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이: 감정의 역사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3. 11.
감정의 역사 - 김학이 지음/푸른역사 |
프롤로그
1장 근대 초 의학의 신성한 공포
2장 30년전쟁의 고통과 감정의 해방
3장 경건주의 목사들의 형제애와 분노
4장 세계 기업 지멘스의 감정
5장 일상의 나치즘,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
6장 나치 독일의 ‘노동의 기쁨’
7장 나치 독일의 ‘독서의 기쁨’
8장 서독인들의 공포와 새로운 감정 레짐
에필로그
후기
참고문헌
주
찾아보기
8 감정사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문화사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사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의 틀로서의 문화가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산물이나 반영이 아니라 고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구성물이며, 더 나아가서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규정한다고 전제하는 역사학이다. 그렇다면 감정사란 특정한 상황에 처한 인간에게 발동하는 신체적 · 정신적 격동으로서의 감정이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고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구성물이며, 더 나아가서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규정한다고, 즉 고유한 힘을 발휘한다고 전제하는 역사학이다.
10 감정에는 분명히 역사가 있다. 첫째, 시대에 따라 중요성이 달라지는 감정이 있다. 공포 감정은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인간이 신을 만나게 되는 통로였으나 17세기를 지나면서 그 비중이 감소하더니 19세기 초의 호러 문학에 와서는 미적 쾌감의 수단이 된다. 분노 감정은 중세부터 16세기까지 신과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가 17세기에 금제가 풀리더니 18세기에는 일반인이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협상의 장이 된다. 둘째,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감정도 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시민이 공적 활동에서 느끼는 감정이었다가 1820~30년에서야 비로소 사적인 감정이 된다. 공포는 19세기 말에 인간학적 근본 조건으로 재차 부각되었다가 20세기 중반에는 자본주의의 산물이자 지배 수단으로 의미화된다. 섯째, 특정 시기에야 비로소 나타난 감정도 있다. 고독은 근대 초까지만 해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채 그저 혼자인 상황을 가리키다가, 19 세기 초에 들어오면서 사회성으로부터 배제된 사람이 갖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찬양되던 우정은 중세에는 별반 중요시되지 않다가 17세기 후반에 재등장하는데, 18 세기 초까지 그 감정은 자아의 이익과 관련되었고 그래서 '차가운 우정'도 가능했다. 18세기 중반에야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서의 친구가 대두한다.
13 시대적 감정은 생물학적 감정이 아니라 문화적 감정이다. 따라서 대표적인 감정을 시대별로 가려내고 그 감정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확인하면 각 시대의 고유성 역시 도출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역사학의 의의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20 요컨대 감정 담론과 대표 감정은 단순히 언어로부터 인간에게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사회적 개인이 감정적 자아를 협상하고 수립하는 장場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 협상은 갈등으로 점철될 수도 있고 끝내 실패할 수도 있다. 그 측면에 감정 연구자들이 부여한 용어가 '감정 경제' 혹은 '주의注意의 경제'이다. 프로이트는 고전경제학으로부터 경제라는 개념을 빌려다가 성 에너지의 관리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내면의 균형 및 불균형을 '리비도의 경제'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는바, 감정 연구지들이 그 개념을 처용한 것이다. 그 모든 사항, 즉 감정 담론, 감정 실천, 감정 경제를 모두 통칭하는 개념이 '감정 레짐Emotional Regime'이다.
21 이 책의 목표이자 내용은 시대별 감정 레짐을 드러내는 것이다.
34 독일의 16세기는 공포의 시대였다. 예언서, 괴물, 마귀들림, 마녀, 점성술은 모두 임박한 재앙을 말했고, 루터는 그 공포를 반영하면서도 강화했으며, 그 적극적인 표현이 종말론이었다고 할 것이다.
35 독일인들은 공포를 '예종적 공포timor servilis' 와 '순애적 공포timor filialis'로 구분했으니, 노예가 주인에게 갖는 공포인 예종적 공포는 각종의 현실적 재앙에 대한 공포로서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고, 따라서 그 자체로 죄다. 순애적 공포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자식의 공포로서 신에 대한 공포가 바로 그러해야 하, 그것은 곧 구원의 길이다.
43 인간의 재도덕화가 긴급히 요청되었을 때, 루터파 교회는 종전처럼 외적인 의례만으로는 도덕을 재수립할 수 없었기에 세속 제후의 물리적 권력에 의존하는 한편 공포를 통하여 오만한 르네상스적인 인간을 복종시키는 동시에 도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규율화와 그 뒤에 깔린 근대적 권력의 작동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윤리적 인간과 도덕적 사회를 창출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깔려 있었으며, 그 노력이 좌절될 때마다 역으로 그들 스스로가 공포를 느꼈고, 그 공포는 전염되었으며, 전염된 공포는 루터파 교회의 내적 결속을 강화하면서 가톨릭과 이단에 대한 대결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166 경건주의에게는 조직이 없었지만, 그 운동을 이끈 것은 언어화된 종교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담은 사회적 언어는 감정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속에 함축된 의미가 종교 밖으로 옮아가면서 나타난 것이 바로 감성주의 문학이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절정에 달한 그 문학을 통하여 경건주의는 독일 지식의 세계를 각인한다.
202 2000년대 초반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표준적인 감정사 연구프로그램을 제시한 미국의 역사가 월리엄 레디는 18~19세기 프랑스 감정 레임에 대한 연구에서 카페, 독서회, 살롱, 프리메이슨 등의 부르주아 사회성들을 궁정문화의 외적 매너와 감정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감정의 피란처"로 칭했다.
203 일기가 통제의 기능을 행사했다면, 편지를 비롯한 부르주아적 사회성들이 감정의 피란처 역할만을 수행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그것들은 필시 강력한 감정 통제의 기제인 동시에 감성이라는 새로운 감정 레짐을 실천하는 장이자, 그 실패를 확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패로 얼룩진 그 경건주의적 실천이 독일인들을 깊이 내면화시켰을 것이다. 서양인들은 그저 감정이 해방되면서 근대로 진입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차없는 내적 감정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도달하기 힘든 감정 레짐을 추구하면서 근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459 500년이 넘는 그 오랜 시기의 대표적인 감정 담론들을 분석하면서 필자는 감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필자가 도달한 결론은 '감정은 도덕공동체 구축의 핵심 기제'라는 것이다. 감정은 나만의 비밀에 속하기에 도덕공동체와 연결된다는 단언이 기이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감정은 언제나 사회와, 그리고 사회를 견지하는 도덕과 연결된다. 이는 감정이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반사회적이기에 도덕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제압해야 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정반대로 감정은 그 자체로 언제나 도덕감정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는 늘 부도덕한 감정을 늘 느끼지만, 그조차 감정의 도덕성을 전제한다.
462 30년전쟁이 끝나고 20여 년이 지난 17세기 후반 루터파 교회의 개혁운동인 경건주의가 개시되었다. 경건주의는 헤르더와 칸트에서 막스 베버와 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을 각인한, 그만큼 근대 독일을 결정지은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향력이 깊었던 종교운동이다. 그 운동의 주역이었던 목사 필립 슈페너와 아우구스트 프랑케는 지극히 감정적인 종교성을 표방했다. 두 사람은 신앙에 의한 의인화라는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했던 루터와 달리 신과의 만남을 "황홀한" 중생重生으로 표현했고, 신을 "감정을 아시는 분"으로 선언했다. 그들이 시작한 경건모임에서 사람들은 울고 떨고 부르짖었다. 그 종교성은 30년전쟁을 거치면서 규범으로부터 해방된 감정에 부응하는 움직임이다. 또한 그들은 경건한 감정을 "내적인" 감정으로 선언하고 경건 모임을 선분과 계급과 지식과 무관하게 조직함으로써, "외적인" 매너로 관통된 신분사회 및 궁정문회에 선을 그었다. 경건주의는 그 자체로 기성의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463 그들은 감정과 이성, 감정과도덕이 그 관계를 논할 필요조차 없이 합치되는 것으로 설정했다. 감정은 합리적인 도덕감정이어야 했던 것이다. 이는 해방된 감정을 재도덕화 · 재규율화 하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경건주의의 세속 판본인 감성주의 문학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소설들은 '신뢰'와 '행복'과 같이 기존에 오직 신과 경건한 종교인에게만 귀속되던 감정을 세속인들의 연인과 가족에게도 적용했고, '우정'과 '충성'과 같은 기존의 감정을 재정의하고 내면화하는 동시에 쾌감과 강도를 투여했다. 그리고 그들도 소설 속에 신분을 초월하는 개혁공동체를 형상화했다.
464 지멘스의 경우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언제나 종교적, 도덕적 규율장치였던 감정이 19세기에 와서 생산자원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뢰와 충성만큼 노동 동기를 강화해주는 것은 없으므로, 그 감정들은 생산자원이다. 필자는 베르너 지멘스의 회고록에서 생산자원으로 작동한 또 다른 감정을 발견했다. 그는 회고록에 행복 대신 '기쁨'을 사용했거니와, 그 발화 맥락을 살펴보면 거의 언제나 인간이 기획하고, 행동하고, 성과로 얻는 것, 한마디로, '노동'과 결합되었다.
467 감정은 원체 포괄적인 동시에 모호하기에 존재의 불확실성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감정은 합리적 인지에 선행하는 인지다.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과 낙관적 인간은 같은 대상을 완전히 다르게 인지한다. 그리고 그 인지는 때로는 합리적 판단을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공감이 요청된다고 말해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공감이야말로 자아에 몰두하는 개인을 소통적인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감에의 호소가 개별화되고 불확실해진 자아에게 잘 닿지 않는다는데 있다. 따라서 감정이 인간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말해지면 말해질수록 불확실한 개인은 공감보다는 자아의 내적 격동을 정당화하려 든다. 공감이 아니라 혐오가 작렬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468 역사학의 원래적 기능은 과거의 고유성을 통하여 현재를 상대화하는 데 있다. 감정의 역사는 나의 감정을 상대화한다. 상대화의 다른 말이 성찰이다. 성찰이란 거리를 두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감정의 역사는 현재 나의 감정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그 감정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게 해준다. 이를 통해 나의 사회성을 깨닫고 나의 자아실현을 재차 성찰하게 해준다. 자아는 실현하는 것이되, 성찰되는 것이다. 역사학만큼 성찰을 자극하는 학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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