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1-1

 

2024.11.06 🎤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1-1

1강: 1장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 2장 역사교육과 공공역사

• 일시: 2024. 11. 6.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915


오늘부터 네 번에 걸쳐서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강의를 할 예정이다. 가까이 있는 수원화성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데 한국전쟁 때 무너져서 복원을 한 것이다. 원래 최근에 지은 것들은 유네스코에 등재가 안된든데, 어떻게 등재 되었을까. 수원화성을 지을 때 어떻게 설계를 하고 어떻게 공사를 했고 한 것을 쭉 기록해 놓은 화성성역의궤라는 게 있다. 이게 의궤에 근거해서 복원을 했기 때문에 등재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기록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기록문화유산 덕분에 유형문화재가 등재가 되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가 공공역사란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2025년에는 《옥스퍼드 세계사》 읽기를 한다. 여러 차례 말했듯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들이 있다. 낱개로 들어오는 정보를 이렇게 모아서 꿰어서 볼 수 있는 그런 틀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바로 한 권으로 된 세계사를 읽는 것이다. 한 권으로 된 세계사를 읽어본 경험들이 사실 별로 없다. 

이탈리아의 밀라노가 있는 지역을 롬바르디아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 지역을 베네치아 지역이라고 한다. 그다음에 아래쪽에 피렌체, 피사, 로마, 나폴리가 있다. 이탈리아는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 두 지역이 이탈리아의 전체 GDP의 80%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밀라노 지역인 북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네가 벌어서 남부에 돈을 이렇게 밀어내줘야 한다. 이 나라는 1876년에 통일이 되었으니 통일왕국을 이루고 산 지도 150년도 안 되었다. 사실은 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공식 언어가 20개 정도 있는 나라였다.  롬바르디아 아래가 있는 토스카나인데, 피사, 피렌치가 잇다. 그러니까 단테 《신곡》에 나오는 토스카나 지역의 언어로 이탈리아어를 삼자고 한지가 200년이 안 되었다. 이처럼 일단 학문적인 필요를 떠나서 전 지구적인 어떤 그런 인간으로 살려면 어쨌든 세계사라고 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옥스퍼드 세계사》는 2019년에 원저가 출간된 최신 세계사이다. 세계사 책은 대체로 20년에서 30년 주기로 거의 전면적 개정된다. 26주에 걸쳐서 책 전부를 남김없이 읽을 것이다. 그다음에 19세기,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네 번에 걸쳐서 특강을 할 것이다. 최소한 청 제국의 멸망, 신해혁명부터 시작해서 아니면 의화단의 난 무렵부터 시작해서 현대 중국의 성립까지 정도는 공부를 해야 되고, 일본도 최소한 메이지유신부터 아시아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는 헤애 한다. 

공공역사란 무엇인가와 관련이 되니까 얘기를 좀 해보자면,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방과 후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다양한 특기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온갖 종류의 취미 활동을 고등학교 다닐 때 하는데, 그 대신 공부를 안 한다. 뭐가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25%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은 늘었는지 모르겠는데 학생들 100명 중에 25명이 대학에 간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중에 10명이 문과반으로 갈 것이고, 문과반으로 가면 인문대 학생이 있고 사회과학대 학생이 있을 것이다. 인문대 학생들 중에서도 3학년이 되어서야 전공 선택 과목으로 근현대사를 배운다. 그러면 계산을 해보면 2~3명이 근현대사를 알고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에서도 근현대사는 고등학교 때 선택 과목이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침략의 역사를 잘 모른다 라고 얘기하는 건 그들의 교육 과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인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되어가고 있다. 메이지유신부터 시작해서 1945년의 아시아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의 일본사는 단순한 일본사가 아닌 식민지사이다. 우리는 식민지의 역사로 배우는데 그때 일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상태를 배운다. 왜 일본에서 그 짓을 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모르는 상태로 배운다. 그러니까 증오심을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라 증오심을 가지려고 해도 어떤 이유인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역사라고 하는 것을 뚜렷하게 아는 것이 적개심을 키우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은 왜 저렇게 독도에 목을 맬까 하는 것들, 그리고 왜 이렇게 메이지유신을 강조할까 하는 것들이다. 1905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내년 2025년은 러일전쟁 120주년이다.  일본 극우파들은 러일 전쟁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1800년대 중반 서양에는 두 개의 나라, 즉 영국과 러시아가가 2대 강국이었다. 영국은 바다를, 러시아는 육지를 땅따먹기를 해서 나눠 먹고 있었다. 이 두 개의 나라가 충돌한 곳이 중앙아시아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싸움을 벌였는데 그 거대한 싸움을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한다. 이때 영국과 러시아가 굉장히 중요한 줄 알고 그 땅을 놓고 엄청 싸운 곳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다. 결국 둘 다 점령을 못하고 나왔고 지금은 탈레반이 점령했다. 이렇게 두 나라가 싸우고 있었는데 영국이 못마땅해 보였던 프랑스가 끼어들고,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의 프로이센,  이렇게 네 개의 나라가 19세기는 4대 강국이었다. 여기서 강국은 아닌데 하나 정도 있던 나라가 해외 식민지가 많았던 에스파냐이다.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었는데, 에스파냐와 미국이 전쟁을 해서 미국이 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5대 강국이 성립했다. 지금의 G7 국가들이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세력 구도가 아직까지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 있는 판에 아시아 지역에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겼다. 그래서 이제 일본이 아시아에 패권을 쥐고 있다가 일본해군 대장인 도고 헤이하치로가 러일전쟁에서 이제 6대 강국이 성립한다. 그래서 일본은 1905년에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일본 극우파들한테 가장 중요한 해로 꼽는다.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이긴 뒤로 굉장한 세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메이지사관이라고 한다. 그게 일본의 국수주의이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독일 같은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청산을 깔끔하게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야 된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몇몇 전범들을, 말하자면 샘플로 처형을 하고 벌을 준 다음에 묻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부터 미국의 묵인 하에 이 사람들을 등용해서, 말하자면 유능한 정치인들이나 유능한 사람들을 등용해서 활용을 했다. 공공역사라는 것은 그냥 우리 모두 역사를 배우면 좋지 않아 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독일에서도 역사를 정리하고 청산하고 살펴보고 대중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다시 알릴 필요가 있는데,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해보자 하는 이를테면 정치적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카를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라는 책을 가지고 왔는데 원래 제목은 Schuldfrage, 책임 문제이다.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하는 말을 만든 사람이고 실존철학의 대가이다.  야스퍼스는 원래 지독하게 경건주의적이면서 보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면서 비정치적인 부르주아 철학자였다. 독일 경건주의적인 사람들은 보수적인 사람인데, 정치적인 것에 관심 없고 심혈을 기울여서 하느님을 찬양하다가 죽어서 천국 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독일 사람들의 근면성실, 검약 이런 거들이 독일 경건주의 전통이다. 야스퍼스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다음에도 별로 반항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역사 의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야스퍼스의 부인이 유대인이었고 그래서 1937년에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스위스 바젤 대학으로 망명을 하려고 했는데 떠날 수가 없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있었다. 야스퍼는 전쟁이 끝난 다음부터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어쨌거나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없을지언정, 왜냐하면 독일 사람들 거의 전부가 다 나치 협력자였으니 모두 다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들 모두에 대한 부역에 따른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야스퍼스가 가만히 보니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속속 공직으로 복귀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야스퍼스가 생각한 것은 인간에게는 네가지 종류의 죄라고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영어의 sin과 crime있는데, crime은 법률적 죄, sin은 도덕적인 죄, sin 안에는 형이상학적 죄, 도덕적 죄, 정치적 죄가 있다. 야스퍼스가 이 개념을 발명한 건 아닌데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도이치 국민들은 법률적인 죄는 우리가 물을 수 없다고 치더라도 형이상학적 죄, 도덕적 죄나 정치적 죄, 특히 야스퍼스가 강조한 건 정치적 죄, 정치적 책임을 져야 된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다. 이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공공역사란 무엇인가》는 독일에서 나온 책으로, 이렇게 충돌하는 지점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야스퍼스는 이러고 있다가 결국에는 1967년에 스위스로 망명을 했는데, 왜 그렇게 했겠는가. 나치에서 한 자리 하던 사람들이 고위직에 오르게 되는 것들을 못 견딘 것이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나치 청산을 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다툼이 있었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있었고 논쟁이 굉장히 많았다. 이 나라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결국 대중들에게 교육을 하지 않으면 결국 도로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나치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헤게모니 싸움에서 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에게 뭔가를 교육을 해야 한다 라고 하는 요구 사항이 생기게 되고, 그러한 요구사항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획의 일부분이 공공역사라는 것 안에 들어가 있다. 

197페이지를 보면 "1950년대 서독에서는 나치 범죄가 정치와 문화 영역에서 공적으로 금기시되는 현상이 뚜렷했다. 그 전경에는 전쟁과 추방과 피난으로 고통받은 독일인의 피해자 서사가 있었다." 왜 나치 얘기를 안 하는가. 전쟁 때 우리 독일 사람들이 굉장히 고생했으니 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나치한테 박해 받아서 고통을 당한 사람 얘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여기서 피해자 서사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항상 갖고 있는 말이 피해자 서사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네가 원자폭탄 맞아서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데 정작 일본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동포들을 굉장히 업신여긴다. 한국에서 살다가 일본이 패망해서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귀환자들이라고 해서 정말 고생했는데, 마치 병자호란 때 전쟁 포로로 끌려갔다 온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그들을 대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에 포로로 갔다가 온 사람들의 집안은 과거를 치를 수 없었다.  

"1958년 4월, 딜지트의 특무부대에 복무했던 10명의 용의자가 1941년 리투아니아 지역의 국경지대에서 5,502명의 유대인 여성과 어린이를 살해한 혐의로 울름 재판소에 기소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3년 후에야 이루어진 것이다. "나치 과거 정리의 첫 번째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1950년대에 이렇게 하다가 몇몇 사람들만 샘플로 딱 혼내고 냉전 시기가 되면서부터 과거를 묻지 않는 풍조가 생겼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능한 사람들을 발굴해서 정부에서 등용을 시키기 시작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독일에서 굉장히 유능했던 지식인들이 있는데, 그 지식인들 중에서도 유대인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나치 시절에 미국으로 많이 망명을 했는데, 공통적으로는 다 반공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냉전이라고 하는 것을 기획하고, 그것을 실행한 사람들 중 상당 수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좌절했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내버려 두면 안된다는, 칼 만하임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공산당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사람들을 잘 통제해야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도덕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정치적인, 말하자면 유효성의 의미에서 판단해서 그들을 발탁해서 썼다. 그렇게 해서 냉전시기 동안 상당 부분 정치적인 죄라든가 도덕적인 죄를 묻지 않고 왜곡된 측면들이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동서 내전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다. 그것이 유럽에서는 말 그대로 Cold War인데, 아시아 지역에서는 열전이 되었다. 전후 청산이라고 하는 것이 독일에서 이루어진다는 게 사실 불가능했다. 지난번에 사회지리학을 공부하면서 다양성이라는 것을 배웠다. 독일은 굉장히 선진국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나라들이 엄청 선진국이고 우리들과는 다르게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가능하면 그런 생각을 안 가지는 게 좋다. 

188페이지를보면 독일연방공화국의 기본법 제175조는 "동성애의 범죄화를 내용으로 하는 독일의 형법 조항이다. 1871년 독일 제국에서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175조로 제정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인 1920년대에는 이를 반대하는 활동이 일어나면서 약화하였다. 그러나 나치는 동성애를 다시 강력히 탄압했고, 1935년부터 남성 동성애자는 최대 10년의 강제노역형을 받고 수용소로 보내졌다. ··· 완전히 삭제된 것은 통일된 후인 1994년의 일이다." 헌법에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1994년 이전에는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하위 법률을 만들 수가 없었다. 다양성이 그만큼 존중되지 않는 사회이다. 이게 나치에서부터 계속 유지돼 왔던 일종의 유산 같은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이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676년 신라의 삼국통일 이런 것을 외우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서사화되었는가,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대한민국에 선행하는 어떤 시대에 대해, 일제 시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목차를 펴보자. 1장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2장 역사교육과 공공역사, 3장 공공역사 방법론, 그다음에 4장 공공역사와 미디어, 5장 박물관과 기념관을 배울 것이다. 6장 공공역사 교육은 학위 과정에 대한 설명이니까 몰라도 된다. 1장 공공역사란 무엇인가은 공공 역사의 개념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 1시간 동안 공공 역사가 왜 필요한가, 역사 공부는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래서 1장은 보면서 어떤 내용에다 밑줄을 칠 것인가를 알려주겠다. 그다음에 2장 역사교육과 공공역사는 내러티브, 역사적 상상, 다원적 관점이 중요한 부분이다. 내러티브는 서사, 역사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에 상상력을 발휘해서 개연성이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적 상상이고, 하나의 관점만을 고집하면 안 되고 다원적 관점을 가져야 안 된다는 얘기를 한다.  내러티브라고 하는 것은 경험적 서술적 규범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두 번째로는 역사적 상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서사를 만들고 채워 넣어서 왜 내가 이것을 공부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고, 다원적 관점은 다른 관점에서도 들여다본다. 그 다음에 3장 공공역사 방법론은 크게 보면 물질문화, 수원화성 같은 것 그다음에 이미지, 그림, 소리, 구술사 이런 것들이 있고, 그다음에 4장 공공역사와 미디어은 나중에 할 때 다시 하겠다. 

29페이지를 보면 "2. 공공역사의 개념과 실제"를 보면 "공공 역사는 정부기관, 민간기업, 미디어, 역사, 유관 단체, 박물관, 나아가 개인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학계 외부에서의 역사학 방법론과 역사학자 고용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부분은 "학계 외부"이다. 푸른역사 출판사는 역사학 책을 많이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이다. 책의 뒷날개를 보면 조각난 역사, 20세기 사학사,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역사 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책이 있다. 그러니까 여기 뒷날개에 나와 있는 책들은 전문적인 역사책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 바깥으로 전파할 것인가. "학계 외부에서의 역사학 방법론과 역사학자 고용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학계 외부는 정부기관, 민간기업, 미디어, 역사, 유관 단체, 박물관 등을 말한다. 그다음에 34페이지에 보면 "공공역사는 전문 연구자가 아닌 광범위한 공중을 지향하는 공적 역사 표현의 모든 형태를 의미하며, 또한 역사 제시를 탐구하는 역사학 하위 분과이기도 하다." 역사 제시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인가 하는 얘기이다. 《옥스퍼드 세계사》를 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인데, 이런 두꺼운 책을 가지고 26주 동안 강의하는 데가 없다. 고등학교 때 안 배우면 영원히 못 배운다. 그다음에 37페이지를 보면 아르네 쉬르마허는 "(1)공중 일반, (2) 가끔 관심을 두는 공중, (3) 교양 공중, (4) 전문가 공중, (5) 인접 전공 분야 공중, (6) 전공학계" 이런 사람들 모두가 공중이라는 말로 규정을 하는데, 여기 온 분들은 교양 공중이다.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으로 가서 공부를 하러 가야겠다 라고 하는 순간 교양이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45페이지를 보면 역사의식이라는 말 있다. 그 문단은 메모를 쳐놔야 한다.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인간과 인간이 창조한 모든 장치 및 인간의 공생共生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다시 말해서 기원과 미래가 있다는, 그리고 이것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며 전제가 있다는, 지식의 항구적 현재성."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며 전제가 있다는 말은 어딘가 출발점이 있다는 것으로 미리 깔아놓은 게 있다는, 맥락이라는 뜻이다. 항구적 현재성이라는 말은 항상 오늘을 의식하지만 이 오늘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하는 생각을 말한다. 역사의식은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기원이 다르다. 그런데 2025년 한국사회라고 하는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공동의 언어를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역사 공부를 왜 하는가. 앞으로 우리가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이니까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옥스퍼드 세계사》를 놓고 공부를 한다 해도 미국 사람들이 《옥스퍼드 세계사》를 공부하는 것과 우리가 《옥스퍼드 세계사》를 공부하는 거는 관점이 다르다. 우리는 동아시아 사람들이고 한국 사람 입장에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항상 변화하고 있으니까, 과거의 사건을 거울 삼아서 오늘을 생각하고, 오늘의 내가 뭔가를 한 것이 결국 미래에 일어날 일에 바탕이 될 거라는 생각, 이런 것이 역사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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