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중국정치사상사 | 16 공자 禮·仁 중심의 정치사상 1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 - 상 - 10점
유택화 지음, 장현근 옮김/동과서


Reading_20min_20150427  :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上)-16

공자 禮·仁 중심의 정치사상

- 본래 예는 외재적 규범이었다. 당시의 예는 매우 번잡해서 대다수 사람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였고, 그에따라 전문적으로 예를 관장하는 사람을 두었다. 이것을 相禮(즉 襄禮)라 한다. 공자는 성인이 된 뒤 자주 상례 활동에 종사하였다.

- 공자가 예를 중심으로 가르친 것은 정치였으며, 그가 운영한 것은 정치학교였다. 그는 유교무류(有敎無類,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가르침을 베품)의 정신에 입각하여 사람을 가르쳤다.

- 공자의 가르침의 목표는 정치가가 되는 것이었다.


“배워서 출중하면 벼슬한다. 學而優則仕”(論語, 子張)


“배우면 녹이 그 가운데 있게 된다. 學也 祿在其中矣”(論語, 衛靈公)


- 공자가 가르친 내용은 六藝였다. 論語 述而(술이)편에는 문.행.충.신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다. “子以四教 文 行 忠 信(자이사교 문행충신)”

- “일반적으로 경험적 사실에 관한 논의가 아니었으며, 구체적인 정책도 아니었다… 구체적인 정치사건과 역사로부터 이론과 원칙을 추론해내는 방식이었다.”



인간 중심의 정치 및 人治로의 전환

– “노자는 사람을 자연으로 환원시켰고, 공자는 사람을 사회로 환원시켰다. 정치는 사회적 인간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 정치사상의 주제였다.”


1) 군주는 정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집권자 개인의 수양과 품덕을 특별히 강조. 집권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는 듯하지만 군주전제 시대에는 일정한 역사적 근거가 있다.

2) 사람이 도의 체현자이고 담당자이다.


도는 “정신·정책·도덕·전통 및 그에 상응하는 여러 제도들 모두를 포괄한다. ‘도’라는 것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주나라 문·무의 도가 지속적인 영향력을 갖듯이 역사적 삶의 한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도를 키울 수 있지, 도가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人能弘道 非道弘人(자왈 인능홍도 비도홍인)”(論語, 衛靈公(위영공))


“더불어 같이 공부[學]할 수는 있지만, 더불어 도에 응할 수는 없다. 더불어 도[道]에 응할 수는 있지만, 더불어 도를 세울 수는 없다. 더불어 도를 세울[立] 수는 있지만, 더불어 (경중을) 헤아릴[權] 수는 없다.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자왈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가여적도 미가여립 가여립 미가여권)”(論語, 子罕(자한)) 도를 배웠다 해도 도를 굳게 지킨다고 할 수 없고, 도를 견지한다 해도 그것을 발전시킨다고 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있어야 진정으로 일정 수준에 오른 것이다.


3) 정치과정은 자신으로부터 남에게 미치는[由己及人(유기급인)] 과정이다.


“그 행신이 바르다면 정치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행신이 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을 바로 이끌겠느냐. 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구정기신의 어종정호하유 불능정기신 여정인하)”(論語, 子路(자로))


- 인재선발, 즉 현인정치사상


1) 사인(士人)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을 현인으로 만들어 벼슬길에 나아갈 자격을 갖추라는 것

2) 집권자는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여 벼슬에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


예로써 나라를 다스림

– 예는 사회구조에 대한 체계. “등급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질서·사회구조이며, 사람들의 행위준칙에 관한 기본 규범”


“행정수단으로 이끌고 형벌로 질서를 잡으면 백성들은 죄를 면하는 데 급급할 뿐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잡아야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論語, 為政) 백성들을 이끌 수 있다.


– 예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1) 귀천등급제도

“군신·부자의 일방적 종속관계는 다른 인간관계를 제약했으며, 등급적 명분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추가 되기도 하였다. 군권주의와 부권주의는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2) 기물과 명분에 대한 군주의 독점

器는 예기(禮器)를 가리키며, 名이란 예에 따른 명분(名分)을 가리킨다.


“기와 명만은 절대로 타인에게 양도해서는 안된다. 唯器與名 不可以假人(유기여명 불가이가인)”(春秋左傳, 成公二年)


3) 예를 언행의 전과정에 관철시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論語, 顏淵(안연)) — ‘네 가지 말라[四勿]’





지난 주에 이어서 윤리중심의 정치사상을 표방하고 나온 유가에 대해서 계속한다. 유가의 대표자는 공자이다. 이 책에서 유가정치사상을 다룰 때 공자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공자를 다루고, 대학과 중용, 맹자, 순자, 역전, 주례에 대해서도 다룬다. 다시 말해서 제5장 유가 윤리중심의 정치사상은 다섯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 유가에 과한 개론이 지난 주에 한 것이고 오늘은 공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윤리중심의 정치사상이라는 제목이 달려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치와 윤리가 하나의 문장 속에 들어있다. 우리는 윤리라고 하는 것과 정치라는 것이 서로 다른 영역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상식이다. 예를 들어서 서양 정치사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노크윤리학」,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있고, 「정치학」이 따로 있다. 윤리학과 정치학이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서로 분리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공자에서 시작된 유가가 윤리중심의 정치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라는 영역에서 다루기 어려운 것을 정치라는 영역에서 다루려고 하다보니 어떻게 보면 억지스럽고, 사람들이 굉장히 실천하기 힘든 것을 내놓고, 그러다보니 기만에 빠지게 되기도 하고, 그런 병폐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공자의 정치사상을 이야기하겠다.


공자의 정치사상을 예와 인을 중심으로 보겠다. 예는 마음가짐만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윤리중심의 정치사상이라고 해도 굉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현실적으로 사람을 구속하는 강력한 규범장치가 있다는 것을 꼭 유념해야 한다. 원래 예는 외재적 규범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제사 지낼때는 절을 몇 번 하는가 이런 것들을 규율하는 형식적인 규범이었다. 그런데 공자 당시의 예는 매우 번잡해서 대다수 사람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였고, 그에따라 전문적으로 예를 관장하는 사람을 두었다. 이것을 상례라고 하는데 공자는 예법 전문가였다. 공자는 성인이 된 뒤 자주 상례 활동에 종사하였다.  


공자는 예를 중심으로 가르쳤고, 공자가 운영한 것은 정치학교였다. 공자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공자의 가르침의 목표는 정치가가 되는 것이었다. "배우면 녹이 그 가운데 있게 된다." 이것이 유가의 전통이다.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



그 다음에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 공자는 뚜렷하게 이야기하는데, 나부터 똑바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행신이 바르다면 정치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행신이 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을 바로 이끌겠느냐." 저자가 지적하는 것이 도덕적 품격을 중용한 조건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만에 빠지기 쉽다는 것. 정치과정은 자신으로부터 남에게 미치는 유기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도의 체현자가 자람이니까 사인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을 현인으로 만들어 벼슬길에 나아갈 자격을 갖추라는 것이고, 당연히 그에 응하여 집권자는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여 벼슬에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 공부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 탁월한 견해다. 당시로서는 그런데로 진보적인 견해였다. 저자는 친인척을 관료로 삼고, 배우지 않고 관료가 되는 풍토에 일격을 가한 것이라는 견해를 말했다.


두번째로는 예로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 예는 사회구조에 대한 체계를 말한다. "등급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질서·사회구조이며, 사람들의 행위준칙에 관한 기본 규범"이다. 예라는 굉장적 행위규범으로 볼 수 있다. 행정수단으로 이끌고 형벌로 질서를 잡으면 백성들은 죄를 면하는 데 급급할 뿐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잡아야 백성들을 이끌 수 있다.


막연한 예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첫째는 귀천등급제도이다. 특히 "군신·부자의 일방적 종속관계는 다른 인간관계를 제약했으며, 등급적 명분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추가 되기도 하였다. 군권주의와 부권주의는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 다음 둘째가 적절한 기물과 명분에 신경을 쓰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명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예를 언행의 전 과정에 관철시킨다. 안연편에 나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네 가지 말라[四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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