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존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4. 7. 3.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 콜린 존스 지음, 방문숙 외 옮김/시공사 |
목차
1. 로마인 이전의 프랑스 ...16
2. 로마 지배하의 갈리아 ...34
3. 프랑스 지배하 갈리아에서 서프랑크 왕국에 이르기까지 ...56
4. 중세 ...88
5. 발루아 왕조의 프랑스 ...134
6. 반동 종교 개혁에서 개몽 사상까지 ...172
7. 혁명 그리고 그 이후 ...212
8. 제2제정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252
9. 전환기의 프랑스 ...286
10. 전후의 프랑스 ...326
11. 미테랑 집권기 ...360
우리는 저지대 랑그도크의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에로 도(道) 중간을 거쳐 북부에서 남부까지, 동•서부를 가르는 구분선을 대략 그을 수 있다. 동부 지역에서는 동계 종목으로 축구가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서부 지역에서는 럭비가 그 맥을 잇고 있다. 대략 에로 강 계곡 선을 따라 만들어진 도 분기점은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그 지역 내에서 기나긴 세월에 걸쳐 생겨난 분열들의 축적에 기인한다. 특히 서부 지역에서 좌익 지지자들은 전통적으로 동부의 우익 지지자들과는 뚜렷한 구분을 이루어왔다. 동부 지역에서 1789년 대혁명을 지지했던 자들은 서부의 분파주의자들과는 눈에 띄게 달랐다. 16세기 동부의 프로테스탄트 인들은 서부의 카톨릭 인들과 달랐고, 서부의 중세 후기 카타르 인들은 동부의 정통 카톨릭 교도들과 구별되었다. 관할 지역의 형태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구분은 이미 중세 초기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니 로마 이전의 시기까지 소급해 올라갈지도 모른다. 고고학자들은 서부의 볼케아레코미치와 동부의 볼케 텍토세이즈가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 사시에 문화적 경계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식의 이야기들은 프랑스 내의 수많은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였거나 간과해 버린다면 이는 역사가들이 광범위한 시각과 구도를 의도적으로 피하였거나 한 시기에만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광범위한 시기를 다룬 역사가들도 프랑스 내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분규와 분열 그리고 다양성보다는 민족적 단일성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 온 탓이기도 할 것이다. 즉 역사가들은 프랑스 인들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적 구분선이 유일한 것인 양 역사를 써왔으며 또 맹목적인 애국심만을 부르짖는 뻔한 민족 연대기를 여전히 써 온 것이다.
19세기 ― 한창 민족 사가들이 활동했을 때인 ― 의 역사가들은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기 위해 프랑스는 공통어, 공통된 인종적 특징 그리고 공통의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특징들 중 어떤 것이 과거에서부터 유래되었는지를 알 수 없는 이상, 역사가들은 어떻게 사람들이 공통된 인종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유산을 공유하게 되었는가를 민족 국가의 프리즘을 통해서 밝혀내야 한다. 공동의 정체성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파리와 그 부근 지역만이 모든 것의 중심지라고 간주될 수 있다. 이를테면 파리 출신인 미슐레가 "진정한 프랑스는 북부 프랑스를 의미한다"라고 한 것이라든가, 로렌 출신의 샤를 드 골이 "아프리카는 리옹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한 것 ― 그러나 이 말은 만들어진 말임에 틀림없다 ― 은 이러한 경향을 잘 반영해 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민족 사가 중 저명한 한 역사가가 세기의 전환점에서의 파리야말로 '민족사가 진정으로 발생했던 곳'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파리 중심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에로 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이러한 옛 저술 방식에 집착할 경우 자칫 잘못하다가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진정으로 과거의 사람들에게 자극을 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국가의 영토 한계를 규정짓는 정치적 경계로서, 주요한 내부적, 문화적 경계들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20세기 말까지 와서도 프랑스의 '정체성'은 여전히 편협하면서 지역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프랑스 인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아직도 오베르뉴 인, 브르타뉴 인 혹은 바스크 인 등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는 바로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내의 '지역적 분파성'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프랑스 내에서의 언어적 경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까지 프랑스가 언어학적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해 주는 증거가 된다. 프랑스 내의 '지역적 분파성'은 바로 남부의 '랑그 도크'와 북부의 '랑그 되일'이라는 중요한 언어학적 구분을 기준으로 한 구분선과 일치한다. 19세기 중반까지도 프랑스 인구의 4분의 1은 프랑스 어로 말하지 않았고, 또 다른 4분의 1은 프랑스 어를 완전하게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부 지방에 거주하였는데 파리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북부 농민들조차도 제1언어로 피카르디 어를 사용하였다. 또 이를테면 아르모리카 반도에서 브르타뉴 언어를 사용하는 북부 사람들, 동부에서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 벨기에 국경 지역에서 플랑드르 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어를 강하게 거부한 지역은 미디의 랑그 도크였다.
북부와 남부 사이의 문화적 경계는 프랑스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제이다. 관습법을 적용하고 있는 북부와 로마 법이 법전의 기초가 되어 있는 미디는 아주 뚜렷하게 구분된다. 혹시 재산의 양도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그 차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차이와도 일치한다. 즉 고딕과 로마네스크 건축이 풍미했던 지역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북부와 남부의 구분 이외에도 다른 구분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를테면 바스크 지역과 남서부 가스코뉴 지역을 나머지 프랑스 지역과는 매우 상이한 곳으로 보는데 여기서 또 다른 문화적 구분선이 형성된다. 그리고 영국 해협에서부터 제네바에 이르는 경계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 농경 방식이나 사회 구조 등 ― 뚜렷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구분선만이 지리학적인 차이나 지역주의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필자는 비록 지리학적 요인들을 들어 특징을 설명하였지만 성(性)과 사회 계급 또한 지역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프랑스 역사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작업 ― 특히 아날 학파(Analist)들이 한 ― 은 노동자들, 농민들, 소외된 집단과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 생활만큼이나 개인 생활도 중요하게 여겨 과거의 다양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프랑스 역사의 영역 내로 편입시켰다. 이제 농민들도 '진보'에 제공을 거는 존재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식민 사회도 도시 체제의 문명 선교를 기다리는 '미개인' 이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제 프랑스 역사는 북부 엘리트 남성들 만의 업적으로 이루어진 연대기가 아닌 그 이상의 복합체로 우리 앞에 당당히 등장하게 될 것이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는 지역성, 성 등에 대한 관심을 분석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지도는 지역적 구분은 더 확실하게 제시해 주고 있으며 여기에 등장한 다양한 그림은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파랑스 역사는 보통 예전의 방식으로 여러 세대의 역사를 살펴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프랑스, 프랑스적인 것, 민족이라는 본질들이 사실은 견고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일상 생활 용어로 흩어져 버릴 정도의 약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 정치, 문화 생활 면에서의 탄력성과 지속성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고 그것 때문에 이전의 유고슬라비아나 소비에트 연방에서 일어난 것 같은 국가 붕괴가 프랑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국가라는 것이 없어지거나 해체되거나 또한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우리는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더욱이 새로운 자료들을 보면 국가의 형성이나 해체의 과정이 계급, 지역, 인종, 성별, 그 밖의 모든 것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들은 민족 국가나 정체성이라는 개념처럼 가장 견고한 기반을 가진 개념들조차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하고 끝없는 정의와 재정의를 요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는 사회, 문화의 핵심에까지 닿아 있다. '민족'이나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말 ― 이 책에서 프랑스, 프랑스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 은 해결책만큼이나 문제점도 많은 단어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싶었다.
-연대기-
기원전
기원전 200만 년 초기 선사 형태의 사회가 형성되다
기원전 3만 년 구석기 시대가 전개되다.
기원전 1만 년 빙하기가 종말되다.
기원전 6000년 신석기 시대가 전개되다.
기원전 1800년 금속기 시대가 전개되다.
기원전 700년 켈트 족, 갈리아에 나타나다.
기원전 125 ~ 기원전 121년 로마, 남부 골 족을 식민화하다.
기원전 58 ~ 기원전 51년 로마, 골 족을 정복하다.
기원후
177년 리옹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등장하다.
406년 주요 야만족들의 약탈과 정착이 이루어지다.
476년 서로마 제국의 몰락, 프랑크 족, 제국으로 발전해 가다.
511년 메로빙거 왕조에 의해 프랑크 족의 수도로 파리가 세워지다.
732년 아랍 세력, 푸아티에서 참패하다.
751년 카롤링거 왕조, 권력 잡다
771년 샤를마뉴, 단독 통치하다.
800년 샤를마뉴, 서유럽의 황제가 되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카롤링거 제국 분할되다.
987년 위그 카페가 카페 왕조를 세우면서 왕위에 오르다.
1095년 제1차 십자군이 교황 우르반 2세에 의해 결성되다.
1159년 '제1차 백년 전쟁'이 일어나다(1299년까지).
1214년 부빈 전투가 발발하다
1299년 몽트뢰유 전투로 '제1차 백년전쟁' 종말되다.
1302년 삼부회가 소집되다.
1309년 교황청이 아비뇽에 세워지다.
1328년 필리프 6세, 발루아 왕조를 세우며 왕위에 오르다
1337년 영국과 프랑스 간에 백년 전쟁이 일어나다(1453년까지).
1346년 영국군,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를 물리치다.
1347년 칼레를 영국에 빼앗기다.
1348년 흑사병이 전염되어 엄청난 인명이 피해를 입다.
1356년 영국군,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퇴시키다.
1358년 북부 프랑스에서 자크리의 봉기 일어나다
1360년 영국과 프랑스 간에 브레티니 조약이 맺어지다
1415년 영국군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를 참패시키다.
1431년 잔 다르크, 화형에 처해지다.
1438년 부르주의 국사 조칙으로, 교황권에 대한 군주의 더욱 막대한 지배력을 보장받다.
1453년 카스티용 전투로 백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를 장식하다.
1470년 최초의 인쇄기가 파리에 등장하다.
1477년 부르고뉴 공작 대머리 샤를, 서거하다.
1482년 브루군트 공국, 아라스 조약으로 프랑스에 통합되다.
1494년 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하다(1559년까지).
1515년 마리냐노에서 프랑스 군 승리하다.
1516년 볼로냐 화친 조약으로 프랑스 교회권에 대한 국왕의 권리가 확고해지다.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 군 참패하고, 프랑수아 1세, 포로가 되다.
1534년 격문 사건으로 정부는 프로테스탄티즘을 억합하게 되다.
1539년 빌레르 코트레 칙령으로 프랑스 어가 모든 합법적이고 공식 문서상의 언어로 규정되다
1559냔 카토 캉브레지 조약으로 이탈리아 전쟁 종결되다.
1561년 프랑스 종교전쟁이 시작되다(1598년까지).
1572년 생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주요 프로테스탄트 인사들이 파리에서 살해되다
1588년 파리의 카톨릭 연맹들이 바리케이드를 치며 항거하다.
1589년 앙리 4세가 부르봉 왕조를 세우며 왕위에 등극하다.
1594년 남서부에서 크로캉 농민 봉기가 발생하다(1595년까지).
1598년 낭트 칙령으로 종교 전쟁 종말되다.
1618년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 대항하여 30년 전쟁 벌어지다(1648년까지).
1622년 몽펠리에 평화 조약으로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는 도시가 2개만 남는다.
1624년 리슐리외, 주요 대신으로 국왕 참사회에 들어가다(1642년까지).
1630년 주르네 데 뒤프(11월 10일)로 리슐리외의 권력이 더욱 공고화되다.
1631년 최초의 국민 신문, [가제트]가 발행되다.
1639년 맨발(뉘 피에)봉기가 노르망디에서 발생하다.
1643년 로크루아에서, 프랑스 군,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다.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이 되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 종결짓다. 프롱드 난이 일어나다(1652년까지).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스페인과 종지부를 찍다.
1661년 콜베르, 재무 대신이 되다(1683년까지).
1667년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다(1668년까지).
1672년 네덜란드 전쟁이 발발하다(1678년까지).
1685년 퐁텐블로 칙령으로 낭트 칙령을 폐지시키다.
1689년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이 발발하다(1697년까지).
1701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발발하다
1702년 칼뱅 교 농민들에 의해 세벤에서 카미자르 전쟁 발발하다(1704년까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종전되다.
1715년 루이 14세의 서거, 파리의 고등 법원에 의해 오를레앙 공작의 섭정이 시작되다(1723년까지).
1740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다(1748년까지).
1756년 7년 전쟁. 프랑스는 영국에 대한 엄청난 손실로 고통을 겪다(1763년까지).
1775년 곡물 부족과 품귀 현상으로 밀가루 전쟁이 일어나다.
1778년 미국의 독립 전쟁. 프랑스는 영국에 대항하는 식민지 반란에 합세하다(1783년까지).
1783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는 약간의 식민지를 얻다.
1788년 삼부회가 1789년 5월의 모임을 위해 소집되다.
1789년 (6월 20일) 테니스 코트 서약, 국민 의회는 새로운 헌법의 기초가 마련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기로 선서하다.
(7월 14일)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하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다.
(가을) 농군 혁명, 봉건 제도가 폐지되다.
1792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일어나다.
루이 16세가 폐위되고 제1 공화정이 공포되다.
1793년 공포 정치가 계속되다(1794년까지).
1795년 총재 정부, 새로운 입헌 체제가 성립되다(1799년까지).
1799년 나폴레옹이 총재 정부를 해체하고 집정 정부를 창설하다.
1801년 교황과 나폴레옹이 카톨릭 교회를 재정립하기로 하는 내용의 정교 협약에 조인하다.
1804년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제1 제정이 탄생하다.
나폴레옹 법전(민법)을 편찬하다.
1808년 스페인에서 반도 전쟁이 발발하다.
1812년 나폴레옹, 모스크바 원정에서 패배하다.
1814년 나폴레옹 폐위, 엘바 섬으로 귀양가다.
1815년 워털루에서의 패배로 나폴레옹의 '백일 천하'가 끝나다.
루이 18세의 등극으로 부르봉 왕조가 복귀되다.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이 시작되다.
'영광의 30일(7월 27일~29일'로 샤를 10세가 폐위되고 부르봉 왕조가 종식되다. 오를레앙 백작 루이 필리프가 왕으로 등극하다.
1848년 7월, 왕정이 몰락하다. 제2 공화정 선포, 루이 필리프가 물러나고 임시 정부가 구성되다.
6월 항쟁 발발, 파리 급진파들을 탄압하다.
1851년 쿠데타로 루이 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찬탈하다.
1852년 제2 제정, 대통령 루이 보나파르트는 스스로를 나폴레옹 3세로 추대하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되다.
1871년 파리 코뮌, 알자스와 로렌을 독일에게 빼앗기다.
제3 공화정이 선포되다.
1898년 에밀 졸라가 [나는 탄핵한다]를 발표하다.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다.
1905년 영국•프랑스 화친 조약에 조인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다(1918년까지).
마른 전투가 일어나다.
1916년 베르됭 전투가 일어나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알자스와 로렌 수복하다.
1924년 독일 재건을 위한 도스 플랜이 성립되다.
1925년 프랑스, 독일 및 기타 열강 간의 로카르노 조약을 체결하다
1929년 마지노 선 수립을 결정하다.
1934년 스타비스키 사건이 일어나다.
1936년 인민 전선 정부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및 기타 좌익 그룹들을 통합시키다.
1938년 달라디에, 뮌헨 협정에 서명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다(1945년까지).
1940년 페탱의 프랑스 국가, 제3 공화정이 종식되고 비시 프랑스가 성립되다.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벌어지다
1946년 제4 공화정이 수립되다.
1954년 알제리 전쟁 시작이 일어나다.
1957년 디엔 비엔 푸에서 베트남 군에게 패배하다.
1957년 로마 조약으로 유럽 공동 시장이 건설되다.
1958년 알제리의 교착 상태로 헌정 위기가 초래하다.
제4 공화정이 끝나고 제5 공화정이 수립되다.
1962년 에비앙 협정으로 알제리의 완전한 독립이 선포되다.
1968년 5월 혁명.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다(1988년에 재선).
1994년 영국•프랑스 해저 터널이 공식적으로 개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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