콤한 잠에 떨어졌다. 잠결에 경이로운 환영이 내게 나타났다. 내 방은 붉은색 운무로 가득했고 그 운무 가운데서, 쳐다보기에는 무시무시하지만 그 자신은 마음속으로부터 기쁨에 차 있는 듯이 보여서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한 남자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그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내가 겨우 알아들은 것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다. "내가 그대의 주인이니라." 한 사람이 핏빛천만을 덮은 채 그의 품 안에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잠자는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야 나는 그이가 낮에 황송하게도 나에게 인사를 건냈던 그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안고 있는 그 남자는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무언가를 한 손에 쥐고 나에게 말했다. "그대의 마음을 보아라." 그가 잠시 동안 나와 머무른 후에, 나는 그자가 잠든 그녀를 깨우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손에서 불타고 있던 것을 주었고 그녀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그것을 먹었다. 잠시 동안 기다리고 나자 그의 모든 기쁨은 가장 통렬한 통곡으로 변했고, 그 남자는 울면서 여인을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떠나가자 나에게는 선잠이 이겨낼 수 없을 정도의 말할 수 없는 격통이 몰려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그 즉시 생각해 보니 이 환영이 나에게 나타난 시각은 밤의 네 번째 시간(즉 마지막 아홉 시간 중 첫 번째 시간)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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