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1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2


걸리버 여행기 - 10점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박용수 옮김/문예출판사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707_35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2

지난 주부터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있다. 스위프트의 저작 중에서는 상당히 후기의 작품으로 영국의 치졸한 정파싸움, 종교관 싸움 등을 소인국의 정쟁에 비유하기도 하고, 거인국으로 넘어와서는 왕의 입을 빌어서 자기네 나라의 추악한 정쟁들을 질타하기도 한다. 지금부터는 진지하게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늘을 떠도는 섬, 라퓨타의 이야기다. 하늘을 떠도는 섬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이 당시 아주 발전했던 자연과학의 산물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가지고 SF소설을 쓰는 것처럼 그 당시는 아주 황당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라퓨타라는 섬에 사는 사람들이 스위프트가 보기에는 과학에만 매달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황당한 사람들인 것. 랴퓨타가 위에서 떠돌아다니고 그 섬이 영향을 미치는 곳이 발니바비라는 지역이다. 지상 위에 있는 수도는 라가도이다. 지상과 라퓨타는 아주 다르다. 우리가 흔히 세상물정은 아무것도 모르고 구름 위를 떠도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수학이라고 하는 것은 기하학을 말하는 것이고, 음악은 천체의 음악을 드는 것. 이 사람들의 생김새는 눈 한쪽은 안쪽으로 들어가있고, 다른 쪽은 위로 향하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간 눈은 자기 안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데카르트와 같은 사람들을 풍자한 것.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아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여 세상과 타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말한다. 그 다음에 위로 향한 눈은 우주를 관찰한다. 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아와 철조하게 우주만 보니 그 중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타인, 푸르른 들판, 그 사이에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것들이다. 동시에 수학과 음악에만 몰두하고 있으니까 옷을 만들어도 기하학적 도형으로 옷을 만든다. 여기보면 재봉사가 "그는 고도 측정기로 나의 키를 재고 자와 컴퍼스로 내 몸의 체적과 둘레를 쟀고 그것을 모두 종이에 기재했다. 그러고서 6일이 지난 다음에 내 옷을 만들어 왔는데 아주 볼품없고 몸에도 맞지 않았다." 이론과 가지고는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미세한 조정을 사람 손으로 한다 해도 만족을 주려면 정서적인 공감이 최후에 작용해야 모든 데이터와 측면들이 통합되어서 완전함을 가져다 준다. 그러다 보니 라퓨타에 사는 사람들은 늘 불안에 사로 잡혀 있다.


206 그 재봉사는 유럽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했다. 그는 고도 측정기로 나의 키를 재고 자와 컴퍼스로 내 몸의 체적과 둘레를 쟀고 그것을 모두 종이에 기재했다. 그러고서 6일이 지난 다음에 내 옷을 만들어 왔는데 아주 볼품없고 몸에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스위프트는 이렇게 애기한다. "그들은 늘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데, 따라서 한순간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불안감이라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이 아닌 인간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도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데 그 특이성이 있다. 그것은 천제에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일종의 실존적인 불안이 늘 있었을 것 같다. 파스칼의 《팡세》를 보면 파스칼이 굉장히 명석한 수학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이 더 하지 않았을까. 지나치게 명석하면 그렇다. 좀 아둔해야 감정도 누그러지고 버티는 힘이 생긴다.  


209 그들은 늘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데, 따라서 한순간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불안감이라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이 아닌 인간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도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데 그 특이성이 있다. 그것은 천제에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라퓨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우연히 지상에 내렸다가 아예 도망가서 안돌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얘기가 나온다. 과학이 인간에게 강한 위력을 주었고, 사실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갖게 해줬다. 그런데 그 과학이 인간을 참된 행복에 이르게 하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들이 라퓨타 섬과 그 주변에 관한 이야기들에서 전개가 된다.


그 다음에 유념해야 봐야할 것이 말의 나라이다.

말의 나라에서 후이늠과 야후가 있다. 후이늠이라는 것은 타고 다니는 말을 뜻하며, 어원이 자연의 완성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후이늠이라고 하는 말 모습의 존재가 더 우위에 있는 존재이다. 재미있는 것이 스위프트가 가지고 있는 자연관이 자연이라는 것은 인간이 왜곡시키지 않는 한 완성태에 이를 경우에 훌륭한 것이 된다. 그러나 과학이 개입해서 망가뜨린다 라는 것이 스위프트의 생각이다. 사실 17세기가 과학의 시대인데 17세기에 과학에 대한 어떤 연구를 할 때 《걸리버 여행기》가 중요한 연구 원천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304 그들의 단어에서 후이늠이라는 것은 타고 다니는 말을 뜻하며 그것의 어원은 '자연의 완성'을 의미한다.


후이늠이라는 존재는 말인데 가장 인격적으로 완성된 존재로 되어있데 인간이 아닌 말이다. 여기서 분명히 스위프트가 자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역겨운 짐승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걸리버가 말의 나라에 도착했다. 정체성은 후이늠이 아닌 야후쪽에 가깝다. 그리고 걸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누구보다도 인류애를 가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 야후라는 동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게 보였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그 나라에 있는 동안에 그것들과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혐오스러워졌다."


296 그때, 내가 누구보다도 인류애를 가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 야후라는 동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게 보였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그 나라에 있는 동안에 그것들과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혐오스러워졌다.


후이늠은 뛰어난 논리와 표현력을 가지고 있고, 그 나라에는 거짓말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그들의 지성을 가장 잘 집약해서 보여주는 대화가 있는데 "그들이 하는 대화는 주로 우애심이나 자비심, 질서나 가정, 자연의 이치, 옛날부터 전해오는 풍습, 미덕의 한계, 이성의 법칙, 다음의 회의에서 결정할 내용, 시구에 관한 것 등등이었다."


362 그들이 하는 대화는 주로 우애심이나 자비심, 질서나 가정, 자연의 이치, 옛날부터 전해오는 풍습, 미덕의 한계, 이성의 법칙, 다음의 회의에서 결정할 내용, 시구에 관한 것 등등이었다.


"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후이늠들은 그들이 소유한 훌륭한 덕성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팔다리를 가졌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문장이 사실 《걸리버 여행기》에서 가장 가슴 아픈 말이라고 본다. 훌륭한 덕성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그렇다.


387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후이늠들은 그들이 소유한 훌륭한 덕성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팔다리를 가졌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팔다리가 없다면 아주 불행한 일이 되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내가 이 주제에 관해서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의 야후에 불과한 나 자신이 살아가는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소망 때문이다. 그리고 악의 기미가 있는 사람은 나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말의 나라가 끝난 다음에 "출판업자 리처드 심프슨에게 보내는 편지"가 붙어 있는데 이 편지 역시 원래 《걸리버 여행기》의 일부이다. 거기를 보면 "자네는 책을 출판하면 사회에 이바지하게 된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야후들을 어떤 것으로든 교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네에게 여러 차례 말했네." "내 책이 반년 이상이나 사람들을 교정하려고 해보았지만 아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네. 당파 싸움이 끝이 났는가? 판사들은 정직해졌는가? 변호사들은 정직해지고 겸손해지고 상식을 갖추었는가?"


391 나는 나 자신이 아주 신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한탄하네. 자네가 기타 여러 사람의 설득에 못 이겨서 나의 본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책을 출판하게 만든 건 잘못이네. 자네는 책을 출판하면 사회에 이바지하게 된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야후들을 어떤 것으로든 교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네에게 여러 차례 말했네. 과연 내 말대로 되지 않았는가? 이 조금 영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부정붚나 악습이 전혀 교정이 되지 않고 있네. 내 책이 반년 이상이나 사람들을 교정하려고 해보았지만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했네. 당파 싸움이 끝이 났는가? 판사들은 정직해졌는가? 변호사들은 정직해지고 겸손해지고 상식을 갖추었는가? 귀족들의 교육 형태가 바뀌었는가? 암컷 야후들은 덕성이나 명예나 진실로 차 있는가? 유능하고 현명하고 학식있는 사람들이 대우 받는가? 저질 작가들이 출판계를 더럽히는 게 근절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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