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헌: 조선책략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4. 7. 15.
조선책략 - 황준헌 지음, 김승일 옮김/범우사 |
목차
판권 페이지
차례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김홍집과 주일 청국 외교관의 필담
내가 보는 조선책략
여러 대신이 의견을 올림
영남만인소
■ 연 보
참고자료: 위키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7 1876년에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고 나서 조선왕조는 잇따라 내우외환에 시달려야 했다. 안으로는 내정의 문란과 학정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 등으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고, 밖으로는 서세동점으로 인한 위기 의식이 온 나라에 팽배했다.
12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은 일본의 의중을 살피는 한편 국제정서를 탐문하기 위해 김기수에 이어 제2수신사를 일본에 파견하기로 했고, 그 결과 예조참의 김굉집이 58명의 수행윈을 이끌고 고종 17년(1880) 6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이들 이행은 그곳에서 청나라 공사관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당시의 청나라 공사 하여장을 비롯한 공사관원들과 일본과의 국교문제를 논의하였는데, 이때 청나라 공사관의 참찬관이었던 황준헌이 자신이 저술한 <조선책략>이라는 소책자를 김홍집에게 주어 이를 외교정책 수립 시 참고하게 했다.
이 책에 따르면 한•중•일 세 나라에 가장 두려운 나라는 러시아이고, 이와 반대로 미국의 경우는 크게 미화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청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동시에 미국•일본과 협조관계를 취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하나같이 다 청나라에 유리하게 국제정세를 끌고 가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정부는 그들의 속셈을 읽을 능력조차 없었다.
김홍집은 귀국할 때 이 책을 갖고 와 고종에게 헌상했다. 이 책을 본 고종과 여러 대신은 큰 영향을 받고 이 책의 내용대로 외교정책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전해 들은 유생들이 어떻게 일본과 손을 잡을 수 있느냐며 전국적인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반일 운동을 역사에서는 '만인소 운동'이라 일컫는데, 영남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책략>에 반대하는 상소를 계속 국왕에게 올려 전국적으로 반일정서를 고조시켰다. 하지만 유교적인 이적관만으로 열강에 저항하는 것은 이미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13 <김홍집과 주일 청국 외교관의 필담>은 김홍집이 일본에 머물면서 1880년 7월 17일부터 8월 3일 사이에 가졌던 6차에 걸친 필담을 기록한 것이다. 김홍집이 대담한 인물은 청나라 공사 하여장과 참찬관 황준헌이었으며, 부사 장사계도 배석했던 것 같다.
14 <조선책략>은 일본 주차 청국 공사관 참찬관인 황준헌이 한•미 수교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소책자이다.
15 우선 '친중국親中國'인데, 이것은 종래의 주종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훗날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될 때 청나라는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 조항이 삽입되길 바랐지만 미국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다음은 '결일본結日本'인데, 이것은 제아책制俄策(러시아를 견제하는 방책)의 하나로 제시되었을 뿐, 일본에 대한 시의와 경계심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끝으로 제시한 '연미국聯美國'은 중국 특유의 원교근공책으로서 믿음을 주고 아울러 힘도 갖춘 미국을 끌어들여 러시아의 책동을 봉쇄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이이제이책을 쓰고자 한 것이다.
15 <조선책략>이 형식상으로는 '사의私擬'라는 두 글자가 붙어 황준헌 개인의 의견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은 당시 청나라의 실력자였던 이홍장의 견해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고, 또한 이것은 청조의 기본적인 외교노선이기도 했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 청조 자신의 이익을 꾀한 것이지만, 당시의 조선 정계에 대한 매우 값진 충고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16 <여러 대신이 의견을 올림>은 처음에 <조선책략>이 들어와 조정에서 다소 물의가 일어났을 때 영상 이최웅, 좌상 김병국, 영부사 이유원, 영돈 홍순목, 판부 한계원등이 의견을 모아 왕에게 헌책한 것이다. 그 내용은 매우 완곡하며 <조선책략>의 적절한 수용과 그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헌의>와 <만인소>를 비교하며 읽어보면 정책 실무자와 야인의 입장을 실감할 수 있고, 또 "여쪽은 온화하고 야쪽은 격렬하다"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16 <영남만인소>는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갖고 돌아온 후 그것이 조야에 퍼지자 유학계에서 보여준 가장 신랄한 반응이었다. 즉 퇴계의 후손인 영남 유생 이만손이 1만 명의 연서를 얻어 <조선책략>을 바친 김홍집 일파를 탄핵한 상소문이다. 여기에서 이만손 등은 <조선책략>을 패륜망덕의 불온문서라고 단정하며 그에 대한 팔대불가론을 제시했다.
17 서세동점의 격랑 앞에서 민족과 나라의 보전을 위해 토로한 그들의 우국충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겠지만, 시류에 어두운 완미(완고하여 사리에 어둡다)한 주장에 대해서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비록 시의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 상소문이 지닌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양대 국론 중 한 조류를 대표하는 것이었고, 특히 임금에게 올리는 글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소신을 피력하고 심지어 왕의 무능무책을 정면으로 공격한 정론 등에서 민족의 긍지와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17 결론적으로 이상의 글들을 통해 한•미 수교를 둘러싼 당시의 조선과 청나라의 미묘한 입장을 알 수 있고 또 '<조선책략'과 관련된 국내 여론'의 날카로운 대립을 살펴봄으로써 긴박했던 국내외 정세를 보다 실감나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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